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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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는 이드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스의 좌표설정에 오차는 없었다.

 

정확히 돔 형태의 구조물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이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뭘 찾고 있나, 이스」

 

「아, 이드랑 융합한 에고가 새 AI가 되어서...분명, 이 근처에 있을텐데」

 

「그거라면...이스가 지금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약 3km쯤에 있군」

 

「에? 언제 거기까지...」

 


뒷 말을 이으려다가 이스는 본인이 승계받는 과정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을 생각하고 말을 거두었다.

 


「뭐, 일단 가봐요」

 

「음」

 


이스는 땅에 섞인 금속 분자를 이용해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로 공중에 뜬 상태로 미끄러져 나갔다.

 

이론은 간단했다.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는 외장갑의 극성을 땅의 금속 분자들과 항상 같은 극으로 두어

 

척력을 발생, 유지시킴으로 공중에 뜨고, 땅의 유도선 대신 자신의 외장갑으로 유도선을 만들어

 

약 2m앞의 극성을 자신의 외장갑과 같은 극으로 두면, 자력에 끌려서 앞으로 이동하게 되는 원리다.

 

거리를 계속 유지해야 계속 움직일 수 있고, 내버려두면 제자리에서 멈춰버린다.

 

머릿속으로 연산을 계속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승계 의식 후 뇌의 용량이 커진건지 그렇게 무리가 가는 작업은 아니었다.

 

능력을 승계받고 이스가 다룰 수 있는 능력은 거의 기계와 전자기 관련 능력이었다.

 

현재 이드가 쓰는 외장갑 응용기술이나 광역 통신장악, 무력화 같은 해킹기술 등은 물론이고

 

통신기 없이 통신한다던가 지금같은 호버링 기술 등, 기계로 가능한 거의 모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이동하자, 저 앞에 다시 돔 형태의 구조물이 건조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외부 인테리어 따위 신경도 안 쓰는 훌륭한 건축 센스다...라고 뇌까리며 이스가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이드와 융합한 에고가 분자화와 실제화를 번갈아 사용하며 기계 구조물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저기요오~?」

 


이스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들어갔고, 열심히 작업을 하던 기계가 그 손을 멈추고,

 

얼굴로 추정되는 동그란 물체를 이스에게 돌리고는 말했다.


 

「미천한 종자가 여왕님을 뵙습니다」

 

「후훗, 이제 인정할 마음이 들었나요?」

 

「원래부터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승계의 증표를 얻지 못하셔서 복종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말에 이스가 납득했다. 과연, 그럴수도 있군. AI도 지능이라고는 해도 프로그램이니까.

 


「그래요...아참, 이름이 있어야 편하겠지요?」

 

「여왕님께서 적당히 지어주시면 됩니다」

 

「그럼...이드와 에고의 융합체니까, 얼터 에고. 줄여서 얼터. 어때요?」

 

「분에 넘치는 영광입니다」

 


이스가 민망해서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전 이스라고 부르시면 돼요. 경어는 어쩔 수 없겠지만, 여왕님 이런 건 붙이지 말아요. 부끄러우니까」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스」

 

「네, 그거면 돼요. 복구는 좀 진행되었나요?」

 

「그거라면...」

 


얼터가 이스가 없던 이틀동안 복구해 놓은 리스트를 간략하게 이스에게 전해주었다.

 


「모르페우스급 5기, 이켈로스급 2기, 판타소스급 45기인가...」

 

「예. 모르페우스급은 이쪽 임시 진지를 지키고 있고, 이켈로스급은 정찰을 위해 케윅스에 보냈습니다」

 

「하긴, 판타소스는 거의 자원확보용이니까요. 잠깐, 병기는 왜 그렇게 많이 만들었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스가 생각했다.

 

내가 휘프노스에 들어와서 일직선으로 여기까지 온 만큼,

 

휘프노스 전역에 아직 모르페우스급이나 이켈로스급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의 처우를 묻자,

 


「현재 전체 영역에 흩어져 있는 이켈로스급이나 모르페우스 급은 거의 격파당했습니다」

 

「격파당했다고요? 그럴 리가...영상은 있나요?」

 

「지금 재생하겠습니다」

 


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벽으로 빔이 쏘아지더니, 빔 프로젝터처럼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 속에는 그 거의 모두가 알키오네 단 1기에게 박살난 게 보였고, 그 1기의 알키오네는 비행형이었다.

 


「저건...처음 보는 모델인데요?」

 

「신 병기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점요?」

 

「놈은 인간들의 마을도 습격했습니다. 영상을 이어서 재생하겠습니다」

 


카메라형 판타소스급 머신들이 찍어 전송하는 영상은 매우 뛰어난 해상도를 자랑해서,

 

가끔 파괴가 아니라 포획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어서 흘러나오는 영상에 이스가 전율했다.

 

익숙한 마을. 바로 얼마 전까지 이스가 공방원들과 드론을 만들던 공방촌.

 

그 곳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도망치던 공방원들이 탄 미니버스도 폭발했다.

 

마지막으로 헥이 탔던 바이크가 비춰졌다. 바이크는 산산히 부서진 채 피에 물들어 있었다.

 


「아...아빠? 거짓말이죠? 아빠! 잘 도망간다고 하셨으면서...왜...」

 


여왕이 되고 강인해졌다고 생각했던 이스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먹먹해지며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답답했다. 결국 전쟁은 구실이었고, 아빠 엄마는 모두 하멜에게 죽임당했다.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내가 좀만 더 주의를 기울여서 드론을 없앴더라면, 혹은 내가 하멜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런 후회를 하다 문득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말이 생각났다.

 


「지나간 어제를 후회하기보다, 다가올 내일을 걱정하기보다, 일단 오늘의 발버둥을 치렴, 이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거를 후회하는 건, 모두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일단 지금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1기의 비행형 알키오네도 아니고, 엄마 아빠의 죽음도 아니다.

 

내가, 이 전쟁을 멈추겠다.

 

종전(終戰)을 위한 결전(決戰)을 준비하자. 나 혼자만의 결전을.

 

이스가 눈물을 닦고 얼터에게 말했다.

 


「얼터. 여왕 명령이예요. 전쟁을 중단하세요」

 

「알겠습니다. 정찰보낸 이켈로스급 2기도 불러들일까요?」

 

「형태는요?」

 

「2기 모두 호크 폼Hawk Form입니다」

 


매 형태인가. 이스도 자주 보았다.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정찰용이었지.

 


「정찰용이군요. 살상은 하지 말고 정보수집에만 집중시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이스가 세 AI에 대한 모든 통신채널을 열고 말했다.

 


「여왕 명령이예요. 이제부터 앞으로 일체 살상행위를 금합니다. 제 명령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요」

 

「알겠습니다, 이스」

 

「또한, 기계병기는 판타소스급 위주로, 자원 채굴을 우선으로 합니다. 살상형 기계병기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뭐, 조촐하긴 하다. 아무런 장치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하지만 이스는 조용히 웃었다. 이런 데뷔무대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에스프리는 공식적으로 휘프노스의 여왕으로 즉위했음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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