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갑작스레 쌀쌀해진 11월의 어느 날, 강남의 한 카페에서 '루키' 송의진 선수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잡기 위해 나눈 짧은 전화 통화에서 수화기 너머로 느껴진 친절함, 그리고 방송으로 보여준 '투 머치 토커'의 기질 덕에 약간의 기대감을 품은 채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이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기 때문이었죠.

예상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루키' 선수는 모든 질문에 정성스럽고 솔직하게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신이 난 기자가 준비된 것보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바람에 인터뷰는 꽤나 긴 시간 동안 진행됐죠. 그럼에도 '루키' 선수는 지친 기색 없이 마지막 질문까지 함께 달려주었고, 덕분에 오롯이 '루키' 선수의 이야기로 꽉 찬 인터뷰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루키' 선수가 여러 번 한 말이 있습니다. 자신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요. 과연, 그럴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루키' 선수와의 즐거운 수다, 지금 바로 전해드립니다!



Q. '루키' 선수, 반갑습니다!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잘 지내고 계세요?

한국에 온 지는 한 달이 좀 넘은 것 같아요. 자가격리 기간 포함해서요. 한국 와서는 정말 잠만 잔 것 같아요. 3년 동안 못 잔 걸 보상받는 느낌으로 정말 미친 듯이 잤어요. 자다가 눈떠서 어두우면 또 자고, 그러면서요.


Q. 한국 팬분들께도 인사 한마디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웃음)... 저랑 '더샤이' 강승록 친구를 가리켜서 송 형, 강 형 이런 말들이 많더라고요. 한국에서 뛰고 있지는 않지만, 롤드컵에서 우승한 이후로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항상 감사하죠. 프로 선수기 때문에 팬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각국에 있는 팬분들이 다 소중하고 감사해요.


Q. 최근에 2020 롤드컵이 끝났잖아요. 아쉽게 올해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지켜보게 됐어요. 선발전을 마치고 어떤 마음이셨나요?

롤드컵 선발전에서 떨어졌을 때, 당연히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프로 선수니까 게임에서 져서 아쉬운 것도 당연했죠. 개인적인 플레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해 아쉬운 점도 있었고요. 근데,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못하는 팀이 운으로 롤드컵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판단하기에 저희 팀은 전체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었고, 저 개인적으로도 준비가 되게 안 돼 있어서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아요. 잘하다 미끄러진 것도 아니고 부진하다가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거기서 더 경기력을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진출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패배에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어도, 왜 졌을까 하는 분함은 없었어요.



Q. 롤드컵 경기는 다 챙겨보셨나요?

롤드컵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정말 오랜만에 휴식을 갖게 되었어요. 쉬는 동안 대회를 볼까 말까 생각도 많이 했는데, 막상 대회가 시작하니까 보게 되더라고요. 시청자분들이 봤을 때 명경기라고 꼽을만한 경기는 다 챙겨봤어요. 8강부터는 모든 경기를 다 실시간으로 봤고요.


Q. 이번 롤드컵은 LCK와 LPL의 강세가 두드러졌고, 담원게이밍의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예상하셨던 부분인가요?

한국에 와서 중국 개인 방송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많이 표현하는 편이에요. 저는 아무래도 LPL에서 뛰고 있다 보니까 LPL 팀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LCK는 예전부터 항상 강한 지역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영원한 라이벌 같은 느낌? 저희가 2018 시즌에 롤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kt 롤스터를 정말 힘겹게 잡고 올라갔거든요.

이번에 8강과 4강을 지나오면서 LPL에서 제일 강하다고 꼽혔던 1, 2시드 팀들이 보여준 플레이적인 부분에서 '이 팀들이 원래 이런 팀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제일 아쉬운 건 그 팀들이겠지만, 시청자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죠. 반대로 담원게이밍은 그들다운 모습을 보여줬고, 경기를 할 때마다 잘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승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Q. 한국 중계에 객원 해설로 참가하시기도 했어요. '송찬호'라는 새로운 별명도 얻어가셨고요.

'송찬호'요? 아, 박찬호 선수... 그런 별명이 생겼나요? 저는 제가 말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근데, 왠지 모르게 그날 컨디션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경기 자체가 볼 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초청해주신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말하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 많... 많았던... 많았나요(웃음)? 개인적으로 많았다고 생각은 안 드는데.

제가 말이 적지는 않은데, 많았던 것 같지도 않아요. 그때 옆에 '강퀴' 강승현 해설위원, 전용준 캐스터,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께서 계셨는데, 뭔가 말을 좀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매일같이 중계를 하시는 분들인데, 그러다 보면 힘드실 거잖아요. 내가 좀 더 말을 많이 하면 다들 좀 더 편하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임했어요. 그리고, 저는 진짜 제가 말이 많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 2020 롤드컵 8강 객원 해설로 참가한 '루키'(출처 : 라이엇 게임즈 생중계)

Q. 이후에 '더샤이' 선수가 객원 해설 한 건 보셨나요?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잘하셔서 또 화제가 됐었거든요.

저는 '더샤이' 선수랑 워낙 오랫동안 숙소 생활을 같이해서 그런지 그런 건 잘 안 보게 돼요. 서로 너무 잘 알다 보니까... 걔도 제가 했던 거 안 봤을 거에요(웃음).


Q. 이제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볼게요. 다른 자리에서 '루키' 선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노력하는 친구다'라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고 싶었어요.

다들 저한테 노력을 많이 한다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안 하면 젊은 친구들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프로게이머 초창기에는 17~18살로 팀에서 가장 막내였는데 지금은 팀에서 가장 큰 형이 됐잖아요. 게임 외적, 내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 된 것 같아서 노력을 많이 하게 돼요.

이제 7~8년 차로 접어들었는데, 저는 아직도 대회를 할 때든, 연습할 때든, 솔로 랭크를 할 때든 계속 내가 어떤 걸 못했고, 어떤 걸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중국 팬분들이 ''루키'는 못해지지 않는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아마 이런 데에 이유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저는 저 자신에게 변화를 계속 주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정체돼서, 흔히 고인다고 하죠. 고인물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되게 싫어하는 표현이라 계속 변화하고 싶어요. 또, LoL은 끊임없이 바뀌는 게임이잖아요. e스포츠적으로는 로스터의 변화도 있고. 제가 변하지 않으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은퇴에 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언제 은퇴를 하게 될 것 같냐고 물어보셨는데,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게임을 할 때 내가 팀원들의 발목을 잡는 느낌이 들면 은퇴하고 싶어요. 아직은 느껴본 적이 없네요. 이 다짐을 프로게이머 인생의 가장 큰 타이틀로 삼고 있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2019.9.24 김정수 감독(당시 담원게이밍 코치)와의 인터뷰 中

Q. 관련해서 김정수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남기신 멘트가 좀 인상 깊었어요. '루키' 선수는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도 스스로 열심히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정수 형이 인터뷰를 참 잘하셔요. 칭찬도 되게 많이 해주시고(웃음). 정수 형이 말씀해주신 건 공감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IG에 처음 들어왔을 때 중국 문화나 언어를 빨리 배우고 싶었어요.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말이 너무 하고 싶은 거에요(웃음). 앞서 말했듯이 제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친한 친구들과 있으면 또 말이 적지 않거든요. 게임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말을 많이 하고 싶은데, 언어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까 열심히 배웠던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가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IG에 와서도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아요. IG에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가족 같은 분위기? 다들 너무 잘해주고, 저도 그만큼 잘 해주니까 계속 기브 앤 테이크가 되면서 편해지는 거에요. IG를 거쳐 간 사람들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좋은 말을 해주시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정수 형 인터뷰는 읽어보지 않아서 지금 듣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는 게 되게 좋네요.


Q. 많은 선수들이 중국 생활의 고충 중 하나로 향신료를 꼽기도 하는데, '루키' 선수는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저는 먹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에 갔을 때 향신료가 센 음식은 안 좋아했어요. 습관도 안 되어 있었고.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먹다가 어느 순간 딱 트이더라고요. 그냥 한 번 먹어봤는데, 되게 맛있다는 느낌이 들어버린 거에요.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중국 음식이 계속 생각나요.

그래서 최근에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중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직접 레시피 보고 만들어서 먹었어요. 맛이요? 맛은 뭐라고 해야 되지. 맛이 없지는 않은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맛이었어요(웃음). 이게 이건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음식도 그렇고, 그립네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비자가 안 나와서 못 가고 있어요.


▲ 중국 음식이 그리워서 직접 요리도...(출처 : '루키' SNS)

Q. 그러고 보면,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선수들은 무관중 경기를 굉장히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솔직히 경기하는 맛이 관중분들 환호성 듣는 맛이거든요. 프로게이머라면 많이들 공감하실 거에요. 물론 그런 환호성을 듣고 흥분해서 잘해지는 선수도 있고, 긴장해서 경기력이 덜 나오는 선수도 있을 텐데, 저는 그런 환호성을 들으려고 게임을 해요. 이기는 것도 좋지만,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아요.

또, 중국 팬분들이 엄청 적극적이세요. 욕할 때도 적극적이시고(웃음), 그만큼 좋아할 때는 너무 좋아해주세요. 항상 감사하죠. 그래서 무관중 경기가 정말 아쉬웠어요. 그런 걸 겪어본 선수들은 저처럼 다들 아쉬웠을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LPL에서 외국인 용병으로 뛰고 계시는 건데, 이제 4년을 다 채워서 로컬로 전환이 가능하시잖아요. 신청을 안 하셨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LPL 선수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왔어요. 용병이라는 걸 의식하면서 했던 적은 없어요. LPL 선수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잘하려고 계속 노력했고, 잘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용병이라는 신분으로 중국 내에서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감사하게도 많은 팬분들께서 좋아해주시고 있고요. 그래서 4년이 채워져도 굳이 로컬 전환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Q. 앞서서 나이 얘기를 잠깐 하셨어요. 열심히 안 하면 어린 선수들을 못 따라가겠다고요. 관련해서 프로게이머의 에이징 커브에 대한 '루키' 선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스포츠는 몸 전체를 쓴다기보다는 손과 두뇌로 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두뇌 쪽은 발달이 될 수 있어도, 손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퇴화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느끼고 있고. 그걸 개인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못 찾았어요. 정통 스포츠는 훈련을 꾸준히 해서 근육을 발달시키는 등 나이를 먹어도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축구로 보면 호날두나 메시 선수도 아직까지도 잘하고 있고요. 이런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요.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나이가 차면 실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은퇴를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겠지만, 비율적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에이징 커브가 온다는 건 일리가 있는 말 같아요. 적어도 e스포츠 안에서는요. 저 역시도 에이징 커브를 이겨내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Q. 롱런을 위해서는 건강관리도 정말 중요하잖아요. 프로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겪는 직업병이 손목이나 허리 통증인데, '루키' 선수는 좀 어떠신가요?

감사하게도 저는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게 제가 지금까지 별다른 운동이나 치료 없이도 계속 프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요? 비타민 정도는 챙겨 먹는데 특별히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후보 선수인 적도 거의 없었고, 작년에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한국에 잠깐 왔던 시기 빼고는 쉬어간 적이 없는데, 참 축복인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건강한 것. 신체 나이가 좀 젊나 봐요(웃음).


Q. 또, 말씀하신 대로 시즌이 지날 때마다 어린 선수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세대교체라고들 하죠. 베테랑의 입장에서 이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제가 프로게이머로서 한 게임을 오래해왔잖아요. 애정이 깊죠. 지금 해도 재미있고, 이겼을 때의 짜릿함이나 졌을 때의 분함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LoL이라는 게임 자체가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선수 한 명, 혹은 어느 한 팀이 너무 오래 독식을 하면 게임 자체가 발전하지 않을 것 같아요. 신인 선수들이 올라오고, 잘했던 선수들은 조금 내려가면서 서로 엎치락 뒷치락 하다가 누군가 우승을 하고... 이런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플러스적인 요인이 되지 않나 싶어요.

결국 게임, 경쟁이라는 건 같이 하는 거잖아요. 같이 잘해야 게임이 성장하고, 그렇게 게임이 오래 유지되어야 프로게이머들도 금전적인 대우가 좋아지고, 은퇴 후에 코치나 감독 등 관련 업종으로 전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내려오는 입장의 선수나 팬분들은 아쉽기도 하겠지만, 길게 보면 세대교체라는 건 당연하고,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 이번 롤드컵에서도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는 미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어요. '쇼메이커' 허수 선수와 '나이트' 선수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네요.

LPL에서 네 팀이 출전을 했잖아요. 네 명의 선수들 공통점이 저를 좋게 봐주더라고요. 하하. 당연히 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선수를 보면 기분이 좋고, 뭔가 조금이라도 더 말해주고 싶고, 그런 게 있어요. 다들 잘하는 선수들이지만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보이거든요. 제가 롤드컵에 가지는 못했지만, 보는 입장에서 생각을 할 수는 있으니까요.

'나이트' 선수가 수닝에게 패하면서 결승에 가지 못했어요. '엔젤' 선수가 그만큼 잘하기도 했고요. 그 누구보다 '나이트' 선수 본인이 가장 아쉬울 거에요. 저는 봤을 때 그냥 되게 아쉬웠어요. 그 느낌을 너무 잘 알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굉장히 높게 쳐주고 있는 거죠. ESPN 파워 랭킹 1위에 올랐고, 중국 내에서도 늘 '나이트' 선수를 연호하면서 최고라고 외치고 있고.

심리적 압박감이 아무래도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플레이가 좀 보수적으로 나온 것 같아요. 조금 더 편한 상황에서 게임을 했으면, LPL 특유의 자유로운 플레이가 좀 더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4강까지 간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이 친구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잘해져서 LPL을 대표하는 큰 미드라이너가 될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보여준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엔젤' 선수도 결국 결승에서 지긴 했지만, LPL 3시드로 올라와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쇼메이커' 선수는 말할 필요가 딱히 없는 것 같네요. 정말 잘하는 선수고, 계속 잘할 것 같아요. 이번에 높이 올라간 미드 선수들 다 좋아요, 저는. 다들 제 칭찬도 해줬고요(웃음).



Q. 그러고 보니, '루키' 선수는 4강에서 수닝이 탑 e스포츠를 꺾고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개인 방송에서도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8강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수닝이 이기는 게 조금 더 근거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탑 e스포츠가 자신의 색깔을 찾는다면 이기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대로라면 수닝이 이길 거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Q. 주제를 조금 바꿔볼게요.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루키' 선수에게는 2019년이 그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프로 생활을 하면서 가장 암울했던 시즌이 작년 섬머 시즌이었어요.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때 아버지가 좀 많이 아프셨어요. 그래서 한국에 잠깐 들어오기도 했고요.

아까도 계속 말했는데, 나이가 좀 차면서부터는 연습을 안 하면 젊은 친구들을 못 따라가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 시즌 7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더 연습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고요. 근데 그때는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음, 솔직히 개인적인 기량보다는 심리적으로 너무 불편했어요. 진짜로 많이 불편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프로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해요. 되게 아쉽죠. 근데, 롤드컵은 갔어요(웃음).


Q. 경기 외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저는 연습을 하면 연습한 대로 결과가 나와요. 연습을 안 할 때는 정말 못해요. 프로게이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못하는데, 대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저한테 페이백이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노력한 만큼 제 자신에 대한 리스펙트나 자존감이 올라가요.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는 그냥 되게 열심히 했어요. 또, 아버지가 제가 프로게이머 하는 걸 되게 좋아하세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요인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기쁜 일이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좋고. 아버지가 제가 경기에 뛰는 걸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리시고, 많이 웃으시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결과도 그만큼 나왔고요.

물론 우승을 못했으니까 엄청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어요. 그치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적이었죠. 4강까지 갈 줄은 진짜 몰랐거든요. 제가 아무래도 미드라이너잖아요. 중심을 딱 잡아주어야 하는 포지션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상황에서 팀원들이 믿어주고 같이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와준 게 되게 고맙더라고요. 미안하기도 하고.



Q. 잘 안 될 때는 더 열심히 해서 그걸 이겨내는 스타일이시네요.

저는 제가 만족할 때까지 잠을 잘 못 자요. 흔히 버스 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걸 이해를 못 하는 쪽이에요. 포지션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버스를 타면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느낌? 이런 마인드가 제가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가끔 보면 정말 독하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는데, 이러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항상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지금 있는 위치는 결국 잘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팀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잘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게임적으로, 또 금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요. 저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도 많고요. 그만큼 실력으로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못해질 때까지 이렇게 노력하면서 살 것 같아요. 그게 예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금전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생각난 건데, 한때 연봉 100억 루머가 돌기도 했잖아요. 이 자리를 빌려 속시원하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음, 이게 되게 재미있어요. 한국에 와서 누굴 만나면 많이들 물어보세요. '너 진짜 100억 받아?' 하면서요(웃음). 지금 와서 시원하게 말하면, 정말 그 정도로 많이 안 받습니다. 그리고, 부족함 없이 많이 받습니다. 세 자리면 진짜 엄청난 거죠. 근데, 그 정도는 아니고 부족함 없이 잘 챙겨주세요.


Q. 2015년부터 쭉 IG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동안 다른 팀에서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실제로 종종 다른 팀에서 이적 제의가 오기는 했어요. 근데, 약간 저는 겁쟁이거든요. 뭔가 새로운 환경에 가서 다시 적응하기가 무서웠어요. 생각은 가끔 하긴 하죠. 다른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항상 생각에 그쳤어요. 또, 팀에서도 워낙 잘 해주시기도 하고요.


Q. 그럼 앞으로도 IG와 함께 가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것 같아요(웃음).



Q.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어요. 힘들지는 않으세요(웃음)?

저는 말하는 거 좋아해요. 지치고 그런 건 없죠. 요즘 너무 잘 쉬고 있기도 하고요. 오히려 집에 있다 보니까 에너지를 표출할 곳이 별로 없었어요. 최근에는 헬스도 가고 그러고 있는데, 뭔가 에너지를 막 쓰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게 친구들 만나거나 운동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Q. 이제 슬슬 마무리해볼까요. 2021 시즌에 대한 각오를 안 들어볼 수는 없겠죠!

정말 잘할 거에요. 잘해야죠. 저는 매년 올해가 내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거든요. 내년에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서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다시 회수해 올게요. 롤드컵 트로피요. 저도 만지지 못한지 좀 됐거든요.


Q.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루키' 선수는 팬들의 기억에 어떤 선수로 남고 싶으신가요?

옛날에는 듬직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었어요. 근데, 최근에는 '그 선수 대단했지. LPL을 대표하는 큰 선수였지'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더라고요. 또, 게임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됨됨이가 좋다고 생각되는 선수? 그리고, 이건 다들 똑같을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더라도, 길이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