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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베사리아 님, 그 ‘에스트렐’들은 그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지 아세요?]

 가만히 생각하던 소나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그녀에게 가장 궁금한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선 그렇게 사람을 맹목적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그냥 제가 모르는 마법처럼 보일 뿐이라서…….]

 소나는 협곡에서 봤던 럭스나 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들은 대체 어떻게 됐을까? 그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만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쪽에서 먼저 면회를 신청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소나는 그저 그녀들이 협곡에서의 기억 따윈 잊어버린 채 잘 회복하고 있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설명해준 적이 없군. 베사리아, 그건 찾아봤소?”
 “찾아만 봤겠어요? 가져왔죠. 자, 여기 있어요.”

 베사리아가 딱 손가락을 퉁기자 허공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톡 하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소나의 그리 크지 않은 손에도 딱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의 나무상자였다. 굳이 특징을 꼽자면 옆에 크라운(Crown, 태엽 감는 손잡이)이 달려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뜯어봐도, 그녀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르골…인가요?]
 “맞아요.”
 […….]

 차라리 이게 오르골이냐고 하면서 핀잔이라도 줬다면 덜 허무했을 텐데. 그 에스트렐이란 정체불명의 적들이 사람들을 홀릴 때 사용하는 게 고작 이거란 말인가? 소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잭스를 바라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그 오르골들이 무슨 소형 폭탄이라도 되는 양 심각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그 드레스덴 지역에서 압수한 물품 중에서 집어온 거고요.” 베사리아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퉁기니 예의 그 오르골 상자 하나가 또 떨어졌다. “이건 맨드레이크의 연구실에서 나온 거예요.”
 “검사는 다 해봤소? 만에 하나 이게 작동되기라도 하면 우린 다 끝일 수도 있소.”
 “나 참, 날 뭘로 보고 그러시는 거예요? 이거 이래 봬도 온갖 보호 주문 떡칠해놓은 거니까 안심해도 돼요.”

 일종의 도둑질이나 마찬가진데 잭스나 베사리아나 양심의 가책 따윈 털끝만치도 없어 보였다. 하긴 그런 걸 신경 쓰기엔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잭스는 두 오르골의 덮개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그 내부는, 뭐 다를 게 있겠냐는 듯 평범했다. 원통과 태엽장치가 전부였으니까. 특이한 점이라면 상자 안쪽에 있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보석 하나뿐, 그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눈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소나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귀로 세상을 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이 오르골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부터 이미 이것은 오르골이 아니었다. 오르골을 가장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상자 안쪽에 붙은 그 조그마한 보석이었다. 그 작디작은 보석이 이 오르골의 근본을 완전히 뒤틀어놓고 있었다.

 라라라…….

 아련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산들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석에서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 보석은, ‘보는 것’을 ‘듣는 것’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그 속에 있는 아련한 추억, 그리움……. 그리고 사랑.

 사랑.

 탁!

 “소나!”

 오르골을 닫는 소리와 함께, 그 아련함은 맥없이 흩어졌다. 소나는 그제야 자기가 잭스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베사리아, 어떻게 된 거요? 분명 다 검사했다고 했잖소!”
 “아니, 그게 방음 주문만 이십 개가 넘게 걸어놨는데…….”
 “소나!”

 방금 잠에서 깬 것처럼 몽롱하긴 했지만 주변의 목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는 베사리아의 음성 사이로 잭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만 같은 다급함과 함께 말이다.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는 감정과, 소중히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의 입가에 미소로 걸렸다. 소나는 손을 들어 잭스의 가면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전 괜찮아요, 잭스 님.]
 “괜찮으시오? 몸은? 뭐 이상한 건 없고?”
 “소나 양, 괜찮아요? 오르골 열자마자 휘청거려서 얼마나 놀랬다고요.”
 [네, 정말 괜찮아요. 잠깐…잠깐 취했을 뿐이에요.]

 소나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는 베사리아의 표정이 이상했다. 가면 너머로 느껴지는 잭스의 시선도 그랬다. 순간 퍼뜩 정신을 차린 소나는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수정구를 끌어안았다.

 [소, 소리에 취했단 뜻이에요! 와인이 아니고!]
 “아, 난 또…….”
 “험.”

 아무래도 재빨리 변명한 게 정답인 듯했다. 소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중요한 내용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런 게 더 컸다.

 [이건 오르골이 아니에요. 공명 증폭 현상을 이용한 일종의 증폭기죠. 진짜 중요한 건 바로 안쪽에 있는 보석이에요.]
 “어머, 난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석에 저장된 마력으로 사람 홀리는 소리를 냈던 게 아니었단 거예요?”

 베사리아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게 그녀의 상식이었고 이 대륙의 마법 체계의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그 의문에 소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마법에 대해 베사리아만큼 박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현존하는 마법 체계가 무엇이든, 지금 눈앞의 이 오르골은 그 근원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보석엔 어떤 곡의 짧은 소절이 저장되어 있었어요. 제가 아는…그래, 아브릴(Avril, 봄)의 곡조를 응용한 변주곡의 일부 같았어요. 봄에 피어오르는 애정, 그리움, 그리고 사랑.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의 노래…….]

 소나가 끌어안고 있는 수정구에 문장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휙휙 지나갔다. 깊이 생각에 잠긴 그녀의 머릿속에선 지금껏 들어온 온갖 종류의 소리들과 그 이상으로 많은 온갖 종류의 곡조들이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짧은 소절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곡의 형태를 머릿속에서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추측이나 추리의 개념을 아득히 넘어선, 일종의 재구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소나에겐 가능했다.

 그녀는 귀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귀가 좋다는 뜻이 아니었다. 감정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표현들은 소나가 가진 재능의 일각을 나타낸 말들에 불과했다. 남들에겐 똑같이 들리는 빗소리나, 과연 소리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의 눈 내리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비단 자연 현상뿐만이 아니라 계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겪은 사계절은 매해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나는 그 모든 음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모든 음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소리에 관한 한 그녀는 욕심 많은 아이처럼 탐욕스러웠고,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처럼 비범했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자신이 들은 ‘세계’를 표현하는 수백 가지의 연주법과 악보 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세계’를 들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를 들려줄 수 있었다. 그것은 재능이었고, 노력이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가 마찬가지로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그 대단한 재능과 노력을, 소나는 전혀 자만하는 기색도 없이 최선을 다해 쓰고 있었다. 단지 잭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 이 정도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써본 적은 한 번도 없던 그녀였다. 잭스가, 그와의 인연이, 그로 인해 맺을 수 있는 인연들이 소나의 내면을 부드럽게 색을 입히고 있었다.

 [이건 아브릴의 변주곡이에요. 확실해요.]

 소나는 확신에 찬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조악해요. 훌륭한 곡을,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추려내서 억지로 뒤틀어버린 모조품에 가까워요. 한마디로 이 곡은 실패작이에요.]

 그녀치고는 드물게 신랄한 비평이었지만 소나는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그녀 자신조차도 이전에 잭스를 구하려다가 아브릴의 곡을 잘못 연주해서 큰일을 낼 뻔했다. 곡의 본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만 해도 부끄러운 일인데, 이 보석에 기록된 소절은 그녀가 보기엔 거의 원곡에 대한 모독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소나 양,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에스트렐들은 이걸 써서 사람들을 제 맘대로 조종했었어요. 드레스덴인가 하는 그 영주는 그렇다 쳐요. 하지만 맨드레이크는? 조종당할 때의 맨드레이크는 거의 십 년을 봐온 저조차도 깜빡 넘어갈 만큼 감쪽같았어요. 그런데 이게…….” 베사리아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이게 겨우 ‘실패작’이 가진 위력이란 말인가요?”
 [네, 확실해요. 단언할 수 있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소나 앞에서 당황하는 건 베사리아였다. 하긴 미지의 적이 쓰는 ‘비장의 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겨우 실패작 따위라면 누구라도 당황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협곡에서의 챔피언들은요? 그 수많은 챔피언들의 정신을 한꺼번에 조종했잖아요. 그것도 실패작이라 할 수 있나요?”
 [그땐 이런 오르골 대신 넥서스의 마력을 이용해서 증폭만 더 세게 했었을 거예요. 그걸 제외한다면 그때 챔피언 분들을 조종했던 곡의 완성도는 이보다 훨씬 더 떨어졌어요. 소리만 키운다고 해서 나쁜 곡이 좋은 곡으로 변할 리는 없는 법이죠.]

 그때 협곡에서 만났던 카타리나가 바로 좋은 사례였다. 그녀는 분명 탈론에게 따귀를 몇 대 맞고 정신을 차렸다고 했었다. 그 정도만으로 선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건 짜임새가 아주 나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완성도가 낮은 것과 그 효과는 확실히 별개의 문제였다. 변주곡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이 에스트렐의 ‘노래’가 위협적이란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베사리아 님, 이 노랫소리는 귀를 통해 들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아무리 방음 마법을 거셔도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 보석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음을 직접 울리는 소리니까요.]

 그리고 소나는 잭스를 똑바로 쳐다봤다. 가면을 사이에 두고,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가만히 얽혔다.

 […잭스 님께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잭스 님께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베사리아는 그저 소나가 든 수정구에 뜬 글자만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잭스는 지금까지 소나의 목소리를 전부 듣고 있었다. 그는 소나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오직 그만이,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는 소나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고 있었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한 걸까요?”

 깊이 생각에 잠겨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던 베사리아가 숨 참았다 내뱉듯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불신이 가득했다.

 “소나 양의 말을 못 믿는 건…아니, 못 믿겠지만 그래도 믿어야겠죠. 그래도 이건, 휴, 이건 마치…….”
 [죄송해요, 베사리아 님. 그래도 전 알아낸 대로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아녜요, 소나 양을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단지 너무 믿기 힘들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소나 양 설명대로라면 이건 마법이 아니잖아요. 단지, 단지……. 그냥 마음속에 들리는 노래에 감동해서 자발적으로 세뇌 당했다는 것처럼 들려서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주 조악한 곡으로도 가능한 일이에요. 만약 제대로 된 변주나, 아니면 제대로 된 곡을 연주할 수 있다면……. 자연 현상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게 하거나 사막 한가운데서 홍수가 나게 하는 뭐 그런 거 말이오?”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아마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나는 잭스의 농담 아닌 농담을 받아넘기며 가만히 에트왈을 쓰다듬었다. 햇빛을 받고 있는 에트왈은 그녀의 손길을 따라 부드럽게 윙 울었다. 소나는 에트왈 속에 담긴 아브릴과 바람노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아도 그 아이들은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소나는 비록 지금 느껴지진 않아도, ‘에트왈’ 역시 그녀의 안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었다.

 [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들의 노래는 에트왈에 담긴 아이들과 똑같은 뿌리에서 온 거니까요. 그럼 저도……. 이들의, 일족이겠죠. 잭스 님과, 베사리아 님의 적인…….]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그 두려운 말을 가느다랗게 울리는 순간 잭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소나.” 잭스가 굳은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에스트렐과 적대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것은 전란의 불씨를 없앤다는 대의를 위해서였지, 사적인 감정 따위로 그런 건 아니었소.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그것만큼은 내 자신할 수 있소. 그러니 그대의 뿌리가 에스트렐이라 한들, 아니면 무엇이라 한들 우리들의 관계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요. 내 분명히 약속하리다.”
 “잭스 말이 맞아요. 자기 조상만으로 적이니 아군이니 따지는 건 저어기 북쪽 프렐요드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나중에 그 에스트렐 놈들이 소나 양한테 그런 걸로 들먹이면 제가 본때를 보여줄게요. 바다뱀 해구 탐험과 만년설산 꼭대기 탐험 풀코스로 해서요.”

 베사리아가 자기만 믿으라는 듯 자신 있게 말하자 소나의 얼굴엔 저절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의 미소가 걸렸다.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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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드디어! 가장 중요한 떡밥을 풀었습니다! 드디어 맨 처음 구상했던 부분을 마침내 글로 쓰고 있네요! 감개가 무량합니다.

2. 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오오 감격! 굉장히 기분이 좋네요.

3. 이번 편은 잘 뽑힌 거 같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

4. 앞으로 두세편은 더 나와야 할 거 같습니다.

5. 그럼 다음화로 뵙겠습니다. 

6. 팬픽 게시판이 이제 폐쇄가 된다고 해서...이제 팬아트 게시판만 올리겠습니다...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