멀고, 또 너무 험한 쿵푸 마스터의 길


프랑스의 인디 게임 스튜디오 슬로크랩(SLOCLAP)에서 지난 8일, 신작 3인칭 액션 게임 '시푸(Sifu)'를 출시했습니다. 시푸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형과 그 일당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8년간 무술을 연마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입니다. 전투 중에 죽더라도 멈추지 않고 나이를 먹어가며 끝없이 복수를 향해 달려간다는 독특한 설정과 영화 '올드보이'의 명장면을 오마쥬한 전투 신 삽입으로 주목받은 작품이죠.

정식 출시보다 며칠 먼저 게임을 접할 수 있었던 디럭스 버전 구매자들로부터 무시무시한 난이도가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액션 게임의 난이도를 이야기할 때 빠지면 섭섭한 '세키로'도 정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호기롭게 게임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게임이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첫 번째 스테이지를 한 번도 죽지 않고 클리어하며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는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집단구타의 향연에 버티지 못하고 백발노인이 된 주인공과 함께 제 정신도 금세 아득해졌습니다.

시푸는 모든 게이머에게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상냥한 게임이 아닙니다. 살벌한 게임의 난이도는 조작이 서투른 유저들에게 게임을 구매하고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탈력감을 선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시푸를 향해 '2022년을 대표할 액션 게임'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고 있죠. 이 극단적인 온도 차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낀 경험을 나눠보려 합니다.

게임명 : 시푸(Sifu)
장르명 : 액션
출시일 : 2022.02.08.
개발사 : 슬로크랩(Sloclap)
서비스 : 슬로크랩(Sloclap)
플랫폼 : PC, PS4, PS5

관련 링크: '시푸' 오픈크리틱 페이지


첫 번째 시선, "시푸는 명작이다"


먼저 '시푸'가 올해 최고의 액션 게임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봅시다.

시푸의 전투는 기본 조작만 확실히 익힌다면 게임의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막힘 없이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키보드 기준으로 스페이스 버튼 하나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타이밍에 맞춰 쳐내고, 혹은 피하는 등 모든 대처가 가능하거든요. 사방에서 각기 다른 타이밍으로 쏟아지는 공격을 방어 버튼 하나로 막아내고, 상대의 체간 게이지를 쌓아 '테이크다운'으로 마무리하는 액션은 마치 홍콩 무술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빠르고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이처럼 방어 버튼 하나로도 여러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전투에서의 조작이 마냥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강공격과 약공격의 조합으로 더 다양해지는 공격 스펙트럼을 시작으로 대전 격투 게임처럼 방향키를 돌려 발동하는 커맨드 스킬, 사방에 널려있는 잡동사니를 집어들고 펼치는 무기 액션, 전투 중에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포커스 게이지로 발동하는 강력한 포커스 액션까지, 전투를 더 유연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다양한 조작을 다채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상대를 쓰러트려 빈틈을 만드는 하단 쓸기는 필수로 익혀야하는 커맨드 중 하나

▲ 주변의 사물을 활용하여 전투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정교한 전투 매커니즘은 개발사 슬로크랩의 전작 '앱솔버(Absolver)'에서도 두드러졌던 특징입니다. 전작인 앱솔버 역시 방어와 패링, 회피를 중요시하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는데요. 싱글 플레이보다 PvP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멀티 기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서버 랙으로 인한 입력 지연 문제 등 고질적인 서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게임이었죠.

신작 '시푸'는 앱솔버에서 호평받았던 중요 포인트들만 추출하여 하나로 재정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작의 강점이었던 독특한 전투 스타일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주인공, 컨셉이 모호했던 중세 판타지 대신 주인공의 액션 스타일에 맞춤 양복처럼 들어맞는 동양풍 세계관, 여기에 복수를 위해 무술 실력을 갈고닦은 주인공의 여정이라는 '정무문'을 연상케하는 정통 무협 복수극 스토리를 더해 싱글 플레이 요소를 크게 강화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게임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는 여러 특징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시푸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게임으로 주목받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다섯 개의 엽전으로 이루어진 마법 부적을 활용한 '부활', 그리고 '노화' 시스템에 있습니다.

▲ 한평생을 복수에 바치겠다는 각오를 표현한 듯, 주인공은 계속 늙는다

20세의 젊은 주인공이 기업 규모의 적대 세력 진영에 맨손으로 찾아가 원수들을 하나씩 전부 때려눕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정성 높은 자동소총과 예비 권총, 충분한 탄약으로 바리바리 무장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겠죠. 시푸에서는 각종 화기와 수류탄 대신 일종의 '마법 아티펙트'가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시푸의 주인공은 마치 게임 속 주인공처럼 여러 개의 목숨을 가지고 복수극에 나섭니다. 죽음을 반복할 때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엽전 모양의 부적이 빛나고, 주인공은 부적의 힘으로 다시 부활해 싸움을 이어나가게 되죠. 이렇게 편리한 장치가 또 어디 있나 싶지만, 부활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의 부적의 경우, 사용자의 남아있는 수명을 목숨에 대한 대가로 지불합니다.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원수의 앞에 당도하기까지 50년의 세월을 대가로 지불했다면, 플레이어는 70대의 노인이 된 상태로 원수와 싸워야만 합니다. 물론 이 경우엔 더 남아있는 추가 기회가 없는 셈이죠. 부적의 동전은 하나당 10년의 세월을 뜻하므로, 주인공의 싸움은 70대가 마지막이거든요.

▲ 부활을 거듭할 때마다 엽전은 빛을 잃고, 종국에는 사라진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늙어가는 주인공의 외모, 줄어드는 체력에 반비례하여 더 날카로워지는 공격으로 표현한 캐릭터의 나이, 그리고 엽전의 수가 줄어듦과 동시에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긴박감 연출은 시푸를 일반적인 액션 게임들과는 차별화시켰습니다. 시푸가 '2022년을 대표할 액션 게임 중 하나'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시선, "시푸는 명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여러 액션 게임 팬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시푸를 "명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악랄한 게임 난이도에 지친 유저들이 남긴 불만인데요. 이러한 불만들을 단순히 '게임 실력이 없는 사람들의 불평'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게임에 구조적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몇몇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게임 내 성장 요소의 부재'입니다. 죽음을 반복하며 복수를 이어나간다는 기본 구조상 게임이 기본적으로 어렵게 설계되어 있고, 조작이 익숙지 않은 초반엔 셀수도 없이 많은 죽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게임을 접한 유저의 경우 세 번째 보스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70년의 세월을 모두 사용해버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조작을 익히기 위해 죽고 또 죽으며 초반 스테이지만 수십 시간을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게임 속 주인공은 이렇다할 성장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전투를 반복하며 쌓은 경험치로 전투 스킬들을 하나씩 해금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스테이지 보스전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투사체 잡기'를 포함한 몇 개 스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스킬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도에 그칩니다.

결국 스킬을 전부 해금했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을 조작하는 유저 자신이 전투의 핵심 요소인 '회피, 가드, 패링'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 아무리 목숨이 많아도, 기본기를 충분히 익히지 않았다면 잡졸의 주먹 몇 방에도 객사하게 된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시푸는 기본기만 탄탄히 익혀두면 아무런 스킬 없이도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목숨 하나 잃지 않고 깰 수 있는 게임이 됩니다. 실제로 게임이 출시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금, '20세 노데스 전 스테이지 클리어' 인증 영상을 유튜브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개발사가 얼마 되지 않는 게임의 볼륨을 무작정 어려운 난이도로 포장해놓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 탓에 '시푸'는 어려운 난이도의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권하기 쉽지 않은 게임이 됐습니다. 어려운 게임 구조에 익숙해지느라 죽음을 반복하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하는데 다섯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실질적인 볼륨은 짧은 편입니다. 패키지 가격은 일반적인 인디 게임 가격의 배에 달하는데도 말이죠. 물론, 다섯 시간 만에 게임을 전부 끝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려면 족히 수 배에 달하는 숙달의 시간이 필요하긴 합니다.

▲ 다섯 번째 보스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유저가 과연 몇이나 될까?

PS4, PS5 콘솔 버전과 동시에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통해 PC 버전으로 게임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키보드 유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힙니다. 전투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 '쓰러진 적 공격'이 조작법 안내에 적힌 C 버튼 홀드와는 달리 엉뚱한 E 버튼에 할당되어 있다든가, 게임 내에서 포커스 게이지를 모아 사용하는 '포커스 동작 실행'에 아무런 키가 할당되어 있지 않아 자칫 헤매기 쉬운 문제 등이 대표적이죠.

이외에도 키보드 조작 안내에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몇 가지 요소들, 간혹 맵 구조물에 캐릭터가 끼어버리는 문제, 대화 선택지가 출력되는 순간 공격을 개시했을 때 가끔 적이 반격해오지 않는 버그 등 사소한 문제들이 눈에 띄지만, 앞에서 소개한 문제들에 비하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습니다.

▲ C가 아니라 E 버튼 홀드. 초반엔 인도주의적인 주인공이 쓰러진 적을 때리지 못하는 줄 알았다





무협지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전개인 기묘한 인연을 만나는 일 없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루 1만 회 정권 지르기'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시푸는 클리어 후에 웬만한 게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성취감을 선사하는 게임이 될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뒤 복수 하나만 바라보고 8년간 무술을 연마한 주인공이 목표를 완수하려면, 플레이어도 그에 뒤지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임해야 하거든요.

사실 초보자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어렵다는 점, 콘텐츠 볼륨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시푸는 딱히 단점을 짚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잘 만든 게임입니다. 그 잘 만들어진 게임을 더 다양한 유저층이 맛볼 수 있도록 '쉬운 난이도 모드'나 데스 패널티의 복리 시스템 완화 등의 옵션이 더해진다면, 난이도 문제로 지쳐 부정적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 역시 기꺼이 기존의 평가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적의 공격을 차단하고,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적을 제압했을 때의 희열 때문에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만약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하기에 게임 가격이 걸림돌로 느껴진다면, 먼저 스팀을 통해 출시된 슬로크랩의 전작 '앱솔버'를 플레이해보시기 바랍니다. 할인 이벤트 때마다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푸의 기반이 된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먼저 체험해볼 수도 있습니다. 시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라인 멀티 플레이 콘텐츠도 즐길 수 있고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난과 역경을 견뎌냈을 때 오는 달성감은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니, 박력 넘치는 쿵푸 액션과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고난이도 액션에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든다면, 기꺼이 도전해볼 만한 벽이 되어줄 '시푸'를 직접 플레이해보시기 바랍니다. 곧 출시될 예정인 '엘든 링'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면, 이에 앞서 굳어버린 손을 풀기에도 적절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