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10년 넘게 지속된 게임이다. 완벽한 전략, 절대 강자는 없었고 항상 새로운 대처법과 도전자가 등장하며 끊임없이 발전했다. 새롭고 기발한 전략에 열광하는 팬들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게임과 리그가 유지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공허의 유산에서 프로게이머들도 대처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광사도'(차원 분광기와 사도)가 등장했다. 타종족은 프로토스전에서 사도를 막기 급급해 다양한 운영과 전략을 꺼내기 힘들어졌다. 개인리그에서 상위 라운드로 진출한 프로들은 입을 모아 분광사도의 하향 패치가 시급하다고 말할 정도로 뚜렷한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평소 '징징'이라는 이미지가 싫어서 말을 아끼던 선수들도 이번 인터뷰에서 프로토스전 밸런스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리고 2016 GSL 프리시즌에서는 두 명의 프로토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다양한 전략을 보여주긴 했지만, 우승하기까지 분광사도의 역할이 컸다. 1주차에서 김준호(CJ)는 4강에서 선보인 사도 올인 러시를 결승전에서 다시 한 번 꺼내 들어 승리했다. 김명식(SKT)은 전태양(kt)에게 2주차 결승전에서 0:2로 밀리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잠시 봉인했던 분광사도를 꺼내자 귀신 같이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자가 됐다.

공허의 유산 밸런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도는 어떤 유닛일까?





■ 밸런스 파괴의 주범? 사도의 가공할 만한 기본 능력



공허의 유산에서 경장갑 추가 대미지를 주는 지상 유닛인 사도가 등장했다. 그동안 초반 교전에서 유닛 간 불리한 상성을 갖고 있었던 프로토스에게 사도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사도는 밸런스 조정을 넘어서 초, 중반을 확실히 장악해버렸다. 경장갑 추가 대미지로 해병, 저글링, 일꾼을 모두 단 두 방에 제거할 수 있기에 사도는 초반부터 적진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이동한다. 저그는 저글링과 일벌레 외에도 부화장에 묶여있는 애벌래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테란은 해병만으로 사도를 막을 수 없기에 입구를 막거나 벙커를 건설해야 버틸 수 있다. 게다가 사도의 공격 속도를 높여주는 '공명 파열포' 업그레이드는 중반 이후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해준다.

다른 종족에게 사도의 '사이오닉 이동'은 더 큰 골칫거리다. 사이오닉 이동은 유저가 조종할 수 있는 그림자 위치로 이동하는 기술이다. 원하는 공간으로 쉽고 빠르게 이동 가능함과 동시에 사이오닉 이동을 취소해 방어 병력을 따돌릴 수 있다. 소수의 사도만으로도 상대의 자원 채취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상대는 사도 본체와 그림자의 이동 경로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 상대가 그림자 수비에만 집중한다면 사이오닉 이동을 취소해버리고 한 점 돌파에 집중할 수도 있다.



■ 알고도 막지 못하는 사도 올인의 힘?


▲ 순식간에 궤멸충에게 파고든 김준호의 사도

2016 GSL 프리시즌 결승전 3세트, 이승현은 정확한 저글링 정찰로 김준호가 앞마당 가스 채취를 포기한 채 사도 올인 러시를 감행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전 4강에서 김준호가 한지원에게 활용했던 전략으로 이승현은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사도에게 추가 대미지를 받지 않는 바퀴-궤멸충을 생산해 김준호의 공격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는 4강에 이어 다시 한 번 김준호와 사도의 승리였다. 김준호는 넓은 지형에서 병력을 펼쳐놓은 이승현과의 정면 싸움에 응해주지 않았다. 사이오닉 이동으로 진입해 상대의 핵심 병력인 궤멸충을 기습했다. '공명 파열포' 업그레이드를 마친 사도에게 유닛 상성은 의미 없었다. 첫 임무를 마친 사도는 저그의 멀티로 뿔뿔이 흩어져 견제를 시작했다. 공간을 뛰어넘는 사도, 교전과 동시에 견제까지 가능한 이 유닛을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도 못 막는 공격에 당한 상대는 다음 경기에서 사도 올인 러시를 배제할 수 없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면 다양한 전략과 수 싸움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는 프로게이머의 판짜기 구성 자체를 엎어버렸다. 사도의 공포를 심어준 프로토스는 상대가 배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기에 다전제 승부에서 확실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김준호는 사도 공격을 대처하기 바쁜 이승현에게 돌진 광전사-불멸자-불사조-집정관 등으로 카운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도에 대한 압박이 심한 저그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답안지를 무색하게 만드는...분광-사도 활용한 전략의 끝은?


▲ 앞마당 멀티 탐사정 6기면 충분! 김명식의 분광사도 올인 타이밍

분광사도 전략은 차원 분광기와 차원 관문이 언제 완성되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사도 올인을 막기 위해 자원 채취와 생산 시설 확보를 포기하고 병력 생산에만 집중해야 한다. 타 종족은 프로토스의 언제들어올지 모르는 사도의 공격이 두려워 함부로 배를 불리지 못한다.

반면, 프로토스는 소수의 사도로 원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사도는 '사이오닉 이동'으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찰할 수 있다. 게다가 사도의 존재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올인 러시의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 그 사이 프로토스가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다양해진다. 제 2멀티를 빠르게 확보해 배를 불리거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기회가 생긴다.

김준호는 2016 GSL 프리시즌 8강 3세트에서 선택과 집중해야 하는 전태양의 머리를 아프게할 정보를 줬다. 사도 올인 러시에 필수인 '공명 파열포'는 황혼 의회에서 업그레이드한다. 그런데 황혼 의회에서는 추적자의 '점멸' 업그레이드도 가능해 상대에게 2지 선다를 걸 수 있다. '공명 파열포'를 먼저 완성해서 한 타이밍 빠르게 공격을 갈 수 있고, 점멸 추적자 올인이나 평범한 운영 역시 가능하다.

▲ 전태양의 대처를 뛰어넘은 김준호의 분광사도(출처 : GSL youtube채널)

김준호는 황혼 의회를 활용해 까다로운 심리전을 걸었다. 황혼 의회를 본 전태양은 정면 입구를 막고 싸이클론으로 본진으로 들어오는 분광사도를 막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김준호는 한 타이밍 늦게 더 강력한 카운터 카드를 들고 나왔다. 정면에서는 점멸 추적자가 '점멸'을 활용해 치고 빠지며 일방적으로 이득을 챙겼고, 본진에서는 불사조가 차원 분광기를 공격하는 싸이클론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분광사도의 대처하기 위한 답안지가 모두 쓸모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분광 사도의 카운터로 불렸던 싸이클론은 불사조와 추적자에 고철이 돼버렸다. 병력 생산에 집중했지만, 사도가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타이밍에 대비할 수는 없었다.

▲ 분광사도를 막으려니 들이닥친 분열기 드랍

8강 1세트에서도 전태양은 분광사도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자신의 본진과 뒷마당을 건물로 막았다. 사도는 건물을 통과할 수 없기에 한 곳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준호는 사도가 아닌 분열기를 드랍했고 소수 병력이 배치된 뒷마당 멀티를 자유롭게 견제할 수 있었다. 전태양의 건물 배치는 병력의 이동과 빠른 대처를 오히려 방해하게 됐다.

프로토스는 분광사도 카드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반면, 상대는 사도가 언제라도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사도를 의식할수록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펼치기 힘들다는 점에서 프로토스에게 수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2는 다양한 전략이 즐거움을 더 해주는 게임이다. 그런데 분광사도로 인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줄어든다면 게임의 재미가 더욱 반감될 수밖에 없다. 새롭게 2016 시즌 리그가 열렸지만, 사도와 프로토스전 밸런스에 대해 아쉬워하는 프로게이머들와 유저들이 많았다.

물론,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아직 밸런스를 논하기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저들이 바라는 것은 급격한 밸런스 패치가 아닌 블리자드와 유저 간 소통이다. 게임에 대한 유저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반영되며, 앞으로 어떤 점을 개선할지에 대해 유저들은 알기 힘들다.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해나가겠다는 간단한 공지조차 보지 못하는 유저들은 새로운 패치가 나오기까지 답답한 상황이다.

게임과 리그의 초기에 밸런스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완벽한 밸런스를 만들었다는 결과가 아니라 유저와 소통하는 과정이다. 최근 블리자드는 북미 배틀넷에 밸런스 테스트 맵과 커뮤니티, 한국 프로게이머의 반응을 수렴해 사도 패치에 관해 검토 중이라는 글을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유저들은 늦은 반응과 대응에 불만이 많은 상황. 블리자드는 이번 사도와 밸런스 논란을 시작으로 어떻게 유저의 의견을 모으고 반영할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