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화

 

전진

 

 

(설정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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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읽지 않으신 분은 이야기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이스가 케윅스를 도망쳐나온 지도 벌써 4일이 지났다.

 

식량이나 물은 인맥이 좋은 이스였기에 지나다니며 들른 공방촌에서 받은 게 아직 꽤 많이 남아 있었고,

 

잠은 짚에서, 혹은 불을 피워두고 야영을 했다.

 

어차피 헥이 이름 없는 공방이었을 때 이스도 공방촌 생활을 했었고,

 

유물 발굴을 위해 자주 이주해 다니던 특성 상 야영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야영은 이스에게 익숙했다.

 

짚의 연료는 하멜이 프로포즈했을 때 준 반지를 갈아 넣었다.

 

이미 휘프노스의 남부대륙을 절반 가까이 종단했지만, 조우한 건 무생물, 즉 판타소스급 방어형 터렛 몇 기 뿐이었다.

 

전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건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좋지 않은 느낌도 함께 들었다.

 

혹시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전 전력을 한 군데에 모으고 있다거나 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꾸 안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이스의 좋지 않은 버릇이다, 라고 헥이나 트리셰도 많이 말했었기에

 

떠오르는 불상사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겠지.

 

마침 이드에게 묻고 싶었던 일도 있었기에 이스는 생각을 접고, 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참, 이드. 에고는 휘프노스 깊숙히 있다는 게 확실한 거예요?」

 

 [난 알 수 있다. 에고와 같이 태어난 자립형 AI라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심코 알 수 있다]

 

「헤에...그럼, 쌍둥이 같은 거예요?」

 

 [인류 식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놈은...음?]

 


이드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울리는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이번엔 조용히 생각을 전달했다.

 


 [이스. 주의해라]

 

「네?」

 

 [적이다. 반응을 보아 이켈로스 급. 수가 많다. 약 15기 정도인가]

 


이스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엄청 많잖아요! 뭘 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있나요?」

 

 [거기까진 알 수 없다. 다만...]

 

「다만?」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는 듯 하다]

 


하아...매번 이런 식인가. 이스가 살짝 한숨을 쉬고 말했다.

 


「돌아가는 길은 없나요?」

 

 [틀렸어. 이미 전 방위가 포위되었다. 3km정도 거리에서 반원 형태로 접근하고 있다]

 

「도망갈까요?」

 

 [잠시. 나에게 생각이 있다. 잠시 탑승물의 통제를 해도 되겠지?]

 


짚을? 무슨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드를 믿기에 승낙했다.

 


「그러세요. 뭘 하실 셈이예요?」

 

 [꼭 붙잡는 게 좋을 거다. 이스]

 

「에? 에에?」

 

 [간다]

 


한 마디의 의사를 전달함과 동시에, 짚이 살짝 공중으로 떠오른 후 2단 부스트가 발동되었다.

 

마치 제트 엔진을 방불케 하는 속도에 짚의 엔진이 비명을 질렀고, 이스도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이스의 머릿속으로 이드의 말이 조용히 울려퍼졌다.

 


 [소리지르지 마라, 이스. 외장갑을 타이어로 많이 돌려서 방음 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방어막을 치진 못한다]

 


이드의 말에 이스는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우우우웁!! 우웁!!」

 


이드가 한숨을 쉬는 듯한 소리가 이스의 머리를 울렸다.

 

짚은 비행하듯 포위망을 꿰뚫을 기세로 질주해 나갔고,

 

이스는 마치 고대 문헌에 나와있던 제트 코스터라는 걸 타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입을 열었다간 또 주의를 들을 것 같아 생각을 이드에게 전달했다.

 


 [우우...이드, 멀미할 것 같아요...]

 

 [조금만 참아라. 앞으로 200m만 더 가면 1단계로 돌릴 테니까]

 


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00m를 주파 완료했는지, 바로 부스트가 1단계로 전환되었고

 

이스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이 정도로 인류는 죽지 않는다. 그것보다, 뒤를 보아라]

 


이켈로스급이 쫓아오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뒤를 본 이스는, 눈이 커진 채 할 말을 잃었다.

 

강인해 보이는 꼬리. 커다란 뒷발. 작은 앞발.

 

그 위로 놓인 커다란 얼굴과, 살짝 벌린 입. 그 사이로 삐져나온 무시무시할 정도로 큰 송곳니.

 

마치 그...공룡? 맞나? 그 생물과 같은 위협적인 자태를 한 기계생물이, 뒷다리만 써서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저, 저저저저저, 저게 뭐예요, 이드?」

 

 [이켈로스급이다. 말하지 않았나]

 

「아니, 왜 내가 알고 있는 쿠거 폼(퓨마 형태)이나 베어 폼(곰 형태)같은,
좀 귀여워보이는 녀석들과는 전혀 다른 녀석들만 튀어나오냐고요! 저번의 드래곤 형도 그렇고!!」

 

 [그거야, 이스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겠는가.

녀석들은, 실제로 고대 이 행성에 존재했던 녀석들을 모티브로 한 듯 한데]


 

본인의 빈약한 상상력을 지적받은 이스가 발끈했다.

 


「으이...그래도 혼자서 여러가지 상상해서 만들었다구요? 상상력 부족은 아니라구요?」

 

 [그건 창의력이라고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관계가 있긴 하지만, 밀접하진 않지]

 

「일일히 따지지 마시라구요! 패럴라이저, 변형할 수 있어요?」

 

 [가능하다. 타이어를 보강한 외장갑을 회수하고, 짚의 소유권을 넘기지]

 

「알겠어요! I have control!」

 

 [Control submitted. 변형을 시작하겠다. 조준과 발사는 임의로 해도 괜찮은가]

 

「부탁해요!」

 


살짝 떠 있는 듯하던 차체가 원래대로 낮아졌고 짚의 통제권이 돌아오면서,

 

익숙한 바람이 불며 짚 뒤의 화물칸 양쪽으로 이미 한번 본 적 있는 대형 패럴라이저 런쳐가 조립되듯 나타났다.

 

퉁, 퉁, 퉁, 퉁. 슈아아아아아-

 

총 4발의 로켓형 패럴라이저가 발사되었고 마지막으로 이스가 공중에 연막탄 한 발을 쏘았다.

 


 [전자기 펄스를 동반하는 연막탄인가. 현명한 판단이다, 이스]

 

「헤헤,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어요? 어때요, 따돌릴 수 있겠어요?」

 

 [가장 가까웠던 4기는 무력화를 확인했다. 나머지는 연막탄 때문에 색적이 어려우니,

그쪽도 우릴 찾아내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된다]

 

「후아아...일단 도망 성공인가요. 크리스탈도 회수했으면 좋겠는데...」

 

 [욕심은 만 가지 악한 행동을 유발한다고 하지. 욕심부리지 마라, 이스]

 

「히잉...알겠어요. 그 에고한테 가기까지는 아직 멀었어요?」

 

 [아직 에고의 반응은 약하다. 아마 훨씬 더 안쪽에 있는 거겠지]

 


이드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이스는, 일단 이드에게 말했다.

 


「이드」

 

 [왜 그러나, 이스]

 

「이드는...에고랑 만나면, 그걸로 끝이예요?」

 


무슨 말인지, 해석과 분석을 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 이드가 의사를 전달했다.

 


 [인간들이 말하는 삶의 목적을 말하는 건가. 끝이라기보다는, 에고와 융합되어 발전된 사고를 가지고 앞을 모색하겠지]

 

「그래도 이드의 AI가 계속 살아있을 수 있는 거예요?」

 

 [말 하지 않았나. 에고와 융합한다고. 융합에 성공하면, 나도 에고도 아닌 완전히 다른 AI로 변모하게 된다]

 

「그거...뭔가 싫은데요, 전」

 


한번 더, 이번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드의 의사가 전달되었다.

 


 [이스의 기분은 아직 알 수가 없다. 프로그래밍 밖의 영역인가]

 

「AI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까...당연한 거긴 해도 말이예요.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감정...이라. 가지고 싶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입력 자체가 되어있지 않으니]

 

「지금의 그 가지고 싶다, 라는 마음도 소유욕이니까 감정이거든요. 이상한 아저씨」

 

 [우린 만들어지고 바로 여러 가지 지식을 흡수하도록 강요받았지. 그래서 이 소유욕이라는 것 만은 존재하는 듯 하다]

 


모르겠다. 이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드는 감정이 없다, 라는 거야 알고 있다. AI니까.

 

하지만 자신의 이 감정은?

 

과연 이드가 자신을 떠나면, 자신은 무슨 기분이 들까?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날, 자신은 이드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복잡해진 머릿속을 진정시키듯 이스가 생수통을 따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삼켰다.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자, 라는 기분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이드와 있을 수 있으니까.

 

물론, 쭉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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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하게 분량이 많군요...

 

분량도 그렇고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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