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벌써 여름이 시작된 것처럼 때 이른 더위와 씨름하던 5월 말,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인 kt 롤스터의 숙소를 찾았다. 바로 kt 롤스터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고참 선수인 '스코어' 고동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와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며 이른 더위를 달래줄 시원한 아이스크림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스프링 시즌이 끝나고는 처음 갖는 인터뷰라고 했다. 그간 LCK를 매우 가까이에서 취재해 왔기에 스프링 기간 동안 펼쳐졌던 kt의 경기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슈퍼팀의 탄생, 숙명의 라이벌 SKT와의 2연전 전패, 이어진 약간의 부진과 정규 시즌 3위 마감, 플레이오프 삼성전 3:0 압승 그리고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SKT에게 0:3으로 완패를 당하며 또다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하기까지.

사실 결승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세트 스코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다소 일방적으로 밀린 경기였고, 그만큼 아쉬움이나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동빈은 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특유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갔다.


"아무래도 시즌 초부터 슈퍼팀, 슈퍼팀 하면서 많은 기대를 받긴 했죠. 저희의 생각은 조금 달랐어요. 스프링은 서로 맞춰가는 단계고, 경기력은 섬머 시즌 즈음부터 나올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또 막상 결승에 올라가 SKT를 만났을 때는 다들 이번에 SKT를 잡아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준비한 만큼 경기력이 잘 안 나왔죠. 게다가 첫판 말고는 전부 허무하게 졌잖아요. 허탈하긴 했지만, 뭐 생각보다 좌절하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희 팀원들이 사실 신인도 아니고 다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잖아요. 경력도 보통 경력이 아니죠. 다들 이전 팀에서 한가닥 하던 선수들이니까. 의견을 맞춰가고 팀 시너지를 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게 당연해요. 불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의견 충돌 정도? 그런 문제가 나타날 거라고 감독님도 생각하셨고, 팀원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스프링 때 그 부분이 나타난 거죠.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보통 이길 때보다는 질 때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어서 SKT전 2연패 이후에 더 드러났던 것 같아요.

팀원들이 다들 우승하고자 하는 열망은 모든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의견 대립을 하더라도 서로 양보를 굉장히 많이 해요. 이제는 거의 해결됐기 때문에 섬머 시즌엔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올 것 같아요. 스프링에도 목숨을 걸고 하긴 했는데, 섬머엔 진짜 목숨을 걸었어요. 정말 열심히 해야 해서 어쩌면 지옥 같기도 하겠지만, '섬머의 kt'인 만큼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승에 대한 열망. 우승 타이틀은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목표이긴 하지만, 특히 그에겐 더 남다른 느낌의 단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위권에 꼽히는 경기력과는 다르게 고동빈은 이상하리만치 우승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첫 시작은 2013년 여름이었다. LCK 결승전에서 SKT를 만난 그는 패패승승승이라는 충격의 역스윕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경기는 고동빈이 꼽은 가장 아쉬운 무대이기도 하다. 승승할 때까지만 해도 다 잡은 경기라고 생각했다고. 그때 우승을 했다면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쨌든 고동빈은 그 이후부터 결승 무대에만 올라가면 삐끗하면서 계속해 아쉬운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로 인해 쌓인 준우승 타이틀과 몇 가지 해프닝 덕분에 숫자 2와 관련한 별명도 갖게 됐다. 프로게이머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껄끄러울 수도 있는 별명이지만, 고동빈은 그런 별명들도 팬들의 관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데뷔 초엔 악플에 쉽게 상처를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시기가 지나다 보니까 별 상관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숫자 2와 관련된 별명들이 악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웃음). 그런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게 됐다는 거죠. 나쁜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걸 가지고 악독하게 비난한다면 안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들은 괜찮아요. 유쾌하고 재미있는 드립이잖아요.

'스멥' 송경호 선수가 kt에 합류한다는 했을 때도 그런 식으로 이슈가 돼 이야기가 많았죠. 바론 스틸이랑 숫자 2요. 그래서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다음엔 니가 빼앗아 달라고. 그땐 서로 농담하면서 넘어갔죠. 이제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어요. 제가 팀원들 전부 꽉 잡았거든요."


농담도 섞어가며 재치있게 답하는 그에게서 프로게이머로서의 연륜이 느껴졌다. 스타테일을 통해 2011년도에 프로씬에 데뷔한 고동빈은 2012년 10월 kt LoL 팀의 창단과 함께 이적해 지금까지 쭉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햇수로 치면 무려 6년째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 종목 이영호 선수의 뒤를 잇는 kt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kt와 고동빈, 고동빈과 kt.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팀을 나간다면 국내팀으로의 이적은 사실 개인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왕 나갈거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고. 그런데 저는 아직 한국에서 뛰고 싶었죠. 팀에서도 제가 믿음직스러운지 나쁘지 않은 대우를 해주셔서 계속 남아있게 됐어요.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직까지는 크게 와 닿지 않아요. 오랜 기간 팀에 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우승컵이 없다보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kt를 거쳐 간 많은 선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고동빈은 초창기 멤버인 '류' 류상욱, '마파' 원상연, '제로' 윤경섭의 이름을 읊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도 했고, 함께 놀러 간 추억도 많다고. 그들과 여전히 잘 연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형제팀 애로우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애로우즈는 불리츠보다 전력상 아래에 있다는 평가를 들었고 실제 성적도 더 좋지 않았지만, 오히려 불리츠가 만져보지 못한 LCK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그때 첫 번째로 든 감정은 '부럽다'였어요. 형제팀이 우승했으니까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정말 많이 부러웠어요. 그래도 형제팀이니까 기분이 좋기도 했죠. 저흰 숙소 생활을 같이 했어서 전부 친했었거든요."


다시 최근의 시점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2017 시즌, kt가 대규모 리빌딩을 단행하면서 고동빈은 전 라인에 새로운 팀원을 맞이했다. 앞서 말한 대로 정말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서 kt로 뭉쳤고, kt는 지난 스프링 기간 동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팀 색깔을 보여줬다. 섬머 시즌을 앞두고는 서폿 포지션에 선수를 보강하며 6인 로스터를 완성했다. 이제 kt의 밑그림은 끝났다. 우승컵만 손에 쥔다면 완벽한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게임 내적으로는 이전의 kt가 중후반 팀 파이트를 지향하는 팀이었다면, 이제는 라인전부터 상대를 찍어 누르는 팀이 됐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외적인 부분도 사람이 많이 바뀌다 보니 약간 변한 것 같긴 해요. 전 팀원들도 어느 정도 재미있는 친구들이 있긴 했는데 지금은 '스멥' 선수가 있다 보니까…. 흠. '마타' 선수도 만만치 않고, '데프트' 선수는 원래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약간 형들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웃음). 어쨌든 팀 성격이 이렇게까지 달라진 건 처음이에요. 저를 빼고 전원이 다 바뀌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이번에 서포터 '찬스' 이찬동 선수가 합류했고, 미드 연습생도 한 명이 더 들어왔어요. 역시 어리다 보니까 피지컬이 좋더라고요. 막내인 미드 연습생은 저랑 무려 9살 차이가 나요. 하하. 사실 예전에는 스타 선수들도 있고 해서 사람이 북적북적했는데 이번 스프링 때는 사람이 정말 너무 없어서 한적했거든요. 두 명이 더 들어오니까 좀 채워진 느낌이에요. 특히 막내 연습생 성격이 쾌활해서 연습실에 활기가 넘쳐요.

롤챔스가 풀리그로 바뀌면서 팀들은 계속해 상향 평준화되고 있어요. 하위권 팀이라고 할지라도 경기력을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우리팀도 더 강해지고 있어요. 이번 섬머 시즌 목표는 일단 정규 시즌 1위예요. 1위로 결승에 직행하고, 거기서 우승을 해서 롤드컵에 직행하는 게 최종 목표죠.

kt는 원래 섬머에 많은 기대를 받던 팀이잖아요. 큰 기대를 받은 지난 스프링 경기력이 아쉬워서 이전만 못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팬분들께서 많은 기대 해주시길 바라요. 그 기대에 꼭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