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4월의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지만, 야수냥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필드싸움은 하스스톤의 모든 것이었다. 필드를 제압하는 자가 게임을 승리하고, 상대 필드를 정리하는 것은 필수적이었으며, 그렇지 못하면 그것이 패배로 직결되었다. 필드, 필드, 필드. 그렇기에 영능 순위를 매기면 항상 (뒤에서) 3대장으로 꼽히던 것이 필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사제, 전사,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사냥꾼이었다.



야수냥꾼이 등장하기 직전, 유행했던 덱들은 어떤 덱들인가? 완전체로 평가받고 있던 미드레인지 드루이드, 후반의 최강자 방밀전사, 그런 방밀전사와 드루이드에게 상성상 유리한 주술사와 거인흑마. 이들과 전통의 흑마위니가 어우러져, 꽤 좋은 밸런스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위니 < 미드레인지 < 빅덱 < 위니. 


필드싸움만이 일어나는 하스스톤판에서 메타의 순환은 저 싸이클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위니덱들의 초반 러쉬는 드루이드에게 더이상 큰 위협이 아니었으며, 그런 드루이드를 후반에 압살하기 위해 거인흑마가 유행하였고, 평균코스트가 높은 거인흑마는 성비트와 같은 극단적인 위니덱의 초반 러쉬를 견디지 못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순환하는 이 메타는 그럼에도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덱이 나올 수가 없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으니. 5개월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당시의 덱들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다. 지금 보아도 그런데, 하물며 당시에는 어땠겠는가. 메타는 정체되었고, 더 이상 발전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우려를 단숨에 깨고 혜성같이 등장한 것이 ㅡ 지금까지도 공공의 적으로 평가받는 바로 그 덱, 야수냥꾼이었다.




당시 야수냥꾼이라는 덱은, 굉장히, 엄청나게 이질적이었다. 당시의 통념으로는 냥꾼 덱의 유일한 형태 - 유일하게 '합리적인' 형태 - 는 돌냥이었다. 왜냐하면 냥꾼의 영웅능력은 필드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냥꾼의 영능과 시너지를 내는 유일한 전략은 미친놈처럼 명치만 죽어라 들이박는 것이고, 그것이 극대화된 것이 바로 돌냥이었다. 당시의 돌냥은 이 명제에 아주 충실하여 지금은 쓰지 않는 돌진멀록, 눈속임 등을 필카로 여기며 2장씩 채워넣었다.


그런데 야수냥꾼이라니? 야수 페널티 때문에 스탯까지 깎인 하수인들, 낮은 평균코스트 때문에 여타 미드레인지에 밀리는 뒷심, 거기에 필드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영능까지. 냥꾼으로 미드레인지를 하느니 차라리 드루이드나 주술사를 하겠다는게 낫겠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덱을 처음 사용한 유저들, Lifecoach와 kolento 등의 유저들은 그들의 방송에서 그야말로 미친듯이 이겨댔다. 어마어마한 고승률로 순식간에 EU, NA 랭크 1위를 찍어 버린다. 

그 말도 안되는 강함에 매료된 유저들은 모두들 카피해서 돌려 보지만, 절대 그 승률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딴 덱으로 랭크 1위를 찍지? 난 랭크 순위권은 고사하고 전설 달기도 어려운데?!?



그렇기에 야수냥꾼은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덱으로 평가받았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ㅡ 무엇보다도 야수냥꾼의 운영이 기존 덱들과 엄청나게 달랐기 때문이다.



야수냥꾼은, 당시 유일하게 명치를 이용한 운영이 필수적인 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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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가 30일 때 상대 필드에 처리하기 껄끄러운 허수아비가 올라온다면, 나에게는 그냥 무시한다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내 피가 3이라면, 어떠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그 허수아비를 반드시 이번 턴에 죽여야 한다.


이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명제를 극대화시킨 것이 바로 명치를 이용한 운영이다.
피가 10이어도 내 필드몹을 강제로 정리하게 할 수 있다면?
피가 15라도?
20이라도?






냥꾼은 각종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상대 명치를 노릴 수 있다.
확정 2딜의 영능으로부터 시작해 3코 5뎀이라는 극효율의 살상명령, 4코 6뎀 리로이, 무기, 덫, 개풀늑대.....
워낙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패에 그 데미지가 있을 확률도 제법 높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가 30일때의 사바나 사자와, 피가 15일때의 사바나 사자의 느낌은 완벽하게 다르다. 

30피일때 사바나 사자는 그냥 좀 처리하기 껄끄러운 하수인에 지나지 않지만, 15피일때 사바나 사자는 한 턴만 살아도 게임이 끝날 위험이 있다. 사자가 한 턴 살아서 6딜을 내 명치에 꽂는다면 남은 피는 겨우 9. 살상명령+ 영능 2방으로 간단히 죽어버리는 피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상대는 고작해야 6코 타이밍에 가지고 있는 모든 필드 하수인과 제거 마법을 사용해서 공체 10/9라는 초 오버스펙 카드를 반드시 처리해야만 하고, 이는 냥꾼이 아주 손쉽게 필드를 먹을 수 있는 발판이 되며, 스노우볼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만일 처리하지 않는다면? 사자가 명치를 치고, 다음턴에 똑같은 딜레마가 반복된다.



이것을 위한 선결조건은? 사자가 나오기 전에 상대 피를 20, 혹은 그 이하로 깎아 놓을 것.
2코에 2뎀이라는, 영능 중 유일하게 코스트대비 효율이 높은 냥꾼의 영능은 이 선결조건을 만족하는데 최적이었다.

여태껏 '필드에 영향을 전혀 끼치지 못한다'고 평가받으며 무시받았던 냥꾼의 영능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강력하게 필드에 영향을 미치는 영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제껀 이런 메커니즘을 지닌 덱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의 대세덱들은 필드를 먹는게 유일한 가치였고, 명치는 필드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명치덱이라고 불리웠던 덱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엄밀히 말해서 미친놈처럼 명치만 치다가 패가 다 떨어지면 끝, 이라는 원시적인 메카니즘이었다. 돌냥, 명치전사, 명치법사... 모두 다. 혹자는 위니흑마도 명치덱이 아니느냐고 묻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고.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위니흑마는 예나 지금이나 극단적인 필드 중심의 덱이다.)



물론 4월 야수냥꾼의 강함을 단순히 명치를 이용한 운영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멍청한 짓일 것이다. 4코스트 독수리+개풀이라는 하스스톤 역사상으로 따져봐도 한손에 꼽힐 만한 사기콤보가 있었으며, 6코 최고존엄이라는 공체합 19의 사바나 사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잘 융합하여 야수냥꾼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기덱의 반열에 올린 것은 명치를 이용한 운영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운영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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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운영법을 가장 먼저 흡수한 것은 야수냥꾼의 뒤를 이어 초사기덱으로 거듭난 주문도적이었다.

몇몇 유저들은 말한다. 주문도적은 옛-날 옛적부터 있었거든요?

물론 맞다. 하지만 예전의 주문도적은 가젯잔놀이, 그것 하나에만 모든것을 건 도박적인 덱이었다.
주문도적이 완전체로 거듭난 것은 명치운영을 흡수하면서부터이다. 어떻게? 하수인을 더 많이 넣음으로서.


선견자 2장과 비룡 2장. 여느 덱에나 들어갈 법한, 딱 코스트 값 하는 하수인들이다. 그런데 왜 단순히, 이들의 추가로 주문도적이 갑자기 초사기덱이 되었는가? 


주문도적에는 6코 12딜, 8코 18딜이라는 그야말로 SS급 피니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압도적인 피니시의 존재 때문에,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킬각의 두려움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고작해야 3/3, 4/4 하수인이 필드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음 턴에 20이 넘는 피가 한번에 까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문도적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전투의 함성 다 쓴 3/3, 4/4 깡통 하수인을 울며 겨자먹기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한두번은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비효율이 된다. 그래서 주문도적은 하수인을 늘렸고, SS급 덱이 되었다.






드루이드도 늦게나마 명치운영을 도입하였다.

자군야포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5월달만 해도 자군야포를 2세트 쓰는 것은 패가 말린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509&l=219114 참조. 말려서 별로라는 유명인의 댓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Strifecro가 자군야포 2장을 쓰면서 그 강함을 증명하였고, 그 이후로는 모두가 자군야포는 필수적으로 2셋을 넣게 되었다.


자군야포 2셋의 의미는 단순히 피니시를 2번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패에 있던 없던, 나는 패에 14딜이 있어! 하는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1세트만 넣을 때에는 확률이 지나치게 낮았다. 30장 중 딱 2장이 모여야 하니까. 하지만 2장씩 넣게 되면서 확률이 2배로 올랐고,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자군야포를 심하게 의식해야 한다.


메커니즘은 똑같다. 초반의 어그로 플레이를 통해서 상대 피를 어느 정도 빼 놓고 

이 허수아비 정리 안하면 너 킬각임^^

이라는 메세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비효율적인 하수인 정리를 강요하고, 지속적으로 하수인을 올리는 것만으로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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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 명치를 이용한 운영은 모든 덱들의 가장 기본적인 운영법이 되었다.
주술사, 전사, 심지어 흑마까지....

낙스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피니시 없는 덱은 덱 취급조차 못 받았다.
사제, 성기사가 나란히 8,9위를 다투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낙스 신카드가 출시되고, 블리자드는 필드싸움을 더 중요시하겠다는 의중을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로데브, 유령 기사의 출시, 도발 카드의 강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로데브가 모든 덱에 다 들어가고, 누더기골렘 채용한 덱이 점차 늘어가고 있어도, 현재 하스스톤은 명치 메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겨 나갈 수 없다. 


명치를 이용한 운영은, 분명 필드만 보던 운영보다 한발짝 진보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명치만 죽어라 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며, 명치-필드-손패를 모두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아주 세련된 운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ㅡ










나는 냥꾼이 싫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