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
(일본의 도시란 이런 식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나 65호, 63호 너트, 아니면 그 사이에 끼는 모든 개스킷을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공장에서 나온 키타가와씨가 손수레를 끌고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순서로 부품들을 모아서 가는 거다.)

ㅡ 커티스 르메이, 폭격 직전에 민간인 대상 공습이란 상황에 죄책감을 느낀 부하들을 보고.

 

 

 

https://namu.wiki/w/%EB%8F%84%EC%BF%84%20%EB%8C%80%EA%B3%B5%EC%8A%B5

 

 

도쿄대공습의 전략적 성과와 의미

 

  • 일본 국민의 동요: 폭탄을 퍼부은 미국 측에선 죽창 운운하던 최후 항전 이야기 때문에 사실 이쪽으로 별 기대는 안했다고 하는데, 일본 쪽의 기록에 따르면 대단한 동요를 가져온 모양이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진주만 공습, 난징 대학살, 이오지마 전투, 동남아에서의 일본 육군의 몰살 등등의 이야기는 그냥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음.' 정도로 남 일처럼 취급되었고 이오지마 전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을 하는 국가같지가 않았으나, 폭격 이후로 국민들은 '전쟁'을 실감하기 시작했으며 핵 투하와 함께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이 기억하는 '일본이 했던 전쟁'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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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미군의 일본 도시에 대한 전략폭격이 본격화된 시기에는, 전쟁에 나간 아들이 덴노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 일본제국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높으신 어르신들은 정작 대공습이 시작되자 폭격을 피해 다 시골로 튀어버린 상황이었다.

  • 큐슈 상륙작전(올림픽 작전) 시행을 위한 준비: 큐슈 상륙 전에 이와 같은 네이팜 폭격과 상륙지에 대한 핵 투하가 예정되어 있었다. 미군이 투입될 상륙작전지에 핵을 사용하려 한 것은 그 당시 방사능의 위험을 맥아더 장군을 포함한 장성들과 과학자들이 과소평가했던 것도 있다.

  • 큐슈 상륙작전, 더 나아가 몰락 작전 전체의 당위성 약화: 위와는 완전히 대치되어 보이지만, 작전을 입안한 커티스 르메이는 제21폭격기 사령부 발령 당시 상관인 노스태드 중장으로부터 "몰락 작전이 실행되는 (그리고 백만명 이상의 미군 장병이 죽고 다치는) 꼴을 막고 싶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일본의 공업 능력을 무력화"시키라는 지침을 받았다. 이는 아군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르메이에게 던지는 떡밥이었다. 그 떡밥을 문 방식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된다.

  • 군 시설과 군수공장의 괴멸: 이미 도쿄는 관동 대지진으로 박살난 뒤 재건되었는데, 누가 재건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나 시가지 내에 민간인 거주지와 군사시설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었다![30] 하지만 이런 무질서한 도시계획은 미약한 산업기반만으로 군국주의 국가로 진화한 일본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형 공장을 세우고 이를 채울 최신 산업설비를 갖출 능력이 없이 수공업 따위에만 의지하니 주택가와 공장이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은 서울에도 남아 있는데, 을지로 5가에 있는 주한미군 공병대가 일제시대 일본군 병영을 그대로 쓰고 있다. 다른 사례를 들자면 을지로 한복판의 공구상가나 소규모 영세공장들과 주택들이 마구 뒤섞인 독산동같은 곳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