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블리자드 e스포츠를 돌아보면, 영원한 강자는 없었던 한 해였다. 작년 블리즈컨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듯한 기세로 우승을 차지했던 이들도 그 자리를 지키진 못했다. 새로운 얼굴들이 블리즈컨 전시장에 자신들의 명예로운 얼굴을 걸게 된 것이다. 블리즈컨 이전까지도 우승자의 자리가 끊임없이 바뀌었기에 마지막 승자가 누가될지 결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한 해였다. 수많은 시즌 중에 챔피언이 바뀌었고, 의외의 결과마저 나와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눈여겨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변하지 않은 점. 어쩌면 더 견고해진 사실은 역시나 세계 블리자드 e스포츠 무대 속에서 한국이 빛났다는 것이다. 서구권 팀들이 나아진 기량으로 다양한 종목에서 작년보다 무서운 기세로 한국팀과 선수들을 위협했지만, 마지막 승자는 한국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종목에서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냈기에 의미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최강자가 곧 전 세계 블리자드 e스포츠를 대표하는 상황. 한 해 동안 치열하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한국팀과 선수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도록 하자.



오버워치 - 이제부터 '한국의 해'! 월드컵 이어 프로씬마저 점하다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보면 한국의 오버워치 프로씬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작년까지 국내 오버워치 프로리그를 대표하는 APEX에서 해외팀인 엔비어스가 국내 리그 첫 우승팀으로 등극하는 상황이 나왔다. 유럽의 로그와 함께 해외 리그마저 석권하며 2016년 말까지 오버워치 씬에서 한국팀이 돋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새롭게 막을 연 오버워치 APEX 시즌2부터 한국팀과 해외팀 간 대결 구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시즌4까지 강행군 속에 한국팀이 우승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2016 오버워치 월드컵 우승으로 한국이 강하다는 말이 이제 구체화 돼 프로팀까지 통용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APEX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팀 중에서 진정한 최강을 가리는 무대로 거듭났다.

우승 횟수만 보면 오래전부터 이름을 날린 루나틱 하이가 단연 독보적이긴 했다. APEX 시즌 2-3, 2회 우승으로 2017년 최다 우승팀으로 확실히 거듭났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결승전마다 풀 세트 접전을 펼쳤고, 치열한 대결 끝에 값진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시즌3에서는 패자전으로 떨어져 힘겹게 올라와 승승장구하던 콩두 판테라를 상대해야 했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틱 하이의 우승으로 끝나면서 그들의 독주는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런 시기에 GC 부산이라는 팀이 혜성처럼 등장해 마지막 APEX 시즌4의 우승을 차지했다. 기존 강자였던 루나틱 하이와 콩두 판테라를 연이어 격파하며 대이변을 일으켰고, 2부 리그에서 처음 올라온 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은 기존 강자들을 넘어설 만한 새로운 선수와 코치진들이 나오는, 한국은 그런 잠재력까지 있는 곳이 된 것이다.

2018년부터는 진짜 전 세계팀과 대결이다. 오버워치 리그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수많은 한국 프로게이머-코치진들이 세계 지역팀에서 활동하게 됐다. 오버워치 월드컵 2연속 우승을 넘어 이제 본격적으로 지역 대표팀 간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세계에 한국 오버워치씬의 격을 알릴 한국 프로게이머들과 코치진, 팀들 모두 이 기회를 놓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히어로즈 - 예측할 수 없는 승부 연속, MVP 블랙 첫 블리즈컨 우승




2017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최강팀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국내 리그에서 우승한 팀이 시즌 별로 진행되는 글로벌 챔피언십까지 석권하는 것이 공식처럼 이어졌다. 반면, 올해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HGC KR 무대에서 독보적인 팀이 아시아나 글로벌 무대로 가면 미끄러지곤 했다. 작년 말부터 최강세를 이어오던 L5가 첫 이스턴 클래시에서 MVP 블랙에게 우승을 내줬고, 이어진 이스턴 클래시에서는 L5가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강 타이틀을 주고받았다.

가장 큰 이변은 유럽이었다. 이전 블리즈컨에서 프나틱이 MVP 블랙을 떨어뜨리며 위협하더니 보란 듯이 미드 시즌 난투에서 한국팀을 넘어 유럽팀 간 결승이 진행된 것이다. 이전까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우승만큼은 내주지 않았던 한국팀이지만, 올해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만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년에 이어 다시 블리즈컨에서 유럽과 한국의 승부가 벌어졌다. 미드 시즌 난투에서 확실한 패배를 경험해봤기에 한국팀과 팬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무대였다. 이번에는 작년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프나틱이 발리스틱스(L5)를 4강에서 꺾어버리며 기세를 탄 듯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결승전에서는 MVP 블랙이 프나틱을 만나 복수에 성공했다. 매년 블리즈컨과 인연이 없었던 MVP 블랙의 첫 우승이었고, 혼란했던 2017년의 종지부를 찍을 경기였던 것이다.

2018년을 앞두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프로씬 역시 큰 변화를 예고했다. MVP 블랙의 주장 '사케' 이중혁이 블리즈컨에서 북미의 기량에 놀랐다며, 앞으로 더 치열해질 HGC 구도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팀 2018년을 앞두고 한 걸음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KSV라는 거대 자본이 히어로즈 MVP팀을 인수했고, L5 역시 일찍부터 새로운 선수를 영입했다. 블리즈컨으로 향하는 마지막 티켓을 두고 마이티가 매서운 저력을 보여준 만큼 새로운 상위 라운드 대결 구도 역시 다시 한번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찌감치 변화하기 시작한 그들의 2018년은 어떤 모습일까.



스타1 -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최종병기' 이영호, 그와 맞선 저그들




이영호가 돌아왔다. 예전보다 더 강한 포스로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말이다. 한층 더 노련해졌고, 역시 중요한 경기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 줄 아는 선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택뱅리쌍'이 한 리그에서 활동했지만, 이영호는 독보적이었다. 2017년 스타크래프트1 씬에서 이영호를 뺴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짙은 한 획을 그은 것이다.

그런 '이영호를 넘을 수 있을까'가 또 다른 화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OGN 슈퍼컵 이벤트 매치에서 김정우가 이영호를 꺾은 것부터 시작했다. 김정우는 ASL 시즌4 결승전을 준비할 때도 이영호에게 많은 승리를 거뒀다는 만큼 확실히 위력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단기 대회인 WEGL에서는 김민철이 이영호를 4강에서 꺾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ASL에서 풀 세트 대결을 펼친 만큼 두 선수의 승부는 보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기였다.

다른 저그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비록, 이영호를 넘지 못했지만, 시즌4에 혜성처럼 등장해 다시금 결승까지 올라온 조일장. 오프라인 약체, '집황상제'라고 평가받던 임홍규가 4강까지 올라오는 대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두 선수 모두 저그 동족전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김민철-김정우를 비롯한 기존 저그전 강자를 모두 꺾고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2018년의 스타크래프트 역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과연 어떤 선수가 메이저 대회라 할 수 있는 ASL에서 이영호를 넘을 것인가. 그의 우승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스타2 - 꾸준함이 만든 결실, 드디어 빛을 보다




국내 프로팀들이 거의 모두 해체한 2017년의 스타2판. 진정으로 스타2를 사랑하는 프로들이 남았고, 팀없이 대회를 준비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승자는 오랫동안 꾸준히 해왔던 선수들이었다. 스타1 시절부터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를 절대 놓치 않고 있는 김대엽과 이신형이 모두 양대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이병렬이 블리즈컨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특히, 김대엽에게 있어서 2017년은 최고의 한 해였다. 10년 동안 개인리그에서 우승 경력이 없었던 김대엽이 결승에서 다시 박령우를 만났다. 풀 세트 접전이 이어졌고 승리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침착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스타1 시절 스파이더 마인 폭사에 당황하던 김대엽이 아닌 침착함의 대명사 김대엽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김대엽은 약 10년 동안 못 이뤄냈던 우승을 한 해에 두 번이나 기록하며 '대기만성'이란 말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이병렬 역시 오랫동안 스타2 판에서 활동해온 선수다. 특별한 전략과 움직임으로 많은 이들에게 '섹시저그'라는 뚜렷한 인상을 남겼지만, 개인리그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매번 같은 팀원인 조성주와 김유진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 그랬던 이병렬이 2017년 중반부터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IEM 상하이에서 김준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시작해 정규 리그가 모두 끝난 뒤 진행된 슈퍼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블리즈컨까지 기회를 잡은 것이다.

확실히 이병렬은 단기 대회에서 강했다. 정규 리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순간적인 판짜기와 판단이 정말 중요한 대회였고, 이병렬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블리즈컨 우승이라는 대기록으로 마무리했다. 단 몇 개월만에 확실한 개인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하지만 그들의 우승은 우연히, 한 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스타크래프트라에 공을 들여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은 2017년이었다.





하스스톤 - 변화하는 e스포츠씬, 세계를 제패한 한국 선수들




하스스톤 마스터즈 코리아와 같은 공식 대회가 사라졌다. 점차 보는 이들과 참가하는 이들이 새로운 재미를 찾을 만한 대회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인비테이셔널과 올스타를 초청하는 대회가 늘어난 한 해였다. 이전까지 정규전 중심의 대회가 주를 이뤘다면, 올 해는 야생전으로 펼쳐지는 대회가 늘어났다.

이런 국내 하스스톤 리그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린 한국 선수들이 있었다. '서렌더' 김정수가 10월 하계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두 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했고, '서렌더'가 풀 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올해 다시 블리즈컨으로 향한 '크라니쉬' 백학준 역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북미의 스트리머들과 한 팀을 이뤄 머리를 맞대고 덱을 준비했고, 한국을 대표해 블리즈컨에 나간 이전 경험을 살려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등장해 최고의 극적인 승리를 만들어내면서 팀원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올해 블리즈컨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게 '크라니쉬' 백학준이었다.

그의 우승은 의미가 남달랐다. 그동안 블리자드 e스포츠에서 한국팀이 출전하면 우승을 매년 휩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하스스톤은 한국도 우승하지 못하는 종목이 돼버렸다. 하지만 블리즈컨에서 그 틀은 깨졌다. 이제 하스스톤도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계기가 된 것이다.

2018년을 앞두고 하스스톤 e스포츠 개편안이 발표됐다. 총 3개의 시즌으로 구성된 하스스톤 챔피언십 투어(HCT)가 진행되고 신규 제도가 도입된 다는 것. 상위 선수들에게 혜택이 제공되는 만큼 뛰어난 하스스톤 선수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자리가 마련됐다. 천운을 타고난 선수가 나올지, 운을 넘어선 실력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하스스톤 e스포츠만의 매력이 2018년에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