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날 한국당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철회 방침으로 일단 협상 국면이 열렸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제1야당을 완전히 배제하고 예산안과 선거법을 통과시킨 전례 자체가 드문 데다, 일방처리를 밀어붙였을 때 여론의 역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그간 4+1 협의체를 가동하면서도 한국당의 테이블 복귀를 지속해서 요구해온 것 역시 이런 차원에서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법안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인 견해차로 인해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다. 이날 민주당은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처리와 관련해 "한국당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오늘은 내일까지의 정치 일정만 정리된 것"이라면서 "4+1 테이블도 여전히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이 훌쩍 지난 예산안은 한국당과 함께 정기국회 내에 먼저 처리하되,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오는 17일을 선거법 등 처리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 민주당의 방침이다. 군소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본회의 의결정족수(재적 295명 기준으로 148명)를 확보해둔 만큼, 한국당이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올 경우 4+1 협의체 논의를 토대로 패스트트랙 법안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려 표결처리 한다는 것이다. 또 예산안 통과 후 한국당이 다시금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임시국회에 선거법이 상정된 상태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시도할 수도 있다"면서 "만일의 경우 4+1 협의체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정리해 표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심 원내대표의 결단에 따라 일단 예산안 논의에 복귀해 실익을 취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구 의원들의 사업 예산 반영 등 필요가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원내 세력 구도에 비춰봐도 패스트트랙 법안 등 협상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국당 의석은 재적(295석)의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108석이며, 문희상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법안 상정도 표결도 한국당 단독으로는 저지가 불가능하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체제에서 시도했던 필리버스터 전술 역시 민주당이 '쪼개기 임시국회' 소집으로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심 원내대표가 오전 원내대표 선거 투표 직전 "우리는 소수다.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실 앞에서 협상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며 "투쟁하되, 협상을 하게 되면 이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국당은 이날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공수처 설치에 대한 총력 저지 의지를 다졌다. 황교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임 원내대표단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2대 악법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심 원내대표도 의총에서 "공수처법과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은 악법"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당은 심 원내대표의 '이기는 협상' 방침에 따라 현재 패스트트랙 협상의 중심축인 4+1 협의체의 힘을 빼는 데에 먼저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법 등을 둘러싼 민주당과 군소 야당들의 셈법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이 틈을 벌리고 들어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