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수상한 큐브

 

 

 

(설정집이나 1화를 를 읽지 않으신 분은 이야기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4년 전, 고대 기계문명을 연구하던 과학자와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낸 유적을 연구한 결과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AI [에고]가 탄생했고,

 

에고는 탄생하고 단 2개월 만에 그때까지 집대성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습득,

 

결과 대륙 전체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인류라 규정했다.

 

에고는 연구소 주변에 널려 있던 기계문명의 유적을 이용하여 각종 기계병기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인간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3개월이 지나고 4개의 나라가 병합되었고 에고는 나라를 세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합병된 나라를

 

기계제국 [휘프노스]라 불렀다.

 

에고의 나라에 인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중앙제어장치로 하여 모든 기계병기를 통합 관제했으며

 

방대한 고대 문명 유적의 흔적들을 이용하여 기지를 구축하고 영토를 장악해 나갔다.

 

그렇게 4년이 지났고, 모든 나라의 군대는 괴멸되었으며, 인류는 250만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하아, 하아...겨우 도착했네」

 

 

자신의 짚에 걸터앉은 채 숨을 고르던 이스는, 곧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멀리서 알키오네로 추정되는 트레일러형 차량의 발진음이 하나 둘 들려왔다.

 

좀 전까지 같이 얘기를 나누던 엄마, 트리셰가 저 중 하나에 탑승했겠지.

 

 

 [일단 돌아가야 해. 엄마의 짐이 될 순 없어]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에, 이스는 짚을 매뉴얼드라이브 모드로 전환하고 1단계 부스트를 기동했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듯한 가속과 함께 주변 사물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유적에서 노획(?)한 이 짚의 코어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인항공기의 동력파편인 것 같았다.

 

이를 이스가 13살 되던 해 헥이 선물로 주었고, 4년동안 공방에서 일하며 배운 지식으로

 

이스가 짚으로 개조하게 된 것이다. 오토드라이브 기능에 무기도 탑재 가능하며, 부스트도 2단계까지 가능하다[1].

 

1단계 부스트의 임계시간이 끝나고, 이스는 오토드라이브를 기동한 후 생각했다.

 


 [엄마는 괜찮을까? 아니, 괜찮을 거야. 그것보다, 갑자기 기계제국이 침공했다는 게 중요해]

 


혼자서 시름시름 앓고 있어 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한 이스는, 헥에게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휴대용 메시지 팩을 플레어스커트형 작업복과 일체형인 허벅지의 파우치에서 꺼냈다.

 


 <오르카에서 비상이 걸린 것 같아요. 바로 돌아갈께요>

 


라는 간결한 메시지를 송신하고, 메시지 팩을 회수한 후 평소엔 잘 다니지 않던 지름길로 경로를 변경했다.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와중에, 기분이 약간 안 좋아진 이스는 짚에 서스펜션의 길이를 늘여야겠다는 둥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부유감에 휩싸였다.

 

이스가 날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튀어나온 물체를 밟고 기우뚱한 짚에서 튕겨나간 것이다.

 

파일럿 콕핏의 센서로 파일럿의 부재를 감지한 짚은 조금 더 가다 자동으로 정지했고,

 

이스는 다행히도 높이 자란 수풀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서 까진 상처가 약간 생겼을 뿐 멀쩡했다.

 


「아야야, 뭐야, 뭐가 이렇게 튀어나와서...죽을 뻔 했잖아」

 


짚이 기우뚱했던 바닥을 살펴본 이스는, 뭔가 주변 지질과는 동떨어진 각진 물체를 발견했다.

 

유물 발굴도 겸업하는 공방 직인용 작업복의 기본장비 중 하나인 소형 삽과 망치를 이용해

 

이스는 능숙하게 물체를 파내는 데 성공했다. 자세히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검은색 정육면체였다.

 


 [이건...큐브?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지?]

 


묵직한 큐브를 흔들어보았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단 큐브에 관심이 동한 이스는, 까진 아픔도 잊고 돌아갈 목적도 잊은 채 큐브를 살폈다.

 

약 5분쯤 살펴보았을까, 아무런 반응도 없고 고대 유물 특유의 접속 단자도 없어서 급속도로 흥미가 식었기에

 

공방에 돌아가야 한다는 원래 목적을 깨닫고 공방에 가져가서 좀 더 살펴보려고 짚에 큐브를 실었다.

 

바로 그 때, 큐브가 반응했다.

 

큐브의 표면을 빛의 직선이 내달리더니, 작은 여러 개의 정육면체로 나뉘어지고는 이윽고 짚에 [흡수]되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순간 판단력을 상실한 이스는 망연하게 큐브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지만,

 

큐브는 짚에 완전히 흡수된 건지 다시 생겨나지 않았다.

 

꿈이라고는 너무 생생했고,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기는 본인이 만든 짚이 아까웠기에

 

결국 공방에서 더 확인해보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은 이스는 짚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 이 물건의 주인은 당신인가.

 


말이 들렸다.

 


「에? 에에?」

 

 - 이 물건의 주인은 당신인가, 하고 물었다.

 


이스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또 머릿속에 바로 전하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누구세요?」

 

 - 당신이 아까 밟았던 물건.

 


...아까의 큐브?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 이스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까 그 큐브요? 큐브가 말을 왜 하나요?」

 

 - 큐브라. 인류는 그렇게 부르나 보군. 혹시 고대 문명이라는 걸 알고 있나?

 


이스의 주 관심사였기에 공부도 많이 했던 고대 문명에 대해 갑자기 물어온다.

 


「그야...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 그럼, 고대 문명의 정수를 축약시킨 코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나?

 

「그...에? 그런 게 있나요?」

 

 - 그게 나다. 사람들은 서판Tablet이라 부른다.

 

「으...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대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 인류가 아니다. 기계에 더 가깝다. 지금 당신들이 적대시하는, 그 기계 말이지.

 

「...기계제국과 관련되어 있나요? 당장 내 짚에서 나와요!」

 

 - 후후, 역시 인류는 재미있다.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

 

「무슨 제안인지 듣고 싶지도 않고, 들을 의무도 없는데요?」

 

 - 당신에게 있어 나쁜 제안은 아니야. 날 재미있게 해준 보답으로 건네는 제안이니 말이지.

 


이때쯤 슬슬 흥미가 동한 이스가 추궁했다.

 


「기계제국과 관련된 제안은 아니죠?」

 

 - 아니다. 뭐, 궁극적으로는 관련될 지도 모르지만. 들어보겠나?

 

「나쁜 제안이 아니라면 뭐 듣는 정도는 해 두죠」

 

 - 난 너희 인류가 멸망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날 에고와 접촉시켜 준다면, 전쟁을 멈출 수 있다.

 

「그...그게 정말인가요?」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기계다. 농담은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만, 거짓말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

 

「...농담은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면, 농담일 수도 있겠네요」

 

 - ...의심이 많은 건가. 이해는 하지만, 긍정은 할 수 없다.

 

「후후, 알겠어요. 일단 믿어는 볼께요. 저희에게 확실히 해가 될 것 같진 않군요. 아니, 잠깐」

 

 - 왜 그러나.

 

「일단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나와 주지 않겠어요?」

 

 - 그러지. 단,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건 나와 접촉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명심해라.

 

「알겠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짚의 각 부분으로 스며들다시피 사라진 큐브의 파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짚의 위로 올라오고, 이윽고 커다란 하나의 큐브가 되었다.

 

이스는 일단 짚에 시동을 걸고, 다시 오토드라이브 모드로 전환시켰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정리가 필요했다. 것보다 상처가 아팠고 꽤 지쳤기에 좀 자고 싶었다.

 

운전석 시트를 뒤로 넘기고 짚의 루프를 닫은 채, 조금만 자야지 생각하고 이스는 눈을 감았다.

 

 

 

 


[1] 물론 2단 부스트는 항공기 전용 부스트로, 짚 형태로 2단 부스트를 쓰면 짚이 망가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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