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로운 주말의 주둔지.  지휘관이 간만에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데 머리맡에서 전화가 울린다.  집어들어서 화면을 보니 크루거의 전화다.  입을 한 번 삐죽 내밀고는 그 전화를 받는 지휘관.

"왜요?"

"왜는 무슨, 목소리나 좀 들어볼까 해서 전화했다."

"아, 예......"

대답과 동시에 하품을 하는 지휘관.  그러자 스피커 너머에서 크루거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너, 정말 안 찾아갈 거냐?"

"그 이야기는 저번에 끝난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 녀석아,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건 예의가 아니지."

"미안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저도 양보 못 합니다.  그럼 이만."

[삑-]

통화가 끝난 전화를 들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크루거.  한동안 전화기를 바라보더니 결국 깊은 한숨을 쉰다.

"이 녀석,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이번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지휘관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침대에 몸을 던지더니 눈을 비비며 크루거보다 더 깊은 한숨을 쉰다.  그렇게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있는데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

문 너머에서 나타난 건 M4A1이었다.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하려던 M4A1은 지휘관의 조금은 어두운 표정을 보고는 가슴팍까지 들어올렸던 오른손을 슬쩍 내렸다.  다른 때 보다 약간 좁은 보폭으로 지휘관에게 다가가더니 침대의 빈 공간에 자리잡고 앉는 M4A1.

"무슨 일 있어요?  살짝 들렸는데, 대표님 전화였죠?"

"응......"

"무슨 이야기인지 들려줄 수 있어요?"

"......"

M4A1의 이야기를 흘려 들은 것인지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지휘관.  그런 지휘관의 모습을 M4A1이 근심 어리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지휘관이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천천히 M4A1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  방금 무슨 말 했어?"

"정말......"

그답지 않은 넋이 나간 표정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째려보는 M4A1.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나서야 누워있던 지휘관이 밍기적거리면서 상체를 일으킨다.

"다른 팀원들은?"

"RO가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PX로 우르르 달려갔어요."

"그렇구나......  저녁식사는 어땠어?"

"......"

지휘관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은 채 볼을 부풀리는 M4A1.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그를 지긋이 쳐다보자 살짝 놀라는 지휘관.

"어, 혹시 기분 나쁜 일 있어?"

"...저기요, 지휘관......"

평소처럼 지휘관을 호칭하던 M4A1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방 문을 살포시 닫고는 다시 지휘관 옆에 앉는다.

"아니, 아젤리아."

"?!"

느닷없이 지휘관을 이름으로 부르는 M4A1.  지휘관은 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화들짝 놀라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허둥지둥하기 시작하는 지휘관과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M4A1.  지휘관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M4A1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요.  당신이 그 때의 일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사실도 알아요.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당신이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

"미안해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고.  오늘은 방해하지 않을게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M4A1의 팔을 붙잡는 지휘관.  그에게 손목을 잡힌 M4A1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다음 순간 M4A1을 홱 끌어당기더니 껴안고는 고개를 떨구는 지휘관.  갑자기 껴안겨서 놀랐던 M4A1은 지휘관의 손 끝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는 자신도 지휘관을 살포시 끌어안는다.

"미안해, 괜히 걱정이나 시키고."

"아니에요......"

"아직은 힘들지만, 계속 노력할게.  앞으로도 내가 흔들릴 때 마다 도와주겠어?"

"당연한 소릴......"

한편, 북적거리는 PX의 인파를 뚫고 간신히 캔 커피 하나씩을 사들고는 바깥의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 다른 팀원들.  아, SOP2는 커피 대신 콜라를 마시고 있다.  팀원들 표정을 살짝 살피더니 운을 떼기 시작하는 RO635.

"그러고 보니 지휘관, 며칠 전부터 좀 울적해 보이지 않아?"

RO635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응, 응.  지휘관 얼굴이 어두우니까 나도 왠지 슬픈 것 같아."

"...아마도 그 때 사건 때문이겠지?"

평소답지 않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SOP2와 진지한 얼굴로 과거 이야기에 대해 살짝 언급하는 M16A1.

"하아아......"

그리고 커피를 단숨에 비워버리고는 깊은 한숨을 쉬는 AR15.  다들 '그 때 그 사건' 이 기억나는 것인지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다들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긴다.  그녀들이 침묵하는 사이 커피는 전부 비워졌고 텅 빈 캔을 바라보던 RO635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조용히 있자.  괜히 끼어들었다가 지휘관 더 우울해질수도 있어."

[끄덕끄덕-]

텅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생활관으로 향하는 AR팀.  그녀들이 지휘관실 앞을 지나고 있는데 다들 그 앞에서 멈춰서더니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문에 귀를 대고는 안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열심히 엿듣다가 소리가 사그라들자 후다닥 생활관으로 도망치는 팀원들.  잠시 후 생활관 안으로 M4A1이 들어오자 그녀를 외면하며 애써 평소처럼 행동하는 팀원들.

"지휘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네요.  오늘은 그냥 조용히 보내는 게 좋겠어요."

"어, 응......"

팀원들은 M4A1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4명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와중에도 유효타를 챙겨가다니.  M4A1, 무서운 녀석......'

AR팀과 지휘관이 평온한(?) 밤을 보내고 있을 무렵, 크루거는 간만에 시간을 내서 페르시카의 연구실에 찾아갔다.  머리카락은 산발한 채 언제 끓였는지 알 수 없는 의문의 차를 마시고 있는 페르시카와 그 모습을 팔장을 낀 채 묵묵히 지켜보는 크루거.  페르시카의 표정을 살피던 크루거가 무겁게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아젤리아 녀석은 오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감정이 풀어질 때도 되었을 텐데 녀석 참......"

"어쩔 수 없죠.  제가 아드님의 역린을 건드려 버렸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어색하게 왜 예의를 차리고 그러세요?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하시지."

"그래도 어떻게 보면 사돈 관계인데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끄응......"

페르시카는 크루거의 경어가 아직도 낮선 모양인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음한다.  그런 페르시카의 반응을 지켜보던 크루거의 눈에 예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없었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저 향수......"

"아, 저거 말인가요?  아드님께서 얼마 전에 선물로 보낸 거에요.  내가 저걸 자주 쓰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지휘관이 페르시카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향수를 집어들고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크루거.  연구실에 밴 이상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좋다고 페르시카가 자주 사용하는 그 브랜드였다.  향수를 다시 내려놓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크루거.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페르시카도 기분이 좋은지 살짝 웃는다.  그녀의 미소가 썩어 보인다는 것은 신경쓰지 말자.

"겉으로는 쌀쌀맞게 굴어도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죠."

"이 녀석, 선물까지 보내 놓고는 왜 직접 만나는 것은 싫다는 건지......"

"어쩌겠어요.  그게 저의 업보인데.  오히려 지금 당장 총 들고 쳐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해야 할 걸요?"

큭큭 웃으면서 머그컵에 차를 한 잔 더 따르는 페르시카.  컵을 든 채 연구실 한 쪽 구석으로 향하더니 그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서서 같이 모니터를 바라보는 크루거.  그 화면에는 무언가의 설계도가 출력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의체의 설계도들입니다.  아직 임상실험은 안 해 봤지만요."

"기존 의체들과 비교하면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신경이 연결되는 부분과 인체에 직접 닿는 부분을 생체 부품으로 교체한 모델이에요.  아마도 의체 특유의 이물감이나 반응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많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죠."

말을 마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는 페르시카.  크루거의 시선은 수많은 설계도 중 의안의 설계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크루거의 모습을 보고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페르시카.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완성만 된다면 인간의 눈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 할 정도의 물건이 나올 겁니다.  생산이 시작되면......"

말을 흐리더니 크루거를 바라보며 웃는 페르시카.  일부러 뜸을 들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페르시카의 작은 장난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입을 여는 크루거.

"그 때가 되면 한 번 더 부탁하죠."

서로를 쳐다보던 크루거와 페르시카는 결국 피식 하고 웃더니 다시 조금 전의 자리로 돌아와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시각, AR팀 생활관은 장비를 점검하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장비를 다듬는 시늉을 하면서 M4A1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팀원들.  M4A1은 팀원들의 그 눈빛을 눈치채지 못 한 것처럼 보인다.  만약 눈치챘다면 저렇게 창 밖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겠지.

"하아아......"

지휘관이 걱정되는지 계속 한숨을 쉬는 M4A1.  평소같았으면 그런 M4A1의 등을 떠밀며 놀렸을 팀원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M4A1을 제외한 팀원들의 시선이 문 앞으로 이동한다.

"여어."

"엥?  지휘관?"

문 너머에는 지휘관이 큼지막한 쇼핑백을 든 채 서 있었다.  팀원들의 놀라는 소리에 이제서야 흠칫하면서 뒤를 돌아보는 M4A1.  지휘관이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토요일 저녁인데 이렇게 그냥 끝내면 섭섭하잖아.  그래서 조금 준비해 봤어."

그렇게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쇼핑백을 올려놓는 지휘관.  그 안에는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 몇 개가 들어있었다.

"이야, 이거.  카리나가 또 바가지를 씌우려고 해서 혼났다니까?  자, 그럼..."

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지휘관.  그때까지 지휘관의 눈치를 살피던 팀원들은 이제서야 그의 의도를 깨닫고는 덩달아 밝은 목소리로 그의 장단에 맞춰주기 시작한다.  M4A1은 아직도 그런 지휘관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M4A1이 아직 분위기를 타지 못하는 것을 본 지휘관이 맥주 한 캔을 집어들고는 그것을 열어서 M4A1에게 건네준다.

"...?"

맥주캔과 지휘관의 얼굴을 번갈아서 멀뚱멀뚱 바라보는 M4A1.  그 장면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M16A1이 RO635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RO635도 M16A1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AR15와 SOP2에게 신호를 보낸다.  순식간에 눈빛을 교환하더니

"마셔라, 마셔라-"

지휘관 뒤에 서서는 바람을 잡기 시작하는 팀원들.  팀원들의 서포트를 받은 지휘관이 M4A1을 바라보며 씨익 웃기 시작하고 M4A1은 급전개에 당황해서 맥주캔을 받아들더니 이윽고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푸하-!!"

결국 원 샷을 해 버린 M4A1.

"오오오오~"

M4A1의 시원스러운 원 샷에 지휘관과 다른 팀원들도 한 캔씩 집어들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기운이 오른 6명은 낮에 있었던 조금 우울했던 일을 털어내고는 신나는 토요일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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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번외편은 8지역에서 시작되는 M16A1의 개인 스토리에 대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리퀄 소설을 빨리 쓰고 싶은데,  스토리 진행이 덜 되어서 쓰지 못하는 중이지만 이렇게라도 제 아쉬움을 살짝 달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