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언론 성명을 내고 “나는 11월 28일 북한과 중국, 이란 등 10개국을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했다. 이 국가들은 ‘조직적이고 지금도 진행 중인 지독한 종교의 자유 침해’에 관여했거나 이를 용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협상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재무부와 국무부가 의도적으로 시기를 맞춰 잇따른 인권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인권 카드는 표면적으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압박이지만 그 이면엔 ‘돈’ 문제가 숨어 있다.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경제강국’ 달성을 막는 게 인권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는 경제 발전에는 세계은행(W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저개발 국가를 위해 차관을 제공하거나 기술 및 능력 배양을 지원하는 국제금융기구의 원조가 필수다. 그런데 국제금융기구들은 대부분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 문제는 테러지원국은 IMF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올렸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뒤 숨진 미국인 청년 오토웜비어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미국이 10일 웜비어를 공개 거론하면서 북한 2인자최용해 제재를 발표한 건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상을 쉽게 줄 수 없다는 메시지도 깔렸다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문제에 예민하다. 2007년 2ㆍ13 합의 때도 북한은 IAEA 사찰단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명시적으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또 미 국무부는 매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내고 세 개 등급으로 국가들을 분류한다. 북한은 올해도 최하 등급인 T3을 받았다. 16년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결정문’을 발표해 북한을 비롯한 T3 국가들에 대해 ‘비인도적 지원이나 비무역 관련 지원’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개발은행이나 IMF에 나가 있는 미국 인사들은 해당 기관이 T3 국가들의 기금 이용과 대출 요청을 거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반대투표를 할 것을 지시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국제 금융기구를 상대로 북한 같은 3등급 인권 국가들을 돕지 말라는 ‘차관 금지령’이다. 






일부 T3 국가들은 이미 세계은행의 지원이 끊긴다는 통첩을 받고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11일 발표한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을 통해서도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다. 미국의 ‘국제적 종교 자유법’은 특별우려국들과 무역 관계를 수립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생각 여하에 따라 앞으로 대북 후속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금은 북한이 미국 등과 교역을 하지 않으니 실효성이 없는 조치로 보이지만,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하면 문제가 달라진다”며 “전적으로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달린 문제로, 협상에서 미국이 진짜 히든카드로 쓸 수 있는 게 인권”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