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라는 문화가 생긴 지 어언 20여 년. 게임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것들 중 감칠맛을 담당하는 중계진의 역할이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e스포츠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e스포츠 전문 중계진들은 시청자의 눈높이에 따라 때로는 게임을 진지하게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함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엄전김(엄재경, 전용준, 김태형) 트리오는 최고의 중계진 중 하나다. 엄전김 트리오가 사랑받았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이 확실했고, 거기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각 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만화가 출신 다운 상상력으로 수많은 선수들의 별명과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전용준 캐스터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지금까지도 안티가 거의 없는 e스포츠 캐스터 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김태형 해설은 엄재경 해설과 다른 특유의 침착한 톤으로 경기를 고조시키고, 유행어나 특정 징크스를 만들어 재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냉정하다. 수년간 반복된 그들의 패턴에 질리기 시작했고,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해설 본연의 직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재경, 김태형 해설위원 모두 입담과 경력에 의존한 해설이 주를 이룬다는 내용이었고, 당시 MBC 게임 해설진들이나 선수 출신의 해설이 가지는 전문성에 대한 갈증을 호소했다.

전문성이 조금 부족해도 여전히 그들만의 재밌는 중계 스타일에 만족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불만을 이야기하는 팬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결국, 김태형 해설위원 자리에 김정민 해설위원이 들어가며 신 엄전김 트리오로 기존 피드백에 대한 해결과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LoL 리그인 LCK를 대표하는 중계진은 누가 뭐래도 전클동(전용준, '클템' 이현우, 김동준)이다. LoL이 생소하던 시절, 전용준 캐스터의 안정적인 지휘 아래 롤드컵 준우승자 출신의 날카로운 해설 능력에 입담까지 겸비한 '클템' 이현우, 스타1부터 LoL까지 두루 많은 사랑을 받는 김동준 해설까지.

LoL이라는 게임을 몰라도 전클동의 중계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수많은 챔피언과 룬, 특성, 아이템 등 글로 읽고 배우는 것보다 전클동의 목소리를 통해 LoL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시대가 변했다. LoL 시청자들 역시 초창기와 달리 원하는 니즈(needs)가 다양해졌다. 그런 가운데, 중계진이 모든 입맛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요즘에는 그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문제 제기는 작년부터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 MSI 중계를 기점으로 더 큰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번 MSI 중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공통 의견은 '해설이 없다'였다. 과거와 달리 이현우 해설이나 김동준 해설 모두 리액션 위주에 가끔은 이들이 캐스터인가? 싶을 정도로 캐스터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이번 MSI에서 유독 심했던 부분인데, 조금 과장하면 밴픽 과정을 제외하면 해설의 부재가 느껴졌다. 상황이 긴박하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화끈한 리액션이 주는 감정적인 요소가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요소보다 많은 것들을 시청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나 정도가 지나쳤다.

사실 이래도 분석적인 부분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면 애초에 각종 e스포츠 커뮤니티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분명 중계에 리액션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한 명으로 족하다. 한 명의 캐스터와 두 명의 해설이 합을 맞추는 중계에서 해설위원 두 명이 모두 리액션에 치중할 필요는 없다. 긴박한 순간에 LCK 공식 중계를 듣고 있으면 세 명이 모두 다른 말을 이어간다. 누군가에게는 엄청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을 느끼는 명중계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또한, '클템' 이현우 해설의 경우 선수 출신 다운 분석력과 특유의 재치, 유머감각으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타나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다소 의아할 정도로 자기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물론, 맹렬한 비난을 하라는 게 아니라 채찍과 당근의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게 자신의 개인 방송인지 공식 중계인지 잠시 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가 지날칠 때가 있다.

SKT T1 경기 중 스노우볼과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SKT T1이 유리한 경기에서 '사실 SKT의 속도는 느리지 않다. 창밖을 바라본다'는 드립이 있었는데, 창밖 이야기를 몇 번이나 언급한지 모르겠다. 팀 리퀴드 경기에서도 젠지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팀 리퀴드 선수들보다 '앰비션' 강찬용 언급이 훨씬 많았다. 한 두번까진 재밌지만, 분명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도 적지 않다. SKT가 탈락한 뒤 열린 G2 e스포츠와 팀 리퀴드의 결승전 같은 경우가 오히려 차분하고 더 듣기 좋다는 평이 많았다는 걸 보면 확실히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금부터다. 중계 스타일은 정답이 없다. 시청자들의 취향은 다양하고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이다. 그래서 더 많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중계의 방향성을 잡고 가는데, 그동안 전클동이 더 많은 호평을 받았던 건 '예능적인 부분이나 애드립이 좋다'라는 평가에 기본적인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MSI에 대표적으로 놓친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IG와 팀 리퀴드의 4강 4세트. 팀 리퀴드는 '루키' 송의진 위주로 밴을했고, '루키' 송의진은 남은 챔피언들 중 가장 자신 있는 '조이'를 픽했다. 그리고 팀 리퀴드는 이에 맞서 미드 '럭스'를 가져왔다.

이때 공식 중계진의 반응은 '엄청난 호응과 놀라는 리액션에 이어 럭스 챔피언이 어떤 버프를 받았고, 깜짝픽의 의미, 이번 MSI에서 럭스 서포터로 나온적이 있다'에서 끝났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었다. 2019 NA LCS 스프링 결승 2세트에서 TSM이 미드 조이를 가져간 팀 리퀴드를 상대로 럭스를 꺼내 카운터친 경기가 있다. 즉, 팀 리퀴드는 자신들이 카운터 맞았던 픽을 역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G2 e스포츠와 SKT T1의 5세트. G2 e스포츠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줬던 경기인데, 밴픽 과정에서 백미는 바텀 신드라였다. 해외 중계진이나 같은 LCK 해설위원인 강퀴 해설은 바텀 신드라에 대한 언급을 정확히 짚었지만, 공식 중계에선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감탄사 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아쉬움이 많은 해설이었다.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2017년 2월 경 OGN해설(이현우, 전용준, 김동준) 개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경기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해설하는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인데, 이후 곧바로 피드백을 받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역시 전클동!하며 호평을 받았다.

전클동 조합은 여전히 최고의 LoL 중계진이다. 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그들은 최고고 잘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나오는 진통일 뿐이다. 기본기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덕목이며, 기본이라는 뼈대가 튼튼해야 다른 것들에 힘이 실리고 비로소 그 가치를 증명한다.

섬머 시즌까지 약 2주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남은 기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긍정적 자양분이 될만한 피드백들을 수용해 여전히 전클동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