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진에어의 봄은 우리가 생각하는 봄이 아니었다. 어쩌면 역대 최고 한파라던 2017~18 겨울보다 춥고 힘들었을지도.

현장에서 언제나 젠틀하고,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15년 차 베테랑 한상용 감독의 얼굴에서도 조심스럽고 고민의 흔적이 다분한 표정만이 있었다. 그만큼 2019 진에어의 봄은 꽃길과는 상반된,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성적이 좋지 못하면서 온갖 날카로운 비난들이 진에어의 비행을 더욱 힘들게 했다. 숨만 쉬어도 욕먹는다는 표현이 바로 2019 진에어의 봄날이었다.

하지만 한상용 감독은 멘탈이 강한 편이다. 연패를 거듭하던 진에어의 수장인 한상용 감독에게 좌절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머릿속엔 온통 '승리' 뿐이었고,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만 몰두했다. ESS와 대결에서 승리 후 그동안 가정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 와이프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공존한 감정이 휩쓸려 왔다는 한상용 감독. 하지만 짧은 휴가를 뒤로한 채 다시 섬머 시즌 진에어의 비상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Q. 먼저 이번 여름에도 LCK에서 보게 되어 축하드린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휴가를 만끽 중이다. 선수들한테도 쉴 때는 푹 쉬라는 의미에서 리그오브레전드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휴가지만 휴가가 아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육아에 전담하고 있다(웃음). 아무래도 시즌 중에는 많이 신경 쓰지 못해서 와이프에게 굉장히 미안하고 고마웠다.


Q. 시즌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거다. 아무튼, 두 번째 승강전이었다. 그런데 확실히 처음과는 느낌이 달랐다.

힘들어도 성적이 잘나오면 스트레스가 덜 할텐데, 성적이 나빠서 정말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즌이다. 처음 승강전에 갔던 2017년 당시에는 내부 스크림은 좋았다. 결승에 진출했던 팀들과도 50%정도로 승률이 나와서 무조건 2승으로 깔끔히 승리할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 추세가 챌린저스 팀들의 기세가 좋아 승격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나. 우리팀 분위기도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챌린저스팀들 경기력도 좋더라.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나조차도 100%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물론, 선수들한테 티를 내지 않았다.

선수들한테 자신감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분명한 건, 이번 승강전은 정말 이 악물고 연습을 많이 했다. 엄청난 연습량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이거 하나만큼은 강조했다. '연습량은 우리가 최고다. 우리의 플레이를 믿고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선수들이 더 이상 위축되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다른 팀들도 정말 많이 연습을 도와줬다.



Q. 신예 선수들에게 진에어는 LCK의 등용문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선수를 키우고, 이별했다.

감독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함께했던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떠나보낼 때가 제일 힘들다.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 생활하고, 잔소리도 많이 하면서 서로 좋은 거, 안 좋은 거 모두 함께하며 정이 많이 들려고 하는데 이별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여럿이 하나의 동일한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달려가 마침 이뤄냈을 때 희열감은 돈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합이 맞고 뭔가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이 들면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그게 정말 힘들었다. 일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도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인드가 조금씩 바뀌더라. 어차피 함께하지 못할 거라면 기왕 더 좋은 팀을 보내줄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은퇴 시기에 놓인 선수들에 대해서도 힘들 때가 있다. 가장 힘든 건 노력은 정말 많이 하는데, 한계점이 극명히 보이는 선수들이다. 이럴 땐 선수를 위해서라도 냉정하게 말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다. 다만, 롤의 경우 스타보단 낫다. 롤은 메타가 돌고 돌기 때문에 피지컬보다 많은 경험, 자신에게 맞는 메타가 돌아올 때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는 아니지만, 은퇴한 선수 중 아쉬움이 컸던 선수는 '트레이스' 여창동 코치다. 진에어에서 활동할 때 나이는 있는 편이어도 지능적인 플레이가 대단했다. 당연히 코칭 스태프로 일해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로게이머로 조금 더 활동하길 원했다.

최근에 팀을 떠나보낸 선수 중 '테디' 박진성 선수는 첫 시즌을 우리와 함께하고 고민이 많았다. 일단 회사에 많이 어필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선수라고. 진성이한테도 나를 믿고 1년만 더 함께하자고 이야기했다. 대신 1년 뒤에는 우리팀 성적이 어떻게 되든 너가 원하는 팀에 원하는 연봉을 받고 이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SKT T1으로 이적해 우승도 하고, 가끔 안부도 주고 받는다.

그리고 팀을 떠나기 직전에도 자신의 후임 원거리 딜러 테스트를 많이 도와줬다. 진성이가 테스트를 봤는데, '루트' 문검수 선수가 잠재력이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Q. '루트' 문검수 선수는 이번 시즌 좋은 평을 받았는데?

냉정하게 말해 아직 잠재력이 '테디'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 노력에 달렸다. 완전 신인은 아니고, 챌린저스 코리아나 터키 무대 경험이 있는 중고 신인이다. 우리 팀의 경우 솔로랭크 30등 안에 들면 특별 보너스가 있는데,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간 적도 있고, 눈에 띄는 단점만 보완하면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는 원딜이다.



Q. 새롭게 꾸린 2019 진에어. 시즌 전 이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1승 전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웃음). 처음 선수를 모집할 때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최선의 로스터를 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중심을 잡아 줄 선수가 없었다. 초반 스크림 성적부터 좋지 못했다. 반대로 샌드박스의 경우는 시즌 전 스크림에서 승률이 나와 자신감을 찾은 케이스 같다.

우리 선수들이 '노바' 박찬호를 제외하면 조용한 편이다. 돌아가면서 오더를 시켜봤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 요즘은 5인 모두가 오더를 하는 시대다. 그런 점이 힘들었다.

그래도 1승 전력은 절대 아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해서는 무조건 내 책임이다. 선수들을 더 잘 이끌고 개개인 능력을 끌어올려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코치진 역시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라 선수 파악에 시간이 좀 걸린 감이 있다.

10인 로스터는 그림은 주전이 못하더라도 서브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인데, 연패를 거듭하다 보니 서브 선수들까지 겁을 먹었다. 출전 의사를 물어볼 때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강제로 출전시킬 순 없었다. 그런 선수들한테는 '언제 이런 S급 선수들과 라인전을 해보고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지'에 대한 경험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연패란 게 참 무섭다. 기본적인 것도 망각하게 만드는 게 연패다. 많은 분들이 기억할 협곡의 전령 사건도 그렇다. 연습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말랑' 김근성 선수는 마음이 여린 편인데,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해도 보고 상처를 받더라. 마음 고생이 심했을 거다.


Q. 선수들 멘탈 케어도 힘들었을 것 같다.

최근에 젠지는 일부 댓글에 대해 고소하기도 했는데, 수위가 심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라 그런지 순간 욱해서 다는 일부 비난에 대해서는 팬들도 홧김에 그런 거니 다음에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초반 스크림에서 에이스는 '말랑' 김근성 선수였다. 스크림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했어도 이기는 경기는 항상 '말랑'의 캐리였다. 그런데 실전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많이 위축되고 폼이 떨어졌다. '시즈' 김찬희는 정반대다. 스크림보다 실전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선수다. 팀적인 플레이를 많이 하려고 한다. 덕분에 '말랑' 김근성 선수도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

가장 걱정은 미드다. '그레이스' 이찬주 선수의 슬럼프가 심했다. 기대주였는데, 역할을 100% 해주지 못했다. 의외로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순 있어도 틀린 것에 대해서는 빠르게 수용했으면 하는데, 고집을 부리는 경향이 조금 있었다. '천고' 최현우 선수는 처음보단 많이 늘었다. 그런데 대회에서 긴장을 많이 하더라. ESS와 승강전 4세트에서도 우리가 레드팀이면 '천고' 선수를 내보내려고 했다.

탑의 경우 '린다랑' 허만흥 선수는 AD 딜탱을 잘하는 선수다. 순수 딜 챔피언 전문가라고 보긴 힘들다. 캐리력보다는 팀을 케어하고 받쳐주는 역할이 탁월하다. 그런데 이번 승강전에서 완전 캐리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타나' 이동욱은 신예의 패기로 전형적인 탑솔러다. 앞만 보고 달린다(웃음). 그런 점이 경기에서 솔로 킬로 이어진 거다. 피지컬은 좋아서 길게 보면 괜찮으나 아직 보완할 게 많은 선수다.


Q. 시즌 첫 승의 순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어떤 기분이었나

어느 팀을 상대로 1승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 시간조차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프리카에게 거둔 1승도 미드에 '브룩' 선수가 나와서 이긴 것 같기도 하다. 탑 선수가 미드로 왔을 때 약점을 활용한 밴픽의 승리였다.

경기 내용과 별개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소중한 1승이다. 그 1승으로 인해서 승강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Q. 강팀들의 경우 선수 보강이 대단했다. LoL도 중하위권 팀들은 '임대' 시스템을 통해 보완하는 건 어떤가?

다른 스포츠처럼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력은 좋은데 후보라서 못 나오는 선수도 많지 않나. 그런데 같은 LCK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임대 외에 연습생 선발도 자본이 많은 팀에 밀릴 수밖에 없다.


Q. 섬머 시즌에는 달라진 진에어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섬머 시즌 기대주는?

팬들한테도 강한 인상을 심어준 '시즈' 김찬희 선수다.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몇 가지 예가 있는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불리한 상황에서 제어 와드 두 개를 구입해 하나를 사용하고 안전 지역을 확보한 뒤 적진 더 깊숙하게 제어 와드를 박고 빠져나오더라.

신예 선수가 대회에서 정말 하기 힘든 플레이다. '켈린' 김형규 선수도 기대된다. 피지컬은 굉장히 좋은 편인데, 오더나 운영적인 부분이 약간 아쉽다. 라인전 자체는 '루트-켈린'이 더 강하다.


Q. 진에어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PLUS팀 시절부터 15년을 한 팀에 몸담고 있다. 다른 팀에 대한 생각이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번 시즌에 앞서 챌린저스에서 높은 연봉 제의가 온 적이 있다. 그런데 선뜻 팀을 떠날 수가 없더라. 15년을 몸담은 팀이기도 하고, 이번에 떠나면 승강전에서 진에어를 꺾고 LCK에 합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에어 팀에 대한 애정도 있다.

다른 대기업 팀들에 비해 후원이 조금 부족할 순 있어도 기본적인 게 되지 않는 팀도 아니고, 신예 선수들에게는 LCK 데뷔 무대로 이만한 팀은 없다고 생각한다.



Q. '감독' 한상용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아직 이 일이 재밌다. 새벽에 퇴근하면 와이프가 가끔 재밌냐고 물어보는데, 아마 내가 매일 늦게 퇴근하니까 물어보는 거 같기도(웃음). 나는 눈치 없이 재밌다고 바로 대답한다. 15년 동안 한 직장에 몸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퍼거슨 감독을 존경하기도 한다. 30대 초반에는 40살이 되어도 감독을 하고 있었으면 했는데, 올해 40살이 됐다.

요즘은 젊고 유능한 감독들이 많은데, 가끔은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앞으로도 계속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나를 찾아주는 팀이 있을 때까진 계속 일을 하고 싶다.

아직도 충분히 재밌고, 보람을 느낀다. 감독을 영원히 할 순 없지만, e스포츠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건 변함이 없다. 경력이 오래됐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잘해서 살아남는 감독이 되고 싶다.


Q. 시즌 중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이야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선수들이나 지망생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젊은 시절에 도전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만둘 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인생에 몇 없는 기회이기도 하고 사회에 첫 도전 아닌가. 적당히 하다가 포기하고 떠나면 두, 세 번째 도전에서도 마찬가지일 경우가 많다.

최선을 다한 것 같지 않은 선수들이 은퇴한다고 면담을 요청하면 많이 잡는 편이다. 스타2 팀에 있는 이병렬 선수도 그랬다. 팀에 합류하고 6개월 만에 포기하려 하더라. 다행히도 그 이후 각성해서 블리즈컨 우승도 했다. 선수들이 손흥민 같은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자기 관리도 정말 철저하고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모범적인 선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도를 넘는 비난은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나도 감독이지만 다른 스포츠를 좋아하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댓글을 달기 전에 한 번만 선수들이 내 형제나 가족, 혹은 당사자 입장을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