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을 본 나는 이 한타의 패배를 직감했다
아니. 애초에 한타가 이뤄지지도 않았다
리신이 빠르게 녹은뒤 텔포를 캔슬할줄 몰랐던 레넥톤마저 녹아버려
그대로 미드 2차까지 허망하게 밀리게 되었다
맵은 어두웠고 바텀과 탑은 언제 밀렸던 것인지 1차는 물론이고
2차타워의 체력마저 거의 없었다
25분의 상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처참했다
잭스의 타워철거력에 대해 욕설을 동반한 감탄을 금치 못하는 와중에
채팅창은 리신에 대한 욕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며
정치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레넥톤마저 필사적으로 리신의 가족사를 파헤치고 있었다
스스로의 피지컬에 너무나 자신감이 과했던 탓인가
그는 팀원들의 극딜에 더이상 게임을 이어나갈 힘을 얻지 못한 나머지
탈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우리의 전장은 패색이 짙었고
모든것은 순조로웠다
이즈리얼이 서렌버튼을 누르고
이어 레넥톤이 항복에 찬성을 하였다
한명이 나간 판국에 뭘 고민하는가
나는 다음판을 위해서 찬성을 누르려고 했다
그 순간 쓰레쉬가 반대를 눌렀다
당연히 칼서렌이라는 생각에 afk를 시전하던 이즈리얼이
놀라서 키보드를 부여잡으며 쓰레쉬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지만
이대로 질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출인지
쓰레쉬는 전과 같이 채팅을 치지도 않았으며
단지 우물에 있는 이즈리얼에게
말없이 랜턴을 던져줄 뿐이었다
모두가 할말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때
나는 다시 미드라인으로 돌아가서 시야장악을 시작했다
이왕 하는 게임 손놓고 시간 때우는게 억울했던 이즈리얼과 레넥톤은
투덜대며 각자의 라인으로 돌아갔고
한명 나간 것을 전쳇으로 씨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방심했던 것일까
상대 루시안이 미드에서 혼자 알짱거리며 cs를 먹는게 보였다
물론 잭스는 탑을 쭉쭉 밀어재끼고 있었으며
니달리는 레오나랑 바이랑 바론쪽에서 시야를 먹고 있었다
그 순간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내 뇌리를 감돌았다
'루시안을 잘라야 바론을 막을수있다!'
다행히도 나는 풀스펠이었고 미니언에 둘러쌓여있던 루시안은 도망칠 엄두도 내지못하고
나의 칼 아래 쓰러졌다
바론을 트라이하던 상대는 딜이 부족한것을 느끼고 내가 다가가자 황급히 귀환을 탔다
시간을 잠시 번 나는 제발 리신이 돌아오길 간절히 빌었다
승리에 대한 집념이 현실세계의 리신에게 전해졌던 것일까
30분쯤 바론을 와딩하러 간 쓰레쉬가 짤리자 마자 리신이 재접속했다
돌아온 탕아, 리신은 파일럿이 바뀌기라도 했는지
아무말도 하지않고 조용히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코어는 29대 11,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중요한건 지금 쓰레쉬가 잘렸고
리신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상대가 막 바론을 시작했을때
리신은 민병대를 신고 바론을 크게 한바퀴돌아서
와딩에 걸리지 않고 안전하게 레드 부쉬에 몸을 숨겼다
어떠한 와드도 없었다
어떠한 장신구도 없었고
어떠한 스펠도 없었다
단지 리신은
조용히 q를 던지고 q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Smite
내 몸속을 차오르는 바론 버프를 느끼며 나는 크게 웃었다
그렇다, 리신이 해낸 것이다!
5명의 딜을 홀로 감당하며 장렬히 산화하는 그 와중에 나에게 보내던 그 미소를 나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레넥톤과 이즈리얼은 리신에게 찬사를 보내었고
공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사기충천하여 전쳇으로 리신의 클라스를 외치기 시작했다
멘탈이 나간 상대는 억제기를 부수러 오려 하였으나
바론버프를 두른 우리는 거세게 저항하였고 2번의 한타를 무승부로 마무리 하였다
2번의 한타에서 킬을 쓸어담고 죽어버린 나와 이즈리얼은 하나씩 하나씩
코어템을 채워가며 승리에 대한 희망을 키워나갔다
어느덧 스코어는 35대 37
모두들 만렙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 니달리의 잉여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2킬더 앞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상대에게는 용5스택이 있었고, 수많은 타워를 철거 하였지만
우리에게는 용1스택과 상대의 미드2차까지 밖에 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것만 해도 어디인가
용이 직접적으로 게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약을 한번 팔고
묵묵히 게임을 하고 있던 팀원들을 한번 다독여 준뒤 마지막 한타를 준비했다
상대 잭스와 바이는 끊임없는 무리로 인해 kda가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 둘의 템트리는 우리팀을 순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바이와 잭스는 나와 이즈만을 노리겠다는듯 딜템과 탱템의 밸런스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었다
루시안은 인피 스태틱 라위에 피바에 격노신발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팀도 이에 전혀 꿀리지 않았다
레넥톤은 란두인과 썬파, 가갑을 두르고 어디 때려볼테면 때려보라는 식으로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었고
이즈리얼의 옆에는 리신과 쓰레쉬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던 시간이 흘러갔다
마지막 한타는 레오나의 갑작스러운 이니시로 시작이 되었다
내가 서있는 자리 정중앙으로 레오나의 궁이 떨어지고 나는 게임을 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상대 바이와 잭스, 루시안의 평타에 순식간에 반피가 까이고 니달리의 창이 나에게로 쇄도하는 그 운명적인 순간
리신의 펜타킥이 터졌다
동시에 적진으로 돌진하는 레넥톤의 모습
모든것이 내 눈에는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란두인을 갔던것이 신의 한수로 작용했던 것일까
아니면 리신의 펜타킥이 신의 한수로 작용했던 것일까
한턴의 버스트딜을 견뎌낸 나는 아직 떠있는 적들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거기에 이즈리얼의 5인궁와 더불어 프리딜까지
내가 지상에 발을 디뎠을때, 모든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나는 감히 넥서스를 부수고 있는 팀원을 바라볼수 없었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 게임을 승리할수 있었을까
마지막 한타에서 역적이 될뻔한 나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흥건한 땀을 털어내며 우리는 모든것이 끝났음을 느낄수 있었다
모든 롤 유저는 명심해야한다
팀원이 물리거든 절호의 기회라 여겨라
그 사이에 끼어들지말고 뒤에서 찔러라
만약, 그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적과의 역량에 큰 차이가 난다면
그 자리에서 그 동료는 죽게 내버려둬라
그러면 방법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