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스포츠에서 이 한 단어가 뜻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강팀, 약팀을 막론하고 각 팀에는 에이스라 불리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존재합니다. 에이스는 곧 그 팀의 얼굴이 되죠. 시합의 중심엔 각 팀의 에이스들이 있고, 팬들은 그런 에이스의 플레이에 열광합니다. 팬들이 보내는 최고의 갈채는, 보통 에이스들의 몫이죠.

항상 팬들의 환호를 독차지하는 에이스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수많은 팀원들이 있습니다. 에이스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플레이는, 자신의 힘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박수를 받는 에이스 뒤에는, 그를 시합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팀원들이 있죠. 그들은 비록 시합의 중심이 되진 못하지만, 시합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춥니다. 에이스를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숨겨진 영웅. 팬들은 그들을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뜻을 가진 '언성 히어로(Unsung hero)'라 부르며 존경을 표합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박지성(33)은 대표적인 언성 히어로 중 한 명입니다. 박지성이 선수 시절 몸 담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한 클럽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 포르투갈)와 웨인 루니(28, 영국)같은 특급 에이스들이 보여주는 활약은 굉장했죠. 그들은 언제나 필드위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종종 박지성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자신의 활약은 박지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에 헌신하는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죠.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독주엔 에이스의 그늘에서 언제나 노력한 언성 히어로, 박지성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 언성 히어로 박지성, 지금도 그 활약은 종종 회자되곤 합니다


롤챔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공격성의 '막눈' 윤하운, 한 수 앞을 읽는 수준 높은 플레이의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 피지컬의 극한을 보여주었던 '인섹' 최인석 등,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준 에이스들은 롤챔스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최고의 플레이는,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과거 박지성이 맨유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든든히 지탱해주는 언성 히어로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러한 언성 히어로는 분명 팬들에게 있어 최고의 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팬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는 이러한 언성 히어로를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죠. 오늘은 그러한 언성 히어로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언성 히어로 '옴므' 윤성영입니다.


▲ 최고들이 인정하는 최고, '옴므' 윤성영



■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남자, 옴므의 도전!

축구, 야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들의 전성기는 보통 20대 중,후반에 찾아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e-스포츠는 이러한 스포츠와 달리, 선수의 전성기가 매우 빠르게 찾아 오는편입니다. e-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지컬적 능력이기에, e-스포츠의 프로 선수들의 전성기는 이러한 피지컬적 능력이 절정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에 온다고 하죠.

이러한 경우는 롤에서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기존의 어떤 e-스포츠보다 트렌드와 메타의 변화가 빠르기에, 흔히 노장 선수들의 무기인 '경험적 측면'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현 LoL 프로무대에서 1세대 프로게이머들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데프트' 김혁규와 '폰' 허원석은 17살에 불과하죠. 이러한 현상은 점점 가속 되고 있으며, 프로 선수들이 이러한 LoL 프로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높은 기량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피지컬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 보다 떨어진 상태의 늦은 나이에 프로 데뷔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것이 현실이죠.


▲ 고등학생들이 미쳐 날뛰는 현 LoL 프로 무대!


하지만 현실의 벽은 도전으로 허물어야 제 맛. 1985년생의 한 사나이가 이런 파릇파릇(?)한 LoL 프로무대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자신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쉽지 않은 전장에 뛰어들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워'가 처음 나왔고, 처음 나갔던 3:3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었어요. 그런 절 보고 서울로 데려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집에서 몹시 반대하셔서 그 꿈을 이룰 순 없었죠...(중략)...어렸을 때 꿈을 포기했었으니, 이번에 안 하면 정말 포기해야만 할 것 같고 후회가 많이 남을 것 같아서 도전하게 됐어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웃음)

-인벤과의 인터뷰 중 (2013년 5월 16일) -


그렇게 '옴므' 윤성영은 MVP 화이트(현 삼성 화이트) 소속 프로게이머로서,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예견된 시련을 맞으러 가죠.


▲ 85년생, 노장 신인(?) 옴므의 위대한 도전!



■ 옴므, 예정된 시련에 부딛히다!

나이가 무슨 대수냐며 호기롭게 시작한 옴므. 하지만 그에게 펼쳐진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맞아야 할 시련이었고, 옴므는 그 시련에 고전합니다.

당시 리그오브레전드 프로 무대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유럽은 미드, 중국은 AD 캐리, 한국은 탑 라인이 강하다'는 말이죠. 지금이야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독무대이다시피 하지만, 당시 세계에서 바라본 한국의 롤은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옴므의 포지션은 탑 라이너. 그는 그렇게 세계 최고의 라이너들이 즐비한 한국의 탑 라인에 뛰어듭니다. '나이'라는 패널티를 안은 상태로 말이죠.


▲ 당시 한국의 탑 라이너의 기량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좌 부터 윤하운, 구본택, 이호종, 박상면)


2012 NLB 윈터 시즌. MVP 화이트는 나진 실드와 맞붙게 됩니다. 당시 나진 실드는 스타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전통의 강호로, 대부분의 롤 팬들은 당연히 나진 실드의 우세를 예상했습니다. 예전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이 건재했고, 당시 부진했던 탑 라이너 '막눈' 윤하운의 빈자리를 메운 '엑스페션' 구본택은 세계 최고의 탑 라이너 중 하나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었으니까요. 보통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선 '예상과 달리 MVP 화이트가 나진 실드를 꺾었다' 와 같은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이번은 아니었습니다. 이변 없이 나진 실드가 MVP 화이트를 잡아냈죠.

3세트에서는 9:0으로 퍼펙트게임을 나진 실드에게 내어 줄 정도로, MVP 화이트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양 팀의 탑 라이너간 격차는 컸습니다. 사실상 MVP 화이트의 완패는 옴므가 엑스페션의 엘리스에게 솔로킬을 내주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말이죠.




하지만 팬들은 이러한 경기에서 옴므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저들은 옴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죠. 선수는 팬들의 응원을 뿌리삼아 살아가는 나무와 같습니다. 때문에 선수 입장에서 무관심은 비난보다 더 큰 시련입니다. 그렇게 옴므는 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탑라이너 옴므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2012 롤챔스 윈터 8강전. 창단 이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MVP 화이트와 옴므에겐 큰 찬스였습니다. 롤챔스가 주는 대회의 권위도 권위지만, 롤드컵의 서킷 포인트까지 걸려있었기에 놓칠 수 없는 경기였죠.

하지만 8강전 MVP 화이트의 상대는 '막눈' 윤하운이 이끄는 나진 소드였습니다. 당시 막눈과 나진 소드의 기량은 절정에 올라있었습니다. 결국 승리는 3:0 완승으로 나진 소드의 몫이었고, 막눈은 여기서도 그 유명한 물안경 세레모니를 펼쳐 보입니다. 팬들이 기억하는 2012 롤챔스 윈터 8강전은, '막눈이 옴므를 꺾었다'가 아니었습니다. 엑스페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막눈이 이긴 것은 당연하고, 물안경 세레모니를 펼친 것이 중요하다'였습니다.


▲ 팬들은 막눈이라는 스타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막눈의 상대가 옴므임을 기억하는 팬들은 많지 않죠


분명, 프로게이머로서 옴므의 도전은 칭찬받기 충분했습니다. 열정으로 한계를 극복하려는 모습은, 스포츠맨이 팬에게 전하는 최고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법입니다. 분명, 당시 탑 포지션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서 졌다'라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선 해선 안될 변명입니다. 옴므는 그렇게 그저 그런 탑 라이너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당시 롤챔스에서 탑 라이너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캐리력을 갖추지 못한 옴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B급 탑 라이너로 여겨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죠. 옴므의 거듭된 부진속에, 팬들은 옴므에게 옴므를 문자대로 풀어 읽은 호미(homme)에 코미디언을 합성한 '호미디언'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옴므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화려한 플레이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은 힘들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옴므에겐 다른 탑 라이너가 갖추지 못한 그만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언성 히어로의 자질이죠. 이러한 자질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옴므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Q. 오늘 자신이 가장 활약한 세트를 뽑으면?
A. 마지막 세트에서 순간이동을 들고, 동생들이 경기를 편하게 풀 수 있도록 도와준게 스스로 만족스럽다. (후략)

- 롤챔스 진출 확정 후 인터뷰 중 (2012년 10월 25일) -


옴므가 이 인터뷰를 한 당시엔, 사실 큰 의미 없는 인터뷰였습니다. 팬들은 팀의 연장자가 승리 후 하는 의례적인 인터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 짧은 한마디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엔 알 수 없었죠. 이 한 문장과 그것에 담긴 옴므의 마음가짐이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걸요.


■ 옴므, 진정한 언성 히어로가 되다!

롤챔스 8강 탈락이라는 실망스런 결과. 팬들에게 MVP 화이트는 강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팀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당시 팬들에게 MVP 화이트는 '임프' 구승빈의 재기발랄함을 연상시키는 팀일 뿐이었죠.

그런 MVP 화이트는 2013 스프링 시즌을 앞두고 대규모 팀 리빌딩에 들어갑니다. 기존의 미드 라이너와 서포터의 자리에 '다데' 베어진과 '마타' 조세형이 합류하게 되죠. 팀 이름도 기존의 MVP 화이트에서 MVP 오존으로 변경,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스프링 시즌에 임합니다.

다데와 마타는 현재까지 최고의 기량을 유지할 정도의 메타 적응력을 보유한 최정상급의 선수였습니다. 거기에 기존 멤버 '임프' 구승빈과 '댄디' 최인규는 약팀이라 평가받던 MVP 화이트를 빛내던 선수였죠. 피지컬적인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땐 어떤 팀과 견주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강했습니다. 아직 보여준 게 없어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을 뿐, 이 네 명의 프로게이머는 스타가 되기에 충분한 선수들이었습니다.


▲ 리빌딩이 완료된 MVP 오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막강한 피지컬을 자랑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리빌딩을 마친 MVP 오존은 롤챔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옴므에 대한 팬들의 평가는 여전히 좋지 못했습니다. 다른 팀원들과 달리, 옴므는 게임 내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옴므는 '버스 장인'이라는 다소 치욕적인 별명까지 가지게 되죠. 팬들은 '버스 장인' 옴므의 한계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곧 MVP 오존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옴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팀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프로라면 누구나 주목받고 싶어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자신보다 팀을 우선 합니다. 그런 옴므의 마인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팀 내 형으로서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더 열심히 연습 해서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

- 인벤과의 인터뷰 중 (2013년 5월 30일) -


그리고 시작된 롤챔스 8강전. 상대는 우승 후보 KT 롤스터 B(현 KT 불리츠, 이하 KT B)였습니다. KT B는 '롤챔스에서 우승팀을 예측한다면 CJ 형제팀 아니면 KT B'라고 말할 정도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팀이었습니다.


▲ 막강한 전력의 KT B. 8강 통과는 무난해 보였습니다. (영상 캡쳐: 온게임넷)


대부분의 팬들은 MVP 오존의 행보가 2012 윈터 시즌과 같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분명 그때보다 전력적으로 강해진 건 사실이나, '인섹' 최인석이 이끄는 KT B를 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죠. 특히, 조별 리그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던 옴므를 MVP 오존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했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팬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기는 3:1의 스코어로 MVP 오존의 승리. 임프와 마타의 대활약 속에 MVP 오존 전 선수들은 뛰어난 활약을 펼칩니다. 하지만 팬들은 이것 이외에도, 옴므의 플레이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옴므의 진가를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죠.

큰 기대 없었던 탑 라인에서, 옴므는 케넨이라는 준비된 카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상대 탑 라이너 '썸데이' 김찬호를 완벽하게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궁극기 활용을 비롯한 팀 지향적인 플레이는 '이것이 바로 팀 플레이다'라 외치는 듯 했습니다. 팬들은 다소 화려함을 부족하지만 팀에 공헌하는 옴므의 플레이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8강전에서 옴므가 보여준 케넨은 팀플레이의 정수 그 자체였습니다 (영상 캡쳐: 온게임넷)


KT B와의 8강전 승리 후, 옴므는 눈물을 보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단순히 최강 팀을 꺾었다는 감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최고령 게이머로서 자신의 도전이 팀에게 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맏형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 왔는가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눈물이었습니다. 옴므는 그때 흘린 눈물과 함께 한가지 확신을 얻습니다. 자신의 무모해 보였던 도전과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죠.


▲ 온게임넷에서 제작한 옴므 헌정 영상 (영상 출처: 온게임넷)


팬들은 옴므가 걸어왔던 프로게이머의 족적과 옴므가 흘린 눈물을 통해 여러가지를 전달 받습니다. 옴므의 무모해 보이던 도전과 결국 헌신을 통해 시련을 넘어선 모습은, 게임 이상 감동을 팬들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롤챔스에서 옴므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KT B를 잡아낸 성과는 컸지만, 큰 그림으로 본다면 그저 8강전에서 강팀 하나를 쓰러뜨린 것에 불과했죠. 그 앞에는 아직 강자들이 기다리고 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엔 아직 일렀습니다. 더 큰 산이 옴므와 MVP 오존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옴므, 언성(Unsung) 히어로를 넘어 어썸(Awesome) 히어로로!

한 번 기세를 탄 MVP 오존은 강했습니다. 강력한 우승후보 KT B를 물리친 관성으로, 스프링 시즌 최고의 다크호스라 평가받았던 SKT T1 2팀(현 SKT T1 K)을 4강에서 가볍게 격파합니다. 기세 좋게 창단 첫 결승 진출에 성공한 MVP 오존. 이쯤되면 조심스레 MVP 오존의 우승을 예상 할 법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팬은 MVP 오존의 우승을 예상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게 '진정한 끝판왕' CJ 블레이즈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 MVP 오존을 기다리는 것은 '무결점의 끝판왕' CJ 블레이즈였습니다


아무리 MVP 오존의 기세가 올랐다고 한들, CJ 블레이즈에 비하면 한참을 못 미쳤습니다. MVP 오존이 8강에서 KT B를 잡아 낸 것은 물론 대단한 성과였지만, CJ 블레이즈는 스프링 시즌 13연승을 달릴 정도의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우승은 당연히 CJ 블레이즈의 것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수 하나하나가 주는 무게감 역시 남달랐습니다. 국가 대표 미드라이너인 '엠비션' 강찬용과, 과거 기량을 회복한 '캡틴잭' 강형우. 그리고 '버스 기사'를 넘어 '비행기 조종사'라고 불리는 '플레임' 이호종의 존재는, MVP 오존의 멤버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 경기 전 각 팀과 코치를 대상으로 하는 승부 예측에서 89%가 CJ 블레이즈의 우승을 예측했습니다. 전문가가 예상한 오존의 우승 확률은 11%. MVP 오존의 우승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고,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도 탑 라인의 두 선수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플레임이 보여주었던 폼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플레임은 어떤 탑 라이너가 와도 질 것 같지 않은 포스를 보여주었고, 실제 경기력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각성한 옴므라고 한들, 플레임의 기량에는 못 미치는것이 객관적인 사실이었죠.


▲ 결승전 핵심 포인트 탑 라인전. 시작전부터에 플레임쪽으로 승부의 무게가 기운것이 사실입니다


'슈퍼 캐리형 탑 라이너' 플레임과 맞서는 언성 히어로 옴므. 그는 상대가 플레임이라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옴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플레임처럼 슈퍼 에이스가 되어 게임 전체를 뒤흔드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팀의 에이스를 더욱 활약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죠. 자신이 트리플 킬, 쿼드라 킬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MVP 오존에는 솔로 랭크 1위의 최고 기량을 가지고 있는 미드라이너 다데가 있었고, 더블리프트에 견줄만한 뛰어난 피지컬의 AD 캐리, 임프가 있었습니다.

옴므는 결승전에서 '비행기 조종사' 플레임의 이륙을 봉쇄하기 위해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늘어지고, 자신들의 에이스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로 마음먹습니다. 2012 윈터 시즌에서 자신이 말했던, '동생들이 미쳐 날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로 한것이죠. '팀의 에이스는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 그런 옴므의 각오는 마치 만화 '슬램 덩크'의 변덕규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각오와 '변덕규 리더십'은 결승전에서 큰 파란을 일으킵니다.


▲ 만화 '슬램 덩크'에서 변덕규가 보여준 희생의 리더십. 옴므는 그것을 실천합니다


옴므의 비장한 각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발전합니다. 최고령 게이머 옴므. 그는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맏형의 자리에서 항상 팀원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마음은 분명 MVP 오존의 팀원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곧 결승에서 '미친 경기력'으로 나타납니다.

전문가가 예측한 MVP 오존의 승리 확률 11%. 하지만 MVP 오존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 라인에서 CJ 블레이즈를 압도합니다. 탑 라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옴므가 플레임 상대로 5:5로 팽팽하게 맞서기만 해도 대성공'이라는 팬들의 조롱섞인 예측과는 달리, 옴므는 플레임을 상대로 절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옴므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굉장했습니다. 특히 2,3세트에서 연달아 선보인 쉔은 그야말로 옴므의 화신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쉔은 언성 히어로를 넘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어썸(Awesome) 히어로 그 자체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팀이 필요한 순간에 날아와서 팀원들을 지켜주는 모습은, 옴므가 그리던 이상의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옴므는 자신이 꿈꾸는 모습으로, 최고의 무대 롤챔스의 정상에 올라섭니다. 앞선 롤 스타즈의 주인공들처럼 팀을 앞에서 '끌어 올리는'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팀을 '밀어 올린' 언성 히어로로 말이죠.


▲ 11%의 기적! 롤챔스를 정복한 MVP 오존! (영상 출처: 온게임넷)


언성 히어로, 아니 어썸 히어로 '옴므' 윤성영은 롤챔스를 빛낸 별의 역사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습니다. 누가 봐도 힘들 것으로 생각했던 도전. 하지만 옴므는 그것을 보란 듯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옴므는 이곳에서 자신의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합니다. 본격적으로 뒤에서 팀을 지탱하는 '팀의 뿌리'가 되기로 결심하죠.


▲ 롤챔스 별들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옴므' 윤성영.
하지만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진정한 팀의 버팀목으로 변한 옴므,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프로게이머 옴므의 도전은 끝났습니다. '최고령 게이머라서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고, 선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죠. 하지만 끝난 것은 '프로게이머 옴므'의 도전이었지 '사나이 옴므'의 도전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을 최고의 자리로 이끌어준 동료를 전력으로 서포팅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옴므는 선수에서 코치로 역할을 변경하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합니다.

LoL 프로 무대에서 코칭 스태프가 갖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프로 게임단의 코칭 스태프는 단순히 전략적인 부분에서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각 팀의 코칭 스태프들은 경기력 향상에 관련 된 모든 부분을 관리합니다. 선수 구성, 관리 등, 팀의 전반적인 부분을 관리하죠. 많은 프로게이머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코칭 스태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나진 e엠파이어(이하 나진)의 코칭 스태프의 중심, 박정석 감독(30)은 팀을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나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박정석.
프로게임단에서 코칭 스태프가 갖는 비중은 큽니다


본격적으로 코치로 역할을 변경한 옴므. 그는 선수로서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그와 똑 닮은 아바타 두 명을 경기장에 남겨둡니다. 바로 삼성의 탑 라이너 '루퍼' 장형석과 '에이콘' 최천주입니다.

삼성은 최강팀답게 절정의 기량의 에이스들로 가득합니다. '다데' 베어진, '폰' 허원석, '임프' 구승빈,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 등,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스타들이 삼성에 있죠. 이들에 비해 삼성의 탑 라이너들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기복 없는 안정적인 플레이로 팀을 든든히 지탱해줍니다. 옴므가 선수시절에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안정적인 탑 라이너가 있다는 것은, 팀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자산입니다. 탑 라인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는 것은, 축구로 따지자면 믿을 수 있는 최고의 골키퍼를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 두 선수는 현재 옴므를 뛰어 넘었습니다. 그들은 옴므가 보여주었던, 언성 히어로의 자질은 물론, 필요하다면 하드 캐리도 해내는 '완전체 옴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 '캐리력을 갖춘 옴므' 스타일의 탑 라이너, 루퍼(좌)와 에이콘!


코치가 되었지만, 언성 히어로의 옴므는 죽지 않았습니다. 2014 클럽 마스터즈 우승, 2014 스프링 시즌 우승을 달성하는 등, 쉽게 넘볼수 없는 막강한 '삼성 왕조'를 일구는데 한몫 합니다. 옴므의 바람대로, 그는 다시 한번 동생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내죠.

자신은 무대 뒷편에 있지만, 그 모습은 최강이었던 MVP 오존 시절의 옴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팀원을 묵묵히 지탱해주는 모습은, 삼성에게 있어 큰 전력일 것 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성 히어로 옴므가 보여준 모습이고, 앞으로도 보여줄 모습일 것입니다.


▲ 이번엔 코치로서 다시한번 팀을 정상으로 밀어 올린 옴므!


국내 LoL 무대를 정복한 삼성. 이제 남은 것은 세계 무대인 롤드컵입니다. 삼성 형제팀이 동반 진출한 만큼, 삼성에게 롤드컵이 주는 의미는 큽니다. 의미가 큰 만큼,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 역시 상당하겠죠. 국내 무대를 넘어 세계에 도전하는 '언성 히어로' 옴므의 도전. 그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 LoL 팬들에게 '언성 히어로' 옴므가 보여준 눈물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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