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려 열심히 농사를 지은 농부들의 한 해가 끝이 났다. 수확된 곡식의 낱알이 윤기가 잘잘 흘러 함박웃음을 지었던 집도, 벌레 먹고 섞어 들어 피눈물을 흘렸던 집도 있었다. 또는, 모든 집이 함께 따뜻한 날씨와 단비에 행복해하고, 비바람과 가뭄에 서러워하기도 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굳이 따지자면 제일 잘 나가는 동네다. e스포츠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 때문인지 다른 곳보다 더욱 많은 이슈가 쏟아졌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기에 어려울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이 리그 오브 레전드 동네의 2016년은 뻔한 말이지만, 정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래서 올해 LoL e스포츠 소식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다시 되짚어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정리했다. 정말 중요했던 이슈들. 간단히 키워드별로 태그를 걸어줄 것이니 놓치지 말고 따라와 주시라.



# SKT T1, # 3번의 우승, # 외줄타기




LoL e스포츠의 2016년은 SKT T1(이하 SKT)이란 한 단어로 요약해도 무방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SKT는 올해 내내 외줄 위를 걸었다. 단 한 번도 아찔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위험천만했던 곡예를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것도 세계에서 제일가는 걸작으로.

첫 작품은 스프링 시즌이었다. 2015 롤드컵 MVP '마린' 장경환이 떠난 자리에 '듀크' 이호성이 합류했고, 정글도 '블랭크' 강선구가 자주 기용되면서 SKT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역시 삐거덕거렸다. LoL 역사상 최강팀 SKT가 정규 시즌 7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SKT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기적적인 반등을 시작한 SKT는 어느새 찰떡궁합 같은 호흡을 보이며 결승까지 올랐고, 숙명의 라이벌 ROX 타이거즈를 꺾고 우승에 성공했다. 우승 후 김정균 코치가 남긴 "SKT에 부진은 있지만, 몰락은 없다"라는 명언은 SKT의 위상을 보여줬다.

곡예는 MSI 에서도 계속됐다. SKT가 이대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정도로 MSI 조별 리그 4연패는 한국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러나, SKT의 다리 한쪽이 외줄에 걸쳐있었다. 정말 눈이 찔끔 감길 정도의 퍼포먼스였다. SKT는 다시 외줄 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4연패 이후 만난 팀들을 되려 벼랑 밑으로 끌어내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의 부진은 온데간데없을 정도로 손쉬운 승리였다.

섬머 시즌 초반은 그래도 순탄했다. 연승 행진으로 1위를 수성했었다. 정규 시즌 왕자인 ROX 타이거즈가 의외로 주춤했던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초반에 너무 힘을 쏟았던 탓일까? 거센 바람을 맞은 SKT는 흔들거렸다. 진에어 그린윙스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한 이후로, SKT의 경기력은 들쭉날쭉이었다. 그렇게 SKT는 정규 시즌 1위 자리를 ROX 타이거즈에게 내주고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바람은 잦아들 생각이 없었다. SKT는 준결승에서 kt 롤스터를 만나 먼저 2승을 거뒀지만, 1승을 더 추가하지 못하며 주저앉아야만 했다.


외줄 위에 주저앉았던 SKT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가장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세계가 지켜봤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어쩌면 이후로도 하지 못할 수 있는 롤드컵 3회 우승. SKT는 결국에 해냈다.

롤드컵이 열리기 전, 수많은 매체들은 SKT의 우승을 쉽사리 점치지 않았다. 마음속 한구석에는 믿음이 있었지만, 섬머 시즌의 경기력을 봤으니 어쩔 수 없는 예상이었다. 과정도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쪽에 있던 ROX 타이거즈와 삼성 갤럭시가 SKT와 신명 나게 한판 무대를 펼쳤으니. 감탄이 나오는 무대였다. 어느 누가 이를 단순한 오락으로 볼 수 있었을까. 의심할 수 없는 수준 높은 스포츠였다. 이 감동의 무대 끝에 SKT는 꽃가루 세례를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 LoL e스포츠 규모화, # 우승 상금 증대, # NBA, 유럽 축구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까? 글쎄, 아직 황금알을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저곳에서 e스포츠라는 거위를 키우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개인과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LoL에도 당연히 손길이 뻗쳤다.

일단, 북미 지역은 NBA가 그 중심에 섰다. 릭 포스, 샤킬 오닐, NBA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등 이름 있는 인물과 팀이 투자에 나섰다. 단순히 발만 걸친 것이 아니었다. 릭 포스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아예 팀을 만들거나 인수하여 운영에 나섰다.

거위를 사드리려는 움직임은 북미에서만 그친 일이 아니었다. 유럽은 축구 구단들이 발을 벗고 나섰다. 샬케04, PSG, 발렌시아FC, 페네르바체 등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유명 구단들이 LoL e스포츠팀을 창단했다.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유명 구단들이 e스포츠팀 창단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출했다.

규모화 바람에 라이엇도 움직였다. 일단, LoL 최고 대회인 롤드컵 상금을 대폭 증가시켰다. 약 22억. 올해 롤드컵 우승 상금으로 책정된 금액이고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액수였다. 일명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제도가 큰 몫을 했다. 스킨 판매 수익의 일부를 대회 상금으로 포함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팀 관련 게임 상품(팀 아이콘 등) 수익까지 더해지면서 실질적인 상금은 더욱 컸을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규모화의 바람을 지탱해줄 뿌리도 단단히 구축했다. 라이엇은 지난 22일 LoL 2부리그인 챌린저스 리그 소속 팀들에게 각각 연간 5천만 원을 지원할 것으로 발표했다. 준프로급 선수들은 리그의 미래이고 기반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리그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도움이었다.

황금을 낳기 위해 거위에게 영양가 있는 사료들을 먹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장은 굳이 황금알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주인의 허기를 채워주고 조금이라도 팔 수 있을 만큼의 소중한 알을 낳아준다면, 그래서 자생이 가능하게 된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 솔로 랭크, # 헬퍼, # 욕설, # 데마시아




e스포츠의 운명은 게임과 한배를 타왔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는 역사상 올해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운영에 관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시작은 솔로 랭크 폐지 문제였다. 라이엇은 올 시즌 처음으로 다인 랭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솔로 랭크도 출시할 것이라 발표했지만, 라이엇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솔로 랭크 도입을 철회했다. 이로 인해, 참아왔던 게이머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다인 랭크로는 개인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이유가 중심이 됐다.

프로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는 상위 티어는 더욱 문제였다. 다인 랭크로 인해 매칭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챌린져, 마스터 티어 프로 게이머들이 다이아몬드 중, 하위 티어와 매칭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제대로 연습이 될 리 만무했다. 심지어 몇몇 해외 선수들은 다인 랭크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게이머들의 불만에 부정 프로그램 '헬퍼'가 기름을 부었다. 헬퍼는 언제라도 문제가 될 수 있었고, 그 언제가 올해가 됐다. 솔로 랭크와 헬퍼 문제가 겹치며 게이머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분노는 지표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200주가 넘는 기간 동안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LoL의 아성이 무너졌다.

다행히 라이엇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줬다. 정확한 대처를 시작한 것은 8월 31일. 데마시아라는 이름의 보안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데마시아는 단순히 헬퍼 등 부정 프로그램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욕설 문제까지 해결했다. 10월 16일, 라이엇은 2017시즌 솔로 랭크 부활도 선언했다. 결국, 운영 문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늦게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안도감을 표한 게이머도 있었고,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게이머도 있었다.



#아듀 용산 #개관! OGN e스타디움 #스포tv LCK 중계 합류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의 폐관과 새로운 상암 e스포츠 시대의 개막도 기억에 남는다.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은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로 시작해 2016년, SKT T1과 kt 롤스터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막을 내렸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스페셜 포스, 서든 어택, 카트 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16개 e스포츠 종목 리그 및 대회가 진행됐고 최다 1,500명의 관중이 한날한시에 찾아오기도 했다.

같은 월, 30일에는 서울 상암 e스타디움이 개관식을 가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김종덕 문화체육부 장관, 전병현 국제 e스포츠 협회장 등이 참석했고 임요환, 이윤열, 김동준, '매드라이프' 홍민기 등 e스포츠 스타들도 자리를 빛냈다. 상암 경기장은 800여 개의 관람석과 초대형 LED 화면, 최신 음향 기기 등 편의시설이 잘 설비되어 새로운 e스포츠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LCK 분할 중계 이슈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화제다. 2016년은 LCK가 처음으로 분할 중계를 시작한 해다. 라이엇은 지난해 12월, 방송 품질 및 여건 개선을 위해 OGN, 스포tv 두 개의 방송사와 협업한다고 밝혔다. 초창기 분할 중계가 환영을 받았던 데는 ① 경기 매치업 시간을 명확히 하고 일정을 조정하고 ② 경쟁을 통한 방송 퀄리티 상승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실제, 분할 중계 진행으로 목요일 낮 2시에 진행되던 경기 일정이 사라지고, 팬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방송사의 노력이 엿보이면서 호평이 이어졌다.

아쉬운 점도 남았다. 스포tv가 분할 중계에 뛰어들면서, 다소 원활하지 못한 경기 진행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스포tv는 초반 해설진 섭외에 난항을 겪으며 선수 출신 해설가를 기용, 다소 아쉬운 평가를 들었다. 또한, 잦은 경기 지연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분할 중계 효과가 미진하다는 평이 존재했다.



#락스 타이거즈 첫 우승 #바론 체력 2, 슬픈 콩라인 #삼성의 롤드컵 진출



LCK 섬머 시즌에는 롤드컵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드라마틱한 승부가 많이 나오기도 했다. 포스트 시즌에는 KT 롤스터가 SKT T1을 상대로 불리했던 역대전적을 뒤집고 결승에 올랐다. '스코어' 고동빈의 적극적인 카운터 정글링과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팀원들의 발 빠른 합류는 kt 롤스터를 강팀으로 만들었다. 드라마를 써나가던 kt 롤스터는 락스타이거즈와 결승전 5세트, 바론 체력 2를 남겨두고 상대에게 빼앗기며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락스 타이거즈는 섬머 시즌 결승전을 통해 2등의 악몽을 떨쳐내고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간 락스 타이거즈는 롤드컵과 정규 리그를 포함한 각종 대회에서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왔기에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트라우마가 남을 법도 했다. kt 롤스터와의 결승전도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었다. 마지막 세트 상대 넥서스를 터트리고 감독, 선수, 코치가 모두 뭉쳐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락스 타이거즈는 KeSPA컵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은 삼성에게도 특별한 해로 기억에 남는다. 삼성은 지난 해만 해도 주력 선수를 모두 잃고 새로운 팀원들과 함게 시즌을 시작했다. 스프링 시즌 최하위를 기록했던 삼성은 2016년 '앰비션' 강찬용의 영입과 함께 중, 후반 운영이 단단해지면서 강팀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정글이 안정되자 라이너들의 기량이 계속 올라왔다. 삼성은 kt 롤스터와 롤드컵 선발전에서 극적으로 티켓을 거머쥔 후, 롤드컵 결승까지 승승장구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삼성의 롤드컵 무대 등장, 2016년에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다시 한국으로 #슈퍼팀 탄생 #기대되는 2017 시즌



2016년 마지막 해를 달군 이슈는 이적시장이었다. LCK 소속 대부분이 계약이 만료되면서 선수들이 대거 이적시장으로 나와 팀을 구했다. 섬머 시즌 우승, 월드 챔피언십 4강을 기록했던 락스 타이거즈가 선수, 감독을 포함한 전원이 팀을 나온 것을 시작으로, kt 롤스터, SKT T1, 아프리카 프릭스, 진에어 그린윙스 등 많은 팀이 로스터 변동을 알렸다. 여기에 해외에서 활동하던 선수들까지 국내 리그 복귀를 선언해 스토브 리그의 열기를 더했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구 삼성 선수들의 한국 복귀는 큰 관심을 받았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슈퍼팀의 탄생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이들을 한데 모은 팀은 kt 롤스터였다. kt 롤스터는 지난 시즌 팀의 핵심 전력인 '스코어' 고동빈을 지키고 '데프트' 김혁규, '폰' 허원석과 함께 딜러 라인을 정비했다. 이어 락스 타이거즈에서 가장 좋을 활약을 보였던 '스멥' 송경호를 영입하고, '마타' 조세형을 영입해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갈락티코 정책을 현실화했다. 2017 통신사 더비는 어느 때보다도 큰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들었던 선수들의 해외 진출 소식도 잇따라 들렸다. SKT T1에서 정글 포지션을 책임졌던 '벵기' 배성웅은 중국 프로게임단 VG로 합류했다. VG에는 'Easyhoon' 이지훈과 '푸만두' 이정현 코치가 있어 SKT T1 라인의 활약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 '썸데이' 김찬호, '플레임' 이호종, '체이서' 이상현 등이 북미로, '듀크' 이호성, '코코' 신진영, '크라이 해성민 등이 중국, '블랑' 진성민, '파일럿' 나우형 등이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