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4가 끝난 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중국, 북미, 유럽으로 진출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 수준에서 뛰놀던 한국 선수들이 그토록 많이 해외로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롤드컵 시즌5 4강까지 살아남은 해외 팀 소속의 한국 선수들 '후니' 허승훈과 '레인오버' 김의진 단 두 명 뿐이다.

특히 김의진은 국내에서 IM 2팀 소속으로 활동할 때 딱히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 김의진은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발을 들일 수 있는 롤드컵 무대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쓰로잉'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조롱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세계 최강의 정글러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레인오버' 김의진. 한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레인오버 = 게임오버? 빛을 보지 못한 한국 활동


IM 시절, 김의진에게는 '게임오버'라는 별명이 늘 따라붙었다. 초반에는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정글러지만,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무리한 오더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움직임 때문에 허무하게 잘리고 그대로 팀이 패배하는 그림이 자주 나오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2014 스프링 시즌에 CJ 블레이즈와의 경기 당시 김의진은 드래곤 한타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근처에 팀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드림' 강경민의 카직스를 혼자 노리다가 결국 백업에 당해 사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렇게 김의진은 드래곤이나 바론 등 중요한 오브젝트를 두고 신경전을 펼칠 때, 때때로 지나치게 앞에 나서서 상대를 위협하려다 오히려 일점사를 당해 죽기 일쑤였다.


김의진의 이런 문제는 비단 CJ 블레이즈와의 경기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체력이 가득 찬 상대에게 카직스로 점프를 하다가 의문사를 당하는 장면은 아직도 종종 회자될 정도로 김의진의 무모함을 상징하는 플레이가 되기도 했다.

분명 김의진은 상대의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템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초반에 재미를 본 것을 게임의 승리라는 결과물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강타 싸움에서 거의 패배하지 않는 정글러 중 한 명이었지만 너무 자신감있게 오브젝트를 가져가려다가 뒤를 잡혀 오브젝트를 먹고도 더 큰 피해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김의진의 IM 시절 성적은 24승 35패로 썩 좋지 않았다. IM 역시 롤챔스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며 2014 SKT LTE-A 마스터즈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를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었다.



■ '레인오버', 프나틱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다


그랬던 김의진은 2015년 1월 9일, 프나틱으로 깜짝 입단을 발표했다. 사실 이 때만 하더라도 많은 팬들은 국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의진이 언어부터 다른 유럽 팀으로 가서 얼마나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김의진이 LCS EU 스프링 개막전에서 보여준 활약은 팬들의 우려를 단번에 종식시키기 충분했다.

당시 프나틱은 간판 선수라고 할 수 있었던 '엑스페케'와 '레클리스'를 포함해 많은 선수들이 떠났기 때문에 전력이 극도로 약해졌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들을 대신해 들어온 김의진과 '후니' 허승훈은 기존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플레이로 일관했던 김의진 역시 적절한 공수 조화를 이룬 스타일로 변신하면서 팀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김의진은 허승훈과 함께 초반부터 빠른 로밍을 다니면서 다른 라인에 힘을 실어줬고 한타에서는 좋은 이니시에이팅을 보여주면서 팀이 편하게 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유럽과 한국 선수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프나틱은 LCS EU 스프링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이어진 섬머 시즌에서는 정규 시즌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LCS EU 섬머 플레이오프에서도 김의진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김의진은 UoL과의 플레이오프 2경기 1세트에서 엘리스로 쉴새없이 탑 라인을 찌르면서 라인전 균형을 무너뜨려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3세트에서 올라프 정글이라는 보기 드문 카드를 꺼낸 김의진은 죽음을 불사하고 앞장서서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는 등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레클리스'에게 판을 깔아주는 등 종횡무진 활약했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김의진은 똑같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는 프나틱에 입단하자 날개를 달았다. 그 결과, 김의진과 그가 속한 팀 프나틱은 롤드컵 직행과 동시에 LCS EU 스프링, 섬머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 유럽 최고 정글러에서 세계 최고 정글러로! 롤드컵에서의 '레인오버'


김의진의 활약은 LCS에서 끝나지 않았다. 롤드컵 시즌5 개막전에서 김의진은 iG에서 활동하던 '카카오' 이병권과 맞붙게 됐다. 그간 한국에서 쌓아온 커리어와 활약상만을 따지고 보면 이견의 여지가 없이 이병권의 압승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롤드컵에서 만난 그들의 입장은 바뀌어 있었다. 김의진의 엘리스는 쉴새없이 맵을 돌아다니며 타워 철거에 합류하고도 이병권의 스카너보다 레벨이 높았고, 킬 기여도도 뛰어났다. 정글러는 레벨로 말한다는 평가를 상기하면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큰 경기였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프나틱은 1주 차에서 iG전을 제외하고는 전부 패배하며 휘청였다. 허승훈이 경기 내내 흔들리자 김의진은 이를 풀어주려다 같이 죽음을 맞으면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만 것이다. C9을 상대로는 롤드컵 시즌5 최초 펜타킬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

그러나 2주 차에 접어들자 프나틱은 변했다. 허승훈의 경기력이 살아났고, 김의진의 날카로운 감각이 여전히 유지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의진은 2주 차 첫 경기인 C9과의 대결에서 팀 내 최다킬을 기록했고 iG와의 재대결에서도 렉사이로 탑 라인을 무너뜨려 노데스로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EDG와의 8강전에서도 김의진은 갱킹, 백업, 오브젝트 싸움 등 모든 면에서 '클리어러브'보다 앞섰고, 이번에도 탑 라인을 향한 집요한 갱킹으로 힘의 균형을 붕괴시켰다.

'레인오버' 김의진, 그리고 그가 속한 프나틱은 롤드컵 4강에 진출하며 LCS EU에서 보였던 '탈유럽'급 경기력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김의진은 현재 롤드컵 4강에 남아있는 모든 팀 정글러들 중 가장 공격적인 성향을 띈 선수다. 빠른 백업, 탱킹형 아이템들로 대표되는 현 LoL 정글 환경에서 여전히 공격적인 갱킹, 공격적 아이템을 선호하는 김의진만의 특유의 스타일이 어디까지 통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