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화

 

 

 

 

 

(설정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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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읽지 않으신 분은 이야기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이스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몸이 붕 뜬 느낌을 받고 눈을 뜨자, 헤르미아 행성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자신은 허공에 떠 있었고, 몸은 반투명해져 손 뒤의 풍경이 비쳐 보였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자 천천히 하강을 시작했고,

 

그렇게 착지한 곳은 한 공원이었다.

 

공원에는 한창 놀다가 돌아가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몇몇의 아이들이 보였고,

 

그 중 붉은 머리의 소녀가 문득 공원 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라고 생각했다.

 

소녀의 눈이 커지더니 이리로 뛰어온다.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 소녀를 쳐다본다.

 

소녀의 동공은 정확히 이스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스를 볼 수 없는 듯 했다.

 

이스가 멍하니 서 있자, 소녀가 이스의 바로 앞까지 와 손을 내밀었다.

 


 [내가...보이니?]

 


이스가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 생각이 들린 듯 붉은 머리의 소녀는 끄덕였다.

 


 [응!]

 


그렇게 말하는 듯 했지만, 소녀의 목소리도 이스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 작은 손을 잡고 싶다. 라고 생각한 이스는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무심하게도 소녀의 손을 통과하고 허공을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가 겁을 먹은 것인지 혹은 실망한 것인지, 그 자리에 서서 울음을 터뜨렸다.

 

겁을 먹은 건 아닌 듯 했다. 소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달려와 소녀를 다독였고, 이스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소녀와 아이들이 공원을 떠난다. 소녀의 등이 들썩이는 걸 보아 아직 울고 있는 듯 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이스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인상과 깊은 의문만 남긴 채, 이스는...

 


「여왕님, 여왕님」

 

「으...응?」

 

「얼른 일어나세요! 벌써 아침이라고요? 아침 식사는 꼭 하셔야 된다고요?」

 


웃는 얼굴로 아침부터 면박을 주는 피니를 보았다.

 

꿈이었구나. 그건...

 

보통 사람들은 꿈을 꾸면 내용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이스도 그랬다.

 

하지만 이 꿈만은 생생하게 기억났다. 어제 일어났던 사건과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문득, 피니의 머리색이 붉은색이라는 게 기억났다. 꿈의 그 소녀는 피니를 많이 닮아 있었다.

 

피니가 차려 준 아침을 맛있게 먹으며 이스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피니. 파일럿이 되기 전엔 뭘 했니?」

 

「네? 그냥, 떠돌이 공방촌 소속이었는데요? 11살 때 파일럿 재능이 발견되서 오르카로 불려왔고요」

 

「그래? 그럼 아닌가 보네...」

 

「뭐가요?」

 

「아니, 사실...꿈을, 꿨는데」

 


피니에게 오늘 꾼 꿈 이야기를 전부 했다. 그 소녀가 피니를 닮았다는 것도.

 

피니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가리며 숨을 들이켰다.

 


「저도, 요즘들어 그런 꿈 꿔요...전 꿈에 여왕님을 닮은 예쁜 언니가...」

 

「그게 언제부터였니?」

 

「그러니까, 저희가 헤르미아에 다시 돌아온 후 부터...」

 

「난 오늘이 처음이긴 했는데...그리고 말이지」

 


어제 관측한 반투명한 인간형 물체에 대해서, 그리고 페르소나에게 들은 말도 이야기했다.

 

꿈이 아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게 모두, 현실...이었다고요?」

 

「응. 그럴 가능성이 있어. 피니나 내가 봤던 건 그쪽 차원의 나와 피니...였겠지, 아마도」

 

「정확하다. 역시 자네는 총명해, 에스프리」

 


식당에 열린 게이트로 페르소나가 들어오며 끼어든다.

 

딱히 아침식사를 방해받은 느낌도 아니었으므로 자연스레 동석을 권유한 이스는,

 

1인분의 식사를 추가로 준비해달라고 피니에게 지시한 뒤 페르소나에게 말했다.

 


「바로 어제 흉기를 들이밀던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듣다니, 영광이네요」

 

「자네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에게 흉기를 들이밀고 있지 않은가」

 


이스가 들고 있던 포크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웃고는 말했다.

 


「후후, 그것도 그렇네요. 것보다, 정확하다는 말씀은요?」

 

「어제의 사건도 자네가 오늘 겪은 그것과 비슷한, 아니 동일한 현상이라는 말이지」

 

「즉, 이어진 차원의 인물이 꿈을 꾸는 동안, 반대쪽 차원으로 넘어간다...?」

 

「정확히는 넘어가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 가 되겠군」

 


이스가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고는 말했다.

 


「그러면, 딱히 위해를 가하거나 그런 건 없다는 거 아닌가요?」

 

「맞아. 어제는 나와 같은 특수한 케이스를 말했을 뿐, 보통 사람에게 위해는 거의 없지」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피니가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받은 페르소나가 피니에게 예를 표하고 포크를 집어들며 말했다.

 


「자네는, 오늘 꾼 꿈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나?」

 

「음...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몸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요」

 

「그럼 그 상태로, 자신 본인을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을 해 봤나?」

 

「어떤 세계인지도 몰랐으니까요. 아마 다음번에 같은 꿈을 꾼다면 해 보지 않을까요?」

 


페르소나가 왼손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같은 꿈을 꾸게 된다면 한번 시도해 보도록. 아마 장벽 같은 걸로 막혀 있을 거야」

 

「장벽요?」

 

「그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녀석이지」

 

「사건의 지평선은, 그거 아닌가요? 그 블랙홀의」

 


평소 쓰이는 의미의 사건의 지평선을 떠올리며 이스가 말했다. 페르소나가 말을 받았다.

 


「자네는 블랙홀의 그 경계면을 말하고 있는거군」

 

「네. 다른 의미가 있나요?」

 

「우리 차원의 학문에는, 상대성 이론이라는 게 있어」

 

「상대성 이론요?」

 

「그래. 그리고 그 학문에서 정의하고 있는 사건의 지평선이란 의미는, 좀 틀리지」

 


사건의 지평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사건의 지평선이란,

 

[그 내부나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반대쪽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말한다.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가 탈출할 수 없는 구역의 경계이다.

 

블랙홀을 예로 들어보자면, 블랙홀의 외부에서 내부로 물질이 유입된다.

 

하지만, 내부의 물질은 그 빛조차 빨아들이는 중력 때문에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그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설명을 진지하게 듣던 이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럼 화이트홀[1]은요? 저희가 평소 사용하는 워프라던가」

 

「우리 차원으로 가져가면 말 그대로 엄청나게 진보한, 외계 과학이 되겠지」

 

「호오...한번 가져가보고 싶은데요?」

 

「가능은 하다」

 


이스가 놀랐다. 가능...하다고?

 


「실제로 우리 차원에 외계 과학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꽤 존재한다. 거의 군수품이지만」

 

「헤에...」

 

「아까 못했던 설명을 마저 하지. 그 꿈을 오래 꾸게 되다 보면 점점 반투명해졌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이스와 달리 페르소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쪽 차원의 자신은 그대로 있고, 이쪽 차원의 자신은 꿈을 꾸고 있을 때 그쪽 차원으로 넘어가버리게 된다는 거지」

 

「즉...이쪽 차원에서 사라진다? 잠시동안?」

 

「그래. 하지만 그게 꿈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었지? 그 인지하지 못한 상태가 오래되면 어떨 것 같지?」

 

「음...현실이라고 인지하겠죠?」

 


페르소나가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 사람에게는 그쪽 차원도, 이쪽 차원도 전부 현실이 되는 거지. 그러면 모순이 발생하겠지?」

 

「그렇겠죠」

 

「세계의 섭리라는 건 모순을 용납하지 않아. 결국 한쪽 차원의 자신만 남아버리겠지」

 


땡그랑. 이스가 포크를 놓쳤다. 당황해서 말한다.

 


「그, 그럼...이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요?」

 

「아니. 본인의 그것이 꿈이라고 확실히 인지한다면 그렇지 않겠지.」

 

「그럼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차원융합에 의한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꿈을 꾸게 될 거야.
그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이 꿈이라고 확실히 말해줄 사람이 없다면...」

 


으으...일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어...

 

어쨌든 현재까지 사건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페르소나의 말에 따르면 그 차원붕괴라는 현상도 몇 천년에 걸쳐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했다.

 

괜히 지금 신경써서 손해보는 게 아닌가...

 


「첫 차원붕괴의 전조인, 반투명한 사람이 보이고 나서 72시간 안에 무슨 사건이 일어난다 했죠?」

 

「그래. 그것이 사건의 지평선이 가진 한계점이니까」

 

「그 말은, 72시간 내에 누군가 반대쪽 차원의 자신과 접촉한다면...」

 

「맞아. 그게 사건이지. 섭리가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차원을 융합하기 시작할 거야」

 


이거였구나. 페르소나가 걱정하고 있던 게.

 

단순히 차원을 넘어 온 페르소나를 본 차원으로 보낸다고 끝날만한 문제가 아니잖아...

 


「으으...무지 복잡하네요. 일단 식사를 마무리하고 얘기를 계속해야겠어요」

 

「그건 나도 바라던 바군. 이 아가씨의 식사는 참 맛있어 보이는데, 말하느라 입에 대지도 못했으니 말야」

 


그러면서 둘은 부지런히 포크를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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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주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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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이트홀 : 시간적으로 반전된 블랙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

사건의 지평선으로부터 물체를 끊임없이 뱉어내는 원천으로 행동한다.

아인슈타인의 로젠의 다리 이론(웜홀 이론)때문에 블랙홀의 반대개념으로 생겨난 이론상의 천체.

스티븐 호킹의 주장에 의해 힘을 잃은 이론 중 하나. 본 작에서는 웜홀 이론을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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