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축축하고 어두운 친구의 자취방에서 OGN이 나오는 TV에 둘러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대는 장면은 나의 향수다. 케이블 TV 채널은 어린 나에게 경쟁, 도전 같은 단어를 설명했다.

많은 e스포츠 영웅들도 그들이 만든 무대에서 탄생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e스포츠 선수들도 그들의 뿌리에서 태어났다. 그들이 써내려간 e스포츠의 역사, 선수와 선수, 선수와 팀 간의 스토리는 몇 날을 꼬박 새더라도 모두 이야기할 수 없다.

글로벌 게임 서비스 플랫폼 OP.GG가 OGN을 인수했다. OGN은 2020년 말 이후로 자체 생산하는 콘텐츠가 거의 없었고, 리그 진행도 중단해 사실상 2년 전부터 폐국 수순을 밟고 있었다. 작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OGN이 매각할 것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OGN의 남윤승 대표는 "e스포츠리그 뿐만 아니라 게임, 신기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전문 제작 스튜디오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며 TV 플랫폼을 벗어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콘텐츠 확산을 이야기했다.

게임 리그를 주력 콘텐츠로 삼았던 OGN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가 존재했다.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 시대를 풍미하는 한가지 게임에 굉장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에 있다. OGN이 리그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은 맞지만, 그 리그의 주인이라곤 할 수 없었다.

OGN에게는 두 가지 역사적인 게임이 존재했다.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다. 두 게임의 흥행은 곧 OGN의 흥행과 연결됐다. 스타크래프트는 OGN을 용산역 꼭대기에 올려놓은 게임이다. 지금 e스포츠업계 대부분 직종을 만든 게임이다. 프로게이머가 최초로 사회에 소개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어 넘어지던 OGN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가 소개한 프로게이밍을 완전한 양지로 끌어올렸다.

애석하게도 OGN의 세 번째 귀인은 없었다. OGN의 다음 선택은 배틀그라운드로 보였다. 수 십 명이 한 번에 플레이 가능한 경기장, 프로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 정도로 폭발적이진 않았다. 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글로벌을 고려한 여러 가지 사업들 역시 연소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영상 콘텐츠와 오프라인 무대 연출은 OGN이 가장 잘하는 것들이었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선수들과 게임에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능력은 2022년인 지금도 반드시 통한다. OGN의 빛날 때 같이 있었던 인력들은 현재 다양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활약하고 있지만, OGN 감성을 완전히 재현하는 곳은 아직 없다.

이제 OGN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작한다. OP.GG는 젊고 창의적인 집단이다. 그 어떤 모습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올진 모르지만, 부디, 자라는 게이머들에게 노스텔지어를 불러오는 존재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