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명: 12분 (Twelve Minutes)
장르명: 인터랙티브 스릴러
출시일: 2021. 8. 20.
개발사: 루이스 안토니오
서비스: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
플랫폼: 스팀 / XBO / XSX

관련 링크: '12분' 오픈크리틱 페이지




못난 얼굴이 어슴푸레 비치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복도 끝에 조그만 문 셋이 보인다. 왼쪽 집이던가? 성큼 다가가 손잡이를 흔들어댔다. 철컥철컥. 잠긴 손잡이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런. 아기를 깨웠네. 미안 옆집 꼬마친구. 그래 우리 집은 가운데 저 열쇠 구멍이 있는 집이었지. 화분 위에 조잡하게 만들어진 돌멩이를 뒤집어보니 언제나 그렇듯 예비 현관 열쇠가 흙덩이와 함께 붙어있다.

열쇠를 열쇠 구멍에 맞춰 돌리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째깍. 시침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긴 분침과 초침만이 숫자 12위에 포개졌다.

자기야 나왔어. 내 목소리를 들은 아내가 욕실에서 환한 얼굴로 달려 나와 입맞춤했다. 이런, 아직 씻지도 못했다고. 장난스럽게 아내를 밀어내자 그녀는 오늘 아침 말한 디저트 이야기부터 꺼낸다.

소파에 앉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할 말이 둘밖에 없는 건 왜일까. 일단 아내의 장단에 맞춰 디저트부터 먹자는 말을 선택했다. 멋진 디저트를 맞을 준비 됐어.


아내는 중요한 게 있다며 침실로 들어갔다. 아야! 스파크가 타닷 튀는 소리가 들렸다. 전등 스위치가 고장 났던가. 서랍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는 흥얼거리며 침실에서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 접시 위에 앙증맞게 담긴 디저트를 올리고 머그잔에 물을 따라 식탁 두 자리에 올려놨다. 음. 입안에 담아 넣은 케이크가 스르르 녹아 입천장 뒤로 멀어졌고 스푼과 앞니가 닿았다.

이것만으로 충분한데 선물이라니. 오늘이 내 생일인가? 아내는 식탁 아래 다리 사이로 숨겨둔 선물 상자를 꺼냈다. 아까 침실에 들른 건 이것 때문이겠지. 식탁 위에 올려둔 상자를 열자 양손에 겨우 담길 아기 옷이 들어있었다. 그래. 그녀의 몸에 내 아이가. 자기 기분은 어때? 아내의 말에 붕 뜨는 벅참이 어깨 위로 차오르는 마음으로


- 잘 될 거다.
- 난 아이 키우는 법을 모른다.
- 확실해?

확실해? 이게 지금 할 말이야? 이 바보 같은 생각은 뭐야. 당연히 잘 될 거지. 떠오르는 말 중 재빨리 그럴듯한 말을 입 밖에 냈다. 아이는 사랑받을 거고 당신을 사랑해. 그렇게 아내와 입을 맞추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경찰입니다! 문 여시죠. 경찰이라는 남자는 다짜고짜 문을 연 아내를 뒤로 돌려세우고는 케이블 타이로 양손을 묶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나 역시 그가 순순히 내 손을 묶도록 둘 수밖에 없었다. 거칠게 바닥에 턱을 대고 업드린 아내에게 경찰은 아버지 살해 혐의로 그녀를 체포한다고 다그쳤다. 이봐, 잘못 아는 거야. 우리는 그런 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팔이 뒤로 묶인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경찰이란 남자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야야. 나는 닫힌 현관문 앞에 무릎 꿇었다. 찌그러지는 듯한 턱의 통증은 남았는데 턱은 멀쩡하다. 아내도, 경찰도 없는 거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때 아내가 욕실에서 환한 얼굴로 달려 나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는 나에게 입맞춤했다. 여전히 멍한 나에게 아내는 오늘 아침 말한 디저트 이야기부터 꺼낸다. 디저트. 그래.

아내에게 방금 겪은 일을 설명하는 게 먼저다. 소파에 앉은 아내에게 나는 열심히 방금전의 또 다른 하루를 설명한다. 재밌는 농담이야. 그래 통하지 않지. 증거라도 있어? 증거가 있을 리 없잖아.

그럼 이건 어때? 당신이 정말 아버지를 죽였어?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농담처럼 들리겠지. 그때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고 구둣발 소리가 점점 커져 왔다. 시계를 보니 5분. 나는 아내에게 어떤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5분이 지났고 경찰은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현관 구멍으로 내다본 복도에 대머리 남자가 서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착각도, 꿈도 아니구나.

이번엔 내가 문을 열었다. 대화로 뭔가 풀어보려고 이것저것 떠들어댔지만, 소용없다. 경찰은 케이블 타이로 내 손을 뒤로 묶었고 아내의 손 역시 똑같이 묶었다. 이건 달라진 게 없잖아.

당장 말해. 당신 아버지 시계는 어딨어! 경찰은 발버둥 치는 아내를 내려다보고 소리쳤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아내에게 경찰은 생각날 방법을 알려준다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배를 깔고 누운 내 등위에 앉아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넘기지 못한 침이 캑캑대는 내 숨에 이리저리 튀었고 말로, 기침으로 목젖을 밀어내려는 내 하찮은 발버둥은 남자의 악력에 짓이겨졌다.




다시 거실. 무릎을 꿇고 몇 초간 모자랐던 숨을 한 번에 담아내려 헐떡였다. 시침이 없어 몇 시인지 모를 시계는 다시 0분 0초. 이제 욕실에서 아내가 나오겠지. 그래. 아내는 환한 얼굴로 내게 다가온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여보. 차갑게 식은 아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내를 설득하기보다는 일단 그 녀석을 잠재울 방법을 생각해보자. 마치 신이라는 녀석이 높은 곳에서 집 전체를 내려다보듯 곳곳을 둘러봤지만, 이 집구석에는 쓸만한 게 정말 없다. 머그잔, 스푼, 약장에 있는 수면제, 아내가 깜짝 선물로 준비한 아기 옷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침실의 스위치는 한번 켜고 끈 후 다시 켜면 전기가 흐른다는 것 정도를 알았달까? 신발을 신었으니 잠깐 기절한 걸로 끝났지 그게 아니었다면 곧장 다시 현관으로 돌아갈 뻔했다. 대신 쓰러진 시간만큼 그 망할 녀석이 올 시간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잠시 후 분침이 숫자 1을 가리킬 때. 엘리베이터 도착 챠임. 그리고 구둣발 소리. 쿵쿵. 경찰입니다. 이번에는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문을 발로 뻥 차 걸쇠를 부숴버렸다. 거칠게 문을 연 그는 아내의 손목을 묶으려 허리를 숙였다. 그래, 지금. 나는 거실 구석 싱크대 위의 식칼을 집어 들었다.

가방을 열고. 식칼을 선택하고. 조심스럽게 드래그... 앗! 그만 손을 놓쳐버렸다. 칼을 끌고 간다는 게 그만 대화를 해버렸다. 재빨리 다시 가방을 열고. 식칼을 선택하고. 드래그. 이번에는 식칼을 들고 제대로 찔렀다. 하지만 내 살기라도 눈치챈 걸까? 아니면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설픈 이 거지 같은 몸동작이 문제인 걸까. 몸을 휙 돌린 그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짜릿한 입속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동시에 나는 다시,


현관 앞에서 깨어났다. 이 감촉도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다. 타임 루프. 그래, 엿이나 먹으라지.

도저히 내 손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경찰, 구급대, 뭐라도 좀 도와달라고. 옷장 안에 걸린 가방에서 아내의 휴대전화를 찾아 꺼내 들었다. 긴급 전화 911. 제발, 누가 우리 가족을 죽이려고 해요! 살려주세요! 15분이요? 그는 5분 후에 우리 집에 온단 말이에요!


다른 경찰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자. 그런데 문을 잠가도 들어올 텐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시계는 똑딱똑딱 멈추지 않았다. 그때 초침 소리가 마치 각성제라도 된 듯 한 손에 꼽을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머리에 스쳐지나가듯 새겨졌다.

나는 곧장 아내 대신 디저트를 준비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디저트를 식탁 위에 올리고 머그잔에 물도 담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그잔엔 약장에 있는 수면제 몇 알을 툭. 여보, 멋진 디저트를 맞을 준비 됐어.

들뜬 그녀는 침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는 흥얼거리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와, 당신이 벌써 준비했네?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배 속의 아이 이야기로 들뜬 아내를 보니 괜히 마음이 쓰리던 그때. 머그잔에 물을 홀짝 마신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며 침실로 들어갔다. 전등 스위치를 끄고 문을 닫은 그녀. 잠시 후 문을 살짝 열어보니 그녀는 침대 위에 그대로 고꾸라진 듯했다. 이제 옷장에 숨어 아내를 살피는 경찰 뒤를 노리고 15분을 버티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5분. 경찰이 왔다. 잠긴 문을 발로 찬 그는 아무도 없는 거실, 욕실을 뒤지고는 열린 침실을 바라봤다. 아내를 발견하고 방으로 들어간 경찰. 파바밧. 경찰이 굉음과 함게 쿵 소리를 냈다. 재빨리 옷장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가니 경찰은 바닥에 쓰러져있다. 스위치! 한 번 켜졌다 꺼진 전등의 스위치가 다시 켜지며 그의 몸을 전기로 휘감은 게 분명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금방 일어날 테니 낭비할 시간은 없다.

누운 경찰의 몸에는 작은 나이프와 케이블 타이로 만든 수갑 2개, 휴대전화, 그리고 권총이 있다. 재빨리 케이블 타이로 그의 양손을 묶었다. 그리고 여유 부릴 틈도 없이 깨어나는 경찰. 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야? 적잖이 윽박질렀지만, 고압적인 경찰의 태도는 그대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면 수없이 내려친 그 주먹을 되갚아 줄 차례겠지. 나는 그의 권총을 허벅지를 향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고 약간의 희열감이 퍼져나가는 핏물처럼 가슴에서 번져나갔다.

순순히 대답할 마음이 들었나? 하지만 대답은 뻔한 것들 뿐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물어봐도 속 시원한 해답이 되진 못한다. 이 지옥 같은 루프를 나는 잘못 반복했나? 내가 알아야 할 정보들이 더 있나? 대체 이 좁디좁은 집 안에서, 마땅한 장비도, 무기도 없는 이곳에서 뭘 어떻게 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건데?

생각하는 건 지쳤다. 그저 15분을 기다려 구급대가 와 모든 걸 해결해주길 바랐


는데 시간은 10분. 아니 다시 0분. 내가 맞고, 죽어야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었나? 분침이 시계의 2를 가리키는 그 순간 나는 다시 현관이다.


혼란스러워진 나는 홀린 듯 침실로 향했다. 불을 켠 나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이미 침실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 아는데? 욕실에서 아내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불을 끄고 거실로 나갔다.

아내를 설득하는 건 이미 다 해봤다. 그럼 임신을 알리는 아내를 일부러 화나게 해보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몰라도 아내만이라도 집 밖에 나가게 하면 어떨까?

아내가 임신 사실을 알리도록 우선은 디저트 이야기부터 하자. 여보, 멋진 디저트를 맞을 준비 됐어. 아내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또 전기가 튀는 소리. 그리고 쿵. 아차, 이미 내가 전등을 한 번 켰으니 전기가 올랐겠구나. 나는 침실로 향했다.

여보 미안해,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몇 초면 다시 깨어날 거야.

하지만 아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 어깨, 가슴. 그녀의 상태를 훑었다. 그리고 허리, 다리, 맨발. 맨발. 아내는 신발을 안 신었잖아. 정말 미안해. 아내의 이름 옆에는 (사망)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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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타임루프가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결말이 정해진 영화라면 내가 뭘 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결말에 가까워져야 하잖아. 이 세계엔 정답이 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정답이. 여러 번의 시간을 되돌아가 매번 다른 10분을 보내도 내가 무언가를 찾거나 알지 못하면 그 10분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살인을 부정하는 아내, 혹은 도저히 내 이야기는 들어줄 것 같지 않은 경찰. 쓸만한 게 없는 집구석의 몇 안 되는 도구. 그 정답을 위해 나는 수십번의 5분을 맞이하고 수십 번의 10분. 그리고 그 이전으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