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652&iskin=webzine&l=355937

 

 

 2

 

 

*

 

그래서 오늘 밥 먹고 왔는데, ‘다음사람의 아버지가 와서는 프론트를 뒤엎은거 있지.”

 

산은 오늘 밥을 먹고 나서 일어났던 일을 어머니에게 들려주었다. 말을 할 때 마다 멸균복 헬멧에 김이 서렸다. 어머니도 역시 호흡기 때문에 입이 가려져 있었지만 눈웃음만으로도 표정이 보였다. 저번 주에 보러 왔을 때 보다 팔다리가 말라붙어 있었다. 마치 뼈마디가 살점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동반자살을 원하는 마냥 암세포는 그녀의 어머니 속에 덕지덕지 붙어 독한 약을 같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거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주삿바늘이 덜 꽂혀있던 오른팔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이완된 근육은 도리어 그 팔을 더 슬프게 했다. 산은 그 손을 잡아서 침대에 내려준 뒤 그녀의 옆에 앉아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바깥 돌아가는 이야기라던지, 철웅이 이야기라던지. ‘결혼’, ‘다음사람’.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제외한 이야기를 정해진 시간 내에 말했다. 두 모녀의 투명한 벽 사이엔 김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녀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온다고 말 한 후 특수관리실 밖을 나왔다. 멸균실을 나오자 뜨거운 바람이 훅 하고 불었다. 장의원의 시원한 냉방과는 달랐다. 직원들은 부채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녀를 반기는 사람은 전담 의사였다. 펄럭이던 부채의 방향을 달리해 그는 인사를 대신했다. 가볍게 웃는 그에게 그녀도 응해주었다.

 

요즘 각 시설에 주어지는 냉방비가 적다는 농담으로 시작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그는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이런 말로 마음을 푼 뒤에 시술을 행하는 장의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그는 익숙하게 복잡한 학명으로 몸을 숨긴 약물들과 치료법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반복 치료된 것들이었다.

 

동음이의어들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고 어필하는 그의 모습이 괘씸했다. 그녀가 일반인이었다면 저 말들은 마치 듣는 사람에게 놓이는 진정제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의 입장을 생각하니 참을 인 자를 하나 안 새겨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석한 언어를 듣고 있을때, 산에게 직구와 같은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사람 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불린 쌀이 가래떡이 되어 나오듯이 쭉쭉 나와야할 해석과정에 차질이 생겼는지 어절단위로 끊어진 단어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음사람은 그녀가 만나고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란 친밀한 단어와 다음사람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만나니 이상하게 연결 지어져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지가 않았다.

 

 산은 의사에게 되물었다. 이미 그녀와 그의 입장은 비슷한 직업을 가진 두 계층의 담론에서 궁금한 것이 있어 학습지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달려온 학생과 교사로 변해있었다.

 

 “?”

 

 “‘다음사람. 저기 밖으로 나가서 보시면 장의원이라는 시설이 있어요. 요즘은 죽는 것도 , 아니 살아나는 것도 때깔 곱게 되살아나는 게 보기에도 좋은지라.”

 

 그가 가리키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미 다음사람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그녀는 장의사 산이 아니라 아픈 엄마를 보러온 딸 이산이었다. 불규칙적으로 의사가 말을 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거렸다.

 

, . 그렇게 치료를 하고 약을 드셨는데.”

 

 믿기 싫은 그녀를 앞에 두고 그는 안경을 닦았다. 호흡을 고르는 과정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어머니다음사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한 손으로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긍정적으로 그 두 단어를 짝지어 줄려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장의원의 치료허가서를 들고 오신다면 투약을 중지하고 바로 그 쪽으로 치료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시간을 주셨으면 해요.”

 

 “. 그럼 다음 주 면회나 언제라도 생각이 드신다면 연락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화장품으로 쌓인 벽을 뚫으려하는 바람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다음사람의 부패해가던 살 냄새가 섞여있었다. 코를 막았다. 지금이라도 카페로 철웅이를 부르고 싶었으나 한참 알콩달콩한 분위기에서 뜨뜻애뜻한 분위기로 변할만한 저녁인지라 눌러 놓았던 그의 번호를 취소하고 택시를 불렀다.

 

 ‘2분 내에 옐로 레이크 택시가 도착합니다.’

 

 작명 센스는 아직 과거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 황천택시. 새로 데뷔한 데스메탈밴드 십이지장. 놀이동산 황혼에서 새벽까지’. 황천택시는 다음사람들이 모여 운영하는 택시회사였다.

 

 말 하나가 쉽게 커지고 굴러가는 소셜 네트워크 덕에 정말로 황천을 건넌다.’ ‘어디를 말하든 도착점은 28번 국도다.’ 등등 별의별 소문이 횡횡하는 택시회사였지만 그녀는 일종의 보상 혹은 자신이 치료한 다음사람을 보기위해 여기를 불렀다.

 

 “어으어~.”

 

 턱 빠진 특유의 목소리가 나자 그녀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사람의 몸 상태를 훑어보았다. 직업병이었다. 턱 근육이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교살로 되살아났는지 목 주변에 피가 고여 썩었던 상흔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숨 쉬는데 지장이 있는지 내쉬는 숨이 거칠었다. 숨을 쉬기 힘들어지면 몸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었다. 걱정이 든 그녀는 명함을 하나 꺼내 그 상태를 최대한 정중하게 적었다.

 

 차는 4륜 사운드를 장착 하지도 않은 신형 호버링 차였다. 상용화가 덜 되었고 안전의 위험성 때문에 반강제로 ‘4륜 자동차가 내는 소리를 분명히 삽입했을 건데 소리가 없는 건지 아님 그녀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다음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소형 환풍기의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비슷한 자세로 생각에 잠겨있거나 노래에 빠진 대기열 속에서 그녀는 차 안에 들어갔다.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떠다니는 유령마냥 호버링 차는 도로 속에 녹아들어 목적지를 향해 갔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노란 타액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샛노란 위스키를 마시고 싶었다.

 

 이미 혓바닥에는 위스키로 코팅이 된 얼음이 재주를 넘고 있었다. 허상을 핥는 느낌에 그녀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렇게 기대가 가득하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유령을 닮은 호버링 차는 어느덧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고 비용을 지불했다. 지폐 사이에 그녀의 명함을 숨겨서 건네주었다.

 

*

 

 철웅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재주라기보다는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엄청나게 활용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는 사람의 눈빛을 보면 아무리 몇 겹 가면을 썼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홍채 주름의 변화라던가, 그로 인한 동공의 크기 변화라던가. 눈썹, 눈주름, 눈알, 동공이 모여서 당사자의 뇌에 몰래 전하려던 걸 훔쳐 본 걸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능력으로 그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해 왔다. 또한 자신을 보듬어주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초코파이 같은 말을 들으면서 연애를 했고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하는 것 같다는 씨씨티비 같은 말을 듣고 차였다.

 

 늘 가던 카페에서, 평소와는 다르고 이름도 카페 모카 슈거리 쇼콜라 크리미 휘핑 쿠키쿠키 라떼라는 복잡한 설탕덩어리를 마시던 산의 눈을 보았다. 평소라면 그를 어떻게 굴리고 골려먹을지 두근두근하는 눈이었을 것이다. 그는 산에게 말을 건넸다.

 

 “산 누님. 산 누님.”

 

 “?”

 

 “오늘 시술이 잘 안 되었나요. 아님 다음사람보호자한테 꾸지람 들었나요. 무슨 일이에요.”

 

 산은 휘핑크림을 휘휘 젓던 빨대를 공중에 휘둘렀다. 입술을 덮고 있는 크림을 닦지도 않았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머리가 녹아내릴 정도로 달고, 가격은 영혼이 빠져나가고 먹을 때 마다 크림이 덕지덕지 묻는 음료를 왜 먹는지 재고했다.

 

 “어머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요.”

 

 “웅아.”

 

 “네 누님.”

 

 “넌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그녀는 빨대로 있는 힘껏 음료를 빨아 마셨다. 혀가 화들짝 놀라고 누군가 던진 각설탕을 연타석으로 맞는 느낌의 단맛이었다. 왼쪽 구석에 있던 충치 난 어금니가 찌릿했다. 왠지 고통이 계속되어야 제 정신이 돌아올 것 같아 혀끝을 움직여 충치를 계속 자극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면회 이틀 전, 어머니에게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길 것을 제안한 것이다. 말 그대로, 치료가 이제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잘 아는 장의원에 연락을 취해 본다는 의사의 말을 끊고 그녀는 고민에 잠겼다. 철웅은 말했다.

 

 “최신식 시술을 활용해 더 나은 다음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죠. 장의사잖아요.”

 

 단 것을 먹으면 피로와 함께 스트레스도 해소된다는 저 멀리 바다 건너 영어 발음이 굴러가는 한 대학교에 듣기만 해도 중후한 중년의 백인 아저씨가 안경을 닦고 있을 것 같은 연구원의 연구 결과는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혀로 계속 충치를 자극했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파이는 주름을 보고 다시 단 음료는 마실 이유가 없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몇 주 전에도 어린 남자애 시술했잖아요. 이미 고전적인 의미의 죽음은 많이 퇴색되고 두 번째 삶이라 하잖아요. 저기 밖에 봐요.”

 

 ‘다음사람이 친구들이랑 같이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이나 다음사람이나 하나같이 빛이 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한밤에 만나면 몸 자체가 디스코볼이 될 것 같은 복장이었다. 직업병이 도진 그녀는 목에서 쇄골까지의 피부에 초록반점이 새겨진 것을 보았다. 초록 반점은 살이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최악의 징조였다.

 

 “30대 정도 된 것 같은데 벌써부터 초록 반점이 생기고 있네. 누가 시술한 거야.”

 

 철웅은 그 무리를 보고 불나방 무리가 떠올랐다. 평소다운 말이 나와서 그는 안심이 들었다.

 

 “누님, 오늘 스케줄도 뜸하신 것 같은데 제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해봐. 언제 불려갈지 모르는 위태로운 스케줄이지만.”

 

 철웅은 박수를 한 번 짝 치더니 양 팔을 벌렸다. 판소리의 고수와 같은 역할이었다. 박수를 친 순간부터 잠시 현실은 잊고 이야기에 빠진 사람으로 변하라는 메시지이다. 그녀는 턱을 괴었다. 집중하는 자세였다.

 

옛날 옛날에 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그 말은 당근밭을 즐겁게 노닐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 다리가 말 머리에게 질문했어요. 너는 맛있는 당근을 맛볼 수 있어서 좋겠다. ·(생략)”

 

 마치 유치원 교사가 한 페이지 당 문장이 한 개인 그림책을 펼쳐 읽어주는 억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떠야하나 생각했다.

 

 

그래서, 다분히 작자의 의도가 담겨있어서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는데, 웅이는 진짜 말을 잘 못한다니까.”

 

 “, 노리고 만들어 낸 이야기 맞아요. 그리고 저 중학교 때 논설대회에서 1등 했었거든요?”

 

 “강산이 1.5번 뒤집히고 정권이 세 번 바뀐 시절 이야기는 뺍시다. 철웅 학생. 그래서 교훈은?”

 

 “우리는 말의 머리에요. 시대의 흐름은 말의 다리고요. 만약 말이 다리가 없으면 걸어다니지도,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할 거 에요. 10년 전 눈에 보일 정도로 다음사람들이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우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음사람들이 생겨난 원인? 다음사람이 사람을 무는가? 보통은 후자를 먼저 생각했어요. 복지정책과 안전관련 지침은 원인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어요. 우리도 다리에 올라 탄 것이에요. 원인 분석은 다른 사람이 하고 있고요.”

 

 그녀는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빨대를 빙빙 돌렸다. 여기저기로 덩어리가 튀어서 철웅은 빨대 끝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움직임을 멈췄다.

 

 “너 진짜 말 못한다. 누가 이런 바보 같은 어버벙이한테 사귀자고 했냐. 재미도 없고, 이야기 전달도 안 되서 끝에 해설이나 하고. 제발 작가한다고 하지 마라.”

 

 그는 옆에 있던 냅킨으로 주변과 손등에 흩뿌려진 크림들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이미 장의사거든요?”

 

 “어허, 말대꾸. 이 누나가 타임머신만 있으면 장의사 되는 것도 막았을 텐데.”

 

 그녀가 마시고 있는 음료수만큼이나 달달한 맛을 내는 진담 반 농담 반이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혀로 충치를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자신이 이번에도 그녀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줬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다. 어느 음식에 넣어도 맛있을법한 감미료였다.

 

 그리고 대화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마스킹 효과라고 하던가.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 때문에 묻혀있던 주변의 자연음들이 들려왔다. 은은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자연음들은 열이 붙어있던 대화보다는 잔잔하면서 사람을 안정시켰다.

 

 방향을 잃은 그녀의 눈은 주변으로 향했다. 꾸준히 자신을 바라보는 철웅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점도 있었다. 거리에 수많은 다음사람들이 인파 속에서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다음사람도 있었고 이미 안에서 내장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 배가 볼록한 사람이 있었다.

 

 최근 수술한 25호처럼 그녀의 시술은 사람과 가까운 다음사람이었다. 장의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실력이었다. 분명 어머니도 이전의 삶을 다음사람으로도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이 시술 가능할 것이라 그녀는 입을 닫고 혀를 움직여 가슴에 그 말을 다시 읊조렸다.

 

 그는 하나하나 그녀의 동작과 동공의 움직임을 보았다. 시술에 있어서는 최대한 이전 사람의 특징을 살리는 무서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장의사였지만 사람들을 보는 눈은 마치 돌잔치를 맞은 아버지처럼 허둥지둥 거리지만 따뜻했다.

 

 

 

 

------

 

 다음주에 만나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