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새 봉황(鳳凰)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대나무 씨앗이 아니면 먹지 않은 채 가만히 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날개를 펼치면, 구만 리를 단숨에 날아간다. '왕'에게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춘 새라고도 일컬어진다.

여기 오랫동안 날개를 접어둔 채 웅크려 있다가, 드디어 가장 빛나는 비행을 시작하는 네 명의 선수가 있다.

모두 첫 4강이다. 처음이라는 말을 들은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어설픈 무명, 혹은 풋내기의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이 떠올리는 그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이 네 명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들이 떠올리는 처음은 '시작', 그리고 끝없는 가능성이다.

라스베가스에서 펼쳐지는 2012 핫식스 GSL 시즌 5, 그들의 오랜 땀방울을 하나씩 세어보도록 하자.




1경기 - 고석현 vs 이신형





■ 고베르만의 이빨은 이제 더 치명적이다. 고석현


스타크래프트1 시절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006년 POS(MBC게임 히어로)에 입단,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2009년경부터 팀의 저그 라인을 이끌었다. 개인리그에서는 뚜렷한 성적을 보이지 못했지만, 스타1 팬이라면 고석현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공격 본능과 쇼맨십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 고석현은 많은 별명을 가졌다. 한번 공격 기회를 잡으면 끝도 없이 몰아치는 스타일에서 나온 별명 '고베르만'이 대표적이었다. 적을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는 사냥개 도베르만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리고 MSL 조지명식에서 추노 분장을 하고 빛나는 세리머니를 보여주면서 '고추노', '고대길' 등의 별명도 붙었다.

프로리그에서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독특한 전적을 기록하며 '에이스 킬러'로 불리기도 했다. 자신만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가졌고, 스토리도 많은 선수였다.

2011년 말 MBC게임 히어로가 해체하고, 고석현은 스타2로 전향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한달여 만에 코드 A에 진출했다. 빠른 속도였다. 코드 A 1라운드와 2라운드를 잠시 오가며 숨을 고른 고석현은 이번 핫식스 GSL 시즌5에서 단숨에 코드 S 4강까지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것은 예고된 파란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온라인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그에게 붙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IPL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대회 '파이트 클럽'이었다. 연승전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대회에서 고석현은 무려 1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상대한 선수로는 박현우, 고병재, 한이석, 원이삭 등 쟁쟁한 선수들에 더해 전 시즌 우승자 이승현까지 포함되어 있다. 경기당 9전 5전승제라는 점을 봤을 때, 고석현의 기본기는 이미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오프라인 대회에서는 경기력이 다소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코드 S 32강에서 최병현, 고병재와 상대할 때 비록 16강에는 진출했지만 경기 내용은 좋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드디어 긴장이 풀린 것일까. 그 다음부터 고석현은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 시작했다. 특히 WCS 준우승자 장현우를 상대한 8강에서 타고난 공격성에 다전제의 노련함까지 보여주며 승리를 얻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 다시보기 : Code S 8강 고석현 vs 장현우


이전에 쓴 프리뷰에서, 이승현의 강력함은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나온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고석현은 그 이승현의 저그를 가장 가까이 구현할 수 있는 선수 중 하나다.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발생하면 그는 해결책으로 공격을 선택한다. 불멸자 타이밍 러시를 하는 프로토스 상대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기습으로 파수기를 모두 끊어버리는 것이 고석현의 전투력이다.

그러면서도 병력 회전과 상대 견제를 쉬지 않는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 분당 행동수가 600을 넘나드는 손 속도에서 기반한다. 그는 한때 뒤가 없는 공격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올인이 아니다. 빠른 손 속도를 바탕으로 한 난전 유도다.

고석현은 코드 S 첫 진출에 4강까지 오르면서 '최고령 로열로더'라는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그는 이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TSL_Hyun 고석현

32강 : vs 최병현 1:2, vs 고병재 2:1
16강 : vs 최병현 2:0, vs 이정훈 1:2, vs 김영일 2:1
8강 : vs 장현우 3:1

GSL S5 : 11승 7패





■ 가장 밑에서부터의 비상. 이신형


최초가 곧 최고. 93년생 이신형에게 가장 어울릴 말이다.

그는 운이 없는 게이머였을지도 모른다. 2008년 STX 소울에 입단, 2011년부터 프로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팀의 테란 라인 에이스라고까지 불렸다. 하지만 그 해는 스타크래프트1의 막바지였다. 물오른 경기력으로 MSL 본선에 진출했지만, 그 대회는 MBC게임의 폐지로 인해 사라졌다.

그리고 2012년 스타1로 열린 마지막 스타리그, 16강에 오르지만 같은 조에 허영무와 이영호가 편성되멵서 치열한 재경기 끝에 탈락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이영호는 당시 누구나 인정하는 '갓'이었고, 허영무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리그가 스타1과 스타2를 병행하기 시작하면서 프로리그 성적 역시 부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2012 핫식스 GSL 시즌 5, 이신형은 시동을 걸었다. 첫 코드 B 예선 참가에서 바로 코드 A에 진출, 그리고 정승일과 최지성, 안호진에게 연달아 승리하며 코드 S에 직행했다.

이신형의 돌풍은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다. 프로리그에서 스타2 성적이 6전 6패였던 시기부터 배틀넷 레더 랭킹은 오랫동안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고점을 찍었을 때 승률은 무려 85%. 더불어 이승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엄청난 기세를 뿜으면서도 이신형과는 5:5의 승률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때 이신형은 이제 막 코드 A에 올라선 선수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저 '온라인 본좌'로만 그를 받아들였다. 오죽하면 STX 소울 김민기 감독이 이신형을 위한 방송국을 하나 차려야겠다고 말했을까.

하지만 방송국을 차릴 필요는 없게 되었다. 코드 S에 오른 이신형은 마치 봉인이라도 풀린 듯 절정의 기량을 펼치기 시작했다. 32강에서는 준우승자 출신 박현우를 상대로 초반 심리전부터 제압하며 2:0 승리를 거두더니, 16강에서는 권태훈에게 1패 이후 2연승을 거두는 한편 최성훈에게도 2연승을 따내며 단단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승현을 꺾으며 한창 물이 오른 김민철을 8강에서 만났다. 김민철은 스타1 시절 이신형의 천적이기도 했다.

'절정'이라는 말은 자주 쓰면 안 된다. 8강에서의 이신형은 그 말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초반 해병 컨트롤은 해병왕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고, 견제는 집요한 수준을 넘어 악독하다 싶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후반 생산력 역시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김민철이 최선의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결과는 3:0, 이신형의 압승이었다. 온라인에서의 평소 실력이 대회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이신형의 플레이는 그 자체로 절정이었다.


☞ 다시보기 : Code S 8강 이신형 vs 김민철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서의 시작은 프로리그 6전 전패. 그 직후 코드 B에 처음 참가했고, 그 처음이 곧 코드 S 4강이 되었다. 시드 같은 것도 없었다. 테란이 가장 힘들다고 불리는 시기에 오직 자기 힘으로 단 한숨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급상승하고 있는, '초신성' 이신형이다.

이번 시즌에 이신형이 우승할 경우 단순한 로열로더가 아닌, 코드 B에서부터 첫 참가에 우승을 거머쥐는 사상 초유의 '진(眞) 로열로더'가 탄생하게 된다. 저그가 막강한 시기에 다시 테란의 왕좌를 찾아올 수 있을까. 더불어 두 시즌 연속으로 'LSH'가 우승할 수 있을까. 수많은 관전 포인트가 그에게 걸려 있다.

STX_INnoVation 이신형

32강 : vs 이동녕 0:2, vs 박현우 2:0, vs 황규석 2:0
16강 : vs 권태훈 2:1, vs 최성훈 2:0
8강 : vs 김민철 3:0

GSL S5 : 11승 3패




★ 창과 방패의 대결, '온라인 최강' 둘이 이제 본실력을 펼친다.


Code S 준결승에서 만난다고 보기엔 낯선 대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레더 랭킹에서 최고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스타크래프트1 출신 게이머라는 공통점도 있다. 개인리그에서 아쉬운 고배를 마시던 그들이, 이제 꿈의 무대 라스베가스에 서서 꿈을 펼칠 기회를 가졌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최근에 테란이 저그를 이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저그의 필승 조합인 무리군주-감염충-타락귀, 일명 '무감타' 조합이 갖춰지기 전에 테란이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신형은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강력함을 보여주는 테란이다. 더군다나 상대의 초반 전략을 언제나 완벽하게 막아내기까지 하다. 반면 고석현은 먼저 이빨을 드러내고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물어뜯는 저그다. 틈이 보이면 굳이 후반까지 기다리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능력을 가졌다.

일반적이지 않은 테란과 저그가 만난다. 종족의 특성을 거부하는 창과 방패, 둘의 대결이 흥미로운 이유다.





2경기 - 김동원 vs 권태훈





■ 꾸준한 테란에서 완벽한 테란으로. 김동원


무뚝뚝한 표정에 과묵한 모습, 김동원을 보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인상이다. 이기든 지든 참 표정 변화가 없다. 그래서 웃는 사진을 찍기 힘든 선수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과묵함 속에 노력을 그치지 않는 엄청난 성실함이 숨어 있다. 더불어 인벤의 모 여기자가 카메라를 갖다대면 수줍게 웃기도 하는 소년 같은 면도 보여주곤 한다.

4강에 오른 선수 중 가장 오랜 GSL 경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SL의 오랜 팬들은 이번 시즌 가장 의외의 4강으로 김동원을 꼽는다. 선수 본인에게는 기분 나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동안의 김동원은 특출나지 않은 선수일 뿐이었다.

2011년 초 GSL 코드 A에 첫 진출, 그후 이렇다 할 화려한 성적 없이 코드 S와 A를 번갈아 오갔다. 최고 성적은 코드 S 8강 1회. 16강에서 떨어진 적이 두 번이었다. 긍정적인 요소도 있었다. GSL에 올라온 이래 코드 B로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언제나 꾸준했고, 그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응원하는 팬도 조금씩 늘어났다. 김동원은 그야말로 '천천히 걷는 선수'였다.

그의 발걸음이 이번 시즌에 빨라지기 시작했다. 32강에서 좋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가까스로 16강에 진출할 때만 해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16강 패자전부터 김동원은 다른 선수로 돌변했다. '동래구' 박수호를 2:0으로 잡아낸 데 이어, '판독기' 이원표까지 2:0으로 연파했다. 더군다나 한번 잡은 승기를 끝까지 놓지 않는 운영은 단단함 그 자체였다.

8강에서 '해병왕' 이정훈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이정훈의 우세를 점쳤다. 첫 세트도 내주며 불리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김동원은 다전제로 갈수록 강해졌다. 경기 내내 보다 큰 그림을 그렸고, 상대의 거센 찌르기를 유연하게 흘려넘겼다. 결국 승부의 순간마다 판단력과 운영이 빛난 김동원이 1패 후 3연승을 거두고 생애 첫 4강 진출을 해냈다. 최근 물이 오른 테란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대기만성', 천천히 한 계단씩 올라간 김동원에게 가장 걸맞는 말이다.


☞ 다시보기 : Code S 8강 김동원 vs 이정훈


안준영 해설이 중계 중에 남긴 말이 있다. "코드 S에 올라온 선수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명백한 약점이 있는 선수들은 절대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없어요."

김동원의 장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무난하게 이겼던 것 같은 선수다. 모두의 입에 오르내린 강렬한 경기도 별로 없고,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적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별명이랄 만한 것은 이름 때문에 생긴 '참치테란' 정도였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김동원의 약점을 집어보자면? 여기에서 그의 강력함이 드러난다. 스스로 무너진 경기도, 실수 한 번에 역전을 허용한 경기도 거의 없다. 역전패를 잘 허용하지 않는 선수다. 이제는 다전제의 판짜기까지 보여준다. 어느 순간, 그는 '무난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선수가 되었다. 서서히 성장하는 김동원에게서 셀 수 없이 노력해온 흔적이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꾸준하다는 말은 때로 무서운 복선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김동원의 운영이 조금 더 완벽해진다면?"

그때는 GSL 전체의 판도가 뒤집어질 수 있다. 스타2에서의 '퍼펙트 테란'은 바로 김동원이 될지도 모른다.

Axiom_Ryung 김동원

32강 : vs 서성민 2:1, vs 이승현 0:2, vs 서성민 2:1
16강 : vs 이원표 1:2, vs 박수호 2:0, vs 이원표 2:0
8강 : vs 이정훈 3:1

GSL S5 : 12승 7패





■ 시간의 저격수, 라스베가스를 쏘다. 권태훈


MVP 팀을 박수호 혼자 짊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GSTL에서 다른 팀원이 1승 내지 2승만 거두면 박수호가 쓸어담던 시기, 하지만 올해 들어 그 위력도 줄어들었다. 그때 공백을 메우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가 있다. '리틀 동래구'로 불리기 시작한 스나이퍼, 바로 권태훈이다.

2012 GSTL 시즌 2, 권태훈은 데뷔전인 슬레이어스와의 대결에서 3킬, 승자전 프나틱 전에서 4킬을 쓸어담았다. 팀이 패배한 4강에서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 3의 패자전, 슬레이어스에게 0:3으로 밀리고 있던 중에 팀의 네 번째 주자로 출전해 생애 첫 올킬을 달성했다. 4강에서는 고석현의 카운터 카드로 등장해 승리를 따내면서 팀의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GSTL 데뷔 이후 두 시즌 동안 13승 1패, 경이적인 성적이었다.

하지만 권태훈 역시 GSL 성적은 코드 S에 간간히 발을 걸치는 수준이었다. 2011년 펩시 GSL 코드 A에 처음으로 진출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성적은 코드 A 4회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2012년 GSL 시즌 3에서 처음으로 코드 S에서 진출했다. 이어진 것은 두 시즌 연속 32강 탈락. 쉽지 않은 전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시즌 5가 찾아왔다. 32강에서 안상원, 이정훈, 김유진까지 쟁쟁한 상대들과 같은 조에 속하며 다시 힘에 부치는 듯했지만 안상원과 김유진을 격파하며 생애 처음으로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마치 봉인이 풀린 것처럼 기량을 뿜어냈다. 16강에서 이신형에게 지면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알아도 못 막는다는 원이삭의 불멸자 타이밍 러시를 완벽한 컨트롤로 막아내고 이변을 연출하는 동시에, 최성훈을 상대로 효과적인 수비와 칼 같은 타이밍을 연이어 보여주면서 생애 첫 8강에 올랐다.

"저그들은 부담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던 권태훈, 하지만 저그의 강자 이동녕을 상대로 오히려 한 수 위의 교전 컨트롤을 보여주면서 한 게임씩 자기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조합의 진검승부에서 언제나 권태훈의 진형과 기술 사용이 앞서고 있었다. 결국 첫 4강 진출. 매번 32강과 코드 A를 전전하면서도 승부욕을 불태워 온 권태훈이 날개를 활짝 펼치게 되었다.


☞ 다시보기 : Code S 8강 권태훈 vs 이동녕


호칭은 '스나이퍼'. 아이디 MVP_Sniper에서 생겨난 별명이다. 하지만 그가 스나이퍼로 불리는 것은 비단 아이디 때문만이 아니다. 권태훈은 기본적으로 올라운드형 유저라고 할 수 있다. 큰 약점 없이 여러 방면에서 일정 이상의 수준을 보인다. 특히 교전에서의 개별 유닛 컨트롤, 그리고 타이밍 포착에 강점을 보인다. 상대가 빈 시간을 한번 보이는 순간, 그의 방아쇠는 당겨진다.

최근 GSTL 4강에서 고석현을 잡고 팀 승리를 확정지은 경기가 대표적이다. 맵 시야에서 밀린 상대 고석현이 숨죽이고 인구수를 모으며 역전을 준비하자, 권태훈은 자신이 먼저 인구수 200을 채우는 짧은 순간이 바로 승리의 시간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곧장 일격을 가하면서 승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리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권태훈은 이미 가장 무서운 한 발을 장전한 '시간의 스나이퍼'다. 쉼없는 도전 끝에 드디어 4강에 오른 그 소년이, 라스베가스에서 우승 트로피를 조준하고 있다.

MVP_Sniper 권태훈

32강 : vs 안상원 2:1, vs 이정훈 1:2, vs 김유진 2:0
16강 : vs 이신형 1:2, vs 원이삭 2:0, vs 최성훈 2:0
8강 : vs 이동녕 3:1

GSL S5 : 13승 6패




★ 단단한 뚝심, 그리고 흔들기. 승부는 일합에 정해진다


앞선 고석현과 이신형의 대결이 '로열로더 후보' 대전이라면, 이번 대결은 노력파들의 근성 싸움이다. 김동원의 근성은 매 순간 악수를 두지 않는 판단력에서 나온다면, 권태훈의 그것은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 컨트롤러로서의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풀이된다.

안정적인 테란과 저그가 만났다. 서로 초반에 무너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권태훈의 최종 조합이 갖춰지기 전 타이밍을 김동원이 어떻게 치고 들어가느냐가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은 마지막 시간이다. 그 전에 누군가가 틈을 보이는 순간, 승패가 바로 결정될 수 있다. 김동원과 권태훈은 틈을 주지 않는 동시에 상대의 헛점을 누구보다 잘 찾아내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저그의 마지막 시간이 완성되기 전 찰나, 승부는 거기에 있다.





■ 수없이 흘린 땀, 이제 환희가 되기를





처음으로 코드 S 4강을 밟아본 네 선수, 그밖에도 공통점이 많다. 팀 단위 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보이고 때로는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지만, 개인대회에서 벽에 부딪치거나 불운을 맞이하면서 상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리고 넷 모두 32강과 16강을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통과했다. 유일한 예외가 이신형의 16강 승자전 진출이다.

비인기 선수들만 올라와서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예측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던 선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8강 경기력을 봤을 때 이전과 비교해 경기 수준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앞으로 이 네 명이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이번 4강과 결승은 그 출발점이다.

잊지 말자. 그 쟁쟁한 선수들을 진검승부 끝에 꺾고 올라온 4인이다. 프로는 실력으로 말하고, 대회는 경기 내용으로 말한다. 그들이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지불한 땀과 눈물, 그리고 스스로 얻은 결실을 어느 누가 '흥행'이라는 이름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4강은 12월 1일, 결승은 2일에 진행된다. 라스베가스의 밤을 수놓을 명승부 파티를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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