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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거북
2018-03-22 23:47
조회: 4,727
추천: 0
서울대학교 대나무숲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내 인생 가장 큰 행운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술자리를 가졌던 날,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힘도 없는 못난 사람이 아버지라 원망 많이 했을 텐데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늘 미안하다.” 만약 아버지의 역할이 돈과 권력으로만 평가되는 것이라면 아버지는 못난 것이 맞았다. 돈·권력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짊어져야 했던 고생의 무게는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외식은 사치였으며,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것도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전기밥솥이 없어서 매번 딱딱하게 눌어붙은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야만 했다....
가방끈도 짧고 가진 것이 없던 아버지는 늘 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름엔 속옷이 몽땅 젖을 때까지, 겨울엔 피부가 갈라질 때까지 일해야 했고 한참 어린 윗사람들에게 반말을 들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가족 앞에서는 힘든 내색 한 번 않았고, 정말 서글픈 날에는 통닭 한 마리 사들고 와서 우리에겐 통닭을 주고 아버지는 무를 안주 삼아 조용히 소주를 들이킬 뿐이었다.
물론 아버지에게도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는 있었다. 새로운 거래처로부터 계약을 따내면 승진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처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성접대를 요구했고 아버지는 단번에 이를 거절했다. “아닌 건 아닌 거지. 네 엄마도 있고 멀쩡한 가정 있는 사람이 돈에 눈이 멀긴 싫었다. 없이 살더라도 너희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어.” 당연히 아버지는 이 일 때문에 승진에서 밀려났고, 인력 충원도 되지 않는 격무부서에서 무언의 압박을 받아야 했지만 꿋꿋하게 소신을 지켜냈다.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를 두고 “가장으로서는 최악인데 남편으로서는 최고야. 고생한 거 생각하면 미워죽겠는데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어.”라며 그저 웃어넘겼다. 이야기를 다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아버지께서 홀연히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붕어빵 20개를 가슴에 가득 품고 나타났다. 나는 그 많은 거 다 먹지도 못한다고 투덜거렸지만 아버지는 그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집 근처에서 폐휴지 수거하는 노인 분들을 마주쳤고 아버지는 붕어빵을 모두 그분들에게 나눠줬다. 추운데 따듯한 거라도 챙겨 드셔야 한다면서. 순간 깨달았다. 내가 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장래희망조차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을 꿈꿨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늘 보던 것이 이런 것이고 듣던 것이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막연히 아버지를 동경하게 됐고 그를 닮고 싶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를 원망할 만큼 힘든 시절을 보낸 것도 맞았다. 시 대표로 전국 축구대회에 출전할 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그토록 좋아했던 축구를 그만뒀어야 했고, 학원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아예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용돈 한 푼 받지 않았다. 때문에 방학에 롯데리아 알바해서 번 돈으로 교복 사고, 주말과 공휴일에 63빌딩에서 10시간씩 설거지해서 문제집을 사고 급식비를 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직도 예전의 기억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본인이 자식의 꿈을 망친 장본인이며, 자신이 아니었으면 내가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올바른 꿈을 꿀 수 있었고, 아버지의 존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반드시 많은 재산을 물려줘야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 이 세상 살아가는 따듯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아버지가 진정 좋은 아버지라고. 그리고 아버지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아버지의 평생 역작인 내가 세상에 그를 증명해보일 거라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인생은 옳았고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 행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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