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관련 뉴스나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강간은 성욕과 무관하다. 강간은 권력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이다.'

이는 정부 부처나 여성단체 등에서도 활발하게 내세우고 있는 주장으로,

현 시점에서는 거의 강간이라는 범죄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강간은 성욕과 무관하다. 그러니 여성의 옷차람이나 행동과도 무관하다'

이런 이야기는 여성단체 홍보물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헌데 이 관점이 심리학이나 범죄학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말 그대로 '여성학계'의 주장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강간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발생하며 성적 만족을 위한 강간도 일어난다'

이쪽이 오히려 심리학계의 입장에 가깝지요.


뉴저지 대학의 심리학 교수 Spencer Rathus는 강간을 이렇게 분류합니다.

강간에는 4종의 모티베이션이 있다. 성적 만족, 분노, 권력, 그리고 가학성이다. 성적 만족은 지인에 의한 강간 및 데이트 강간의 원인이 된다. 분노에 의한 강간은 사전계획 없이 일어나는 난폭한 강간으로 여성에 대한 분노와 회한으로 인해 발생한다. 권력욕에 의한 강간은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해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촉발된다. 가학적 강간은 대개 사전계획 하에 일어나고 의식화되어있으며 피해자에 대한 모욕, 폭력, 고문, 살해 등이 동반된다.

요즘 특히나 문제시되는 지인 및 데이트 강간의 주된 원인을 성욕에서 찾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사회학 교수 Richard Felson은 인간의 '공격성'에 관한 저서에서

강간의 주된 원인으로 성적 욕구의 충족을 지목하기도 했죠. 




이 주제에 대한 다소 재미있는 실험도 있었습니다.

강간범과 일반 남성을 대상으로 다양한 성적 매체를 보여주고

매체에 대한 성기의 반응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는데요,

여기에서 일반 남성은 강간 장면에 비해 합의하의 성관계 장면에 월등한 반응을 보였고

강간범들은 역시 합의하의 관계에 대한 반응이 더 강하기는 했으나

상대적으로 강간 장면에 대한 반응과의 격차가 일반인에 비해 적었습니다.

즉 강간범에게 있어 '강간'은 일반 성관계에 비해선 덜할지언정

나름 성욕을 유발하고 충족시켜주는 성적 행위가 되는 셈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여성학계는 심리, 사회학적 연구결과와 대립하면서까지

'강간과 성욕은 무관하다'는 주장을 강변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사실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강간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습격하는 일방적인 강력범죄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살인, 강도, 폭행 등과 크게 다르지 않죠.

허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낙후된 국가나 지역의 경우,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의 욕구를 자극한 책임이 있다'

이런 논리로 책임을 일정 부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밀양 사건, 신안 사건 등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이런 전근대적인 관점을 피력한 예시들이 있지요.


결국 '강간은 성욕과 무관하다'는, 어떤 의미에선 무리한 주장은

'피해자에게도 강간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원천봉쇄하는 목적이 있는 겁니다.

강간의 도식에서 성욕 자체를 배제시켜버리면 피해자의 책임소지는 사라지니까요.


그러나 이렇게 현실을 왜곡시킴으로 인해 생기는 폐단 역시 존재합니다.

'강간은 성욕과 무관하다'는 믿음은 성욕으로 강간을 저지르는 자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려

그러한 부류의 범죄자가 활동하기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강간이 오직 권력욕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력욕 없이 단순 성욕으로만 접근하는 범죄자를 경계하지 않게 되니까요.

결국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피해자들은 어떤 의미에선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희생양이 되는거죠.


결국 아무리 의도가 정의롭다 한들 현실의 왜곡이나 부정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 상태에서 해결책을 강구해 나가는 것이

불필요한 희생 없이 정의를 관철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