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았던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6의 조별 예선이 모두 종료됐다. 조별 예선이 끝나기 전까지도 누가 올라갈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 많았다. 와일드 카드 지역이 8강에 진출했으니, 충격적이다. 북미의 맹주 TSM이 탈락하기도 했고, 유럽의 맹주 G2는 최악의 성적으로 떨어졌다.

개인 기량보다는 팀적인 호흡이 크게 부족했다. 실수도 잦았다. 특히, G2의 '퍽즈'나 TSM의 '더블리프트'는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매 경기 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플레이어들도 있다. 오늘은 2주 차에서 훌륭한 기량을 뽐낸 포지션별 최고의 플레이어 다섯 명을 뽑아봤다.



■ 성진아... 오늘은 한 대다! 럼블을 찍어 누른 삼성의 차세대 캐리 머신 '큐베'의 명품 에코



'큐베' 이성진은 항상 꾸준히 노력하던 탑 라이너였다. 하지만 성적은 좀처럼 따라주지 못했다. '앰비션' 강찬용이 삼성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강찬용이 삼성의 주축이 되면서 모든 선수가 성장했다. 그럼에도 '큐베' 이성진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크라운' 이민호 - '룰러' 박재혁이 삼성 하면 떠오르는 캐리를 잘하는 선수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롤드컵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큐베' 이성진은 제대로 '각성'했다. '썸데이' 김찬호를 압도했고, 팀을 롤드컵에 진출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롤드컵에서도 이성진의 폭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 삼성 화이트의 탑 라이너 '루퍼' 장형석을 현 삼성 소속 이성진이 라인전 단계에서 찍어 눌렀다. 삼성 봇 듀오의 픽은 라인전 주도권을 잡긴 쉬웠지만, 그만큼 로밍이나 갱킹에 취약한 조합이었다. 만약, 이성진의 에코가 럼블을 압도하지 못했다면 로밍을 통한 변수가 충분히 나올 수도 있었다.

▲ 승기를 굳혀버리는 '큐베'(영상 1분부터 재생)

이성진은 그런 여지를 주지 않았다. 드래곤 한타에서 럼블의 순간 이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럼블이 이동할 경로에 순간 이동을 사용해 솔로 킬을 따냈다. 럼블의 전사로 진영의 밸런스가 무너진 RNG는 크게 당황했고, 이성진의 몽둥이질에 트리플 킬을 헌납했다. 이와 동시에 경기의 승패도 거의 정해졌다. 이성진의 에코는 자이라에 가려진 숨은 에이스였다.



■ '배미'님 미드가세요. 제가 정글 갑니다. '아테나'의 리 신



I May는 롤드컵에 진출하는 과정부터 스펙타클했다. 1만 골드가 넘게 차이 나는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해냈다. 롤드컵 1주 차에서도 I May는 대만의 맹주 Flash Wolves를 잡아내며,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롤드컵의 벽은 높았다. 첫 승 이후 내리 2패를 하며, 8강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2주 차 경기에서 반등을 노려야 하는 상황.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서포터인 '로드' 윤한길이 언행 및 태도 문제로 1경기 출장 금지를 당한 것이다. 하필, 상대도 SKT T1을 잡고, 기세가 오른 FW였다. 대부분이 I May의 일방적인 패배를 예상했다. 예비 선수가 서포터가 아닌, 미드 라이너 '배미' 강양현이었기 때문이다. '아테나' 강하운과 '배미' 강양현 중 한 명은 서포터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 I May의 손대영 코치는 상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수를 뒀다.


정글러인 '어보이드레스'를 서포터로 보내고, 미드 라이너인 '아테나' 강하운을 정글러로 보낸 것이다. 랭크 게임에서 정글러를 해보긴 했겠지만, 프로 중의 프로들이 모이는 롤드컵 무대에서 손대영 코치가 던진 수는 무리수로 보였다. 하지만 '아테나' 강하운은 손대영 코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플레이 자체는 평이했다. 크게 무리하지도 않았고, 초반부터 스노우 볼을 굴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드 라이너인 강하운이 정글러로 평이한 플레이를 했다는 것 자체가 슈퍼 플레이다. 첫 갱킹에서 말자하를 잡을 때 보여준 스킬 배분도 완벽했다. 역시 잘하는 사람은 어딜 가도 잘하나 보다.




■ 난 원래 잘했어! 너희가 못한거라고... '류'의 물오른 라이즈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상 가장 많이 죽었을 사나이. '페이커' 이상혁이 슈퍼스타가 되는 데, 크게 일조한 영원한 고통의 아이콘 '류' 류상욱. 2014년도 이후 유럽으로 떠난 류상욱은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대부분 경기에서 활약했지만, 개인의 성적이 항상 팀의 성적으로 이어지는 법은 아니다.

이미 유럽의 맹주 G2가 탈락했고, 스플라이스는 0승 3패로 유력한 탈락 후보인 상황에서 H2K는 유럽의 희망이었다. 1주 차에서의 성적과 경기력은 평범했다. 롤드컵 이전 분석했던 '류' 류상욱과 '얀코스'를 제외하고는 딱히, 플레이메이커가 없는 H2K. 사전 분석과 완벽히 일치하는 경기력이었다.


2주 차에서 EDG와 ahq가 올라갈 것이라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일주일 사이 H2K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포기븐'의 캐리력이 살아났고, 탑 라이너인 '오도암네'도 제 몫을 다해줬다. 무엇보다도 '류' 류상욱의 폼이 미쳤다. 단언컨대 류상욱의 라이즈는 이번 롤드컵 최고였다. 특히, 리메이크 이후 좀처럼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라이즈의 궁극기 '공간 왜곡'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전율이 돋는 플레이였다.





■ 자, 이제 누가 세체원에 가장 가깝지? KDA 1위 달성! Bang is real



SKT T1의 최후의 보루. '페이커' 이상혁과 함께 팀 화력의 한 축을 맡는 '뱅' 배준식. SKT T1 S가 SKT T1이 된 이후로 그는 항상 잘했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고, 롤드컵 우승컵을 손에 넣으며 세체원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번 롤드컵에 앞서 SKT T1은 정규 시즌에서 크게 흔들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항상 우승만 하던 SKT T1이 3위를 기록할 줄이야. 걱정 섞인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올 법도 했다.

그러고 '뱅' 배준식은 많은 우려를 딛고 이번 롤드컵에서도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더블리프트'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판단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아니, 빅토르를 과감한 진입으로 잡으려고 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에서 배준식이 한 수 위였다.

원거리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다. 아무리 잘 성장해도 방어 아이템을 늦게 가기에 적 딜러진에게 거리를 허용하는 순간 녹아내릴 수도 있다. 역전패의 시발점이 되기 가장 쉬운 포지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원거리 딜러의 첫 번째 덕목은 '생존'이다. 문제는 생존만 해서는 최상위 선수가 될 수가 없다는 거다. 과감하면서도 죽지는 않는 선수가 최고의 선수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앞의 조건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뱅' 배준식이 대단한 선수라는 거다.


'프레이' 김종인의 은신한 트위치를 잡을 때도, 격렬히 저항하는 '메이플'의 빅토르를 잡을 때도 배준식은 상대를 잡아내고 유유히 빠져나가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설의 복서 고 무하마드 알리가 말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를 실천하고 있는 '뱅' 배준식. 그는 진짜다.



■ 내가 삼성의 플레이메이커 상대의 허를 찌른 '코어장전'의 자이라



'코어장전' 조용인. 서포터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이제 삼성에서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선수가 됐다. 원거리 딜러일 때와는 포스가 아예 다르다. '스코어' 고동빈, '앰비션' 강찬용에 이어 포지션 변경을 통해 더욱 훌륭한 선수가 됐다.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활발한 로밍과 공격적인 라인전으로 '단조롭다'라는 평을 받던 삼성의 새로운 무기가 된 조용인.

그는 롤드컵에서 자이라를 최초로 꺼내 들며 자신이 삼성의 핵심임을 입증했다. 라인전 주도권이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이라의 원거리 견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상식이다. 하지만 롤드컵에서 꺼내긴 부담스러운 픽이다. 탈출기가 없는 자이라는 한 번 공격에 노출되면 허무할 정도로 잘 죽는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인 롤드컵에서 꺼내기엔 부담스러운 픽이다.

그렇기에 이번 롤드컵에서 자이라의 모습을 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물며, 삼성이 자이라라는 변수픽을 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이라와 케이틀린 픽을 보고도 의구심이 들었다. 삼성의 상대는 봇 라인을 중심으로 게임을 풀어가는 걸로 유명한 RNG가 아니던가. 계속되는 로밍과 갱킹에 삼성의 봇 듀오가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코어장전' 조용인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높은 스킬샷 적중률로 상대 정글러가 갱킹을 와도 2:3으로 이득을 보는 구도를 만들어버렸다.


유일한 변수였던 탑 라인의 개입은 '큐베' 이성진의 활약으로 차단됐다. 이때부터 게임은 삼성이 이긴 거다. RNG가 반등을 노릴 유일한 수단은 '이퀄라이저 미사일'에 이은 진입이었지만, 자이라는 역이니시에이팅의 귀재다. '코어장전' 조용인이 자신의 손으로 롤드컵에 새로운 챔피언을 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