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갓난아기의 비명소리가 내 귓전에 울리곤 해. 우물에 던져진 아이의 비명. 혹시 그런 소리 들어본 적 있어? 아이가 우물에 떨어지면서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데, 마치 저 깊은 땅 밑에서, 저 세상에서 울려오는 소리 같았어. 그건 아이의 울음이 아니었어.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지.... 그리고 톱으로 사지육신이 잘려나간 젊은 남자의 주검.... 우리 빨치산 병사의 주검.... 그런 일을 목격하고 임무를 수행하러 갈때면 내 심장은 오로지 한 가지 염원으로 불탔어.
'놈들을 죽이겠다. 죽일 수 있는만큼 최대한 주이겠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주겠다.'
포로로 잡힌 파시스트들을 보면 어떤 놈이든 달려들어 멱살잡이를 하고 싶었어. 목을 조르고 싶었어. 내 두손으로 목을 조르고 내 이로 갈가리 물어뜯고 싶었어. 놈들이 내 손에 있었다면 그냥 죽이지 않았을 거야. 그건 놈들에게 너무 편안한 죽음이니까. 무기나 소총 따위로는 결코 죽이지 않았을 거야.


안토니나 알렉셰에브나 콘드라쇼바





니나 페트로브나 사코바 중위의 부대가 독일 마을로 들어갔다. 살아있는 것은 없었다. 산 사람들은 걸어서든 자전거를 타서든 모두 달아난 후였다. 곳곳에서 독을 마시고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목숨을 끊은 독일인들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모든 독일인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죽일 것이라고 한 괴벨스의 선전은 효과적이었다. 소련군들은 독일인들의 주검을 보며 드디어 승리했단 느낌에 기뻐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신을 볼때는 그들도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을 다 뒤진 끝에 결국 생존자가 발견되었다. 할머니 하나만이 얌전히 소련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니나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우리가 승리했어요."
그 말에 할머니는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둘이 러시아에서 전사했다오."

"그게 누구 때문이죠?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많이 죽은 줄 알아요?"

"히틀러..."

"히틀러 혼자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신네 아들들이, 남편들이 그런거라고요."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련군은 독일 깊숙히 진군해 들어갔다. 그리고 깨끗하게 닦인 도로, 크고 멋진 농가들, 화려한 커튼과 화분들을 보고 병사들은 입을 벌렸다. 값비싼 식기와 사기 그릇들... 생전 처음 보는 최신 가전제품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커피잔들, 새하얀 시트와 뜨거운 커피, 건빵과 수건, 화장지를 보며

병사들은 처음에는 독일의 부유함에 할말을 잃었다가 울부짖으며 그것들을 모두 때려부쉈다.
"이렇게 잘 사는 놈들이 우리나라엔 왜 쳐들어왔단 말이냐!"





"나는 우리가 독일 땅을 밟더라도 놈들에게 동정심을 품는 일 따위는 없을 줄 알았어. 독일인이라면 그게 누가 됐든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 나는 놈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쓰라린 상처들로! 왜 내가 놈들의 아이를 불쌍하게 여겨야 해? 왜 나는 놈의 어머니를 안됐다고 여겨야 하지? 왜 나는 놈의 집을 파괴하면 안되는 거냐고. 놈들은 불쌍히 여기지 않았는데... 놈들은 서슴없이 우릴 죽였는데.... 불을 지르고,.. 그런데 나는? 나...나....나는...왜? 대체 왜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놈들의 아내를 보고 싶었어. 그런 아들들을 낳은 놈들의 어머니도 궁금했지. 놈들의 아내와 어머니들은 우리 눈을 어떻게 바라볼까? 나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싶었어."




소련군이 도착하자 나치의 수용소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풀려났다. 러시아인들부터 폴란드, 프랑스, 체코 등 온 유럽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붉은 군대의 병사들을 끌어안았다. 깊은 포옹을 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중에 러시아에서 끌려온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있었다. 그 아가씨들은 전쟁 기간 내내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런데 가장 예쁜 아가씨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이 그녀를 강간했고 결국 임신을 한 것이었다.


"독일놈의 씨를 집으로 데려갈 순 없어! 안 데려갈거야!"
다른 아가씨들이 그녀를 달래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그녀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목을 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독일 땅으로 간다.... 그러면 곧 알게 되겠지...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놈들이 사는 곳은 어떤 땅인지, 그리고 집들은 또 어떤지. 정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일까? 놈들도 우리처럼 평범한 삶을 살까? 전선에 있을 때 나는 두번 다시 하이네를 읽지 못할 줄 알았어. 내가 좋아하는 괴테도. 바그너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어..... 전쟁 전까지 나는 음악인 집안에서 자랐어. 특히 독일 음악들을 좋아했지. 바흐, 베토벤. 아 위대한 바흐! 하지만 나는 이 사랑하는 이름들을 내 세상에서 지워버렸어. 나중에 화장터를 보여주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 말이야.... 아, 산더미처럼 쌓인 여자 옷가지며 아이들 장화... 회색 잿더미.... 그 재들을 들판으로 내가서 양배추에 뿌리고.... 상추에 뿌렸다는 거야.... 정말이지 더 이상 독일 음악을 들을 수가 없더라고.... 내가 다시 바흐에게 돌아가기까지, 모차르트를 다시 연주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어."


아글라야 보리소브나 네스테루크





배가 터진 독일군 병사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내장을 질질 흘리며 기어가던 독일군 병사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땅을 움켜잡았다. 그걸 본 소련군 병사가 달려들어 그를 마구 걷어찼다.
"여긴 우리 땅이야! 우리 땅 잡지 마! 너네 땅으로 꺼져!"





어떤 대위가 있었다. 그 대위의 가족들은 나치에게 모두 살해되었다. 그 이후로 대위는 자신이 독일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살지 못할까봐 매일 몸서리치며 두려워했다. 독일인들이 불행과 고통으로 울부짖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지 못할까봐. 폐허가 된 그들의 집들을 보지 못할까봐. 그는 살아남았고 드디어 독일땅을 밟았다. 하지만 독일땅을 밟은 순간 그는 풀썩 쓰러졌다. 주위 사람들이 그를 부축했을 때는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대위를 떠올려. 그 대위는 왜 죽었을까?"


타마라 이바노브나 쿠라예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