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시

 하늘에서 별들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쏟아질 듯 흐르는 은하수와 희고 고운 달이 떠오른 밤하늘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평생에 걸쳐 한 번 만들어 낼까말까 한 걸작을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매일 각각 다른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 밤하늘의 풍경을 만끽하며,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취리히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었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행인도 없었고, 불이 켜진 가게도 드물었다. 반짝이는 하늘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만 없었더라면 시간이 멈췄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루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끝자락이었다. 

 ‘일주일 만이네.’ 

 그녀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지난 일주일 간 연구를 마무리 지으랴, 환자들을 돌보랴 너무 바빠서 집에 갈 시간조차 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부로 큰 매듭은 지어진 셈이었다. 힘든 수술도 무사히 마쳤고 연구 마무리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들었다. 말린꽃으로 만든 책갈피였다. 손에 든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엄마를 치료해줘서 고맙습니다, 메르시 선생님!]
 “후후.”

 한 여성의 수술을 무사히 마쳤을 때, 어떤 아이가 준 선물이었다. 앙겔라 박사는 이 선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값어치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걸 보고 있으면 그녀에게 활짝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에. 그 미소야말로 그녀가 의사 생활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이번 생물 나노학 연구가 끝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장비가 개발될 터였고, 그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더 빨리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터였다. 

 그녀의 거주지는 병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였다. 그녀의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한 거주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명예나 금전에 그리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은 듯 그녀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일은 오후 출근이겠다, 오늘은 기분 전환도 할 겸 예전에 큰 맘 먹고 샀던 입욕제로 호화로운 목욕이라도 해볼까……. 앙겔라 박사는 벌써부터 따끈한 욕조에 한 발을 들여놓은 듯 조금 풀어진 표정을 지으며 현관문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희미한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문고리로 향하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느긋했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 딱딱해졌다. 그녀가 피 냄새를 잘못 맡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피 냄새가 날 곳이 아니었다. 집 현관에 뭘 한다고 피 냄새가 나겠는가. 그녀는 망설이며 살그머니 현관에서 떨어졌다. 현관 아래쪽으로 본 적 없는 신발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모양으로 봐선 군화인 듯 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앙겔라 치글러 박사가 전직 오버워치 요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단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그녀는 수많은 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에, 오버워치가 수많은 비리와 불화로 결국 해체될 때도 사회로부터 거의 비난을 받지 않았던 요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전직 오버워치 요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누군가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명한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현관문만 봐서는 누가, 몇 명이나 침입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지원 쪽 요원이었지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껏해야 간단한 호신술이나 권총 사격 정도만 배운 정도였다.

 ‘…경찰을 불러야 할까.’

 그녀는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집 안에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몇 명이나 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런 판단은 너무 위험했다. 최악의 경우 총격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분명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 적이건, 아군이건 그녀는 사람이 다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혼자서 일을 처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그녀 선에서 피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예의 그 피 냄새가 한층 더 짙게 흘러나왔다. 아파트 내부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좋아, 앙겔라. 이제 재빨리 달려가서 불이 켜고, 집 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제압하는 거야. 잘 되면 좋으련만.’

 그녀는 가물가물한 호신술 하는 법을 애써 떠올리며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현관으로 들어섰다. 안에서 수상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타악!

 그녀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갑자기 달려 전등 스위치를 부서져라 눌렀다. 그리 넓지도 않은 방 안에 불이 확 하고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시야에 소파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운이 좋았다. 침입자로 보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속전속결만이 살길이라는 듯 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몸을 움직여 그 정체불명의 침입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판단 미스였다. 

 쿵!

 “꺅!”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불의의 습격에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는지 달려오는 그녀의 발을 툭 걸더니 그대로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쓰러뜨려버렸다. 마치 예정된 수순이라도 되는 양 너무 자연스러워서, 앙겔라 박사는 순간 자기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녀는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몸을 버둥거렸지만 그녀를 잡고 있는 침입자의 손은 단단하고 억셌다.

 “현관 앞에서 참 오래도 망설이더군. 이쪽이 기다리다 지칠 정도로 말이야.”

 그녀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날 놔 줘요!”
 “그러지.”
 “……?”   

 한 마디 하자마자 침입자는 순순히 그녀의 위에서 물러났다.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어진 앙겔라 박사였다. 그녀를 습격하러 왔다거나 하여간 모종의 이유가 있었다기엔 너무 순순히 물러났기 때문이었고, 단순한 좀도둑으로 보기에는 행동이며 기세가 뭔가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서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올려다봤다. 

 키가 그녀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는 더 큰 장신의 남자였다. 다부져 보이는 몸 하며 차림새를 보아하니 군인이거나 용병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은 꽤 엉망이었다. 어디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옷에는 검댕과 그을음이 잔뜩 묻어있었고 거동은 불편해보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바로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은 이상한 가면으로 가려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낯이 익은 앙겔라 박사였다.

 “…누구죠? 도둑질을 하러 온 거라면 번지수 잘못 찾으셨어요. 돈 될 만한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요. 그렇다고 제가 오버워치 요원이었다고 습격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내 꼴이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로군. 금세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남자의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앙겔라 박사였다. 가면으로 가려지지 않은 남자의 이마 쪽으로는 검에 베인 듯한 상처가 드러나 있었고, 그 위로 있는 머리는 백발이 성성했다. 그녀는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 이 정도 체격에 머리가 하얗게 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죄송한데 정말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저 지금 피곤해요. 장난치는 거라면 화 안 낼 테니까 그냥 말해줘요.”
 “흠, 그럼 이러면 알아보겠나?”

 남자는 그러면서 가면을 벗어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앙겔라 박사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할 뿐이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에 돌에 낀 이끼처럼 덥수룩이 얼굴을 덮은 허연 수염. 인고의 세월이 느껴지는 듯한 잔주름. 그리고 잔잔한 호수처럼 깊디깊은 두 눈동자.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녀의 미간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리고 표정으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챈 남자는 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이래도 못 알아보는군. 할 수 없지. 이것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뭔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조금 하고서는,

 “오랜 만이군……. 앙기(Angie).”

 그녀가 두 번 다시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이름 하나를 툭 내뱉었다. 

 앙겔라 박사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 다른 의미로. 그녀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제외하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아냐, 그럴 리 없어요.”
 “…….”

 그녀는 눈앞의 인물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핸드백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을 뻗어 남자의 얼굴을 만졌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령도 아니었다.

 “그럴 리가…하지만, 당신은 죽었다고…….”
 “죽었지. 어떤 의미로는.”
 “유령 치고는 꽤나 건강해보이는 걸요. 치료가 좀 필요하겠지만.”

 조용히 말하는 남자에게 답하는 앙겔라 박사의 목소리엔 울음기가 촉촉하게 스며있었다. 심정이 복잡한 모양인지, 그녀는 반가워서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모리슨, 다시 만나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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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메르시 솔져 팬픽입니다.

1. 시점은 솔저 단편 애니메이션 사건 직후.

2. 앙기는 앙겔라의 애칭입니다. 위대한 구글의 힘.

3. 전부터 생각하던거 써서 올려봐요.

4. 아마 세 조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내일이 시험인데 잘하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