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는데,
내 몸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하고 있다.

어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조금 무리를 한 탓인지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

힘겹게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한쪽 뺨이 부풀어 오른 것이
모르긴 몰라도 어제 신나게 달린건 분명해 보인다.

세면대에 있는 칫솔과 치약으로
양치질을 하는 도중에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를 받기 귀찮지만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이 시간에 누구지?"

조금의 의구심을 가진채 내방으로 향했다.
내 기억속 모르는 번호인듯 한데
궁금한 것은 못참는 성격이라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조용한 숨소리.
대답이 왜 없는걸까 한참을 멍하니 기다리다.
이내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아까 왔던 그 번호 그대로.

"여보세요? 전화를 거셨으면 말씀을 하세요"

잠시 후에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저기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요..?"

어제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분명,
어제 술자리에 나왔던 사람임에 틀림 없는 것 같은데
누구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인사치레로 답은 해야겠기에 일단 그렇다고 했다.

"아..네..그쪽은 잘 들어가셨나요?"

사실 어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나는 무심코
이렇게 대답을 해버렸다.
조금 지났을까 수화기 너머로 난데없이 들리는 울음소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갑자기 울으시면 제가 좀 난처한데..
무슨일 때문에 울으시는 건가요?"

궁금하기는 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저기..어제 일 기억 안나시나요..?"

어제 일.
어제 일이 과연 뭐길래 지금 이 여자는
주말 아침부터 나에게 이렇게 전화를 하는걸까?

"어제 일이요..? 제가 기억이 잘.."

상대 여자도 흐느낌을 멈춘듯 차분한 어조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제 일 전혀 기억 안나세요?"

그건 내가 알고 싶은 일이다.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니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네. 전혀 기억이..혹시 제가 그쪽에게 실수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지만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길 바랬다.
내 인생에 술취해서 여자에게 실수를 했다는 것이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화이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아뇨. 실수라기 보다는 사고인듯 보여요"

아뿔싸.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속을 맴돌고 있다.
제발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다.

"네? 방금 사고라고 하셨나요? 실례지만 어떤 일인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이 바짝 타들어가며
들고 있던 물컵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물을 마시자마자 들려오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어제 저한테..그러니까..고백하셨잖아요..
아침까지 생각해보고 허락 해달라고..
마음이 결정되면 전화를 걸기로 말이죠.."

머리속에 대종이 울린듯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정신이 순간 멍해졌다.
내가 고백을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자가 나에게 대쉬를 했으면 했지
내가 먼저 고백을 해본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혹시 어제 저희가 몇시쯤에 술자리를 쫑냈나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만
질문은 터무니 없이 평범한 것을 해버렸다.

"음..어제 새벽2시쯤이요..
그리고 어제 저희집에도 바래다 주셨는걸요?
택시 타고 가시는걸 보기는 했는데.."

그랬다.
이제 생각이 났다.
이럴때면 꼭 내 기억력은 도무지 무쓸모다.
필름이 끊긴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걸 기억하는지.
이야기의 전말은 이러했다.

어제 지인들이 모인 술자리에
처음보는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술에 만취해 그 여자에게 추파를
시도때도 없이 날렸나보다.
그 여자도 싫은 내색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우리 둘은 지인들의 응원 속에
단둘이 남게 되어 한잔 더 하다가
내가 무심결에 내뱉은 고백을
그녀는 머뭇거렸던 것이었다.
이유인 즉슨, 술에 취해서 하는 고백을
여자들은 잘 믿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푸훕..이제 기억이 나셨나 보네요?"

장난스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두손 두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은영씨 그러니까..
어제 밤에 제가 두서없이 고백해서 많이 놀라셨죠?
미안해요..사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아니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내 모습이 망가지는 와중에도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내심 기대를 하게 되는건 남자의 본능인가보다.
혹여 내 인생에 있어서 최초로 여자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 결과가 차이는 시나리오라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런 생각이 머리속을 자꾸 헤집고 다녔지만
왠지 모르게 이 여자라면 그래도 상관 없을것 같았다.

"음..일단 제 대답은 NO에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었졌다.
예상을 못한바는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굴욕적인 일이 벌어지다니.
내심 기대한만큼 실망도 커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수화기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저는 당신을 알고 싶어요.
어제의 당신이 아닌 오늘의 당신,
그리고 앞으로의 당신을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그녀였지만,
나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바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것도 감지덕지라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수화기에 대고 말을 했다.

"그럼..

























































함께 알아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