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탑 라인에 목숨을 건 그대를 위하여

아재가 어릴 적 다니던 오락실의 부흥기를 이끈 것은 격투 게임이었다. 격투 게임의 묘미는 1:1 대전이라는 것에서 나온다. 같은 룰, 동등한 환경에서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상대를 이긴다는 것은 꽤 큰 성취감을 줬다. 그에 대한 보상도 확실했다. 1:1 대전에서 이긴 사람은 진 사람보다 더 긴 시간 오락을 즐길 수 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인가?

오락기기의 특성상 최대 4인(혹은 6인)까지 지원되던 인원의 한계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무한대로 늘어났다. 이제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다대다 전투가 주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게임이 주는 매력의 주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1:1 대결이 주는 매력은 크다. LoL 게임에서도 탑 라인전은 이러한 1:1 대결이 주는 묘미를 어느 정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사실 '[실론즈 탈출 비법②] 탑 포지션 - 라인 관리만 잘해도 골드 간다'를 작성하면서 가장 많은 퇴고를 거쳐야만 했다. 탑 라인은 다른 어떤 라인보다도 복잡하고 설명보단 경험이 중요하며 탑 라인을 주로 가는 소환사들 역시 이러한 이유로 자존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탑 라이너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비법을 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 라인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탑 라이너의 자존심이다

가장 먼저 탑 라인을 주저 없이 자신의 주 라인으로 설정하고 협곡을 갈 때마다 치열한 1:1 대결을 벌이러 가는 검투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정글러처럼 라인전의 압박을 피하지도 않았고 원거리딜러나 서포터처럼 의지할 팀원이 있지도 않다(혹은 정치할 대상이거나).

미드 라이너도 1:1 대결을 해야 하지만 라인의 길이가 짧고 챔피언의 화력이 오르면 어느 정도 라인전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탑 라인은 라인전이 진행되는 동안 혹은 그 후에도 계속 상대 탑 라이너와 마주하며 그 압박감을 견뎌내야 한다. 라인전의 승패는 온건히 그들의 몫이다(혹은 정글러 탓을 하거나).

우리는 쉽게 탑 라이너들을 '탑신병자'라고 깎아내린다. 게임의 승리보다 상대 탑 라이너 간의 1:1 대결이 더 중요한 듯 움직이고 그 어떤 라이너보다 자기 라인에 대한 CS 욕심이 강하다. 미드 억제기보다 탑 1차 타워가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것은 탑 라인에 영혼이 묶여버린 지박령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 정도다. 탑 라이너의 사고 체계는 확실히 다른 라이너들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다.

탑 라인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소환사라면 그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탑 라인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전한다는 것은 소위 '탑신병자'들의 행동 패턴에 대한 변명을 대신하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이제부터 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서 탑 라인의 승리 비법을 하나씩 알아보자.



[나는 장인이다] - 탑 라인은 왜 유독 장인들이 많은가?



▲ 1,700판을 한 티모와 만난다면 라인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가?

흔히 자신을 장인이라 일컫는 소환사들을 보면 탑 챔피언 장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시의 단적인 증거는 프로게이머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린' 장경환은 럼블 장인으로 유명했고 '후니' 허승훈은 아칼리를 매우 잘 다뤘던 등 탑 라인 프로게이머들은 대체로 자신을 대표하는 특정한 챔피언 하나를 꼭 가지고 있다. 대세 챔피언을 사용하는 미드 라이너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왜 탑 라이너들은 유독 장인이 많은가? 팀 단위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비슷한 실력이라는 가정 하에 챔피언의 상성에 따라 라인전의 승패가 갈린다. 예를 들어, 리산드라는 초반에 상대를 압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오라와의 1:1 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 최근 경기에서는 '듀크' 이호성이 퀸으로 어떻게 갱플랭크를 상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게이머고 우리는 다른 전장을 뛰고 있다. 실버, 브론즈 티어(어쩌면 골드, 플레, 다이아까지)에서 탑 라인전은 챔피언 상성이 아닌 손싸움이다. 챔피언의 상성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1레벨부터 18레벨까지 한 챔피언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경우는 없다. 1,700판을 해본 가렌 장인은 카운터 챔피언을 맞이하더라도 50판 해본 티모를 찢을 수 있다. 블라디미르가 신지드에게 아무리 강해도 상대가 신지드를 1,000판 가까이 해봤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탑 라인전은 챔피언 상성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경험. 챔피언의 상성, 어느 구간에서 사려야 하고 어느 구간에서 압도할 수 있는지, 상대할 때는 어떤 스킬을 잘 써야 하는지, 어떤 아이템을 사야 하는지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이 많은 소환사는 내가 이길 수 있는 구간에 확실히 상대를 제압한다. 그리고 불리할 때 이 챔피언이라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확실히 안다. 탑 라인에서 정말 뛰어나 지고 싶다면 한우물만 파는 장인이 돼보자. 한 챔피언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면 다른 챔피언을 사용할 때도 적용되는 부분이 분명 있어 실력이 더욱 빨리 늘게 된다.



[CS 집착] - CS 건들면 'Bye 짜이찌엔' - 남다른 그들의 라인 욕심은 무엇 때문인가?




아재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7년 11월 26일 파나마에서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이 열렸다.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카라스키아의 전적은 11전 11승 11KO. 데뷔 이후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강력한 선수였다. 이를 상대하는 선수가 바로 한국의 홍수환이었다. 홍수환은 2라운드에만 네 번 쓰러졌다. 한국 코치진 쪽에서 수건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홍수환은 3라운드 기적의 역전승을 해낸다. 라운드 시작과 함께 경기를 끝내겠다고 달려들던 카라스키아의 턱에 홍수환의 카운터가 적중했다. 홍수환은 이내 로프에 쓰러지듯 몸을 기댄 카라스키아에게 연타를 날려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네 번의 다운을 당하는 동안에도 홍수환이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5년 동안 도끼질로 단련된 그의 기초 체력 덕분이었다.

LoL에서 CS는 기초 체력과 같다. 협곡 안에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강함을 유지하려면 라인마다 공평하게 지급되는 경험치와 골드인 CS를 잘 수급해야 한다. 탑 라이너에게 CS는 특히 중요하다. CS와 관련된 전략은 상대 라이너와 격차를 벌릴 때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CS 수급에서 차이가 날수록 상대 탑 라이너를 제압하기란 점점 요원해진다. 탑 생리에 밝은 라이너는 빅웨이브가 상대 타워로 들어갈 때는 일부러 타워 다이브를 통해 동귀어진을 유도, 상대 라이너의 CS 수급을 방해하기도 한다.

게임 중반 드래곤 한타가 끝나고 아군 탑 라이너가 죽었다. 라인 상황을 보니 한 웨이브 안에 탑 2차 타워까지 상대편 미니언이 도착할 듯 보인다. 그래서 정글러는 탑 라인으로 향했다. 무섭게 찍혀대는 백핑 소리. 어딘가에서 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소환사가 마우스를 부술 기세로 누르고 있는게 느껴졌다. 탑 라이너는 말했다. 저 웨이브 도착할 때 대포미니언 한 개 놓치고 나머진 내가 다 먹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지켰다.

탑 라인전을 잘하고 싶나? 그렇다면 CS는 절대 놓치지 않도록 연습을 하자. 라인전을 수동적으로 가져가야만 하는 챔피언도 상대가 견제하는 동안 꾹 참고 CS를 챙기다 보면 분명히 상대를 잡아낼 기회가 온다. 체력을 늘리는 비결이 특별할 것 없이 달리기나 줄넘기인 것처럼, CS를 놓치지 않는 비결은 연습밖에 없다.



[한 대만 더!] - 상대보다 한 대 더 때리려는 그들의 집착.




미드 라인의 대결은 검을 든 무사들의 목숨을 건 수 합과 같다면, 탑 라인은 격투가들의 5라운드까지 가는 장기전 대결과 궤를 같이 한다. 탑 라이너는 라운드 별로 귀환을 해 정비를 하고 아이템을 챙기고 다시 링 위에 오른다. 그리고 일부러 맞아본다. 상대가 얼마나 세졌는지 알기 위해서. 몇 대 맞아보고 때려보면 감이 온다. '아! 이거 내가 잡을 수 있겠구나!' 혹은 '아~ 우리 정글러 뭐하냐'.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MC를 맡고 있는 강호동. 지금이야 예능인으로 알려졌지만 아재가 어렸을 때는 엄청난 덩치의 천하장사였다. 몇 년 전, 그가 진행을 맡은 예능프로그램에 같은 천하장사로 유명한 이만기 교수가 출연했을 때 강호동이 했던 재미있는 말이 기억난다. 선수 시절에 샅바를 잡고 상대와 어깨를 마주 대면 어디가 약하고 강한지 상대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강호동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은 탑 라인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게임을 시작하고 상대 탑 라이너와 맨 처음 조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 합을 겨루는 것이다. 이 첫 합 속에는 많은 데이터가 담겨 있다. 상대방의 방어력, 공격력, 마법 저항력과 같이 챔피언의 룬, 특성부터 내 챔피언과 상대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 숙련도, 더 나아가 이번 게임의 라인전 양상이 어떨지까지 모두 예측이 가능하다.

어디까지 피해 교환을 해야 하는 건지, 계속 싸워도 될지, 혹은 작전상 후퇴해야 할 지는 챔피언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에서 나온다. 만약, 리븐과 피오라 같이 탑 라인에 캐리형 챔피언 둘이 만나면 최대한 첫 교전에서 상대를 기선 제압해라. 수비적인 챔피언이라도 절대 맞고만 있지 말고 적어도 받은 만큼 돌려줘라. 초반 교전에서 만만하게 보이면 라인전 내내 괴로울 것이다.



[실론즈 탈출 비법②] - 탑 포지션 - 라인 관리만 잘해도 골드 간다



▲ 미니언 웨이브 관리는 승리로 향하는 수단이다

정글러를 제외한 모든 라이너에게 라인 관리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탑 라이너에게 라인 관리는 다른 라인과 비교해도 두 배 내지 세 배는 더 중요하다. 이미 프롤로그에서 말한 바와 같이 탑 라인은 라인이 매우 길고 1:1 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라인 관리를 통해 겪게 되는 이득과 손해가 자신의 레벨과 골드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소환사의 협곡에서 생성된 미니언은 세 라인을 통해 상대 넥서스로 진격한다. 미니언은 골드이자 경험치이고 타워를 파괴하기도 하고 수비하기도 한다. 넥서스를 파괴하는 것이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의 최종 목표라면 미니언은 상대 넥서스를 어떻게 파괴할 것인지 결정하는 수단이다. 결국, 미니언을 관리를 잘하는 것이 게임의 가장 기본이자 기초다.

챔피언의 개입이 없다고 가정하면 미니언은 각 라인의 중앙 지점에서 만난다. 각 미니언은 일련의 순서에 맞춰 상대 미니언을 공격하는데 여기서 일어나는 변수 덕분에 두 진영 중 한 진영의 원거리 미니언이 살아남게 되고 이 것들은 다시 근거리 미니언의 지원을 받아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라인을 밀어내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게 미니언 웨이브가 형성되면 상대 타워로 몰려가게 되고 타워의 공격력 덕분에 아군 미니언이 사망하고 상대편 미니언이 살아남으면서 미니언 웨이브는 방향이 바뀌게 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원거리 미니언이 많은 쪽이 상대 타워로 전진한다. 두 번째, 타워 웨이브가 상대편 타워에 닿으면 타워가 깨지지 않는 이상 웨이브의 방향은 바뀌게 된다. 기억했는가? 그럼, 당신은 라인 관리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라인을 밀고 당기는 것은 이 '두 가지 진리를 어떻게 협곡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응용문제다.


◈ 응용문제 1. 라인 관리를 통해 상대방과 격차를 벌리는 방법을 기술하라.


상대와 격차를 벌리라는 말은 상대방이 골드 수급과 경험치 수급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라는 말이다. 즉, 상대방이 미니언 정리를 편하게 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상대방이 미니언을 편하게 정리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라인을 밀어야 할까? 당겨야 할까?

정답은 둘 다 가능하다. 미니언 웨이브를 크게 만들어서 상대 타워에 밀어넣든지, 당기면서 상대가 먹지 못하도록 방해해 상대의 CS 손실을 유도하든지.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한 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소환사 당신이 라인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인 주도권은 챔피언이 라인 푸시력이 매우 강력하거나 상대 챔피언에 상성이 좋은 경우 가질 수 있다. 혹은 실력의 우위를 점할 때도 주도권은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라인을 밀어서 상대와 격차를 벌리기로 했다. 아군의 미니언이 상대 타워를 공격하고 상대 소환사는 타워의 공격력을 계산하면서 CS를 챙겨야 하는 와중에 당신의 견제에 그대로 노출된다. 결국, 버티지 못한 상대가 타워를 포기하고 당신은 승리에 한걸음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나 라인을 밀 경우, 챔피언의 위치는 점점 상대방의 타워(혹은 상대방)에 가까워지고 그만큼 상대팀의 갱킹과 로밍에 노출된다. 상대 1차 타워를 공략할 때와 2차 타워를 공략할 때, 느껴지는 상대 팀의 저항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신이 라인을 당겨서 상대와 격차를 벌리기로 했다. 당신은 상대의 원거리 미니언을 일정 수 이상 남겨두면서 상대가 CS를 먹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견제했다. 상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과의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결국 다른 아군 라이너와의 성장 격차도 점점 벌어지면서 바위게만도 못한 존재감을 보이게 됐다. 그러나 라인을 당길 경우, 라인을 밀 때와 비교해 스노우볼링의 속도는 빠르지 않고, 그만큼 상대 탑 라이너에게 기회를 준다. 상대 탑 라이너는 당신이 라인을 당기는 동안, 아군 미드 라인에 로밍을 가거나 정글러를 괴롭히거나 순간이동을 타고 아군 봇 라인을 괴롭힐 수 있다.


◈ 응용문제 2. 라인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을 때 상대방의 라인 운영에 따른 올바른 대응은?

당신이 응용문제 1번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응용문제 2번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곰곰이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보자.


응용문제 1, 2번에 대한 답을 완벽하게 안다면 라인 스왑 상황에서 탑 라인 선수가 보여주는 행동이 이해되거나 예상될 것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제시하면서 설명을 더욱 복잡하게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기본은 라인을 당길 것이냐? 밀 것이냐?' 둘 중 하나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어떨지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다면 남은 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 각 상황에 맞게 정답을 찾는 것뿐이다.


3화 예고 - [실론즈 탈출 비법③] 정글 포지션 - 먹던 정글몹 정리 안 하고 백업만 가도 골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