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가 될 유망주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게임 전반을 이끌어가는 미드 라인은 LoL을 가장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이기에 더 그런 듯하다. 많은 관심 속에 명성을 쌓아온 선수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신인만 살아남을 수 있다. 눈에 띄는 기량으로 짧은 기간 반짝 스타가 될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고, 반대로 데뷔 초에 긴장해 제 기량을 못 발휘하다가 지역-세계 최고가 된 예도 있으니까. 2020 LCK-LPL을 대표하는 미드 '쇼메이커' 허수와 '나이트' 역시 그랬다. 1부 리그에 막 데뷔했을 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었는데, 어느덧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세계 LoL씬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두 선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2020 시즌 솔로 랭크 1위를 달성하며 떠오르는 팀 농심 레드포스의 단독 주전이 된 '베이' 박준병이다. 프로들과 공식 대결이 처음인 신예 프로게이머다. 이름만으로 압박감을 주는 선수와 마주했을 때, '베이' 역시 모든 실력을 쏟아내진 못했다고 한다. 여전히 프로 경기가 익숙하지 않은 그의 미래에 관해 아직 어떤 보장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베이'는 신인임에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바라보는 선수였다. KeSPA컵의 경험을 토대로 LCK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냉철하게 자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진정한 프로 미드 라이너로 남기 위해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잘 알고 있었다.





아직 프로게이머 '베이'가 익숙하지 않은 팬들도 있을 텐데,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이번 2021 시즌에 농심 레드포스에 새롭게 합류한 미드 라이너 '베이' 박준병이다. 원래, 나는 로밍형 미드 라이너였다. 갈리오-판테온과 같은 챔피언을 주로 다뤄 로밍에 힘을 주는 스타일에 장점이 있다. 이제는 라인전 능력을 키우는 중이다. 농심 레드포스에서 정글러와 함께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이번 KeSPA컵 결승전이 끝나고 쉬는 기간 동안 어떻게 보냈는가.

결승전이 끝나고 태백시에 있는 집에 가서 바람 좀 쐬고 왔다. KeSPA컵 결승전에서 패배하고 힘들었는데, 집에 다녀오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그동안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한 것 같다. 결승전에서 나왔던 아쉬운 기량을 어서 보완하고, '쇼메이커' 허수 형처럼 잘하는 선수들을 꼭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KeSPA컵을 위해 솔로 랭크에서 조이-신드라와 같은 메이지를 위주로 연습한 기록이 있더라. 연습한 성과가 대회에서 좀 드러났나.

KT와 4강 대결에서 어느 정도 발휘했다고 생각했는데, 결승전에서는 잘 안 풀렸다. '쇼메이커'라는 최고의 상대를 마주하다 보니 긴장을 하게 되더라. 내 실수까지 나온 아쉬운 경기였다.

개인적으로 솔로 랭크만 하던 시기에 메이지 챔피언이 익숙하진 않았다. 챌린저스 그리핀 서브 멤버로 있을 때도 메이지를 못 다뤄서 주전으로 뛰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 메이지 연습을 꾸준히 했다.


2020 시즌에 그리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가 2021 시즌에 단독 주전이 됐다.

서브 멤버로 있던 시절에 정말 경기가 뛰고 싶었다. 그때는 '내현' (유)내현이 형이 나보다 잘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당시 경험을 통해 나 역시 꾸준히 연습을 해왔고, 솔로 랭크 점수도 최상위권까지 올려서 이런 기회가 왔다고 본다.

막상 주전으로 경기해보니까 재미있었다. 잘하면 더 기쁜 감정이 든다. 물론, 내가 못해서 패배했을 때 힘들긴 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농심이 다른 라인은 서브 선수가 있거나 경험 있는 선수로 구성했는데, 미드만 본인을 단독 주전으로 했다.

팀에서는 길게 보자는 말을 했다. 신예를 키워서 거물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더라. 일단, 나에게 기회가 왔으니 좋다. 팀이 나를 믿어준 것이기에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역시 들더라.

내가 신인이다 보니 팀에서 감독-코치님이 많이 신경을 써준다. 라인전 단계부터 바위게 싸움, 한타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 피드백을 받는다. 코치님이 팀 전체 피드백을 하면, '스브스' 배지훈 감독님이 주로 내 개인 화면을 보면서 1:1 피드백을 해준다. 감독님이 내가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드백하는 게 느껴져서 나 역시 하루빨리 잘하고 싶다.


팀에 '켈린-피넛'이라는 롤드컵 주자이자 경험 많은 선수들이 있다. 함께 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나.

두 선수 모두 오더가 명확하다. 서포터 '켈린' (김)형규 형은 요즘 솔로 랭크에서 엄청난 폼을 자랑한다. 그냥 잘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니까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닐까. 대회에서도 그 기량을 잘 발휘하는 형이다. '피넛' (한)왕호 형은 공격적인 오더를 내려서 계속 싸우려고 하는데, 같이 경기해보면 정말 재미있다. 지금은 나 역시 '피넛' 형의 움직임에 맞추려고 한다.

같이 게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팀 게임에서 미드-정글-서포터는 거의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글러가 콜 했을 때 같이 움직여 줘야 한다. 두 선수의 콜을 자주 들으면서 영향을 많이 받더라.


솔로 랭크에서 '쭌 베'라는 아이디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2020 시즌 1위를 경험해봤다. 당시 갈리오-판테온-아칼리-사일러스 등 나와 잘 맞는 챔피언이 주로 쓰이는 메타였다. 팀 운도 잘 따라줬다. 1등을 했을 당시에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그 다음 날이 되니까 별거 없었다. 그리고 '바이퍼' (박)도현이 형이 워낙 매섭게 쫓아와서 1위 자리를 내줬던 거로 기억한다.


지금은 솔로 랭크 성적이 좀 떨어졌던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금은 순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팀 게임을 연습하고, 솔로 랭크에서 잘 하지 않던 메이지 챔피언 연습을 해당 아이디로 하면서 그렇게 됐다. 팀운이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웃음). 지금은 피지컬과 라인전 중심의 연습용으로 쓰지만, 시즌이 시작되면 또다시 올려놓을 것이다. 현 미드 메타는 메이지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나와 잘 맞는 메타는 아니지만, 연습을 많이 해서 따라가는 데 문제는 없다.



솔로 랭크에서 최고점을 찍어봤는데, 프로 팀 간 대결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가.

간단하게 솔로 랭크는 혼자한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팀 게임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나는 그리핀 아카데미 시절부터 팀 게임을 꾸준히 해왔다. 다만, 이제 1군 팀과 대결하다 보니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1군 팀과 대결해보니 라인전 단계부터 빡빡해진 느낌이 들더라. 그만큼 힘들게 승리했을 때 기쁨이 더 커진 것 같다.


이번 KeSPA컵이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은 '베이'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그렇다. 본격적으로 LCK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대회를 경험해봤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를 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대회 출전이 처음이라 많이 떨리기도 했다. 패배했을 때 나 때문에 진 것 같아서 팀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반대로, 승리했을 때 어떤 게임보다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도전에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냈다. 이 결과에 관해 어떻게 평가하나.

나도 처음에 이 정도 성적을 거둘 줄 몰랐다. 좋은 팀원들 만나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결승전도 이기고 싶었으나 상대가 생각보다 더 강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긴장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확실히 미드 라이너 간 차이로 패배했다고 인정한다. 그런 패배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KeSPA컵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담원 기아라는 세계 최강팀과 해봤다. 두 경기 각각 느끼는 점이 다를 것 같다.

첫 경기는 정말 많이 떨었다. 신드라를 상대로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뽑으면 안 됐는데, 픽하는 것부터 말린 감이 있다. 게임 내에서는 시야가 평소보다 확실히 좁아지더라. 데뷔전 압박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결승전은 조금 다르겠지 싶었다. 첫 경기 패배 후 우리가 승리하면서 올라왔으니까. 승리한 경험을 토대로 게임에 임했지만, 상대가 담원 기아라는 점과 결승전이라는 중요한 무대는 여전히 압박으로 다가왔다.

특히, 상대인 '쇼메이커' 허수 형이 라인을 밀고 돌아다니는 플레이가 까다로웠다. 상황마다 다르게 라인을 밀고 움직이는 판단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냥 포탑에 갇혀있었다. 그 사이에 '쇼메이커-캐니언' 미드-정글이 맵을 장악하면서 우리 팀이 아파하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 경기 결과는 패배해서 아쉬웠지만, '쇼메이커' 형과 대결은 정말 재미있었다. 결승전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프로 데뷔 초창기에 긴장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다. 본인 역시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KeSPA컵을 통해 점차 나아지는 듯했으나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상위 라운드 경기인지에 따라 긴장도가 다르더라. 이제 연습실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나중에 경기장에서 하게 됐을 때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도 프로라면, 주어진 상황과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존재감 알린 '베이' 충격파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오리아나의 충격파로 경기를 캐리한 경기도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좀 얻었는가.

해당 경기에서 라인전 실수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대회 때 아직 내 실력을 못 보여줬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한타 때 잘해서 마음이 놓였다. 이상하게 한타 때 집중력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상대 실수까지 겹치면서 그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교전을 열어 승리하니 기분은 좋았다. 팀원들이 칭찬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 그 경기는 잘했다고 말해주더라.


이제 본격적으로 LCK가 시작한다. LCK 무대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쇼메이커-쵸비' 선수다. 모두 잘하고 유명한 미드 라이너이기에 붙어보고 싶다. KeSPA컵 결승에서 이미 패배를 경험했지만, 언젠가 꼭 이겨봤으면 한다. 미드는 라인전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풀어가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을 꺾기 위해 라인전 능력부터 열심히 키울 생각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LCK 무대에 나서게 되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우선, 팀 스타일에 잘 맞는 선수가 되고 싶다. 팀원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 기량을 대회에서 온전히 발휘하고 싶다. KeSPA컵 결승은 내 기량의 40%-50% 정도밖에 못 보여줬다. 그게 내 실력이어서 기량을 최대로 못 보여준 걸 수도 있다. 결승전에서 나 자신에게 답답한 감정을 느꼈다. 떨지 않고 내 기량의 100%를 프로 무대에서 발휘해보고 싶다.


미드 라인이 관심과 조명이 많이 쏠리는 곳이다. 최고의 선수들과 대결하게 될 텐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인가.

일단 부딪혀보겠다. 지면 안 되겠지만, 패배하더라도 다음에 꼭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이다.


팀에서 '베이'의 성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본인은 어떤 프로게이머로 남고 싶은지 궁금하다.

미드 라이너하면, 내 이름이 나올 수 있는 프로게이머로 남고 싶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아직은 대회에서 실수하며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말 열심히 해서 나를 믿어준 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이미지, 영상 출처 : 한국e스포츠 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