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구도' 스포츠라는 분야에서 라이벌 구도는 참으로 흥미롭다.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좋은 라이벌은 항상 흥미로운 경기를 만들어냈으니까. 대표적인 라이벌 구도를 꼽자면, 프리메라 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는 엘 클라시코가 있다. 가상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다. '더 파이팅'의 일보와 일랑을 생각할 수도 있겠고, 당장 롤 안에서만 생각해도 가렌과 다리우스 같은 챔피언을 생각할 수 있다.

CJ 블레이즈와 나진 소드의 관계는 사실 완벽한 정통 라이벌 관계는 아니다. 과거 MIG와 EDG가 쌍벽을 이루던 시절, MIG의 주축을 이루던 멤버들은 CJ 프로스트로 주로 속했기 때문이다. 나진 소드 역시 EDG 시절의 멤버들이 남아있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그 중 가장 큰 스타성을 가졌던 '막눈' 윤하운의 경우 현재 소속팀은 CJ 프로스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환호한다. SKT T1과 삼성 갤럭시, 그리고 KT 롤스터 등 빠르게 치고 올라온 강호들 속에서, 비록 폼은 조금 죽었을망정 CJ와 나진이라는 이름값은 아직 건재하기 때문일 거다.

한 때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누비던 두 팀이 격돌한다. NLB 윈터 결승전. 이제 몇 남지 않은 옛 향기를 가진 팀인 나진 소드와 CJ 블레이즈는 우리에게 어떤 무대를 선보일 것인가.


불꽃같은 운영, CJ 블레이즈



CJ 블레이즈 하면 일단 떠오르는 단어. 바로 '운영'이다. 운영은 많은 의미를 가진 포괄적 단어이지만, 롤에서의 운영 요체는 의외로 간단하다.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진다.' 가 운영의 핵심이다. 우리가 솔로 랭크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트롤 유형 중, '운영할게요'를 외치고 백도어를 하다가 죽는 유형은 보통 빠지는 타이밍을 못잡거나, 빠질 생각이 없어서다. 여기서 칠 타이밍과 빠질 타이밍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면, 고급 운영이 된다.

물론 유기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소양은 여러가지가 있다. 팀원들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판단하는 냉철한 눈, 그리고 팀워크를 보다 조밀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연습 또한 필요하다. CJ 블레이즈는 이런 조건이 충족되어 있다. 탑 라이너인 '플레임' 이호종부터 '엠비션' 강찬용, 그리고 '러스트보이' 함장식은 오래 전부터 한 팀으로 활동한 롤 프로판의 원로 게이머다. 최근 합류한 '데이드림' 강경민과 '엠퍼러' 김진현 역시 세 명의 기존 선수들과 무리없이 융화되어 들어갔다.


예상 키 플레이어 : '데이드림' 강경민



'플레임' 이호종은 항상 제 몫을 해내는 탑 라이너다. 넓은 챔피언 풀을 갖고 있으며, 수비형 탱커부터, 공격적인 딜탱 챔피언까지 가리지 않고 잘 다룬다. 탑 라이너가 놓치기 쉬운 부분인 팀과의 합류 타이밍 역시 적절히 잘 잡아낸다.

미드 라이너인 '엠비션' 강찬용 역시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워낙 선취점을 잘 내줘서 '오늘도 엠비션이 게임을 여는구나.'라는 말이 종종 나오긴 하지만, 미드 라이너로서 그의 역량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엄청난 수의 CS 파밍은 그의 아이콘과도 같으며, 한타 때도 1인분 이상을 해낸다. 더불어 과거 수족과도 같이 다루던 카직스가 다시 재조명받고 있는 요즘이다. 강찬용의 카직스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엠퍼러' 김진현과 '러스트보이' 함장식의 봇 듀오도 무난하다. 함장식은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김진현은 '캡틴잭' 강형우의 부진으로 생긴 AD 캐리의 빈틈을 잘 막아냈다. 뚜렷하게 활약하거나 슈퍼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은 보기 힘드나, CJ 블레이즈의 봇 라인은 안정적이다.

정글러인 '데이드림' 강경민은 최근 CJ 블레이즈 플레이의 키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헬리오스' 신동진이 형제팀인 CJ 프로스트로 자리를 옮기면서 영입된 강경민은 특유의 공격적인 정글 운영으로 CJ 블레이즈의 플레이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켰다. 물론 과한 공격성으로 인해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 역시 없지 않으나, 강경민은 정형화되어가던 CJ 블레이즈의 플레이 스타일을 활동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번 경기 최대의 변수가 될 수도 있는 강경민은 CJ 블레이즈의 키 플레이어로 예상된다.


날을 세운 칼, 나진 소드



나진 소드가 강팀이라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다. 1년전, 롤챔스 윈터 2012-2013을 우승한 경력도 있고, 작년 롤드컵 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CJ 블레이즈가 팀 단위 운영에 특화되어 있다면, 나진 소드는 강력한 라인전 수행 능력과 정글러의 협력, 나아가 '프레이' 김종인의 최종 캐리로 이어지는 승리 공식을 갖고 있다. 어쩌면 솔로 랭크에서 가장 보기 쉬운 스타일의 승리법이지만, 나진 소드의 레벨은 일반 솔로 랭크하고는 그 수준 자체가 아득히 멀다. 솔로 랭크가 교과서라면 나진 소드의 스타일은 3천페이지의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이다.

롤챔스 윈터에서의 16강 탈락은 사실 좀 충격적이긴 했다. 물론 속해있던 B조가 강팀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조' 였기에 나진 소드의 탈락 가능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형제팀인 나진 실드가 4강까지 진출한데 비하면 분명 아쉬운 탈락이긴 했다.

예상 키 플레이어 : '프레이' 김종인



'엑스페션' 구본택은 라인전 능력만큼은 확실히 최고급이다. 스크림 때 1:1로는 어떤 선수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예전의 발언도 있었고, 실제로도 구본택의 라인전 능력은 굉장하다. 문제는 롤이 라인전 능력 하나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 정글러인 '데이드림' 강경민은 공격적인 성향의 정글러. 분명 여러 차례 탑을 습격할 것이다. NLB에서 파죽의 연승을 이어온 구본택이지만, '플레임' 이호종 역시 만만찮은 상대임을 생각할 때 탑 라인 싸움이 어떤 구도로 흘러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글러인 '와치' 조재걸과 '윙드' 박태진은 살짝 불안한게 사실이다. 1년 전 신짜오로 전장을 평정하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유저라면 최근 조재걸의 모습은 썩 만족스럽지 않을 거다. 그 때문인지 NLB에서 나진 소드의 정글러는 조재걸이 아닌 '윙드' 박태진이 출전했다. 아마추어 팀인 시리우스 출신의 박태진은 NLB에서 신인임에도 그럭저럭 좋은 플레이를 펼쳤지만, 아직까지 검증이 된 선수는 아니다. 여러모로 나진 소드의 정글은 애매한 상황이다.

반면 미드 라인은 '나그네' 김상문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롤드컵 당시 그라가스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던 김상문은 최근 니달리와 리븐까지 잘 다루며 NLB에서 나진 소드의 승리를 견인했다. 카사딘으로도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던 김상문은 나진 소드의 든든한 허리다.

봇 듀오인 '프레이' 김종인과 '카인' 장누리는 나진 소드의 핵심적인 힘이다. 이번 롤챔스 윈터의 첫 펜타킬을 기록하기도 했던 김종인은 SKT T1 K의 '피글렛' 채광진이나 삼성 오존의 '임프' 구승빈 등의 원딜들과 겨루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최고급 원딜 중 한명이다. 나진 소드가 준수한 라인전 능력과 소규모 접전을 토대로 성장한다면, 종지부를 찍는 것은 김종인의 역할이다. 한타 때마다 제몫 이상을 하며 팀의 많은 딜링을 책임지는 김종인은 생존 여부에 따라 싸움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나진 소드의 키플레이어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