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운타라' 박의진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스물넷이 된 어린 청년이지만, 진지함 속에도 항상 위트가 배어 있었어요. 주책스럽지만 인터뷰가 끝나고도 몇십 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즐거워서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운타라'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자주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그래도 버티고 일어섭니다. 좋은 날도 있지만, 힘든 날을 더 많이 겪습니다. 프로게이머로 조명의 한 가운데 사는 사람이지만, 무대 위에 있다고 모두가 가장 뜨거운 조명 아래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운타라'는 우리와 조금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합니다. 우리의 스물넷과는 다른.


"글을 올리고 침대에 누웠어요... 그때 한 번 울더라고요"

"계약이 끝났을 때였어요. 기사가 딱 나오고, 제 개인 SNS에 글을 적었거든요. 계약이 끝났고, 새로운 팀을 찾고 있다고요. 집에서 노트북으로 작성했는데, 글을 올리고 침대에 누웠어요. 그때 한 번 울더라고요. 엉엉 울었어요"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집에서 글을 쓰니까 초라하더라고요. CJ에서 나올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어요. 이적 시장 20일 동안 잠이 안 왔어요. SKT 송별회 때도 잠을 하나도 못 자고 갔어요. 모든 게 불안했어요. 잘 때마다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적에 관한 것이든, 2018년에 있던 일이든요"



"사실 쉬는 게 두렵긴 했어요"

"SKT와 이별한다는 걸 기사가 나가기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혼자 고민에 빠졌어요. 내가 이적 시장 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솔직히 많이 무서웠어요. 롤드컵 선발전에는 출전했어도, 냉정하게 섬머 스플릿에는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2018년에는 보여준 것도 없었고요"

"다른 팀에서 연락이 오긴 왔어요. LCK 하위권 팀과 해외에서 찾아줬어요. 중국, 대만, 터키 이렇게 세 지역에서 왔어요. 북미는 제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성사가 잘 안 됐어요(웃음). 제일 조건이 괜찮은 곳은 중국이었는데... 사실 평가가 좋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냉혹했어요. 그래서 '아... 쉬자'가 됐죠"

"한국에서 더하고 싶은 것도 있고, 지금 평가로 해외에 가는 건 싫었어요. 좋은 성적을 남기고 해외로 가는 건 상관이 없지만, 이건 억지로 가는 느낌이잖아요. 1년 동안 돈은 많이 벌 수 있어요. 하지만 '1년만 하고 딱 끝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내가 홀로 엄청 잘하면 주목을 받겠지만, 애매하게 하면 진짜 마지막일 것 같았어요. 돈만 받고 끝..."

"사실 쉬는 게 두렵긴 했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됐어요. 어차피 프로 인생 남는 건 돈뿐이다, 아니다 그래도 성취가 중요하다, 뭐 이런 것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어요. 그러다 결국 2019 스프링은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이전에 한 번 쉬어본 경험도 있잖아요(웃음)."


"섬머 시작하고 나서는 전력에서 논외가 된 느낌이었어요"

"2018 스프링 때는 감독님이 저한테 기회를 주셨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주전 탑 라이너에게 기대하는 수준의 기량을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그때 신뢰를 잃었던 것 같아요. 섬머 시작하고 나서는 전력에서 논외가 된 느낌이었어요"

"섬머 때 팀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서 '이래도 기회가 안 오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스크림에 들어가진 못 했어요. 이래저래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실망감이 컸어요. 과거 일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것 같아요. 롤드컵 엔트리에 빠져서 상실감이 있었어요. 2017 섬머 때 팀에 공헌을 했으니까 내심 기대가 있었거든요. 2017 시즌이 끝나고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2018년에 돌입했어요. 그런데, 스프링 부진으로 섬머에 아예 제외됐다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2018년은 좋았던 게 정말 없어요(웃음)"



"나와보니 이해가 갔어요. 죄송함과 미안한 마음이 남아요"

"팀에 있을 때는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나와보니 이해가 갔어요. 감독님도 그렇고, 사무국도요. 워낙 SKT라는 팀에 대한 기대가 크니까요. SKT는 참 어려워요. 지면 당연히 욕먹고, 이겨도 완벽하게 이기지 않으면 또 욕을 먹어요. 모든 사람들이 많은 고충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감독님이나 사무국이 나쁘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 현실적이셨고, 냉정하셨던 거죠. 다만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당시에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 또한 자리 잡고 있어요. 스프링에 기회를 받은 거였으니까요. 그리고 조금 특이할 순 있는데 권혁이('트할')한테 미안함이 컸어요. 권혁이가 대회에 급하게 나갔어요.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을 거예요"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니까 게임이 잘 될 리가 없었어요"

"제가 커뮤니티를 조금 많이 봐요(웃음). 대회 끝나면 트위치로 다시 보기를 꼭 보는데, 죽으면 막 욕도 하시고 별명도 지어주시더라고요. 당시에 '운식당' 이었어요. 갱킹 올 때마다 죽는다고요. 처음에는 저도 웃겼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눅이 들더라고요. 평가나 기대치에 짓눌려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스프링 초반에 연습이 잘 됐다고는 해도 매일은 아니잖아요. 대회 성적, 연습 성적, 비판 모든 게 다 겹치는 날에는 마음이 정말 흔들렸어요"

"흔들리기 시작하니까 또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게임을 단순하게 해야 하는데,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니까 잘 될 리가 없었어요. 게임을 할 때는 위험이 있더라도 도전하고 부딪혀야 해요. 하지만 너무 겁에 질려 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만 하려고 했어요. 사실 제가 겪었던 문제가 LCK에 많은 선수들이 가지고 어려움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선발전은 목숨 걸고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웃음). 정말 오랜만에 어렵게 기회를 잡은 거였고, 선발전이 진짜 중요한 무대니까요. 뒤늦게 이를 간 느낌이긴 했어요. 2:3으로 져서 아쉬움이 크게 남아요"

"오른만 해서 조금 지겨웠던 건 있어요(웃음). 캐리형 챔피언을 하고 싶었어요. 연습 때도 잘되는 판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탱커를 했을 때 승률도 더 높고, 팀에 잘 맞는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1-2픽으로 탑을 뽑으라고 하셨고, 먼저 나왔으니 버텨주기만 하라고 주문하셨어요. 저는 그대로 실행했던 거죠. 팀이 이기는 게 전부니까요"

"캐리형 챔피언을 솔로 랭크에서는 많이 해요. 제이스 같은 두드려 때리는 챔피언을 원래 좋아해요. 탑 라이너라면 다 똑같잖아요. 누가 맞고 싶어 하겠어요. 오른 같은 건 솔로 랭크에서 한 판도 안 해요"



"새로 들어온 SKT 선수들과 거의 친분이 있어요. 다들 SKT에서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동하('칸')랑 친하죠. 그 친구 절 좋아해요(웃음). 음... 글쎄요. 이걸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동하한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얘기해줬어요. 2018년에 SKT가 킹존을 이긴 적이 없어요. 그래서 SKT 팬들이 더 '칸' 선수를 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동하가 왔으니까 캐리하는 걸 한번 보고 싶어요. 공격적인 픽해서요. 탑을 몰아주는 경기가 보고 싶고 궁금해요. 그런 쪽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선수기도 하고요. SKT 하면 탑은 탱커라는 이미지가 강했잖아요"

"동하한테는 외부 평가를 의식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SKT는 정말 인기팀이에요. 거기서 오는 많은 난관이 있을 거예요. SKT에 오는 순간 아마 커뮤니티도 다 볼 거예요. 원색적인 비난도 많을 텐데,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흔들리기 시작하면 작은 것도 크게 다가와요"

"'마타-크레이지' 선수를 제외하고, 새로 들어온 SKT 선수들과 거의 친분이 있어요. 저는 그렇지 못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들 SKT에서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상혁이는 정말 컨셉이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 책 읽는 게 컨셉인 줄 알았거든요"

"상혁이('페이커')는 진짜 옆에서 봐도 대단한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솔로 랭크 방송마저도 잘해야 하잖아요. 한 판, 한 판이 모두 유튜브에 올라가는 선수니까요. 조금만 못해도 바로 자극적인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가더라고요. 그런 걸 다 견뎌낸다는 게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정신력이 대단해요. 자기 관리 확실하고... 돈을 많이 받을만한 선수예요. 더 받아도 돼요. 상혁이는 휴가를 받아도 어디 쓸데없이 유흥을 즐기지도 않고, 집에서 소소하게 쉬면서 게임을 하는 친구예요"

"상혁이는 정말 컨셉이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 책 읽는 게 컨셉인 줄 알았거든요. 자기 전에 진짜 읽더라고요. 1년 동안 계속 봤는데, 똑같이 해요. 한 달 정도면 몰라도 1년은 진짜잖아요. 저는 피곤하면 방송할 때 '오늘은 안 씻어' 이러는데, 상혁이는 방송한다고 하면 외모도 딱 정리해요. 상혁이는 동갑인데도 진짜 '리스펙' 해요"



"프로를 포기한 게 절대 아니에요. 은퇴가 아니고, 앞으로 도전할 거예요"

"이번이 두 번째 휴식이에요. 첫 휴식 때는 독기가 엄청 차올랐어요. 프로 생활보다도 더 빡빡하게 연습을 했어요. 혼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때는 그게 되더라고요. 그때 처음 솔로 랭크 전사라는 별명을 얻었을 거예요. 10위권에 제 아이디를 세 개 올려놨어요. 그러니까 여러 게임단에서 '얘 누구냐' 관심을 가졌고, 그중에서 SKT를 선택하게 됐죠. 현실적으로 말하면 지금은 그때만큼 독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게임을 하다 보면 벽이란 게 있어요. 어느 순간 다이아몬드1, 마스터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그럼 스스로도 경쟁력이 없다고 느낄 거예요.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챌린저에 있기도 하고, 솔로 랭크를 하면 프로게이머들과 게임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아직 잘하는데 2% 부족한 게 있다' 정도에요. 할 만하다고 느껴져요.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프로 무대에서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를 포기할 수 없어요. SKT에서 박수 칠 때 떠난 게 아니라, 못할 때 떠났잖아요. 못해서 은퇴하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파요. LCK 우승이 꼭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요. 2017년 섬머 결승이 개인적으로 정말 너무 아쉬워서요"


"라이즈, 이렐리아 이런 것들을 못했어요. 상대는 어차피 미드로 쓸 걸 알았어요"

"2018년에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했던 게 챔피언 폭이었어요. 상혁이가 웬만한 챔피언을 다 했어요. 폭이 엄청 넓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선발전 때는 이렐리아 밴을 당하기도 했고요. 상대 팀은 상혁이를 저격하는 밴만 했어요. 이렐리아 밴이 저를 염두에 둔 밴이 아니었던 거죠"

"요즘 그리핀을 보면 스왑할 수 있는 픽을 엄청해요. 제이스, 빅토르 같은 거요. 심지어는 원거리 딜러 선수까지 이런 챔피언들을 써요. 하지만 저는 SKT에 있을 때 스왑을 못해줬어요. 라이즈, 이렐리아 이런 것들을 못했어요. 상대는 어차피 미드로 쓸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밴픽에서 지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죠. 팀에 굉장히 미안했어요. 챔피언 폭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해요. 스프링 때 롤챔스도 빠트리지 않고 보려고요. 메타를 놓치면 도태되니까요"

"솔로 랭크 순위, 프로게이머 평가, 챔피언 폭, 이렇게 세 마리 토끼를 잡으면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특히, 솔로 랭크에서 프로 선수들에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야 해요. 그런 평가들이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세 가지를 잡지 못하면 게임단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 건 당연해요. 그때는 받아들이고 정말 스트리머를 고민해봐야겠죠. 다만, 목표한 바를 달성했을 때 게임단에서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웃음)"

"다시 대회에 나섰을 때 비난이나 비판을 짊어질 마음가짐은 되어 있어요. 이제는 더 두려울 것도 없어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프로 생활처럼 살아야만 마음이 놓여요. 어머니께 민폐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취를 시작했는데 힘들어요. 밥을 일주일 정도는 해 먹었어요. 마트에서 장 봐와서 고기도 해 먹고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이게 그냥 먹는 게 끝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먹으면 치워야 하고, 또 쓰레기가 나오잖아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최근에는 거의 사 먹어요(웃음)"

"팀 나오고 집에 한 10일 정도 있었어요. 집에 있다 보니까 너무 편해지더라고요. 프로가 아니라 그냥 20대 청년 백수의 삶이었어요. 컴퓨터 앞에 바로 침대 있고, 큐 잡을 때는 누워서 기다리고, 뭔가 이렇게 살면 미래가 뻔히 보이는 거예요. 배만 나오고 게임도 제대로 안 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바로 불안감이 몰려오더라고요"

"어머니께 민폐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밥 먹을 때만 나와서 밥 먹고, 들어와서 게임하고, 또 잠만 자고, 이런 생활이 싫었어요. 자취하는 곳이 집이랑 가까운데 그래도 혼자서 독립적으로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는 안 그랬거든요(웃음). 이제는 계속 프로 생활처럼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요. 지금은 12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에 잠들어요.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밖에서는 재미있는 이미지인데, 집에서는 무뚝뚝한 편이에요. 제 인생의 선택을 전부 혼자 했어요. 프로 생활을 중국에서 한 것도 그랬고, 한국에서 팀과 협상할 때도 그랬어요. 부모님과 상의를 하는 게 아니라, 보통 결정된 걸 알려드렸어요. 부모님은 저에게 맡기시고 응원을 해주세요"



"재미있다는 기대 때문에 부담스럽긴 해요. 편안하게 봐주세요. 응원 부탁드려요"

"제가 프로를 생각하는 비중이 크지만, 그렇다고 방송을 소홀히 하진 않을 거예요. 아, 그리고 제가 방송에서 워낙 재밌는 이미지로 굳어져서 어려움이 있어요. 기대치가 있어서 부담스럽더라고요. 저도 사람인지라 게임이 안 풀리면 조용해지고 짜증도 나거든요. 제 방송은 재밌고 유쾌하긴 하지만, 프로게이머 '운타라' 박의진을 보여주는 방송이에요. 편안하게 봐주셨으면 해요.

"팀 나왔는데도 생일에 선물을 정말 많이 주셨어요. 또 도네이션이나 개인메세지 등을 통해 축하를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인터뷰를 빌려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