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4일, 용산 아이파크몰 e스타디움 상설 경기장에서 벌어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 4라운드 3주차 경기. MBC게임은 KT를 상대로 고석현이 첫 승을 따 내었으나 염보성과 이재호가 각각 이영호와 우정호에게 연달아 2패를 당한 후 김동현 선수의 승리로 2대 2, 에이스 결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KT에서는 김대엽 선수를 출전시켰다. 그리고 MBC게임에서는 한 프로토스 선수를 에이스 카드로 내세웠다. 지난 08-09 시즌 프로리그에서 당시 공식전 16연승을 달리던 김정우의 연승을 끊은 선수였다.

다들 그 선수에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그 프로토스 선수는 카메라 앞을 지나가며 목을 긋는 세레머니를 보여줬다. 그리고 다들 그 세레머니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경기는 김대엽 선수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그 선수는 불과 6개월 뒤 GSL 오픈 시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자리에 있었다. GSL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 선수는 바로 장민철이였다.


소년,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다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 어떤 길을 걷는지는 각양각색이지만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이유는 거의 같을 것이다. 물론 장민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창 제 나이대 학생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고싶다고 하던 그 시기에 저도 역시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었죠. 준프로에 계속 도전하다가 커리지 매치에서 우승하고 MBC게임에 입단했어요. 2007년 12월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2009년 3월에 정식 입단이 결정됐으니 약 1년 반정도 연습생 생활을 했네요."

연습생 하면 떠오르는 고된 생활, 청소나 숙소에서의 다른 잡일들. 어쩌면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꿈을 접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연습생 장민철은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라는 의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건 연습생들이 하는거고, 숙소에서 나이 있는 선수들이 빨래나 청소같은걸 하는것도 좀 이상하잖아요? 그렇다고 숙소에 있던 형들 역시 자신이 힘들던 시기가 있으니까 잘 대해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몸은 고되도 마음은 편했구요. 박지호, 김재훈, 서경종.. 당시 MBC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였지만 저한테는 좋은 형들이였죠. (이)재호 형이나 (염)보성이 형도 잘 해 줬구요. 다들 들으면 놀라하던데, 제가 보성이 형보다 한 살 어려요."

그런 장민철에게도 연습생 시절 힘들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힘들었던거라면 먹고싶은걸 마음대로 못 먹은거였어요. 돈이 없었으니까. 저도 그 때 기억이 나서 스타2를 시작하고 난 이후에는 숙소 동생들에게 먹는 것은 잘 사줬다고 생각해요."

[ ▲ 힘들었던 시기를 회고하는 '프통령' 장민철 선수 ]



1년 조금 넘는 기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프로게이머가 된 후 처음으로 치른 방송경기에서 장민철은 아쉽게 지고 만다. 그러나 프로리그에서는 당시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김정우를 잡아내는 대형 사건을 일으키면서 첫 승을 신고,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KT와의 프로리그 에이스 결승전에서 이영호를 스나이핑하기 위한 카드로 등장해서 김대엽과 경기를 하게 된 장민철은 자신의 목을 긋는 경기 전 세레모니가 상대가 아닌 자신의 모습이 되어 버리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경기 이후 패배가 많아지고, 패배보다 더 무서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회의감을 느끼겠지만 매사 자신감 넘치던 장민철의 생각은 달랐다. "몇 번 진다고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애초에 시작을 안 했죠. 시작할 때부터 쉬운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열심히 하면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자살토스, 프통령에 오르다


자신감 하나로 계속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렸지만, 점점 기회를 잡지 못하던 장민철. 그러던 중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한 가지 뉴스를 접하게 된다. 바로 GSL(Global Starcraft2 League)이 열린다는 것. 마침 팀 계약 만료와 맞물린 시기에 새로운 리그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민철은 큰 망설임 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당시 연봉을 생각하니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하고 별 차이는 없었어요. 그런데 GSL은 32강에 들기만 해도 월급 받는것 처럼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미련없이 소속팀을 나와서 집에서 혼자 스타2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같은 팀 소속이였던 (박)지호 형이 oGs 김성곤 코치님을 소개해줘서 oGs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oGs팀에 입단해 박상익 감독, 송준혁, 김상철 선수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장민철은 GSL 오픈 시즌1 예선을 통과하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선 64강에서 당시 프라임 소속이였던 워크래프트3 게이머 출신의 최성훈(현 TSL)에게 패배했고, 오픈시즌 2 역시 32강에서 임재덕을 만나 두 번째 좌절을 겪었지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GSL 오픈시즌 3에서 송영민, 김유종, 박성준을 꺾고 올라온 장민철은 8강에서 전 대회 준우승자인 이정훈, 4강에서 스웨덴 출신의 조나단 웰시를 꺾어 내며 결승에 진출, 당시 TSL 소속이였던 박서용 선수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4:1, 장민철 우승. 해병과 일꾼이 경기 초반 상대 기지로 공격을 들어가 벙커를 지으며 대비가 안 된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이른바 '치즈 러쉬'를 주로 사용하던 상대였지만 결승전 상대인 장민철에게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스타1 시절에 많이 당해보기도 하고, 그 만큼 많이 막은 경험도 있거든요. 결승 전에 열린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상대한테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이야기까지 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고, 상대도 안 통할걸 알던지 계속 다른 전략만 사용하다가 결국 스스로 무너진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8강에서 이정훈 선수를 이겼을 때 만큼 기쁘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우승을 해서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었다는게 마음에 들었죠."

[ ▲ MC, 두 글자를 만 천하에 알린 GSL 오픈시즌 3 ]



2010년 마지막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장민철, 단 한 번 우승이라면 그냥 운으로 차지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의 우승은 운이 아닌 실력이였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2011 GSL March에서 다른 선수도 아닌 스타크래프트 레전드 '투신' 박성준과 결승전을 벌이게 된 것.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으로 골든 마우스를 보유한 선수, 엄청난 공격 성향으로 방어를 해서 이기느니 지더라도 공격을 선택하는, 그야말로 공격의 화신인 박성준 선수를 상대로 자신의 우승이 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결승에서도 장민철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아니 오히려 상대가 박성준임을 기뻐하고 있었다.

"어차피 수비하는게 저한테 안 맞기도 하고, 저도 성준이 형 처럼 차라리 지더라도 화끈하게 공격하자는 생각으로 연습때 페이크 4차관, 그러니까 앞마당 짓는 모습을 보여줘서 상대가 안심하게 속이고 공격을 하는 전략을 준비했죠. 연습때도 잘 통하길래 이번 결승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결과는 또다시 4대 1 승리. 장민철은 정상의 자리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성공은 운이 아닌 실력임을 모두에게 알리며 '프통령'이라는 자신의 별명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하게 만드는 순간이였지만 장민철은 무덤덤했다. "그냥 두 번째 우승이네 하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 ▲ 프로토스 최초 2회 우승의 기록을 새운 2011 GSL Mar.(출처: 곰TV) ]


슬럼프, 자신감과 자만 사이에서


프로토스 유일의 우승자라는 칭호에 두 번의 우승, 그에게도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그 조자도 몰랐다. 바로 '슬럼프'. 장민철은 그해 8월 GSL에서 Code.B, 즉 피시방 리그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고 WCG 예선에서도 정종현에게 패배,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경기는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저그전이 안됐어요. 하던 대로만 하다 보니 상대들이 제 패턴을 분석해서 나오고, 그 때문에 오프라인 예선까지 떨어진거 같아요. 비난이 저한테만 돌아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여자친구 때문에 성적 떨어졌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저나 여자친구나 둘 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더라구요."

장민철의 부진, 특히나 여자친구 때문에 부진하다는 비난의 화살은 2011 MLG 올랜도에서 더욱 심해졌다. 조별 풀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장민철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여자친구의 전화였고, 한 마디의 말이 서울에서 올랜도로 날라가더니 장민철의 심장을 찔렀다.

"나좀 그만 욕먹게 제발좀 올라가줘!"

자신감 그 자체에 언제나 여유만만이였던 장민철에게도 이 한마디는 그 누구의 말보다 장민철을 자극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장민철의 경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 ▲ 그 당시에 보냈던 문자들을 다시 보고 있는 두 사람 ]


MLG 챔피언 브라켓에서 2010년 GSL에서 결승무대에 같이 섰던 박서용을 2대 0으로 물리쳤다. 다음 상대인 크룬 역시 2:0으로 격파했다. 다음 라운드 상대는 NASL 결승전에서 자신을 꺾고 우승한 이호준. 그러나 장민철에게 더 이상 장애물은 없었다. 이호준을 2대 1로 꺾고 다음 판에서는 이정훈마저 2대 1로 무너뜨렸다.

같은 대회에서 한 게임은 져도 절대 두 번은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듯 장민철은 패자 준결승에서 그렉 필즈에게 2대 1, 패자 결승에서 같은 팀 동료인 최연식마저 2대 1로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조별 리그에서 자신에게 2대 1 패배를 안겨준 크리스 로란줴.

아쉽게도 결승에서 2:0으로 패배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그에게 두 가지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으며 그를 반겨준 여자친구와 MLG 입상으로 얻은 Code S 시드. 한 번 시련을 맛 본 장민철은 다시 한 번의 도전의 기회를 얻고, 비상을 위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신은 있었어요. 다만 그 자신이 자만감으로 변했던 시기에 여자친구의 한 마디가 아니였으면 그게 자신인지 자만인지 평생 몰랐겠죠."


MC, 정든 둥지를 떠나 바다를 건너다


2012년 초, 장민철은 oGs를 떠나 SK Gaming으로 둥지를 옮긴다. 한국에서만큼 외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장민철이였기 때문에 해외 대회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해외 팀을 선택한 것이였다.

"해외 대회 참가 문제도 있고, 이전부터 도와주던 고민식 매니저님이 소속된 팀이라는게 결정적인 이유였죠. 대회 참가 문제나, 기타 다른 문제가 생기면 정말 잘 챙겨주시고 해결도 잘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끌린거 같아요. SK Gaming팀에 스타2 선수가 저 하나 뿐이니 더 잘 챙겨주시는거 같고, 해외 팀에 입단하게 되면 가장 큰 문제가 연습상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건데 그거야 온라인 상에서 친한 선수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사실 팀을 옮기고 장민철에게 괴로운 점이 딱 한가지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의 잔소리.

"팀 생활 할때는 감독님도 있고 해서 덜 했는데 혼자 생활하기 시작하니까 여자친구 잔소리가 갑자기 늘기 시작한거에요. 밤 늦게까지 연습하다 늦잠 좀 잘라하면 '아직도 자? 빨리 일어나! 연습해야지 연습연습! 또 장고인 소리 듣고싶어?'같은.. 그래도 고민식 매니저님이 외국에 있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여자친구가 매니저 역할을 해 주는데 사실 그 때문에 혼자 생활한다는 불안감 같은건 아예 들지도 않았아요."

[ ▲ '멘붕의 스타2' 라는 제목으로 장민철 선수 관련 웹툰도 연재 중 (연재 카툰 바로 가기) ]


결과적으로 팀 이적은 장민철에게 도움이 되었고, 이는 대회 성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GSL 에서 8강, 16강에 연달아 진출했고, 홈스토리컵과 IEM 월드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장민철에게 '부활'은 바로 GSL 우승이였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부활을 증명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GSL Season3 16강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

그러나 결승까지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8강에서 '태자' 윤영서 선수를 만나 마지막 경기까지 가는 끝에 3대 2로 승리했지만, 다음 상대는 GSL 랭킹 1위인 MVP의 박수호 선수였다.

"그냥 가는 길에 여자친구한테 반 농담으로 '3대 0으로만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했지만 8강에서 박수호 선수와 요한 루체시 선수의 경기를 보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해외 대회 참가때문에 조금 졸리긴 했는데 부스 안에만 들어가면 집중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박수호 선수가 평소같지 않았어요. 마음이 급한지 계속 먼저 찌르고 공격하고,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죠."

박수호를 3대 0으로 이기고 진출한 결승 상대는 IM의 안상원. GSL 사상 최초로 프로토스 대 프로토스 결승을 만들어 낸 두 선수는 누가 프로토스 최고인가를 두고 부산 해운대에서 결승전을 가졌다. 그러나 결과는 거짓말 같은 4:1 패배. 장민철의 우세를 점친 사람들이 많았지만 개인리그 우승 트로피만 7개를 가진 IM의 분석력에 장민철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우연찮게도 오픈시즌2에서 임재덕 선수와 경기 했을때하고 같은 상황이였어요. 그냥 저 답게 공격적으로 하면 그 때나 지금이나 잘 됐을 거거든요. 지고 나서는 스스로는 '상대가 잘했네'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나중에 여자친구 이야기 들어보니 못된 돼지 표정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화가 나긴 했나봐요."

[ ▲ 그에게는 준우승보다 더 소중한 팬들을 얻었던 2012 GSL Season2 결승 ]


프통령, 더 큰 세상을 바라보다


GSL만 우승 2회에 해외 대회에서도 우승을 여러 번 차지한, 선수로서는 이룰 것을 다 이룬 장민철의 마지막 목표는 어떤 것일까?

"GSL Code S에서 안 통할 실력이 된다면 미련 없이 프로 게이머를 그만 둘 생각이에요. 실력도 안되는데 붙잡고 있어봐야 다른 프로게이머들에게 피해만 줄 거 같고, 박수받을때 떠나는게 제 꿈이였거든요. 그 후에는 사법고시든 뭐든 준비해서 검사가 되 보고 싶어요." 왜 하필이면 검사가 꿈이냐는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폼나잖아요."

"프로게이머 출신 검사라니 멋있을거 같아요. 그러면서 계속 예선에서 계속 복귀를 도전하고 말이죠. 사실은 제 별명인 프통령답게 대통령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뭘 해도 잘 할 자신이 있으니까 '오늘을 정말 열심히 살아가면 그 다음 날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오늘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상경해서 성공하고,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달까요? 스타리그 우승은 게이머로서 가지고 있던 꿈 중에 하나이고, GSL과 온게임넷 초대 프로토스 우승자로 기억되고 싶네요. 제가 보여드린 경기들을 기억하신다면 제 자신감이 당연한 거라고 느끼실거에요.(웃음)"


[ ▲ 언젠가 진짜 대통령에 오르는게 꿈이라고 ]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감이 없다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항상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할 것이다.

그가 '프로토스 우승자'가 아닌 '프통령'으로 팬들에게 불리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장민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 때문에 팬들은 그를 믿고 사랑하고 영원한 프통령으로 기억해 주는것이 아닐까.


장민철's career

2010.12 2010 소니 에릭슨 GSL오픈시즌 3 우승
2011.03 2011 인텔 GSL March 우승
2011.04 2011 드림핵 스톡홀름 인비테이셔널 우승
2011.06 스타즈워 킬러 6 우승
2011.07 NASL 시즌 1 준우승
2011.08 IEM 시즌6 글로벌 챌린지 퀄른 준우승
2011.10 2011 MLG 올랜도 준우승
2012.01 홈스토리 컵 4 우승
2012.03 IEM 시즌 6 월드 챔피언쉽 우승
2012.07 2012 무슈제이 GSL 시즌 3 준우승
2012.08 에이수스 ROG 썸머 2012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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