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L이 심상치 않다. 모든 경기가 명승부였던 작년 핫식스 GSL 시즌4가 생각날 정도다.

코드S 32강부터 명승부가 속출하면서 대박 시즌을 기대하는 팬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자유의 날개 마지막 시즌답게 모든 선수들이 인터뷰에서도 남다른 각오를 보였고, 그것이 경기력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 우승컵을 향해 달리는 모든 선수들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스크롤의 압박이 두려워 모든 명승부를 올리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소개할 가치가 있는 경기들은 소개해야 하는 법. 모든 경기를 다시 돌아보면서 그중 여덟 가지 명승부를 선별했다. 이제 16강 혈전이 예고되어 있는 2013 핫식스 GSL 시즌1, 32강의 주옥 같은 경기를 되돌아보면서 이어질 대결들에 대해 점쳐보기를 권한다.



8. 근성의 이름 황규석, '왕'을 상대로 이룬 대역전



▶ 경기 보기 : F조 2경기 2set 황규석 vs 정종현


황규석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비중은 GSL 팬들에게 미묘하다. 우승권으로 거론되지 않지만, 언제나 꾸준한 성적으로 노력파라는 인상을 남긴 선수다. 그런 황규석이 GSL 4회 우승에 빛나는 정종현을 만나 근성의 역전승을 보여준 것은 뜻깊은 의미를 가진다.

게임은 정종현에게 기울고, 황규석의 진영 앞으로 왕의 대규모 병력이 압박을 시작했다. 하지만 황규석에게는 비장의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다섯 기의 의료선, 이것이 모든 상황을 뒤집었다. 극복하기 힘들 것 같았던 경기에서 나오는 역전은 언제나 보는 이를 떨리게 만든다. 포기하지 않는 선수 황규석,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된다.



7. 저저전 밸런스 이대로 좋은가? '넥라 패치'가 시급하다



▶ 경기 보기 : A조 2경기 2set 강동현 vs 이승현


동족전이다. 그런데 같은 수 저글링 싸움에서 한쪽이 압승을 하고 부화장을 깬다. 가시촉수를 잔뜩 짓고 여왕이 입구를 막는데 저글링이 그 수비를 뚫고 본진을 점령해버린다. 이제 바퀴가 하나둘 나오는데 뮤탈리스크 부대가 무방비로 때리고 있다. 이상하다. 대회에서 치트를 사용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밸런스 붕괴가 분명하다.

이승현의 이날 전투력은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었다. 같은 수 저글링을 압살하는 컨트롤은 스타1 전설급 게이머에 스타테일에서 이승현과 함께 한 박성준의 예전 경기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물론 이승현은 더욱 진화했다. 컨트롤에서 압승을 거두는 그 시간에 본진에서는 자원과 테크를 전부 앞서고 있었다. 상대가 다른 저그도 아니고 강동현이다. 이게 가능한 플레이인가.

어떻게 봐도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 이승현 하향 패치가 급히 이뤄지지 않으면 넥라 장기집권 체제가 이어질 기세다. 이승현 OP 시대다.



6. 멈추지 않는 폭격기, GSL에 돌아왔다!



▶ 경기 보기 : C조 승자전 1set 최지성 vs 권태훈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권태훈의 운영과 전투력은 우승자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승기를 잡은 저그에게 떨어진 일격은 갑작스러웠고, 치명적이었다. 상황을 뒤집은 것은 치명적인 폭격의 소유자, 최지성이었다. 넓게 펼쳐져 있던 저그의 부화장 앞에 의료선들이 떨어졌고, 울트라 부대에게 불곰의 충격탄이 쏟아졌다. 양쪽 모두 절정의 경기력을 보인 끝에 벌어진 역전극이었다.

최지성의 아이디는 'Bomber', 말 그대로 '폭격기'다. 하지만 아이디 그대로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GSL이 인심 많은 동네가 아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을 보노라면 이것이 진정한 폭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가 난전과 기동전으로 흘러갔을 때, 이 선수의 화려함은 끝을 향해 달린다. 그런 최지성이 478일의 공백을 깨고 코드S 16강에 돌아왔다. 바로 전 시즌 우승자를 누르고.



5.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 테테전의 모든 것을 보여준 벼랑 끝 57분 우주전쟁



▶ 경기 보기 : E조 패자전 3set 변현우 vs 김동원


듀얼 토너먼트 방식에서 가장 처절한 경기는? 바로 패자전과 최종전이다. 그 패자전의 마지막 세트,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사투가 여기에 있다.

변현우의 은폐 밴시와 김동원의 밤까마귀로 포문을 연 경기는, 바이오닉과 메카닉을 지나 결국 전투순양함 대부대가 하늘을 수놓으며 57분 동안의 전쟁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자원을 먹었고, 테테전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유닛이 등장했다.

전투순양함 대치전은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경기는 서로 자연스럽게 빌드가 맞물리며 우주전쟁으로 마무리된, 근래 보기 드문 승부였다. GSL 최장 시간 경기와 2012년 최장 시간 경기를 기록한 바 있는 변현우와 김동원, 뚝심으로 유명한 두 선수가 가장 절박한 지점에서 벌인 대결이라 그 긴장감은 더욱 컸다.



4. 화면을 뒤덮는 레이저, 프로토스의 로망 종합선물 세트!



▶ 경기 보기 : B조 2경기 2set 이원표 vs 장민철


100만 프로토스 유저들에게 권한다. 아직 이 경기를 보지 못했다면 일단 vod를 먼저 실행해야 한다. 로망이 가득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주모함, 공허포격기, 거신, 고위기사, 집정관, 그리고 모선까지. 프로토스 꿈의 조합이 등장했다. 전장을 요격기(인터셉터)와 폭풍이 뒤덮고, 모 슈팅 게임을 보는 듯한 파란 레이저와 빨간 레이저가 저그의 모든 병력을 녹여버렸다. 장민철은 "나는 아직 프로토스의 대통령이다!" 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번 32강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것을 보고 눈 정화를 해보자.



3. 이름은 들어 봤나, '야바위 불곰'!



▶ 경기 보기 : F조 승자전 2set 황규석 vs 이정훈


당신이 이 경기를 보지 못했다면,
아직 '자유의 날개' 마이크로 컨트롤의 끝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모든 이가 경악해버린 불곰 아케이드,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중계진의 멘트를 잠시 들어보도록 하자.

하늘에서 불곰이 내려와요! 합성 아닌가요! 너무하네요, 어떤 게 진짜 불곰인지, 누가 돈을 가지고 있는 불곰인지 모르겠어요. 어떤 불곰을 때려야 하는지. 내가 때리고 있는 게 불곰이 맞는지. 밴시가 몇 방을 쐈는데 불곰이 안 죽어요!"



2. 테란이 저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플레이는? 여기에 정답이 있다



▶ 경기 보기 : H조 1경기 1set 이신형 vs Stephano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스테파노가 부스를 박차고 나와 이신형의 멱살을 잡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이신형은 저그의 멘탈이 가장 가루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승리를 손에 쥐었다. 물론 스테파노는 매너로 유명한 선수답게 깨끗이 승리를 축하하는 채팅을 보였지만.

승자와 패자 모두 멋진 경기력이었다. 스테파노는 놀라운 전투력으로 교전마다 연전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것은 이신형이었다. 경기 중반 이후, 테란의 의료선이 돌아다니지 않은 시간은 '0'에 가까웠다. 그 어느 순간에도 저그 확장 지역은 해병이 날아다녔고, 두 방향 드랍도 당연하다는 듯이 떨어졌다. 전투에서 이긴 저그의 부화장과 일벌레가 줄어들었고, 테란의 자원은 점점 풍족해졌다.

극강의 멀티태스킹이었다. 이신형은 지독할 정도로 견제를 펼치는 와중에도 생산력을 늦추지 않고 승리했다. 후반 저그의 전투력에 언제나 눈물짓곤 했던 테란 유저라면, 이 경기를 보면서 그동안 쌓인 울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1. 모두가 숨을 죽였다. 쓰러질 때까지 맨주먹을 휘두른 남자들의 싸움



▶ 경기 보기 : A조 최종전 3set 강동현 vs 장현우


추가 확장을 취소하면서 불멸자 올인 러시를 떠난 장현우, 이 때만 해도 이 경기가 24분의 대혈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뚫으면 이기는 자와 막으면 이기는 자의 쉬지 않는 난투극, 그 둘의 전투가 멈춘 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그는 일벌레를 찍을 틈이 없었고 프로토스는 확장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마지막에서 두 주인공이 벌이던 폭우 속 맨주먹 싸움이 연상되었다. 인구수를 꽉 채운 물량전도, 혁신적인 빌드를 들고 나온 경기도 이들의 전투만큼 혼을 깨우진 못했다.

쉬지 않는 전투만 있었다면 이것은 명승부에 꼽히지 않았을 것이다. 전투 가운데에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장현우의 점멸 추적자 컨트롤, 마찬가지로 완벽에 가까운 강동현의 감염충과 여왕 활용이 있었다. '전투의 장인'끼리의 만남이었고, 그것은 곧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싸움으로 나타났다.

모든 팬들을 스릴과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린 강동현과 장현우 두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둘 중 하나는 16강에서 보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은 이게 다 이승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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