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나 지난 게임을 현대에 맞게 접근성을 끌어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타이틀이 디아블로2처럼 상징적이고 엄청난 게임이라면 더욱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당장 20년 전, 그 시절에는 접근성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딘가 불편하고 조작이 어려운 게임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이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디자인 및 UX 접근성 수석인 드류 맥크로리가 GDC 2022를 통해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만들면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작업을 진행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작업하면서 '한 명을 위한 해결책이 여러 명에게 혜택을 준다'는 원칙 하에 원작을 충실히 재현해 클래식한 경험을 원하는 원작 게이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편의성을 추가해 새로운 게이머들도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리마스터 작업 초반, 맥크로리와 그의 팀은 원작을 지키는 것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실제로 팀 내부에 몇천 시간씩 디아블로2를 플레이한 이들이 있었고, 맥크로리 본인도 몇백시간을 플레이했다고 한다. 게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리마스터를 위해 모여 앉으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을 고치고 작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게임의 플레이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것과 오래된 게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존중하는 것 사이의 경계를 찾는 것이었다. 디아블로2는 역사상 최고의 PC 게임 중 하나였기에 무작정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고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논의 초반, 인벤토리와는 완전히 별개인 참 인벤토리를 추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는 분명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했지만, 원작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목표로 하고자 했던 원작을 살리는 것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 없던 이야기가 됐다. 게임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가능한 현대화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후에도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색각 보정, 공격 빗나감 표시, 자막과 NPC 자막 인사 온오프 기능 등이다. 그 중 공격 빗나감 표시의 경우, 전투 중 적을 빗맞혔을 때 그것을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설정이다. 아주 작은 변경점이지만, 처음 게임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피드백 제공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다. 물론 원작 게이머들에게는 필요없는 기능이기에 온오프를 할 수 있다.

금화 자동 획득의 경우 참 인벤토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논의를 거쳤다. 디아블로2는 기본적으로 버튼을 연타하고, 누르고, 아이템을 줍는 게임이다. 그렇기에 자동 획득은 좋은 기능이긴 하지만, 고전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에 상충하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게이머들이 게임 플레이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원한다면 신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게임플레이 설정에 온오프 기능과 함께 추가했다. 접근성이라는 건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개별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다.


오디오 접근성 역시 많은 관심을 쏟은 중요한 카테고리였다. '개별화와 최적화'를 위해 맥크로리는 게이머가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사운드 요소만을 골라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새로 추가된 슬라이더를 통해 기본적인 소리와 음악, NPC 대사는 물론이고 인터페이스, 괴물, 기술, 환경음, 전투 소리 등 아주 세부적인 요소까지 조절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

컨트롤러의 경우 20년 전에는 없었던 부분이라 훨씬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물약 자동 채우기와 같이 자동화와 관련해 훨씬 과감한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


맥크로리는 강연 막바지, 자신은 자동화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자동화가 아니면 게임을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특정 편의성 기능들은 반드시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설계된 것이며, 모든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용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편의성 설정을 비롯해 자막과 같은 기능이 많아질수록 이는 게이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맥크로리는 이런 다양한 설정으로 장애가 있는 게이머도 최대한 불편함 없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출시 이후에도 정말 다양한 피드백들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게임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더욱 좋았다고. 분명 접근성과 관련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겠지만, 부정적인 리뷰에서도 접근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3~4개씩은 있었기에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고, 최종 목표치에 다다르지는 못했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직 게임을 개발하는 데 있어 접근성은 가장 중요한 고민 요소가 아니라 아쉽다고 했다. 더 많은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접근성과 관련된 부분을 포함한다면 훨씬 좋은 게임이 될 것이고, 추후에 급작스럽게 추가하는 것보다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게임이 모든 게이머에게 1:1로 다가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접근성을 지니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