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스타크래프트2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모든 건물을 파괴하는 것. 이 경우를 제외하고 나오는 승, 패는 패배한 선수가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생겨 경기를 포기했을 경우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런 판단은 나와 상대방의 병력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이뤄지고, 간혹 병력 간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엘리전을 통해 승부수를 띄우곤 한다.

하지만, 무승부라는 변수도 있다. 서로 공격 의사가 없거나 병력은 있지만 상대 건물을 모두 파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특히 건물을 띄울 수 있는 테란에게 이런 경우가 종종 생긴다. 병력 규모는 압도적인 차이지만, 테란의 띄워진 건물을 타격할 수 없고, 더 이상 자원을 채취할 수 없을 경우에 말이다.

15일 프로리그에서 펼쳐진 한이석과 김도욱의 경기가 그랬다. 한이석은 마지막 교전에서 대패하고 90% 이상 김도욱에게 승기가 넘어간 상황이었다. gg를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한이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한, 아니 지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

▲ 초반 압박에 실패한 김도욱


울레나라는 맵의 특성상 공중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그래서인지 양 선수는 빠른 앞마당을 가져가기 보다 테크에 먼저 투자하며 1/1/1 체제를 구축했다. 똑같은 1/1/1이었지만 김도욱은 먼저 칼을 빼 들어 공격을 시도했고, 한이석은 사령부를 지으며 수비에 신경 썼고, 김도욱의 찌르기를 막아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 빠른 멀티로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는 한이석


초반 견제를 수월하게 막아낸 한이석은 전리품으로 빠른 확장과 인프라 시설을 구축했다. 주도권을 잡아낸 한이석은 소수 바이킹 싸움에서도 승리하며 김도욱의 앞마당 앞까지 진군하며 김도욱을 압박했다. 그러나 곧 김도욱의 반격이 시작됐다.

▲ 제공권 장악으로 압박


한이석이 공중을 장악할 수 있던 이유는 밤까마귀의 국지방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도욱의 앞마당 지역에서 국지 방어기를 두 개나 소모했고 바이킹 수에서 앞섰던 김도욱이 공중 싸움에서 승리했다. 공중 싸움에서의 승리는 곧 공성 전차간의 교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공성 전차는 시야보다 공격 사거리가 더 길어 바이킹을 통해 시야를 확보하면 일명 '거리 재기' 플레이를 통해 상대방의 공성 전차를 제압할 수 있다.

▲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김도욱


승기는 점점 김도욱에게 기울고 있었다. 한이석은 중간 중간 해병 견제로 소소한 이득을 취하긴 했으나 기본 병력 싸움에서 김도욱이 앞승을 거뒀고, 한이석의 남은 병력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gg를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 우주공항!!


그러나 한이석은 포기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최선의 플레이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답은 하나, 엘리전뿐이었다. 한이석은 남은 병력으로 엘리전을 시도하며 김도욱의 자원줄을 말리는 데 최우선으로 힘썼다. 첫 번째로 대부분의 건설 로봇을 잡아냈고, 두 번째로 궤도 사령부를 모두 파괴했다.

김도욱의 자원은 400이 되지 않아 추가 사령부를 건설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한이석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 모두 추가 사령부를 건설할 수 없는 상황. 병력은 김도욱이 압도적. 그렇다면 한이석에게 최고의 상황은 '무승부'뿐이었다.

한이석은 짧은 시간에 생각을 끝마쳤다. 김도욱은 이러한 현재 상황을 아직 정확히 판단하고 있지 못했다. 건물을 띄워 지상군의 병력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면 이를 파괴할 수단은 바이킹뿐이었다. 그리고 한이석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김도욱의 우주공항을 파괴했다.

▲ 사이클론!!! 주륵..


한이석보다 조금 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도욱은 마지막 희망으로 '사이클론'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이클론의 사거리에도 한이석이 건물이 닿지 않으며 결국 무승부가 선언됐다. 찰나의 순간에서 보다 빠른 상황파악을 끝마친 한이석이 기사회생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양 선수 합의하에 재경기가 펼쳐졌고, 한이석이 승리했다. 보통 스타크래프트2 경기에서는 상대방을 교전에서 제압하고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느끼게해 승리를 챙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스타크래프트2라는 게임의 1차원적인 승리 공식은 '상대방의 건물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