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시

 한 달이라는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든,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그녀의 문젯거리 따위는 개미 발자국만큼이나 사소한 것이었다.

 그녀의 근신은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유야무야 잊혀졌다. 평소 앙겔라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의료 활동에 매진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오버워치 내부에서도 세계 언론에서도 그녀의 근신을 일종의 휴가라고 보고 호의적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휴가 같은 팔자 좋은 소리는 할 수 없으니까 대신 근신이라는 것으로 휴가를 줬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퍼진 통념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앙겔라는 오로지 잭 모리슨의 안위만을 생각하다가 다른 환자들을 내팽겨쳤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진실에 거의 근접한 자는 단 한 명, 의료 부팀장으로 있는 헤르만 박사뿐이었다. 그는 외과의였지만 성격은 오히려 심리 분석가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비록 육신은 나이가 들어 노쇠했지만, 그의 눈만은 늘 예리한 메스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사교성은 없다시피 하지만 막상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사려도 깊다는 걸 알았다. 그가 마음만 먹고 그녀와 모리슨의 관계를 터뜨렸다면 근신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면서 앙겔라에게 경고의 의미로 근신 처분을 받게 했다. 의사가 개인적인 정에 휘둘려 환자를 놓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는 꾸지람일 터였다. 앙겔라는 그런 그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마냥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똑똑

 “들어와요.”
 “…앙기.”

 왜냐하면 모리슨이 그녀가 왜 근신 처분을 받게 되었는지는 조금만 조사해보면 금방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걸 막을 수도, 막을 권리도 없었다. 앙겔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군복 차림의 그를 미소로 맞이했다. 방이 좀 어두워서 그의 얼굴이 흐릿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저녁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근신 이후로 거의 잊고 산 그녀였다.

 탁

 “꼴이 말이 아니군.”

 모리슨이 그녀 대신 거실의 불을 켜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집안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싱크대에서는 그릇이며 인스턴트 용기가 잔뜩 쌓여 있었고,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만 먹고 잔 모양인지 소파 주변엔 온갖 잡동사니와 음식 찌꺼기, 쓰레기가 가득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술병과 맥주 캔이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을 켜자 그 참상이 여실히 드러났고, 앙겔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좀 치워 놓을 걸…….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깜빡깜빡 하네요. 나도 나이를 먹었나.”
 “내가 말하는 건 집안이 아니라 너야, 앙기.” 모리슨이 미간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리 와. 지금 네 꼴이 어떤지 좀 보라고.”

 그는 반강제로 그녀를 손목을 잡고 거실 한 쪽에 있는 전신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끌려갔다. 그의 힘이 센 것도 있었지만 앙겔라의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것도 있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별로 살이 찐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골이 상접해서, 며칠 굶은 사람처럼 두 볼이 푹 파이고 눈은 퀭했다. 아마 뭘 먹든 제대로 소화도 못시키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한 게 그 이유일 터였다. 거울을 통해 앙겔라는 모리슨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미안해요, 정말……. 계속 사과만 하게 되네요. 하지만 저, 괜찮아요. 당신이 와서 기뻐요. 오늘은 자고 갈거죠?”

 앙겔라는 모리슨의 목에 두 팔을 두르며 그를 유혹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오히려 처연함만이 가득했다. 모리슨은 그녀의 단호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내렸다. 앙겔라는 여전히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뭔가 떳떳하지 못할 때마다 그녀가 늘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모리슨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지금 온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앙기, 빙빙 돌리지 말고 본제로 들어가자고. 내가 다친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져서 아무 것도 못했다는 게 사실이야?”
 “…….”
 “앙겔라, 부탁이니 말해줘. 난 네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아.”

 그녀는 시선을 피했지만 모리슨은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사시나무 떠는 것처럼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군용 코트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다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고맙다고. 그저 그 한 마디만 듣고 그의 가슴에 안겨 시원하게 울면 모든 응어리가 씻은 듯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죄를 덮어 놓고 무작정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신이…….” 앙겔라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너무 걱정되었어요. 전날 밤에 분명, 분명 당신은 죽지 않는다고, 걱정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피투성이가 돼서 돌아온 당신을 보니까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나만 그런 꼴이 되었던 건 아냐. 나보다 더 심하게 다친 사람도 있었어. 목숨이 1분 1초를 다투는 중상자도 있었다고. 그런데 내가 걱정된다고 다른 환자들을 내팽개쳐? 앙기, 넌 늘 네가 꿈꾸는 이상의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네 결심이 고작 이 정도야?”
 “그럼 어떡해요? 당신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당신은 그럴 수 있어요? 나랑 다른 사람 10명 중 한 쪽만 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날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나도 널 선택하겠지. 그리고 네 위치와 내 위치가 뒤바뀌어서, 그때는 네가 내게 화를 내고 내가 용서를 구할 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었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짐을 서로에게 전가시켜서, 서로를 자신의 면죄부로 삼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짐을 덜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우린 그저 서로의 짐을 서로의 등으로 옮기고 있었을 뿐이야.”

 딱 잘라 말하는 모리슨의 태도에, 앙겔라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어, 앙기.”
 “안 돼요!”

 모리슨의 그 말에, 앙겔라는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매달렸다. 

 “안 돼요, 안 돼요 잭! 제발,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다시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맹세해요. 그러니 날 버리지 말아요. 난 당신 없이 살 수가 없단 말이에요!”

 악몽이 다시금 의식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비명과,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그녀의 목을 졸라매는 듯 했다. 그의 위로가 없다면 그녀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잭, 내가 매력이 없어졌나요? 건방지게 굴었나요? 전부 사과할게요. 당신의 취향에 꼭 맞는 여자가 될게요. 투정도 안 부리고, 말도 잘 듣고, 일도 잘 할게요!”
 “…….”
 “한 마디만 해줘요. 사랑한다고, 말실수였다고 한마디만 해줘요, 잭! 제발…….” 앙겔라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흐느끼며 말했다. “제발 말해줘요, 제발…….”

 하지만 그녀가 기대하는 대답은 오지 않았다. 대답 대신 온 것은 그녀를 가만히 밀어내는 모리슨의 손길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해, 앙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힘들었어. 하지만 당신이라면 이해해주리라 믿어.”
 “싫어요, 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모르겠단 말이에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잭…….”
 “안녕, 앙겔라.”

 그는 그녀를 한 번 힘껏 안아주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현관 닫히는 소리가 너무나 멀리 느껴지는 그녀였다.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아주 끔찍한 악몽. 

 깨어나고 싶었다. 깨어나면 그의 품 안일 테고, 그의 턱을 장난스레 꼬집고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할 테고, 아침을 먹으며 잡담을 할 테고, 본부로 가기 전 살짝 뜨거운 입맞춤을 할 테고, 서로에게 힘을 주며 하루를 시작할 테고. 꿈에서 깨길 바라는 그녀였지만, 동시에 그녀는 이것이 꿈 따위가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참한 기분이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참했던 건, 마음 한구석에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는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
  

 현재, 지브롤터.

 “후후.”

 그런 시절도 있었지.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모리슨의 볼을 쿡 찔렀다. 한 팔을 그녀에게 내준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왜?”
 “옛날 생각이 나서요. 당신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거 기억나요?”
 “기억 안 나.”
 “그때 나 엄청 울었어요.”
 “…기억 안 나.”

 애써 부정하는 모리슨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앙겔라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오랜만에 안기는 그의 품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따스했다. 좀 상처가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녀가 본 적이 없는 상처가 참 많이도 생겨있었다. 처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 심한 흉터로 남아있는 상처도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그가 솔저76이라는 무법자로 걸어왔던 길이 얼마나 거칠기 그지없었는지 보며주는 단면 같았다. 

 “모리슨, 만약 그 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야. 네가 죄책감 따윌 가질 필요 없어.”

 모리슨은 앙겔라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강철처럼 딱딱한 몸이었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앙겔라는 그가 오버워치 몰락 이후에 몸에 무언가 시술을 받았다는 걸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분명 미국에서 극비리에 추진했던 슈퍼 솔저 프로젝트가 틀림없었다. 그는 그 시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가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측에서 그 건으로 그녀에게 비밀리에 접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가 그 시술에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앙겔라였다.

 “당신이 살아 있어줘서 정말 고맙고, 또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뻤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뭐랄까, 부끄러움은 잠시 저 한쪽에 밀어두기로 했죠. 지금 말하는 거지만 저 아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요?”
 “그래, 나도 꽤 당황했지. 네가 그렇게 대담하게 옷을 벗을 줄 상상도 못했거든.”
 “그런 것 치고는 고삐 풀린 종마처럼 날뛰었으면서 뭘요.” 앙겔라가 그를 찌릿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에 그동안 다른 여자 한 명 만난 적 없는 거예요? 저 두세 번 기절할 뻔한 거 모르죠? 하여간 남자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면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한다니까…….”
 “그런 것 치고는 너도 즐기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모리슨이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예기치 못한 역공을 맞은 앙겔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여간 예쁘게 말하는 구석은 조금도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이런 남자에게 반한 네 잘못이지.”
 “못됐어, 정말.”

 그녀는 복수하려는 듯 그의 턱을 세게 꼬집었지만 이내 힘을 빼고 그 까슬까슬한 턱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그녀는 지금껏 그 이외의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태도를 보아하니 그 역시 이성을 만나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서로가 닮은꼴이었다. 서로를 잊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격렬하게 타올랐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잔불에 불과했다. 그러나 잔불이라 해서 불씨가 죽은 건 아닌 것처럼, 그들 역시 조용히 그때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때 그 시절처럼.”
 “그러기에는 우리 둘 다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지.”
 “그리고 혼자 서는 법이 너무 익숙해지기도 했고요.” 앙겔라는 가만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아요,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하지만 모리슨, 전에도 말했지만 난 언제고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거예요.”
 “…….”

 모리슨은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 그것이 무슨 감정의 발로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녀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껴안아주는 감촉은 좋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 한 쪽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모리슨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에잇.”

 겹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가 입을 맞춘 부위는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당신이 내게 돌아올 마음이 생기도록 노력할 거고요. 당신이 여전히 절 그리워한다는 걸 아니 기분이 굉장히 좋은 걸요. 그러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벌써 반나절이 다 지나갔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아테나에게 이 이상 폐를 끼칠 순 없어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 모리슨을 두고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문을 열자 새 것처럼 반짝반짝 광택을 발하는 그녀의 장비가 담긴 상자를 든 예의 그 로봇이 다소곳이 서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테나? 폐를 끼친 건 아니죠?”
 [괜찮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의 슈트를 고치려는 윈스턴을 놀릴 수가 있어서 제게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농담과 조롱의 카테고리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곧 새로운 패턴의 농담을 연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봇이 그녀가 슈트를 입는 걸 도와주는 동안, 모리슨은 아무리 로봇 앞이라지만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딱히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군복 상의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하지만 그가 담배를 피워 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새 슈트를 다 입은 앙겔라가 천사처럼 우아하게 다가와 악마처럼 그의 담배를 담뱃갑 째로 채갔으니 말이다.

 “…이봐, 앙기.”
 “못 본 새에 못된 버릇이 늘었네요, 모리슨. 담배라뇨. 그것도 제 앞에서.”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있는 이상 절대 금연이에요.”
 “거절한다면?”
 “그럼 당신의 귀여운 즐거움이 이 꼴이 나겠죠.”  

 그녀는 스산하게 말하며 한 손으로 담뱃갑을 꽉 잡아 으스러뜨렸다. 담배 개비들이 마치 내장 튀어나오는 것처럼 푹 튀어나오자 저도 모르게 어느 부위로 손이 가며 몸을 움찔 떠는 모리슨이었다. 그 모습에 매우 만족한 듯 그녀는 그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며 속삭였다.

 “다음에 제 집에 올 때는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냥 들어와요, 모리슨. 현관 비밀번호는 당신 생일에 제 생일, 8자리에요. 알기 쉽죠? 그럼 다음에 봐요.”

 그리고선 그녀는 방문을 나서며 짓궂게 한 마디 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말했잖아요. 저, 당신이 내게 돌아올 마음이 생기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전 당신에게 푹 빠져있는 것 같으니까요. 여전히 말이죠.”
 그리고선 방문은 닫혔고, 잭 모리슨은 작은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아닐 수 없었다.
 “…하.”

 그는 이마를 짚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당했다. 전쟁으로 치자면 탄약 다 떨어지고 총기는 빼앗기고 식량까지 동난 꼴이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그는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지만, 입가에는 예전 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솔저76으로서가 아닌, 잭 모리슨이란 남자의 미소가 말이다.

 “이런, 이런…앙기. 짓궂은 소악마 같으니라고.”

 그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래도 싫은 기분이 들지 않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세상에 천하의 잭 모리슨이 한 여자에게 이토록 빠질 줄이야.

 그의 가슴 속 잔불은, 어느새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로 변모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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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역시 마지막은 쎾...해피엔딩이 갑이지!

1. 끝났다!

2. 음 마무리 맘에 드는군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 아이 조으다.

3. 아쉬운 말 하나를 드리자면, 단편은 이걸 마지막으로 안 쓸 듯 싶네요.

4. 몸이 두 개가 아니고 작업속도 느려서 연재하는 거 써야 하거든요. 

5. 오버워치도 팔 설정이 많아서 좋아요.

6. 오버워치 팬픽에 대한 스토리는 3개 정도 있습니다.

1) 오버워치+어새신 크리드. 오버워치 몰락은 성전 기사단이 손을 썼다는 설정에, 시메트라를 성전 기사단으로 포섭. 시메트라의 '인류의 적은 무질서에요'라는 대사 들을 때마다 전 성전 기사단이 생각나더군요.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암살자 측은 누구로 할지 미정.

2) 오버워치+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솔저76이 의문의 의뢰를 받고 강지혜라는 한국인 소녀를 어딘가로 데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근데 강지혜라는 소녀에겐 뭔가 범상찮은 힘이 있다. 그녀는 누굴까? 그리고 그녀를 데려오라는 의뢰의 정체는?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강지혜와 잭 모리슨의 이야기.

3) 1)+2)로 오버워치+어새신 크리드+바쇽인피=대혼란



뭐 이정도 생각했고, 스토리 줄기랑 시작과 엔딩부분도 생각했고, 나름 괜찮은 스토리가 뽑힐 거 같다라고 생각했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손대면 나도 감당 못하는 장편이 될 것 같기에 포기. 그냥 제 머릿속 한켠에 고이 모셔두고 제가 심심할때마다 꺼내 볼랍니다. 나만 재밌으면 장땡.

7. 봐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8. 재밌다는 댓글이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즐겁게 감상해주길 바라며

9.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