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7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스프링 시즌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다섯 팀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낮은 확률의 가능성과 싸우고 있는 팀이 있습니다. 바로 ROX 타이거즈(이하 ROX)입니다. 시즌 초, 진에어-콩두와 함께 최하위권에 머무르던 ROX는 IEM 월드 챔피언십을 기점으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승리를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ROX의 상승세는 계속 됐고, 정규 시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현재 연승을 달리고 있죠.

이제 단 두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는 ROX의 현재 성적은 8승 8패 득실차 -2점으로 6위입니다. ROX 입장에서 추격해야 할 5위 아프리카 프릭스는 9승 7패 득실차 1점, 차이를 벌려야 할 7위 롱주 게이밍은 8승 8패 득실차 -3점입니다. 이 세 팀의 남은 경기 승패에 따라 포스트 시즌 진출권의 향방이 갈리게 됩니다. 무조건 순위 상승을 노려야 하는 ROX는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게 유리하죠.

다만 남은 상대가 리그 1, 2위 SKT T1과 삼성이라는 사실이 조금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런 대진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이번 스프링에는 포스트 시즌 진출이 불가능하지 않겠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어쨌든 간에 ROX는 뒷심을 뽐내며 성장 드라마의 해피 엔딩을 노리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경기에서는 승승장구하던 4위 MVP를 제압했죠. 그런 ROX의 중심에는 '미키' 손영민이 있었습니다.

'미키' 선수의 2017 스프링 시즌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습니다. 소위 구멍과 캐리를 넘나드는 기복 있는 경기력이 1에서 6까지의 숫자가 무작위 확률로 뜨는 주사위에 비유되면서 새로운 별명도 생겼죠. 캐릭터가 굳어지면서 많은 이목이 쏠린만큼 폼이 좋지 않을 때 그가 받아야 했던 비판의 강도는 거셌습니다. 도를 넘은 비난들도 있었죠. 하지만, 그 위기를 넘겨내고 성장한 '미키' 선수의 주사위는 숫자 6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육잡이'처럼요.

포스트 시즌 진출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고 있는 '미키' 손영민 선수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주사위라는 별명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프로게이머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참고로 해당 인터뷰는 ROX와 MVP의 경기가 치러지기 전에 진행됐습니다.


Q. 안녕하세요, '미키' 선수! 먼저 인터뷰를 보고 계실 팬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ROX 타이거즈 미드 라이너 '미키' 손영민입니다.


Q. 벌써 롤챔스 스프링 시즌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네요.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즌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정말 굴곡이 많은 시즌이었던 것 같은데.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는데 기대했던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많이 아쉬운 것 같아요.


Q. 포스트 시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큰 상황일 수밖에 없긴 하죠. 음... 그럼 경기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먼저 '미키' 선수에 관한 이야기부터 나눠볼까요? 처음 프로 데뷔를 한 곳이 중국이더라고요. 일부 팬분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건가요?

당시 프라임 팀에 소속돼 있다가 팀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팀을 구하고 있었어요. 역시나 한국 팀에는 자리가 없더라고요. 프로게이머는 하기 힘들겠구나 싶어서 학업에 매진하려고 했죠. 그때 중국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정글과 탑을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미드 라이너이긴 했지만 정글 포지션도 많이 했기 때문에 테스트를 보고 입단하게 됐어요.


Q. 중국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네, 한 3~4개월 정도 있었어요. 한국으로 빨리 돌아오게 된 이유는, 음... 외로웠던 게 컸던 것 같아요. 학년으론 고등학교 2학년일 때였으니까 어렸죠. 그런데 혼자선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막상 나가도 아무것도 없고. 갇혀 사는 기분? 아는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팀 분위기도 별로 안 좋았죠. 중국은 정말 힘든 곳이구나 싶었어요.


Q.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마추어팀인 아나키에 합류를 하고, 드디어 LCK에 입성하게 됐어요. 처음 밟아본 한국의 1부 리그는 어땠나요?

사실 챌린저스 코리아는 상금을 타자는 마음으로 나갔던 거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우승을 하고 LCK 진출권까지 따냈더라고요. 이후에 1부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면서는 프로팀과 많은 차이를 느꼈던 것 같아요. 못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은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져있더라고요. 이게 프로의 운영이구나 싶었어요.

나중에 '하차니' 하승찬 형이 코치로 오면서 확실히 크게 성장했어요. 저희 팀에서 운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탑-정글 정도밖에 없었는데, 프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와서 프로의 경기는 어떤 건지 알려줬던 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이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 소속 팀인 ROX가 결성되던 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눈에 띄는 점이 강현종 감독님과 '상윤' 권상윤-'린다랑' 허만흥-'성환' 윤성환 선수와 다시 한 번 한팀이 됐다는 건데, 당시 어떻게 ROX에 합류하게 됐나요?

당시에 해외 쪽을 주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고민이 좀 많았어요. 사실 크게 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국내에 자리가 없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외를 알아봤던 상황인 거죠. 그러던 와중에 ROX 쪽에서 입단 제의가 왔어요. 이전에 함께 뛰었던 팀원들도 몇 명 있고 강현종 감독님도 계시니까 힘들지 않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 이유 때문에 ROX를 선택하게 됐어요.


Q. 이전 시즌에 한 팀으로 활동했던 강현종 감독님과 팀원들의 존재가 ROX를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건가요?

네. 감독님과 (권)상윤이 형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Q. 한 방송 인터뷰에서는 '샤이' 박상면 선수와의 훈훈한 케미스트리를 뽐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샤이' 선수 하면 정말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죠. 그런 선수와 한팀이 된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직접 함께 뛰어보니까 어떤가요?

확실히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와서 그런지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팀적으로 약간 듬직한 면이 있긴 있어요. 한두 살 차이 나는 형이면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일 텐데, 나이가 꽤 있으시니까 더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요. 실제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고요.


Q. '마이티베어' 김민수 선수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시즌 중반인 2라운드에 팀에 합류하게 됐는데, 새로운 정글러가 합류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솔직히 당시엔 별생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팀의 문제가 누구 한 명이 바뀌어서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해야 우리가 팀적으로 좀 더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을 때였어요. (지금은 '마이티베어' 선수가 팀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네. 민수 형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긍정적인 편이에요. 그런 면이 저희 팀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Q. 아무래도 이번 시즌 ROX의 가장 큰 전환점은 아무래도 IEM 월드 챔피언십일 것 같아요. ROX는 IEM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예요. 그만큼 팀 입장에서는 IEM이 굉장히 뜻깊은 대회였을 것 같은데.

IEM에 참가하면서 팀원들끼리 꼭 우승하자는 다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4강에서 떨어졌죠. 탈락 후에는 그래도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이번 실패를 발판 삼아 단점을 보완해서 LCK 남은 경기를 잘 해보자'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정말 뼈아픈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성장하기에 좋은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Q. 팀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는 이야기네요. 그렇지만 '미키' 선수에게는 조금 힘든 대회가 아니었나요? 당시 부진했던 경기력에 대한 팬들의 비판이 굉장히 거셌던 거로 기억해요. 진에어전 승리 후 MVP 인터뷰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죠.

IEM이 해외에서 열린 대회다 보니 쉴 틈이 거의 없었어요. 대회에서 패한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가 바로 LCK를 뛰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일정이 굉장히 빡빡했죠. 정말 시체처럼 한국에 도착했어요. 정신도 몸도 많이 망가진 상태로요. 그래서 더 힘들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프로라면 어느 정도의 비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판을 받으면 이겨내야지 하고 있었는데, 너무 많은 비판을 받다 보니까 무게감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Q. 당시에 팬들을 보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남겨서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어요.

진짜로 팬들을 보기가 약간 무서웠어요. 내가 조롱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원래 있던 팬분들마저 다 등을 돌리면 어떡하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팬들 앞에 서기가 부끄러웠어요.


Q. 그래도 밝은 '미키' 선수답게 금세 회복하셨던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건 아무래도 팬들의 응원이겠죠?

네. 팬들의 응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그 경기 이후로 팬들이 다 떠나갈 법도 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더 힘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미키' 선수 하면 꼭 따라다니는 별명이 하나 있어요. 바로 '주사위'죠. 천차만별로 넘나드는 경기력을 주사위의 숫자에 빗대 생긴 별명이에요. '미키' 선수 본인이 느끼기에도 자신의 플레이가 주사위처럼 기복이 큰 것 같나요?

1라운드 때는 확실히 컨디션에 따라서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치만 2라운드에 들어서는 못해도 최소 1인분은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1인분을 하면 주사위가 낮게 나왔다고 말씀들 하시니까 왠지 내가 많이 못 하고 있는 느낌이고, 잘해도 단지 운이 좋아서 이겼다는 것처럼 들려서... 이게 좋은 별명인지 나쁜 별명인지 잘 모르겠어요. 음, 확실히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Q. 그렇다면 '미키' 선수에게는 주사위라는 별명이 떼어내고 싶은 꼬리표 같은 건가요?

캐릭터가 있다는 사실은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사위는 주사위인데 너무 운 쪽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 정도로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잘해서 이겼을 때, 주사위가 6이 나와서 이겼다는 이야기보다 정말 잘해서 이겼다는 평가가 더 듣고 싶기도 해요.


Q. 이런 별명이 나오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그만큼 '미키' 선수가 폭발력 있고 캐리력 있는 미드 라이너이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이전 아프리카 프릭스나 지금 ROX 타이거즈도 '미키' 선수의 캐리력에 많이 기대고 있기도 하고요. 팀의 중심이 돼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솔직히 말하면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치만 미드 라이너로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웬만큼 잘 성장을 했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죠. '페이커' 선수를 보면 그래요. 잘 컸을 때는 어떤 챔피언을 하든 간에 팀에 영향력을 많이 끼치잖아요. 그런 걸 보고 '아, 미드 라이너라면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 메타가 정글과 미드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Q. 캐리력에서 이어지는 질문인데요. 팬들이 아리나 제드 같이 암살에 특화된 챔피언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큰 편이에요. '미키' 선수 본인이 느끼기에도 '이 챔피언만큼은 내가 탑 클래스다' 하는 자신 있는 챔피언이 있나요?

암살자류 챔피언들로 라인전 단계만 잘 넘어가면 변수 창출 능력에서만큼은 탑 급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라인전이 무난하게 흐르고 후반에 갔을 때, 암살자 챔피언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내가 최고다?) 최고까지는 아니고... 최고라는 말은 함부로 쓰면 안되더라고요(웃음). 최고는 아니고 탑 클래스다.



Q. 스프링 시즌이 약 일주일 남았어요. 포스트 시즌 마지막 티켓을 두고 롱주, 아프리카와 다투고 있는데 1승 혹은 승점 1점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 같아요. 그만큼 1라운드 성적이 아쉬울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요. 아쉬워서 미칠 것 같아요. 그런데 상윤이 형이 항상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어요. 너무 깊게 생각하려고 하면 더 힘들고 머리만 아프대요. 지나간 일들을 너무 후회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연연해 하지 말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려고요.


Q. 남은 상대는 MVP, 삼성 갤럭시와 SKT T1이에요. (서두에 언급됐다시피 인터뷰는 MVP와의 경기 이전에 진행됐습니다) 모두 리그 상위권 팀들이죠. 게다가 전승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요. 때문에 ROX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조금 힘들지 않겠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죠. 어떻게 보면 정말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입장이에요.

힘들긴 하죠. 그래도 프로게이머라면 상대가 누구든 포기를 해버리는 순간 끝난 거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1%라도 있으면 이 악물고 열심히 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남은 경기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거예요.


Q. '미키' 선수의 의지가 느껴지는 각오네요. 프로게이머로서 '미키' 선수의 목표는 뭔지 궁금해요. 팀 성적을 떠나서 한 명의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요.

음, '세계 최고 미드'라는 타이틀은 '페이커' 선수가 너무 꽉 쥐고 있어서 힘들 것 같고요(웃음). '최고 미드'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들에게 '페이커' 선수와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대표적인 미드 라이너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남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비록 지금은 아쉬운 성적이지만, 서머 시즌에는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팀 조직력도 강화시키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