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역의 네 번째 우승이 확정됐고 2년 연속 한국 vs 한국의 결승전이 치러진다. 매년 다르다를 외쳤던 외국팀들은 여전히 같았고, 대진 결과도 결국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한국의 우승으로 마무리가 예정된 상황. 결승전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질 만도 한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팀의 수장' 감독들의 예상치 못한 썰전 때문이다.

스포츠, 특히 축구에는 양 팀의 감독이 언론을 통한 심리전을 자주 펼치지만, e스포츠 분야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의도치 않은 썰전으로 결승전에 대한 기대감이 후끈 달아올랐다. 최우범 감독의 인터뷰는 500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양 팀 감독들의 이어 선수들까지 나서서 인터뷰를 주고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양 팀 감독의 인터뷰가 번역되어 나갔고 스크림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두 해 연속된 한vs한 결승전을 뜨겁게 달군 양 팀 감독, 선수들의 말말말. 롤드컵 최후의 무대를 앞두고 벌어진 신경전을 총정리했다.


◈ SKT 최병훈 감독, "온 우주가 우리가 지기를 바래...결승전 누구든 압살할 것"



락스 타이거즈와 4강전 경기 승리 후, SKT 최병훈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전한 말이다. 최병훈 감독은 4강전 경기에 대해 힘들었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간 쌓아둔 복잡한 마음의 심정을 토로했다. 최병훈 감독은 "4강 준비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언론이나 해설진. 라이엇까지도 모두 ROX가 이길 것 같다고 했고, 전력 차이로 논하지 않더라도 온 우주가 우리가 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팬분들을 제외하곤 모두 우리가 지기를 바라는 것 같아 더 독하게 마음먹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스크림과 관련된 부분이다. 최병훈 감독은 "스크림도 견제 차원인지 반대조에서 거의 연습을 안 해줬다. 다행히 H2K가 겨우 몇 판 해주면서 준비할 수 있었다. 스크림을 해주는 건 팀의 자유지만 우리가 거의 스크림을 못하고 결승에 갔기 때문에 누가 올라오던 정말 압살하도록 하겠다"며 결승전 승리의 의지를 불태웠다.

락스 타이거즈와 경기를 앞둔 SKT T1은 반대조에 속한 H2K, 혹은 삼성과 스크림을 치를 수 있었다. H2K가 연습을 몇 판 해주었다면, 자연스럽게 삼성은 스크림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 된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감독 입장에서 매우 심각하게 다가왔을 터. 최병훈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SKT 팀원의 결속력을 다지고 전의를 불태우게 했다.


◈ 삼성 최우범 감독, "16년 e스포츠 인생에 처음 있는 일...선수들이 걱정된다"



최우범 감독에게 이번 인터뷰와 관련해 질문을 던질 때도 이렇게 직접적인 대답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우범 감독은 팀원의 사기를 고려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최우범 감독은 H2K와의 4강전 경기 종료 후 인터뷰를 통해 스크림 관련 논란에 대해 조금 어이없고 화가 난다면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는 "16년 동안 이스포츠에 있으면서 어느 팀 감독이 다른 팀을 직접 걸고넘어지는 이런 경우를 처음 봤다. 중요한 경기 당일 아침에 그런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되는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되는가. ROX 타이거즈와 이미 연습을 한 상황에서 어떻게 SKT T1 을 도와줄 수 있는가. 기사를 본 우리 선수들이 걱정된다"며 팀의 감독으로서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스크림과 관련한 논쟁은 양 감독의 생각이 달랐다. 최병훈 감독의 경우, 상대하는 팀에 상관없이 스크림이 진행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최우범 감독은 e스포츠의 오랜 관습을 따랐다. 같은 사안을 두고 감독의 생각이 다른 것은 여러 복잡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사건은 최병훈 감독의 비공식 사과로 일단락됐지만, 양 팀의 대결에 뜨거운 감자로 새롭게 떠오르게 된다.


◈ SKT '페이커', "이제 내가 최고다" vs 삼성 '크라운', "미드 잡아야 승리한다"


이상혁은 알고 보면 상대 선수에 대한 도발을 자주 해온 선수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상대 미드라이너에 대해 그렇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곧잘 했다. 이상혁이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이를 사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의 실력 때문이다. '미키' 손영민과의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손영민의 '페더열'은 이상혁의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락스 타이거즈와 4강전이 끝나고도 이상혁은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제 내가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향하는 것은 '쿠로' 이서행뿐만 아니라 '크라운' 이민호에게도 해당한다. 아직 결승전에서 삼성과 '크라운' 이민호와의 대결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이민호도 H2K와 대결을 끝내고 곧바로 화답했다. 이민호는 인터뷰에 나서 "어제 경기(락스vsSKT)를 보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SKT T1을 이기려면 미드를 이겨야 하는 것 같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상혁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셈. 이민호는 이상혁을 상대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를 날렸다.


◈ SKT '울프', "삼성에 이길 확률 95%" vs 삼성 '코어장전', "화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울프' 이재완이 해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재완은 삼성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확률에 대해 95%라고 말했다. 나머지 5%에 관해 묻자 "오늘처럼 플레이가 나쁘면 질 수 있다. 내 생각에 진짜 상태가 안 좋으면 한 세트 정도 질 거 같다.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 라이너들이 삼성을 카운터 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최근 서포터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삼성의 '코어장전' 조용인도 인터뷰에서 패기를 보여줬다. 그는 인터뷰에서 '울프' 이재완이 결승에서 분풀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동생이라 미안하지만, 결승에서도 화만 난 다음에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화를 풀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대결에서 승리할 것임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인터뷰들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치 않았든 이번 결승전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페이커vs다데, 피글렛vs임프로 이어지던 이전 (구)삼성과 SKT T1의 대결의 오마주를 보는 듯하다.

2년 연속 한국vs한국의 결승전이 성사되며 자칫 관심도가 떨어질수도 있었다. 감독들 사이의 오해로 인하여 양 팀 사이에 스토리가 발생한 것은 흥미로운 요소다. 이번 대결에서 과연 어느 팀이 자신의 말을 지켜낼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피글렛' 채광진과 '임프' 구승빈의 대결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은 데 있다. 선수간의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이야깃거리, 상대 인격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면, 승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 봐줘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