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은 게임을 왜 아직도 하고 있어요?"

시작은 선배에 대한 간단한 어그로였습니다. 오늘은 누구를 놀리면서 하루를 보낼까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죠. 장기 서비스를 하고 있는 모든 게임에게 항상 훌륭한 가성비를 보이는 마법의 멘트입니다.

저 말을 할 때까지는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요. 제가 던파를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요.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높으신 분이 주변에 있었고, 부드러운 권유에 의해 자의적으로 게임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던파를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알렉스에게 치를 떨며 코인을 잔뜩 쓰기도 했죠. 좋은 추억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게임이 되었을지 아주 약간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하는 게 좋겠죠. 오늘의 목표는 일단 1차 전직이었습니다. 그런데...


▲ 솔직히 제가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소환사가 지워지지 않아! 게임 설치보다 어려웠던 캐릭터 삭제

과거와 달리 넥슨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던파. 계정 이전 신청을 하지 않았고 이전에 사용하던 계정에 딱히 아쉬운 것이 없었기에 기존 넥슨에서 사용하던 아이디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로그인을 하니 장기 미접속이라는 멘트가 떴고, 불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버선택 화면의 캐릭터에 1이라는 숫자가 보였고 62레벨 소환사가 반겨줬습니다. 어느 착하신 분이 선행을 베풀었던 거겠지만 이를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저는 캐릭터삭제를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30분 동안 고블린을 보게 될 줄은 몰랐죠.

몇 번의 시도 끝에 모험단 이름을 설정한 후 캐릭터를 삭제하려 하니, 고블린패드를 재발급받으라는 창이 떴습니다. 고블린패드는 약간의 미니게임을 이용한 2차 패스워드로 보였습니다.


▲ 분명 처음 들어가는 아이디일 텐데 1이라는 숫자가...?

▲ 아무것도 없는 62레벨 소환사가 반겨줍니다

▲ 이때까지만 해도 이 알림 창을 10번 넘게 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재발급 자체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후 인증을 시도하니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잘못 눌렀나 해서 천천히 시도해봤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3회 연속 실패로 2번이나 더 재발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발급 후에는 채널을 재접속해야 했던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죠.

힘들게 고블린패드를 뚫고 캐릭터 삭제를 진행하려 하니 계정 거래가 제한되었다는 창이 반겨줍니다. 결국 5번의 본인인증을 거친 후에야 캐릭터를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차라리 넥슨 계정을 새로 만들걸 이라는 후회와 함께 다시는 해킹당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OTP에 가입했습니다.


▲ 분명 제대로 한 것 같은데?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1레벨부터 막힌다!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캐릭터

캐릭터 삭제도 어려웠지만 캐릭터 생성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기본 캐릭터만 14개였으며, 전직까지 고려하면 50개가 넘었습니다. 법미로 시작해야지 라는 막연하고도 단순한 생각이 있었는데 오산이었죠.

숫자가 이 정도쯤 되면 아무리 밸런스가 잘 맞아도 귀족 직업과 천민 직업이 갈리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부 직업은 어느 정도의 아이템이 없으면 파티조차 들어가기 어렵겠죠. 때문에 처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하기 위해 '그' 선배에게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 반응을 보니 저의 순수했던 마음을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 너무 캐릭터가 많아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결국 스스로 캐릭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측에 각종 능력치 패러미터나 난이도가 있었지만, 솔직히 저거 다 거짓말일 겁니다. 크리가 터지면 목숨이 중요하지 않았던 어느 게임에서 그랬듯이 말이죠. 다만 영상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콤보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캐릭터가 대략 어떻게 싸우는지 알 수 있었죠.

그러던 와중 눈길을 끄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여프리스트의 미스트리스였죠. 무기부터 취향에 딱 맞았으며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리디머의 각성기 컷신을 보고 마음을 굳혔죠. 일러스트와 컷신만으로도 아직 던파를 할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껴졌을 정도였습니다.

약간은 오글거렸던 오프닝과 기본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니 드디어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세리아가 바로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의 튜토리얼급 퀘스트를 진행해야만 세리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비록 오늘은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발견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미스트리스를 선택했다고 하니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그' 선배가 신경 쓰이지만 아마 괜찮을 겁니다.


▲ 취향을 완벽히 저격했던 리디머

▲ 솔직히 오프닝은 조금 오글거리긴 했습니다

▲ 아직 세리아를 만날 수는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