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과 3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챔피언십(이하 APAC)에서는 세계 최초로 하스스톤 월드 챔피언십(이하 HWC)에 2회 연속 진출하는 선수가 탄생했습니다.

이 전인미답의 업적을 달성한 선수는 바로 한국 대표로 APAC에 출전한 'Kranich' 백학준 선수였습니다.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 운집하는 HWC에, 그것도 두 번 연속 본선 무대까지 진출하는 것은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백학준 선수를 제외하면 2015년에 2회 연속 HWC 진출이 가능한 선수가 없다는 점은 백학준 선수의 이번 진출이 얼마나 의미있는 사건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백학준 선수는 지난 HWC2014에서 4강에 오른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슬럼프가 온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표 선발전과 APAC 본선에서 그가 보여준 경기력은 그런 우려를 깨끗히 날려버렸고, '가을엔 역시 (크)갈비'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당당히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에 인벤에서는 하스스톤 최고의 '가을 사나이'로 거듭난 백학준 선수를 만나보았습니다. 맞춤형 인터뷰를 위해 '갈비집'에서 만난 백학준 선수는 진중한 이미지와는 달리 유쾌한 입담을 보여주었는데요, 그가 밝히는 이번 대회의 뒷 이야기와 HWC에 나서는 포부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 "큰 무대일수록 더 저한테 유리한 것 같아요" APAC2015 챔피언, 백학준!



Q. 안녕하세요 백학준 선수. 먼저 인벤 유저분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Team Dignitas 소속 하스스톤 프로 게이머로 활동 중인 'Kranich' 백학준입니다.


Q. 늦었지만 APAC 1위 축하합니다.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되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제가 사실 하스스톤 프로 게이머로 활동한 기간이 상당히 긴 편인데, 이런 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건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우승을 거둔 순간에는 정말 기뻤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크게 만족이 되진 않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고 본선에서 못하면 '아시아 지역이라서 올라갈 수 있었다'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직 마음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Q. 이번 하스스톤 월드 챔피언십(이하 HWC)에 대표로 선발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HWC에 2회 연속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인터뷰를 못한게 아쉬운데,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또, HWC 2회 연속 진출 소감을 말해본다면?

팀원들도 그렇고, 골든코인 멤버들도 다 저보고 '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다들 좋아해 줬고, 저도 좋았어요. 제가 이렇게 올라가니까, 주변 선수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더 자극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디그니타스 입단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이 다소 뜸한 것 같았는데, 그동안은 해외 활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계셨던 건지?

엄밀히 말해서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해외에서 하는 큰 대회에서 예선을 한 번은 뚫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어요. 결국에는 못 뚫긴 했지만. 마스터즈 예선에서 떨어지면서 주목도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말도 나오게 된 것 같아요.


▲ 올해 초 팀 디그니타스에 입단하며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백학준


Q.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2015년에는 한국 대회에서의 성과가 없어서 백학준 선수에게 슬럼프가 온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팬 분들도 많았습니다. 한국 대회에서 다소 약세를 보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경기 감각이 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경기 감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는데, 메타에 맞지 않는 전혀 엉뚱한 덱을 준비한다거나, 그 상황에서 전혀 맞지 않는 판단을 하거나 하는 부분들을 제가 스스로 느끼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마스터즈를 떨어지고 난 후에는 해외 대회에서 그런 부분을 찾아내고 끌어 올리는 데 주력했던 것 같아요.


Q. 한편에서는 '정복전' 룰이 들어오면서 2014년에 활약했던 골든코인 팀들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자 '골든코인은 정복전에 약하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거든요?

아무래도 골든코인 팀이 연승전 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렸고, 실제로 2014년 HWC에는 골든코인에서만 2명이 출전하기도 했었는데 2015년에는 그런 모습이 아니니까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저희 팀 내부에서도 약간은 불만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저희가 뭔가 잘했던 룰이 있는데, 그게 사라지니까 뭔가 그냥 '열심히 연습하자' 보다는 룰 탓을 하는 마음도 생기기도 했고요. 최근 들어서 점점 이런 부분이 나아지고 있고, 그래서 이번에 결실이 맺어진 것 같아요.


▲ 2014년 골든코인 팀은 거의 무적함대에 가까웠다.


Q. 이번 APAC을 통해서 그동안 만날 일이 없었던 일본, 오세아니아 지역의 선수들과 만났는데, 직접 만나본 선수들은 어땠나요?

일단은 '생각보다 잘한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지역의 선수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잘 안 알려졌었는데, 그런 선수들이 처음 선보인 자리에서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여러모로 흥미로웠어요.


Q. 메타 차이나 운영에서의 관점 같은 차이는 없었나요?

사실 그 선수들은 저희랑 상당히 비슷했던 것 같아요. 제가 이번 APAC를 포함해서 유럽이나 한국의 대회를 가리지 않고 출전하면서 느낀 건데, 보통 하스스톤을 하는 분들은 유럽이나 북미의 선수들이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덱을 구사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거든요? 근데 제 생각엔 오히려 아시아권 선수들이 더 다양한 덱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보통 유럽이나 북미 선수들은 어떤 덱이 강하면 그 덱을 내가 완벽하게 구사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는데, 아시아 쪽 선수들은 그 덱을 카운터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거든요. 이번 APAC 대회에서도 그랬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면서 한국이나 대만 선수들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Q. 한국에서의 대표 선발전에서는 다소 고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APAC에서는 거의 위기를 겪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게임이 잘 풀린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무대가 큰 게 저한테 좋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 커뮤니티에서 저에 대해 말씀하신 걸 봤는데, 큰 무대나 큰 경기에 강하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제가 정말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는 그런데 가면 그 분위기나 큰 무대가 상당히 즐겁고 신이나거든요. 그리고 저는 작년 블리즈컨에도 나가서 그런 무대에 대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보통 그 정도 규모 무대는 처음이라 다들 긴장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내가 심리적으로는 웃고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덕에 경기가 잘 풀리기도 한 것 같고요.


▲ 세레머니를 준비할 정도로 큰 무대를 즐기는 백학준 선수
(출처 : OGN 방송화면 캡쳐)


Q. 이번 APAC에서 사용한 덱을 소개해본다면?

우선 저는 손님 전사를 하기가 싫었어요. 사실 APAC 현장에 갔을 때 하루 정도 덱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이 선수들이 모두 손님 전사를 카운터치려 한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손님 전사가 강력해서 손님 전사를 들고 가도 이길 자신은 있었는데, 그 선수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가 싫었거든요.

그리고 템포 마법사나 용 흑마법사 같은 덱을 많이 준비하는 것 같아서, 그런 덱에 상성 상으로 안밀리는 덱을 준비하려고 했어요. 이런 덱을 상대로는 템포 싸움에서 안 밀려야해서 최대한 덱을 가볍게 하는 방향으로 덱을 구성했죠. 드루이드 같은 경우에는 전쟁의 고대정령 같은 카드를 제외했고요.

[APAC] Kranich 선수의 미드레인지 사냥꾼덱
[APAC] Kranich 선수의 미드레인지 성기사덱
[APAC] Kranich 선수의 미드레인지 드루이드덱

▲ 템포 싸움을 염두에 둔 백학준 선수의 미드레인지 드루이드덱



■ 별명 '크갈비', 요즘에는 즐기고 있어요!

Q. 갈비가 나왔으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해볼까요? 백학준 선수는 '크갈비'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도 특별히 갈빗집에서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크갈비'가 된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그 별명은 좀 생뚱맞게 지어졌어요. 제가 개인 방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갈비'라는 별명을 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갈비 드립이 사실 유재석 씨가 원래 사생활이 깨끗하고 뒷말이 잘 안 나오니까 사람들이 비꼬는 식으로 '갈빗집에서 유재석을 만났는데 계산 안해주더라' 라고 해서 시작된 건데, 이걸 정말 뜬금없이 저한테 미시니까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사람들한테 확 퍼지면서, 제가 더 이상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거에요. 그래서 이런 고민을 'RenieHouR' 이정환 선수랑 같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게 좋은 거라고 해주더라고요. 아무한테나 붙을 수 없는 별명이고 그런거 하나 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그 별명 지어준 친구한테 감사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좋은 것 같고, 요즘에는 좀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 갈비를 들고 환하게 웃는 '(크)갈비'


Q. 마치 '레니아이유' 같은 거군요! 사실 이정환 선수와 아이유 사이에는 나이 말곤 전혀 공통점이 없잖아요.

맞아요! (웃음) 사실 생각해보면 나이만 같은 뿐 그 둘은 체형부터 외모까지 정반대인 게 맞는데, 이제 하스스톤 하는 분이라면 '레니아이유'라는 확고한 결합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아마 하스스톤 하는 분들은 아이유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정환 선수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 나이 외에는 양 극단에 있는 이정환 선수(좌)와 아이유(우)
(우측 이미지 출처: 아이유 페이스북)


Q. 주변에서 듣기로는 '백학준 선수가 다소 인색하다'라는 증언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번 APAC 상금도 받으셨을 텐데, 팀원들에게는 따로 맛있는 거라도 사주셨는지?

이게 와전이 된 부분이 있는데, 저희끼리 보면 항상 제가 사요. 저희끼리 모이면 사람이 좀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으러 가게 되는데, 아무래도 제가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다 보니까 항상 제가 사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보면 '좀 사라'라고 하니까 제가 억울한 부분이 있죠.

그 당사자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 친구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사줍니다. 진짜에요!


Q. 그런데 골든코인 팀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대식가'가 많잖아요? 고기를 먹으러 가면 금전적인 부담이 상당히 클 것 같은데, 보통 얼마나 나오나요?

제가 APAC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하스스톤 클랜 챔피언십(이하 HCC) 출전하는 골든코인 멤버들을 보러 갔는데, 그날 저녁에 고기를 먹었어요. 그것도 제가 샀는데, 7명이서 18인분 먹고, 20만원 넘게 낸 거로 기억해요. 그날 공혁준 선수도 없었는데 사실 팀원들이 다 잘먹는 편이라...... 술을 거의 안 먹었는데도 저 정도가 나오니까요.

빨리 다른 멤버들도 우승도 하고 상금도 많이 받아서 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 '갈비'를 먹는 백학준 선수. 사실 골든코인 전원이 다 잘먹는다고..


Q. 사실 골든코인은 한국 하스스톤의 초창기에 생긴, 가장 오래된 팀이기에 선수들 간의 유대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보통 대회가 없을 때도 팀원들이 모이는 편인가요? 모이면 무엇을 하나요?

대회가 없어도 일주일에 1~2번은 무조건 보는 것 같아요. 저희가 모여서 '맛집 탐방'을 가거든요. 보통 이 모임을 주도하는 건 저랑 이정환 선수, '쿠마' 박태영 선수 정도고, 모이면 하스스톤 얘기도 많이 해요. 특히 이정환 선수와는 거의 5~6시간 동안 얘기할 정도로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하고요.


Q. 맛집 탐방을 가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금전적인 부담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이번 주는 어디에 가기로 하셨나요?

보통은 매주 한 사람이 사는 형태인데, 복불복으로 금액이 정해지죠. 그런데 사실 그렇게 부담 가는 금액이 나오는 정도는 아니에요. 공혁준 선수는 보통 멀어서 잘 못 오고, 이정환 선수는 다른 분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 번에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이정환 선수는 뭔가를 조금씩 계속 먹어요. 정말 가끔 보면 신기한데, 그렇게 계속 뭔가 먹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한 끼를 배부르게 먹이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게 한계치가 아닌거죠.

이번주에는 '북창동 순두부'를 먹으러 가기로 했어요. 이 음식이 약간 추억이 있는 게, 저랑 이정환 선수가 작년 블리즈컨을 갔을 때 LA에서 북창동 순두부라는 음식점을 발견해서 순두부를 먹었는데, 그게 제가 먹은 순두부 중에 가장 맛있었거든요. 최근에 서울에서도 발견해서 이번 주에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 잘먹는 백학준 선수를 위해 후식도 풍성하게..



■ "ThijsNL가 가장 큰 적, 지난 대회 이상의 성적 거두고 오겠습니다"

Q. 이번 대회에서도 그랬지만, 백학준 선수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해야 할 때는 안전하게, 승부를 걸어야 할 때에는 승부를 걸 줄 아는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유저분들이 게임을 운영할 때, 가장 많이 실수하거나 착각하는 부분은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스스톤을 접하고 즐기다 보면 실력이 늘게 되는데, 보통 '중간 단계' 정도로 실력이 오르게 되면 내 덱과 카드, 상대 덱과 카드를 모두 파악하고 그걸 의식하면서 플레이하게 돼요. 예를 들면, 이 턴에는 불기둥 각을 피해야 한다는 식이죠.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냥 불기둥을 맞는 게 나을 때도 있거든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저는 다른 이득을 취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고, 아니면 그걸 맞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던져야 할 때가 그런거죠.

제 생각에 하스스톤은 정말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붙으면 상대가 가진 카드를 다 피해서는 이득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봐요. 그런 부분을 깨닫고 나서는 상대가 가진 것 중에 저한테 덜 해로운 걸 배제하거나, 약간의 위험성을 감수하면 완벽하게 승기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여기서 '어느 타이밍에 던져야 하는가'가 중요해지는데, 사실 이 부분은 연습을 해야지만 알 수 있어요. 다양한 덱을 경험해보고, 또 져봐야 해요. 다양한 케이스에서 똑같은 불기둥이라도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 타이밍에 상대방이 그런 위험한 카드를 갖고 있는 지를 깨달아야 잘 던질 수 있는 것 같아요.


Q. 최근 하스스톤 유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까요?

네. 제가 원래 그런 플레이 스타일을 안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덱들을 해보고 있어요. 그런 덱이나 운영이 어느 때 가장 강하고, 또 어느 때 가장 위험한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덱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가진 카드를 좀 과하게 투자하는 한이 있어도 상대방이 의도대로 게임을 끌고 가지 못하도록 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큰 그림'을 그리는 덱이나 운영은 상대 플레이보다 내 덱만 보고 가는 경향이 짙거든요.




Q. 백학준 선수는 덱 메이커로서도 하스스톤 유저들에게 인정받고 있는데, 백학준 선수가 생각하는 덱을 잘 짜는 플레이어는 누구인가요?

단연 Kolento 선수라고 생각해요. 이 선수는 하스스톤이라는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것 같아요. 지난해 HWC에서 붙었을 때도 느낀 게, 이 선수는 제가 한 번 허를 잘 찔러서 이긴 거지, 그걸 실력이라고 평가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Justsaiyan이라고 최근에 템포스톰 팀에 입단한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정말 창의적이에요. StanCifca 선수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 그 선수는 원래 다른 TCG를 하다 와서 그런지 같은 카드라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요.


Q. 지난 HWC에서 우승을 차지한 Firebat 선수나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는 Kolento 선수 등 세계 유수의 강호들이 2회 연속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변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뭐라고 보시나요?

제가 올해 들어서 느끼는 건, 올해가 이변이 아니라 오히려 작년이 이변이었다는 점이에요. 올해가 사실 포맷이 더 복잡해지면서 올라가기가 더 까다로웠거든요. 그래서 올해 올라간 선수들이 더 검증을 받은 선수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유럽 쪽은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서 누가 올라왔어도 사실 이상할 게 없었죠. 거기에서 Kolento 선수가 다소 불운하게 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봐요.


Q. 현재 HWC 진출을 확정 지은 해외 선수 중에서는 유럽 대표로 선발된 ThijsNL 선수나 Lifecoach 선수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한국 유저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가 많지 않습니다. 아직 선발되지 않은 미주 지역 선수를 포함해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거나 붙어본 선수가 따로 있나요?

유럽 지역 같은 경우에는 어떤 선수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다 잘해요. 특히 Neirea 선수나 ThijsNL 선수는 최근에 거의 안 졌어요. 제가 만나본 선수 중에서 Ostkaka 선수는 상당히 신중하게 잘하는 선수인데, 이 선수는 긴장을 상당히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아마도 HWC에서 만나면 제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북미에서는 사실 이름은 덜 알려졌어도 최근 실력이 좋은 선수가 상당히 많아요. Vlps 선수는 중국에서 열렸던 'CN vs NA'에 북미 대표로 출전한 이후 꾸준히 잘하고 있는 선수고, Hotform 선수도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선수고, 은근히 북미도 만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네요.


▲ 최근 절정의 기량이라고 전해지는 Neirea(좌)와 ThijsNL(우)
(출처: gosugamers.com)


Q. 이번 HWC에서 도적이나 주술사는 어떤 선수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백학준 선수가 이 덱들의 문제점을 꼽아본다면?

이 덱들은 승리를 하기 위한 공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가령 드루이드 같은 덱은 정신 자극이나 급속 성장으로 고마나 하수인을 빨리 내서 필드를 잡고 이후에 자연의 군대-야생의 포효를 끝을 내는 형태로 운영하고, 냉기 마법사는 필드 하수인을 얼리면서 딜 카드를 모으는 형태로 게임을 운영하는데, 도적이나 주술사는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워요.

도적이나 주술사에도 적당히 좋은 카드는 많이 있는데, 그런 좋은 카드를 모아서 '승리'로 만들어낼 중심 공식이나 카드가 없는 느낌? 사실 지금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덱 중에서 컨트롤 흑마법사 같은 덱만 제외하면 어떤 OP카드가 그 덱을 완성해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면, 성기사는 원래 미드레인지 같은 구조로 거의 게임을 하기 어려웠지만 병참 장교가 생기면서 덱을 완성하는 역할을 했고, 기계 마법사도 고블린 폭발법사 같은 카드가 있기에 게임에서 활용할 정도로 좋은 덱이 된 거니까요. 지금 도적이나 주술사한테 있는 '그저 그런' 카드를 모아서는 충분히 강하다고 할 만한 덱을 만들긴 어려운 것 같아요.


Q. 비밀 성기사(일명 파마기사)덱은 악명과는 달리 최근 대회에서 성적이 썩 좋지 않고, HWC 대표 선발전만 해도 선수들이 주로 선택하는 덱이 아니었습니다. 선수들이 비밀 성기사 덱을 꺼리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제 선수들이 그 비밀에 적응된 것 같아요. 어떤 비밀이 걸릴지 다 알고 있으니까 대응이 되는 부분도 있고요.

대표적인 정리 방법은 6턴이 되기 전에 필드를 최대한 정리를 해놓고, 수수께끼 도전자가 나오면 앙갚음을 터뜨리면서 수수께끼 도전자에 앙갚음을 씌우고 나 이런 사냥꾼이야로 정리하는 그림이면 상대의 참회까지 빼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파마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유행하던 덱이 나 이런 사냥꾼이야를 안 쓰는 미드레인지 사냥꾼이나 악마 흑마법사 덱이라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그냥 비슷하게 게임하다가 수수께끼 도전자가 나오면 게임이 터지는 걸 겪으니 한동안 강세를 떨쳤다고 봐요. 최근에는 나 이런 사냥꾼이야를 2개 쓰는 컨트롤 흑마법사 덱도 나오는 등 여러 가지로 대응을 하니 할만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이 굳이 파마 기사를 쓸 필요가 없게 된 거죠.


▲ liquidhearth.com에서 집계한 지역별 HWC 참가자들의 덱 픽률
비밀 기사를 사용한 선수는 단 4명에 불과했다.


Q. 약 8개월 전, 이정환 선수를 포함해서 4명의 하스스톤 선수와 인터뷰를 나누었을 때에는 모든 선수가 유럽/북미와 한국이 다소 격차가 있다는 의견을 냈었습니다.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때에 비해 전체적인 수준은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 북미나 유럽에 비해서 그렇게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유럽에서 대회를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약간의 소득을 거두기는 했는데, 저도 그렇고 저 이상으로 활약할 수 있는 5~6명의 선수가 더 있어야 뭔가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 같아요.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건데,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정말 압도적으로 잘해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해요.

제 경우에는 최근 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주고 있는데, 어제(10월 7일) 진 것까지 포함해서 2패를 하는동안 거의 15승 정도를 했거든요? 이 정도 이상을 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유럽/북미 선수들과 반반 정도 하거나 하면 그쪽 세계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선수가 한국에서 거의 가장 잘하는 선수인데, 그냥 그저 그렇네' 정도 밖에 못 끌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더 발전해야 하고, 한 5~6명 정도가 활약을 보여줄 정도가 되면 그 5~6명 사이에서 시너지가 나오면서 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더 좋은 평가가 나올 것 같고요.


▲ 최근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백학준
이정도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인상에 남는다고..(출처: gosugamers.com)


Q. 세계 유일의 2회 연속 진출자이며, 지난 대회에서도 4강까지 올랐던 만큼 목표는 우승일 거라 예상합니다. 미주 대표 후보까지 포함해서,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적이 될 거라 예상하는 선수가 있다면?

아무래도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ThijsNL 선수겠죠. 그 선수가 정말 놀라운 게, 최근에 300전을 넘게 플레이했는데도 승률이 65%가 나와요. 다른 e스포츠 종목을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사실 60%만 넘어도 거의 우승권이라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근데 이런 승률이 하스스톤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경악에 가까운 거죠.

사실 ThijsNL 선수랑은 드림핵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만약에 이번에 만나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네요. 그때는 저도 ThijsNL 선수도 8강 안에 못 들었거든요. (웃음) 그래도 무섭기보다는 기대가 많이 되요. 꼭 만나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HWC의 '출사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실 작년 HWC에는 지금 느끼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4강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이번에는 정말 준비를 많이 해서 가는 만큼, 더 좋은 성적을 보여 드리고 싶네요.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HWC에서 백학준 선수의 선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