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시련과 직면한다. 고통, 편견, 상실, 슬럼프, 좌절 등.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굴복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하는 반면, 극복하는 사람은 한 단계 성숙한 존재로 발전한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 그것은 프로게이머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머나먼 미국 LA에서 실패를 통해 점점 큰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 '레인오버' 김의진을 만났다.

국내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의진은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유럽으로 진출했다. 그는 유럽 명문 프나틱을 두 시즌 연속 자국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올렸고, 롤드컵 4강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만들며 콧대 높은 유럽 팬들의 차가운 편견의 시선을 환호로 바꿨다. 이듬해 북미의 신생팀 임모탈스로 이적한 그는 팀을 우승권에 근접한 팀으로 만들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공에 너무 취했던 탓일까. 이듬해 팀 리퀴드로 이적한 김의진은 해외에서 처음으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비록, 커다란 좌절을 겪었지만, 그의 불굴의 도전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세계로 나가기 위해 고통을 감내했다. 이번에는 북미의 명문 CLG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레인오버' 김의진, 그가 얻은 깨달음,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직접 들어보자.



Q. 오랜만에 나누는 인터뷰다. 최근에 어떻게 지냈나?

지난 시즌 팀 리퀴드에서 활동을 하다가 빨리 떨어지는 바람에 8월 말에 한국에 와서 쉬었다. 휴식 기간을 가진 뒤, 이적 시즌인 11월 중순에 미국에 돌아와 이적을 준비했다. 여러 팀 중에 CLG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CLG행을 결정하게 됐다.


Q. CLG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CLG는 팀 리퀴드에 가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팀이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의 방향이랑 잘 맞는 팀이다. 게임적으로 변수를 줄이고 스마트하게 하는 팀이라고 생각해 항상 CLG를 좋아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CLG를 선택했다.


Q. 프나틱의 우승을 만들었고, 북미 신생팀 임모탈스를 상위권 팀으로 만드는 등 해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 팀 리퀴드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는데, 무엇이 가장 아쉽나?

전부 아쉽다. 나는 라이너를 지탱해 주며 서로 돕는 플레이가 강점이고 라이너와 함께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강력한 솔라이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 팀 리퀴드에 가기 전에 '후니' 허승훈과 계속 호흡을 맞췄는데, 내가 욕심을 부린 탓에 결과적으로 '후니'와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격적인 솔라이너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못 했던 것 같다.

연패를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문제점을 고치려고 팀적인 노력을 많이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원래 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게임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실제로 경기를 하면서 잘 안 맞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Q. 미드라이너 '골든글루', 원거리딜러 '피글렛' 채광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선수마다 성향이 달라 시너지가 잘 나오지 않았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보니 문제점을 고치기 힘들었다. 시야 부분을 고치려고 해도 다섯 명 모두 생각이 달라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았다.


Q. 2017 시즌 동안 정글러 메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타 부분에서 문제점은 없었나?

나는 비교적 단단한 챔피언을 선호하는 편이다. 시즌 초반에는 딜러 챔피언이 대세였다. 하지만, 딜러 챔피언은 팀적으로 호흡이 잘 맞아야 사용하기 좋은데, 팀적인 호흡이 잘 맞지 않아 내가 도움을 못주고, 나도 도움을 못 받는 상황이 나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메타에 맞지 않는 조합을 짤 수도 없어서 억지로 딜러 챔피언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선호하는 메타는 아니었다.

롤드컵 기간에 향로 메타가 주를 이뤘는데, 향로 메타에서는 탱커 챔피언이 대세였다. 굳이 따지자면 롤드컵 메타 자체는 내가 좋아하는 메타였다. 롤드컵에 진출했다면 잘했을 것 같지만, 롤드컵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팀의 성적이 초반부터 좋지 않았다.


Q. 프나틱과 임모탈스에서 파트너로 활동했던 '후니' 허승훈이 한국에 돌아와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한국에 휴가를 갈 때마다 친했던 선수들과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봤다.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물론 있지만,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 땐 항상 LCS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나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생활적인 부분에서 한국과 외국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한국에 있으면 게임에 더 집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급여와 연습 환경 등을 고려 했을 때, LCS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도 막연하게 한국에서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재밌을 것 같다. 승훈이의 말을 들어보니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도 승훈이가 한국에서 잘 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Q. '후니' 허승훈과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눴나?

시즌 중에는 스스로 챙기기 바빠 연락을 거의 못 했다. 시즌이 끝나고 연락을 많이 했다. 승훈이는 첫 프로 생활을 LCS에서 했는데, LCS 환경에 익숙해서 한국의 빡빡한 연습 환경, 피드백, 선수 사이의 관계 등이 힘들었을 것 같다. 자세하게 얘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격도 알고 같이 오래 활동해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SKT T1의 피드백 영상을 봤는데 살벌하더라. 원래 승훈이가 그런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성격이 아니다(웃음).


Q. 여담으로 가벼운 질문을 하나 하겠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선수로 유명한데, 영어를 빨리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후니' 허승훈의 영어 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미국 사이판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이후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때 배워놔서 다시 영어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지금 미국에서 활동하는 데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 물론, 한국어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정도다.

'후니'는 영어를 잘 못 한다(웃음). 그래도 '후니'는 비교적 영어가 빨리 늘은 편이다. 보통 한국에서 온 선수들은 영어를 빠르게 배우지 못하는데 승훈이는 처음과 비교해서 굉장히 잘한다. 한국에 오래 있어서 많이 잊었을 텐데, 에코폭스와 계약했기 때문에 앞으로 영어를 더 잘할 것 같다.



Q. 이제 CLG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됐는데,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잘할 것 같다. 일단 스타일이 잘 맞고, 선수들 모두 스마트하게 플레이한다. 공격적으로 해야 할 땐 공격적으로 수비적으로 해야 할 땐 수비적으로 한다. 메타도 내가 좋아하는 단단한 챔피언이 좋은 메타다. CLG가 연습을 비교적 일찍 시작했는데, 느낌이 정말 좋다. 과거 프나틱, 임모탈스에서 게임을 했을 때처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있다.

게임 내적으로 말하자면, 라이너들과 항상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그것을 해낸다는 느낌이다. 피드백 과정에서 문제점도 잘 고쳐지고 있어서 시즌 초반부터 잘할 것 같고, 초반에 삐끗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좋은 성적을 낼 것 같다.


Q. 약 한 달 정도 연습 과정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CLG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있다면?

모든 선수가 좋지만, 서포터인 '바이오프로스트'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다. 잘하는 서포터가 있으면 정글러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데, 그는 해야 할 것을 굉장히 잘하는 선수다. 소위 말하는 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선수다. 이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말하기도 전에 미리 하고 있다. 덕분에 게임하기 굉장히 편하다.

원딜 '스틱세이'는 피지컬이 좋고 똑똑하게 안전한 플레이를 잘한다. 미드 '후히' 최재현과는 말할 것도 없이 호흡이 잘 맞는다. 그리고 탑과 정글의 성향이 잘 맞아야 하는데, 예전부터 친했던 탑라이너 '다르샨'과 성향이 잘 맞는 편이다. 과거 '후니'와 활동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경기를 해봐야 알겠지만, 잘 될 것 같다. 코칭 스태프도 모두 마음에 든다.


Q. NA LCS 프랜차이징이 도입으로 선수 복지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개선됐다고 들었다. 북미에서 활동하는 선수로서 변화를 체감하고 있나?

프랜차이징이 도입된 뒤로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크게 체감되고 있지 않다. 가장 큰 변경 점은 승강전이 없어진 것이다. 새로운 팀과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생겼다. 앞으로 재밌을 것 같다. 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큰 차이까지는 아닌 것 같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구단에서 돈을 많이 부담해야 되지만, 선수의 최저 연봉이 많이 올랐다. 판이 커진 느낌이 든다.

NA LCS가 선수 대우가 최고라고 하는데, 그건 선수마다 다르다. 그것 하나만 보고 갈 정도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유럽이나 다른 지역도 많이 받는 선수는 많이 받는다. 북미가 가장 좋은 것은 살기가 좋다는 점인 것 같다. 날씨가 최고다. 북미에 올 때마다 살이 많이 찐다.


Q. 룬 대격변 패치가 이뤄졌는데, 내년의 메타는 어떨 것 같나?

지금은 적응하는 단계다. 개편된 룬 시스템 모두 마음에 든다. 나는 시야 위주로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부분에 힘을 실어주는 '좀비 와드'가 생겨서 좋다. 게임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어 편할 것 같다.

룬 개편으로 챔피언들의 데미지가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말도 있는데, 팀 게임에서 데미지가 아무리 강해도 맞을 각을 주지 않으면 된다. 솔로 랭크는 확실히 딜러 챔피언이 좋다. 딜러 챔피언 정글러가 방어구 관통 아이템 3개만 올려도 딜러들은 한 방에 죽일 수 있어 재밌더라. 물론 솔로 랭크 기준이다. 팀 게임에서는 서포터나 미드가 CC를 한 개만 아끼고 있어도 근접 암살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터질 수 있다. 그런데도 딜러 정글러를 사용하는 선수도 있는데, 성향도 각자 다르고 잘하면 캐리할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Q. 솔로 랭크 정글러 유저들에게 플레이 팁을 준다면?

웬만하면 좀비 와드를 특성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좋은 특성이다. 그리고 솔랭 기준 딜러 챔피언이 무조건 좋다. 방어구 관통 아이템을 사용하는 근접 암살자의 승률이 정말 좋다. 카직스, 렝가, 자르반 등을 추천한다. 솔랭은 0킬 5데스를 하더라도 집에 갔을 때, 딜 템을 사는 것이 승률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세주아니 같은 챔피언이 아닌 이상, 망했다고 방어 아이템을 선택하면 더 망한다. 그리고, 정글러와 미드가 듀오를 하면 승률이 잘 나온다.


Q. 최근 올스타전에서 LMS와 LPL 올스타가 LCK 올스타를 꺾는 등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내년 국제 대회가 더 치열하 것 같다는 전망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한국 팀이 국제전에서 워낙 잘한다. 스크림 연습 과정에서 한국 팀에게 이겨도 막상 대회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질 때가 많았다. 가능성은 보이는데, 그동안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히 격차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LCS도 점점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능력 있는 코치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특정 팀이 운영을 잘해 좋은 성적을 내면 그 지역에 있는 모든 팀들이 그 팀의 장점을 배우고 있다. NA LCS에서 한국 팀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팀이 나온다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Q. 롤드컵 등 국제전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북미 팀의 약세가 깨질 수 있을까?

북미가 롤드컵에서 왜 이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 항상 느끼는데, 연습 때보다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의아한 플레이도 많이 하고 긴장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상대 팀도 북미 팀을 상대할 때, 편하게 하는 느낌이다. 그러한 마인드가 많이 중요한데, 그것을 깨야 한다. 다들 국제전 성적에 대해 아쉬워한다. 나도 북미 선수 입장에서 북미가 국제전에서 잘하면 자부심도 생기고 무조건 좋다. 앞으로 북미가 국제전에서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Q. 이제 인터뷰를 마칠 때가 다가왔다. 앞으로의 각오와 포부를 들려 달라.

작년에 워낙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CLG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됐는데, 새로운 팀에서 열심히 하며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 자신감도 있고 느낌도 좋다. 그동안 느낌이 좋으면 결과가 항상 좋았다. CLG에서 잘 할 것 같고,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NA LCS 정규 리그가 단판제로 바뀌었는데, 나는 대회 전에 준비를 많이 하고 가는 편이라 단판제가 더 마음에 든다. 여러모로 기회가 온 것 같아 기회를 꼭 잡을 생각이다. 그리고 북미에서 가지 못했던 롤드컵에 꼭 가도록 하겠다.


Q. 끝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달라.

해외에서 워낙 오래 활동해서 한국에 팬이 있을지 모르겠다(웃음). 국제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지 너무 오래됐는데, 이번에 CLG에서 잘 해서 팬분들과 응원해주는 모든 분에게 보답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은 선수인데, 내년에는 정말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은 내년에 성적을 잘 내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