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만큼이나 서브컬쳐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소재도, 그리고 덕후와 덕후가 아닌 유저층의 온도 차이나 견해 차이도 큰 소재도 드물 겁니다. 일본쪽의 아이돌 문화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아이돌과는 다소 다른 유형이기 때문이죠. 이제는 우리나라식 그룹이 K-Pop으로 따로 카테고리가 생기고, 아이돌이라는 말보다는 그룹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게 된 터라 혼동의 여지는 적어졌지만요.

어쨌거나 서브컬쳐에서 말하는 '아이돌'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이미 국내에서도 아이돌마스터, 러브라이브 등 작품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려진 편입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고, 일본에서는 여러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원래 대중에게 활발하게 다가가는 아이돌이라는 소재 특성상 OST, 라이브, 라디오,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하게 프로젝트를 전개하기 편하기도 했고, 풋풋한 소녀들이 점점 성장해가면서 그리는 희망의 메시지는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거든요.

2019년부터 발족한 '아이돌리 프라이드' 역시 그러한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사이게임즈의 모회사 사이버 에이전트와 일본 연예 기획사 뮤직 레인, 출판 및 라이선스 기업 스트레이트 엣지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죠. 2021년 1월 애니메이션이 먼저 방영된 이후 2021년 6월 일본에 선출시됐으며, 그리고 지난 12월 네오위즈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올해 4월 27일 국내에도 출시됐습니다.

조금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먼저 방영한 애니메이션이 1화부터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전개가 벌어지기도 했고, 조금 무거운 분위기의 설정도 녹아든 작품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낸 게임이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기도 했죠. 일본 서버를 먼저 해보면 되긴 하겠지만 좀 더 진득하게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에 국내 출시까지 미리 보지 않고 기다려왔습니다. 주인공들의 성공적인 데뷔와 우승 이후, 과연 어떻게 그들과의 이야기를 풀어가게 될까 기대했는데, 접속하자마자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게, 그간의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이었기 때문이죠.

게임명 : 아이돌리 프라이드(Idoly Pride)
장르명 :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2.4.27.
개발사 : 퀄리아츠
서비스 : 네오위즈
플랫폼 : 모바일

※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있습니다


▲ 아이돌의 실력을 팬이 아닌 AI가 판정하는 '비너스 프로그램'

▲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정점을 노리는 아이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게임의 시작은 애니메이션이 끝난 뒤에,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도쿄로 올라간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튜토리얼에 간단하게 요약이 되어있으니, 그 부분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습니다. 보통의 아이돌 프로젝트와 달리,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나가세 마나가 1화만에 사고로 죽고 그 다음 세대로 이야기가 넘어가기 때문이죠.

그간 보아왔던 아이돌 관련 미디어 믹스에서 등장인물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대에서 내려오는, 비극적인 전개는 굉장히 드문 편입니다. 그런 전개만큼이나 '아이돌리 프라이드'의 설정은 꽤 무거운 편입니다. 단순히 아이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공연하겠다 이런 막연한 내용이 아니라, 아이돌이 되면 '비너스 프로그램'이라는 AI 기반 평가 프로그램에 등재, 자신의 실력과 퍼포먼스를 랭크로 증명해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상위 랭크에 올라가게 된 팀들은 최고의 신인 아이돌을 정하는 대회 '넥스트 비너스 그랑프리'에 참가해서 토너먼트로 승패를 가립니다.


▲ 설마 1화부터 누가 죽고 시작할 줄은...

▲ 그 후 3년이 지나, 동생 코토노를 비롯해 각자의 꿈을 안고 그 무대에 도전하는 신인들의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승자와 패자, 유닛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부담감 같은 것이 실제 오디션 프로그램만큼 날것 그대로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아이돌리 프라이드' 애니메이션은 중간중간 캐릭터들의 마음의 짐이나 부담감, 그리고 이를 이겨내기 위한 아이돌 자신의 노력과 이를 지켜보며 조언하는 매니저의 역할이 상당히 비중이 높은 작품입니다.

언니 마나의 뒤를 쫓아 아이돌이 된 코토노, 우연히 코토노와 만나서 오디션에 오게 된 사쿠라, 친구로서 코토노의 길을 지켜보다가 같이 아이돌의 세계로 오게 된 나기사, 명문가의 자제로서 톱을 노리는 나루미야 스즈 등등, 서로 제각각 다른 개성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꿈을 위해 분발하는 정통파 아이돌물로서 구성도 잘 갖춰져있죠.


▲ 호시미 프로덕션의 두 핵심 유닛을 비롯해


▲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그룹과 경쟁한 라이벌 유닛들도 등장합니다

통상 아이돌 게임에서 그렇듯 정통파 아이돌물 스타일로 각 유닛 그리고 아이돌 소녀들의 앞으로의 이야기와 매니저의 풋풋하고 꽁냥스러운 에피소드를 그려냈을 거라 기대하겠지만,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방치형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더 강합니다. 좋은 카드를 뽑아서 노트 판정을 후하게 하거나 콤보 점수를 높이는 요소는 있어도 직접 아이돌들의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서 스크린을 바쁘게 클릭하거나 혹은 무대에 서기에 앞서 아이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컨디션을 완성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다니는 그런 유형과는 상당히 동떨어져있죠.

게임 내에서 유저는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쭉 호시미 프로덕션에서 매니저로 근무해온 마키노 코헤이의 역할을 그대로 맡게 됩니다. 기본 트레이닝을 제공하고, 과제곡을 줘서 무대에서 공연해 비너스 프로그램의 랭크를 올리는 일이죠. 애니메이션에서도 마키노가 아이돌의 고민은 들어줘도 어느 정도 시점까지는 트레이닝이나 육성 쪽에서는 아이돌들이 직접 자신의 꿈에 대해 되짚어보면서 스스로 기본을 다지고 서로의 친분을 쌓아가길 바라는 면모가 많이 나오는데, 게임에는 그 과정 자체도 상당히 단순화되어있습니다. 육성 레벨업이라는 과정 하나로 끝나니까요.

▲ 아이돌을 육성하려면 레벨을 올리거나

▲ 라이브를 촬영해서 장비할 포토를 제작하고, 스케쥴을 소화하거나 트레이닝시키는 방식입니다

물론 그외에도 전단을 돌린다거나 라이브를 촬영한 사진으로 동기부여를 한다던가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그 과정 대다수가 한 번 터치하면 알아서 되거나, 혹은 정해진 시간 동안 계속 알아서 진행하는 식이죠. 공연도 유닛 편성과 액세서리, 포토 장비 및 배치까지만 하고 나면 그 다음은 방치식으로 진행됩니다.

가로 화면으로 볼 때는 단순히 라이브하는 영상을 재생해주는 것 같지만, 세로 화면으로 보면 어떻게 자동으로 노트를 처리하고 있고 액티브 스킬 노트와 SP 노트가 올라올 때 적절히 사용해서 분위기를 띄우는지 아니면 쿨타임이나 미습득 문제로 미스가 나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는 있죠. 액티브 스킬과 SP가 적절히 발동하느냐, 혹은 조건에 맞춘 연계가 잘 되느냐에 따라 무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고 점수도 갈리기 때문에 이를 잘 체크해서 유닛을 편성하고 캐릭터 위치를 편성하는 게 고득점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 라이브할 때 노트를 터치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 스테이지 진입 전에 곡에 맞춰서 유닛을 편성하고, 그 뒤에는 아이돌들이 알아서 진행합니다


어찌보면 이런 양상은 계열사는 다르긴 하지만 사이버에이전트 산하의 또다른 작품 '우마무스메'와 유사합니다. 본무대에서는 유저 개입 없이, 사전에 지시하고 장비한 스킬 그리고 트레이닝의 성과를 바탕으로 캐릭터들이 알아서 플레이를 진행한다는 것이나 지시만 해두면 그 과정을 알아서 캐릭터들이 이행한다는 점, '랭크'를 꾸준히 올려서 톱이 되겠다는 점 등이 말이죠.

그러나 그 전반적인 과정 자체가 프린세스메이커식 턴 기반에 컨디션 조율이나 여러 상황까지 판단해서 트레이너가 하나하나 최선의 선택을 강구해야 하고 안 될 거 같은 때에도 인자를 좋게 남기기 위해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리해야 하는 우마무스메와 달리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훨씬 더 방치형의 스멜이 더 강합니다. 막힌다 싶으면 잠시 트레이닝이나 스케쥴에 두면, 스탯이 늘거나 팬이 좀 더 확보가 되어서 그 다음 도전에서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는 식이니까요. 액세서리 획득 방법이나 포토도 스케쥴에서 랜덤으로 얻거나, 혹은 좋은 촬영필름을 써서 다소 운에 맡기는 것이다보니 매니저가 직접 톱 아이돌까지 이끌어간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합니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나 그 이후 호시미 프로덕션과 아이돌이 도쿄에 상경해서 펼치게 되는 후일담, 아울러 각각의 아이돌과 신뢰도를 쌓아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이돌 육성 게임의 기본은 충실히 갖춰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양대 아이돌물이 원체 너무 잘 알려져있다보니 묻히긴 했지만, 뮤직 레인이 아예 각을 잡고 오디션으로 선발한 신인 성우진과 스피어, TrySail 등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성우 유닛이 합세해서 만들어낸 곡이나 라이브 수준은 단순히 방치형이라고 넘어가려고 하다가도 멈춰서서 보게 만들 만한 파워가 있죠.


아이돌을 소재로 한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복합적인 프로젝트다보니, 어느 한 작품만을 두고 평가하는 건 상당히 리스크가 있습니다. 캐릭터나 유닛에 대한 애정을 쌓기 위한 빌드업이나, OST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고 라이브 문화 등에 자연스레 친숙해지게끔 여러 작품이 연계해서 전방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각자가 미숙하던 초기 시절부터 차차, 프로듀싱을 받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다각도에서 조명해주고 있으니 애정이 한 번 생기기 시작하면 그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함께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처음에 그 아이돌을 만나서 받게 되는 첫인상도 중요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유저들이 접하게 될 작품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것도 필요하죠.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시도를 한 작품입니다. 아이돌과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 중에서 계속 반복되는 부분은 과감히 방치형과 스킵으로 쳐내버리고, 핵심 스토리만 남겨둔 방식이니까요. 심지어 라이브마저도 아이돌이 직접 완성시킨다는 컨셉 하에 그간 프로듀싱한 결과물만 배치해두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는 방치형으로 전개됩니다.

▲ 물론 기본적으로 아이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능은 뒷받침되어있습니다

아이돌물이 시리즈가 여러 편 나오면서 미리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아지다보니 신규 유저 유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있는데,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이번이 애니메이션 외에 게임으로서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벽이 알게 모르게 생겨버린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부터도 그간의 아이돌물과 전개가 조금 다른데, 스토리가 처음부터 열리기보다는 프로듀스를 몇 번 하고 난 뒤에야 스토리가 전개되다보니 이질적일 수밖에 없죠. 이 아이돌들이 어떤 캐릭터인지부터 보고 싶다, 이런 니즈를 충족시킬 포인트는 늦게 열리고 더군다나 매니저로서 유저는 그냥 지시만 몇 번 하고 무언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눈에 새기지도 못하니까요.

유달리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타 작품 대비 톱아이돌이 되기 위해 피땀흘리며 전념하는 소녀의 모습을 많이 선전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처음 입문할 때는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데, 정작 게임에서는 그게 슥 지나가버리니 크게 체감은 되지 않아 조금 허전합니다.

▲ AI가 분석해서 프로듀싱 방향도 알려주니 나름 편할지도?

물론 스토리에서는 각자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소녀의 모습과 이를 지켜봐주는 매니저의 모습이 잘 그려져있고, 그걸 해금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까지는 없긴 합니다. 마치 극중에 마키노와 여타 아이돌의 모습처럼, 지시를 하고 방향을 정해주면 혼자 혹은 다른 팀원과 같이 그 길을 향해 스스로 달려가는 아이돌들이 어느 새 성장해서 그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가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의 수준도 꽤 높은 편입니다.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곡을 여럿 작곡한 타나카 히데카즈, 타도코로 아즈사나 아르카나 프로젝트 등 여러 성우나 가수 및 그룹의 음악을 작곡해준 프로젝트 그룹 Q-MHz,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그룹 livetune의 kz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에 앞서 소개한 스피어, TrySail, 그리고 뮤직 레인의 신인 성우진의 유닛이 시너지를 내는 OST도 하이라이트 스킵만 듣다가도 어느 새 풀버전을 찾아듣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아이돌리 프라이드는, 게임 하나만으로 유저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기엔 다소 아쉬운 모습입니다. 라이브 퀄리티는 준수하고 음악도 좋은 데다가 캐릭터들도 각자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오래 붙들게 만들기에는 방치형인 요소가 많죠. 애니메이션이 방영된지 1년도 넘게 지난 시점에서 출시가 된 터라 애니메이션을 본 유저층의 기세를 이어오기에도 썩 좋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가면 갈수록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야만 조금씩 진전이 있는 모바일 아이돌 게임과 달리, 잠시 쉬엄쉬엄하면서도 차근차근 성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언제까지고 동행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는 터라 조금 더 길게 볼 필요는 있겠죠. 미디어 믹스 프로젝트인 만큼 게임 내외적인 이벤트와 IP를 기반으로 한 또다른 시리즈와의 연계, 그렇게 해서 유입된 유저들에게 어떻게 아이돌과 시리즈의 매력을 꾸준히 어필하느냐가 관건이니까요. 다소 불리한 출발점에 시작한 아이돌리 프라이드가, 톱 랭크로 올라가기 위해 일신하는 작중 아이돌의 모습처럼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볼 필요는 있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