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WTO에 따르면 상소 기구의 판사 격인 상소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오는 11일 0시를 기해 종료한다. 그러나 아직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상소 기구는 위원 '정족수' 부족으로 기능이 정지되게 됐다. 상소 기구는 본래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 3명이 한 건을 심리하고 있다. 상소 위원 2명의 임기 종료까지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았지만 한나절 만에 정족수가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는 무리수라는 게 WTO 안팎의 시각이다. 더 큰 문제는 상소 기구 마비가 상소 기구에서 끝나지 않고 WTO의 분쟁 해결 절차 전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분쟁 해결 절차는 2심제로 구성되는데 1심에 해당하는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이 판결을 내려도 당사국이 이에 불복, 상소할 경우 상소 기구의 기능 정지로 1심의 판단이 효력을 갖기 어렵다. 다행히 한국은 현재 상소 기구에 걸린 무역 분쟁이 없어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상황은 피하게 됐지만, 무역의 비중이 절대적인 입장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처지다.

















다자무역 체제 수호를 표방하며 지난 1995년 1월 설립된 WTO가 이처럼 기능 마비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미국의 '고사 작전'을 꼽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한 WTO에 대한 미국의 불만은 보호 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화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무역 전쟁' 상대국인 중국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활용해 여러 혜택을 받았다면서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명, 상소 위원 임명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본래 7명이었던 상소 위원의 수가 하나둘씩 줄어 11일 이후부터는 중국 출신의 홍자오 위원 한 명만 남게 된다. 미국은 더불어 상소 위원들이 턱없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 WTO 무력화 작업을 집요하고도 지속해서 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능 마비는 WTO 스스로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됐던 사안은 상소 기구의 판단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본래 상소 기구는 무역 분쟁 당사국이 상소한 날로부터 60∼90일 이내 상소 심리를 완료해야 하지만 이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난해 경우 상소 기구의 판결까지 평균 395일이 걸렸다는 통계치도 있다. 최장 3개월이어야 할 심리 기간이 1년을 넘겼다는 의미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은 전날 상소 위원 임명을 위해 고위급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오래전 상소 기구의 마비 상태가 예견된 상황에서도 시한 전에 풀지 못한 문제를 추진력 있게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군다나 '슈퍼 파워' 미국의 일방주의에 이 같은 뒤늦은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또한 불투명해 무역 분쟁이 다자간 합의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