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게임 화면이 아니라 영상 아니야?'


수많은 신작이 쏟아지는 근래 게임 업계에서 아직 특별한 작업물이 없는 인디 개발사의 작품이 이렇게 높은 관심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그저 영상 하나만 공개했을 뿐인데 말이죠.

프랑스 인디 스튜디오 드라마(DRAMA)의 신작 언레코드(Unrecord)는 영상 공개 하나만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적'이라는 상투적인 표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유의 질감이 살아있고 경찰 몸에 부착하는 바디캠을 플레이어 시야 제공 주체로 만들며 생긴 분위기는 이 작품만의 현장감을 살렸습니다.

디스트릭트9의 감독이자 게임 오프 더 그리드에도 참여하고 있는 닐 블룸캠프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영상에 극찬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게임답지 않은 연출에 실사 영상 위에 게임을 덮어쓰는 형태의 영상 스캠이라는 주장도 나왔죠.

언레코드는 어떻게 첫 영상으로 큰 관심을 받고, 또 향후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공개된 정보들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사실적으로 만드는 것? 사실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게 하는 눈속임

드라마는 이제 3명의 개발자와 1명의 프리랜서가 모인 인디 스튜디오입니다. 세계를 가득 채우는 그래픽 충실도, 다양한 오브젝트와 그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 등은 그래픽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근래 고사양 레이싱 게임이나 대형 게임사 AAA 게임이 훨씬 높은 수준에서 구현되죠.

대신 언레코드가 주는 사실성은 단순히 충실한 현실 구현을 추구하기보다는 게임 콘셉트에 맞춘 환경 변화와 눈속임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몸보다는 눈이나 목의 시야에 더 가깝게 그려지는)바디캠이라는, 비교적 떨어지는 화질을 지닌 카메라라는 설정에 맞춰 질감 자체를 일반 시야를 통해 얻어내는 대신 열화된 형태로 그려내고자 했죠.

세계 구현은 성능이 좋지 못한 비디오 카메라 특유의 비릿하게 물 빠진 디테일을 구현합니다. 일반적인 오브젝트 표현보다는 비교적 거칠게 마감 부분을 풀어낸 점도 저화질 카메라가 주는 부족한 선예도 느낌을 살리는 역할을 했고요.

물론 단순히 의도적인 부족함만이 현실적인 그래픽 연출을 가능하게 한 건 아닙니다. 폐허가 된 건물이라는 이번 영상 속 배경 분위기에 맞게 칠이 벗겨지고 표현이 오돌토돌 일어난 벽면,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진 오브젝트, 군데군데 녹이 슨 철제 등 적절하다 이상의 표현이 필요한 개발자의 배치 센스와 노력도 드러나죠.

언리얼 엔진5의 장점인 빛과 그 반사 정도도 능숙하게 활용됩니다. 게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물 위로 번지는 미려한 오브젝트 반사가 딱히 어울리지 않을 법하지만, 플레이어의 움직임과 시야가 정적인 구간에서는 앞선 특징을 비교적 옅게 만들어 그래픽 만듦새를 꽤 자신 있게 드러냅니다.


반대로 동적인 부분에서 주는 현장감은 완전히 반대 부분에서 게임의 사실성을 더합니다.

보통 카메라의 빠른 전환 시 모든 프레임을 꼼꼼하게 담아낼 경우 몰려오는 울렁증은 3D 멀미를 유발합니다. 대개 적절한 모션 블러를 통해 이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실제 시야와 다른 이질적인 모션 블러가 적용되면 또 다른 울렁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요.

언레코드는 인간의 시야가 아닌, 별도의 후작업 없는 카메라의 속도로 그려지는 수준의 모션 블러를 담아내고자 합니다.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의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녹화된 푸티지로 상정했을 때의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거죠. 여기에 시야 자체가 주인공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바디캠에 맞춰졌기에 그 현실성은 더하고요.

우리가 실제 보는 형태와는 달라도, 그래픽 자체를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낸 모습으로 구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기준을 그 푸티지에 맞추게 됩니다. 그래서 이질적임에도 사실적이라고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 거죠. 화면 주위 네 귀퉁이의 비네팅 역시 플레이어가 카메라를 통해 본다는 사실성을 더하는 요소고요.


실제로 개발진은 이번 작품을 단순히 포토 리얼리스틱(사진 같은 실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스타일이 아니라 착시 기법인 트롱프뢰유로 설명했습니다. 2D 안에 3D 세계를 그려내는 트롱프뢰유는 OK Go의 뮤직비디오 The Writing's On the Wall나 게임 모뉴먼트 밸리를 통해 익숙하실 텐데요.

기법 자체의 유사성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드라마가 언레코드의 사실성을 어느 방향으로 추구하는지 볼 수 있는 관점인 셈입니다.

▲ OK Go가 착시를 활용해 이색적인 모습을 그린 뮤직비디오 The Writing's On the Wall
기법은 달라도 트롱프뢰유를 내세우며 추구하는 방향성을 알린 드라마


'사기도, 프리 랜더링도 아닙니다' 출시 버전도 이렇게 나올까

포토 리얼리스틱을 추구하거나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세계를 그린 게임은 더러 있었습니다. 다만 사실적인 묘사를 단순히 인간의 직접 시야 대신 카메라 안의 형태로 구현한 경우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게 이번 영상이 진짜 게임 화면이 아니라 조작된 장면이라는 의구심을 산 이유가 됐죠.

실제 카메라로 잡아낸 장면을 그대로 게임에 사용하는 풀 모션 비디오(FMV), 그저 준비된 선택지를 따라가는 게임, 혹은 완전히 프리 렌더링된 영상으로 실제 게임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장면이라는 추측도 많았습니다.

▲ 촬영된 비디오(FMV) 위에 상호 작용을 더한 게임이라는 의혹을 산 언레코드(사진은 허스토리)

개발 초반 단계이기에 출시 버전의 게임이 어느 정도까지 담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디렉터 겸 프로그래머인 알렉상드르 스핀들은 페이크, 혹은 미리 제작된 비디오 재생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언리얼 엔진 개발 도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랜더링이 이루어지는 플레이를 선보인 스핀들은 영상에 공개된 장소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총을 쏘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모습을 SNS에 담았습니다.

특히 공개된 영상 중에는 앞서 설명한 캠코더 푸티지라는 설정. 그러니까 검은 비네팅이나 흔들거리는 카메라 움직임 등을 없앤 장면도 일부 담겼습니다. 푸티지라는 착시를 통해 현실감을 그려내고 있기에 그게 빠진 영상은 그래픽 좋은 게임 화면 정도로 보이기도 했고요. 인지에 의한 착각을 통해 사실성을 배가시키고 있다는 걸 재차 증명한 부분이죠.

사실 영상 안에서도 게임 화면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더러 있습니다. 움직임에 따라 텍스쳐 울렁임이 발생한다거나 일부 해상도가 떨어지는 오브젝트가 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대신 이번 영상에서는 플레이어의 시야 중심으로 화면 중앙에 존재하는 요소들이 그런 모습을 적게 보여주기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거고요.

▲ 프로그래머 스핀들이 공개한 실기 영상

어쨌든 개발진이 보여준 모습을 확실하게 실시간 렌더링으로, 게임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걸 게임 안에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 지도 관건일 겁니다.

지난해 언리얼 엔진5를 통해 제작된 로렌조 드라고의 3D 영상물 '엣추다이몬역'이 떠오를 법합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일본의 철도역을 언리얼 엔진을 통해 사실적으로 담아냈죠. 특히 눅눅하고 께름칙한 질감 표현과 칙칙한 빛의 활용은 크리처 하나 없이 소름 돋는 공포감을 주기도 했고요.

대신 당시 작업은 프리 렌더링으로 이루어진 영상물이었습니다. 그가 작업한 RTX 2080, 라이젠7 3700x 조합으로 해상도를 1440p 정도로 제한했을 때에서야 만족할 프레임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죠.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이미 2세대 이상 후속작이 나온 하드웨어, 더욱 최적화된 엔진 개발 툴 등 보다 나은 결과물을 실제 게임 플레이 안으로 옮겨내는 것 역시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고요.

▲ 차세대 엔진 그래픽의 가능성을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엣추다이몬역'


우려, 단점을 장점으로 극대화한 기획력

바디캠이라는 소재에서 알 수 있듯 게임의 주인공은 경찰로 그려지고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총격전이 핵심입니다. 게임 자체는 프랑스 스튜디오의 것이지만, 그 무대가 글로벌 시장인 만큼 이런 소재를 민감하게 여기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근래 공권력을 앞세워 민간인 진압이 이루어지고 그 폐해가 자주 뉴스를 타는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졌고요.

게임의 폭력성이라는 부분을 경찰에 대입시키는 게 옳은가 하는 것 말이죠. 이번 영상만으로는 적들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무작위 학살이 정당한지에 관해서는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영화, 드라마 등에서도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총격전이 흔히 다뤄지지만, 언레코드 출시 전 이런 우려가 불거진 건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플레이어가 직접 사건의 주체가 된다는 부분도 있고, 그것이 사건의 실상을 담아낸 정보를 추후 제공하는 바디캠이라는 소재. 여기에 이러한 소재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아낸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개발진도 이러한 우려를 일찌감치 파악한 듯 게임이 현실 사건과 관계가 없으며, 단순히 경찰의 폭력, 인종 차별, 여성이나 소수자 탄압 등의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누군가는 게임의 이미지가 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게임 미학적으로 다른 방향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말이죠.

드라마는 스포일러가 되기에 상세한 이야기는 밝힐 수 없다면서도 추리, 스릴러 요소를 담아내고 여러 사건을 조사하며 발생하는 내러티브가 더욱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위해 외형적으로 유사성을 지닌 택티컬 슈터 '레디 오어 낫'과 워킹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쯤으로 구분되는 '파이어워치'를 섞은 타이틀이 될 거라고 전하기도 했고요.

언레코드는 공개된 게임 형태 외에도 보다 다양한 플레이 시퀀스, 영화적 반전이 담길 게임으로 제작됩니다.

영상에서는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밝힌 적에게 실시간으로 대화를 선택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게임 전개를 이끌어나가는 요소가 되죠.


또 슈터 중심의 게임들이 가지는 조준점 대신 직접 조준 사격하는 ADS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야경을 당긴 듯 조준시 확대되는 여러 FPS와 달리 실제 카메라 너머로 보듯 자세만 다져잡고 가늠좌로 사격하도록 만들었죠. 이것도 특유의 카메라 흔들림에 쉽게 맞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이고요.

드라마는 플레이어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죽고, 다시 시작해 다양한 전술을 활용하며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습니다. 앞선 ADS는 그러한 지향점에 맞는 조준, 사격 시스템이 구현된 바로 볼 수 있고요.

기본적으로는 바디캠이라는 특성을 살려 1인칭 시점임에도 제3자 시선에서 관찰하는 형태를 담아내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그러한 특징을 옅게 흐립니다. 주인공의 시야 중심으로 조금만 선명한 화면을 제공하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주변을 흐리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죠.

이게 단순히 화면을 빠르게 회전해 생기는 모션 블러가 아니라 사격, 혹은 적을 마주한 위급한 상황에서 발동합니다. 일종의 긴장감을 화면 안에 담아낸 연출인 셈이죠.

조준 방식, 화면을 흐리게 하는 블러의 활용 외에도 앞선 폭력성 우려 역시 게임의 그래픽 사실성을 끌어올리는 영리한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포토 리얼리스틱을 추구하는 게임의 경우 이미 보장된 오브젝트 퀄리티. 즉 바위나 모래와 자갈이 깔린 외계 행성 같은 모습은 더없이 현실적으로 구현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비교적 이질적인 3D 인물이 등장해 사실성을 떨어트리고 말죠. 1인칭 게임인 만큼 언레코드는 이러한 우려가 적지만, 어쨌든 캐릭터로 구현될 적이 주는 이질감은 특유의 푸티지 스타일과 괴리감을 불러올 수 있죠.


개발진은 여기에 모자이크를 씌워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습니다. 실제로 해외 바디캠 촬영물에서 폭력성을 줄이거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이크를 씌우는데 이걸 게임 속 적들에게도 씌워 사실적인 게임이 주는 잔인함을 덜어냈죠.

대신 이렇게 사람 얼굴에 모자이크를 씌우면 그만큼 현실이 아닌 게임이라는 감각을 강조하게 되는데요. 언레코드에서는 오히려 이게 현실성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일단 사실적인 배경 오브젝트에 3D 캐릭터 모델링이 가져오는 이질감을 줄였다는 게 하나. 여기에 이미 이 게임이 하나의 촬영물이라는 분위기를 꾸준히 내고 플레이어 역시 하나의 바디캠 푸티지로 접근하도록 해 얼굴을 가린 게 더 현실적인 연출이 되어버린 거죠.

분명 언레코드는 드라마가 그려낸 그래픽과 오브젝트 활용 자체가 먼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소재와 그걸 활용한 특징, 또 만들어낸 요소들로 게임의 주제에 맞게 아우르는 기획 능력이 파고들수록 더욱 돋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작품. 거기다 세간의 주목을 받아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해야 하고, 당장 함께하는 개발진 자체는 적습니다.

훌륭한 게임플레이 트레일러를 선보이고 그에 걸맞은 게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끝내 개발이 중단된 작품도 많았기에 드라마의 언레코드가 그런 길을 걷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아직은 최적화에 대한 계획이 나왔을 뿐 출시일도, PC외의 VR, 세부 콘솔 플랫폼도 결정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적어도 영상 하나에 담아낸 여러 디테일은 이게 정말 확고한 목표 아래 제작되고 있으리라 기대감을 심기 충분합니다. 또 그게 실제 스팀 위시리스트 수치로도 증명됐고요.

이미 60만 위시리스트를 넘어선 게임은 다키스트 던전2, 레드폴, 델타 룬, 사일런트 힐2, 철권8 등 주요 글로벌 기대작보다 높은 위시리스트 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기대가 실제 게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 다음은 언젠가 드라마가 공개할 새로운 정보로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