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커 챔피언들만 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경기의 초중반 구도에서 소외됐던 탑 라인. 하지만 럼블의 활약과 AD케넨의 재조명으로 탑 라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탱딜' 밸런스를 꽤 중시하는 프로들 간의 대결에서도 탑 라인에 딜러 챔피언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놓고 탑 라인에 탱커 챔피언을 배치하면 라인전부터 소위 박살 나는 구도가 자주 나온다.

이러한 흐름으로 탑 라인전의 중요도가 대폭 상승한 가운데, 2017 LoL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스플릿 대망의 결승전 SKT T1과 kt 롤스터의 대결이 진행된다. SKT T1에는 '후니' 허승훈과 '프로핏' 김준형, kt 롤스터에는 '스멥' 송경호라는 걸출한 탑 라이너가 있는 만큼 이러한 탑 라인 구도는 팬들에게 보는 재미를 한층 끌어올릴 기회를 마련해준 셈.

양 팀의 밴픽 성향과 세 명의 탑 라이너가 보여줬던 모습을 토대로 결승전에서는 어떤 탑 라인 구도가 형성될지 예상해봤다.


SKT T1 - 탱커 위주 + 럼블

▲ '후니' 허승훈(좌), '프로핏' 김준형(우)

SKT T1은 그 어느 팀보다 밸런스를 중시하는 팀으로 알려졌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탑 라인에 듬직한 탱커 챔피언을 배치했다. 최근 정글러가 딜러 챔피언을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메타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번 스프링 스플릿에서는 '후니'와 '프로핏' 등 딜러 챔피언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탑 라인에 탱커 챔피언을 자주 기용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먼저 '후니'의 전적을 살펴보자. '후니'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EU LCS와 NA LCS를 딜러 챔피언으로 휘저었던 경력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그가 SKT T1에 합류하고 처음 꺼냈던 챔피언은 탱커 챔피언의 대표주자였던 마오카이였다. 그후에도 '후니'는 탱커 챔피언을 자주 기용했다. 이번 스플릿에 총 33번 출전한 '후니'는 그중에서 18번이나 탱커 챔피언으로 경기에 임했다. 절반이 살짝 넘는 비율이었다.

'프로핏'의 경우는 어떨까. 롤챔스 데뷔전에서 럼블로 멋진 활약을 보였던 '프로핏'은 이번 스플릿에 총 9번 출전했는데 그중에서 6번이나 탱커 챔피언을 기용했다. 심지어 딜러 챔피언으로 기용했던 챔피언은 럼블 밖에 없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딜러 챔피언으로 럼블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후니'는 15번의 딜러 챔피언 선택 중에 럼블만 7번 기용했다. '프로핏'은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나머지 3번을 모두 럼블만 선택했다. SKT T1의 럼블 사랑을 알 수 있는 데이터이기도 하다.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탱커 챔피언들과 럼블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초반보다 후반에 활약'하는 플레이가 정석이라는 점이다. 물론, 챔피언 상성과 탑 라이너 간 라인전 기량 차이 등 생각해야 할 부분은 많지만, 탱커 챔피언과 럼블 모두 초중반부터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기 쉽지 않다.

같은 탱커 챔피언끼리 탑 라인전을 한다면 쉽게 판정승을 거두는 쪽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 딜러 챔피언을 상대하는 날에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는 장면이 잦았다. 럼블도 자칫 잘못하면 상대 갱킹이나 로밍에 연속으로 당해 무너질 수 있는 챔피언이기에 프로 무대에서는 공격적인 라인전 능력만 발산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무난하게 혹은 잘 성장했을 때 중반 이후 한타나 합류전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할 수 있기도 하다.

SKT T1의 탱커, 그리고 럼블에 대한 사랑은 그 챔피언들의 공통점에 SKT T1이 이번 스플릿 내내 보여주고 있는 경기 운영 방식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SKT T1은 초반 흐름 속에서 꽤 무난하게 라인전 페이즈를 이어가는 장면을 다수 연출했다. 상대가 공격적인 팀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렇게 전 라이너의 성장을 도모한 SKT T1은 중반 이후에 자신들의 폭발력을 가감 없이 발휘, 경기 승리를 확정한 적이 많았다. 이는 SKT T1이 자주 꺼냈던 탱커 혹은 럼블의 '초반보단 후반에 활약'하는 공통점과 교묘하게 맞불려 있다.


kt 롤스터 - 딜러 위주 + 가끔 탱커

▲ '스멥' 송경호

이번 스프링 스플릿에서 kt 롤스터가 보여준 모습은 '강력한 라인전'과 '스플릿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인전부터 강력하게 상대를 압박해 스노우볼을 굴릴 준비를 마치고, 이후에는 스플릿 운영을 통해 상대를 말려버리는 운영. 예전 삼성 화이트가 자주 보여줬던 운영과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스멥'은 kt 롤스터가 자랑하는 '스플릿 운영' 혹은 '날개 운영'의 한 축이다.

그래서일까. kt 롤스터는 '스멥'의 공격적인 면모를 많이 풀어주는 경향을 보였다. '스멥'은 이번 스플릿에 총 48번 출전했는데 그중에서 딜러 챔피언을 29번이나 선택했다. 탱커 챔피언을 선택한 횟수보다 무려 10번이나 많았다. 그리고 '스멥' 역시 럼블을 딜러 챔피언 중 가장 자주 선택하긴 했지만, 카밀이나 케넨 등 스플릿 운영에서 힘을 낼 수 있는 챔피언도 많이 기용했다. 스플릿 운영과 대치 구도에서 모두 활약 가능한 제이스 역시 4번 선택했다.


그리고 지난 두 번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스멥'은 kt 롤스터의 강점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챔피언을 자주 선택했다. 최근 들어 '스멥'은 AD 케넨을 꺼냈다. 케넨은 탑 라인의 최신 메타를 선두하는 챔피언이기도 하고, kt 롤스터의 스플릿 운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야말로 kt 롤스터에 잘 맞는 챔피언인 셈이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쳤을 때 '스멥'의 케넨 승률은 3승 1패로 준수하다. 심지어 3승은 포스트시즌에만 거둔 기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딜러 챔피언만 선택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탱커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가장 많이 선택했던 건 마오카이지만, 너프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노틸러스나 쉔을 자주 기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스멥'과 kt 롤스터에게는 강점을 잘 살려주는 딜러 챔피언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최근 경기에서는 딜러 챔피언만 연속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양 팀의 선택 예상

밴픽 전략에 있어 김정균 코치와 오창종 코치, 정제승 코치 모두 내로라하는 실력자다. 그만큼 어떤 방향으로 밴픽 전략을 풀어갈 것인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현재 밴픽 구도를 봤을 때 탑 라인 쪽에 밴이 집중될 확률은 적지만, 만약 한두 장의 밴카드가 사용된다면 어떤 구도가 이어질까.

만약 SKT T1이 '스멥'의 주력 카드로 자리 잡은 케넨을 잘라낸다면, '후니'와 '프로핏' 모두 잘 활용하는 럼블을 빠르게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스멥'의 주무기 역시 럼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잘하고 상대도 잘하는 카드가 있다면 먼저 가져오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면 kt 롤스터에게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무난한 탱커 챔피언을 선택해서 같이 후반을 도모하거나, 깜짝 카드로 럼블을 카운터하는 방법. kt 롤스터는 팀 성향상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럼블의 카운터 중에 대회에 등장할 수 있는 챔피언으로는 피즈가 있다. 최근 '삼위일체' 이후 탱커 아이템을 구매하는 피즈가 유행하고 있고, '후니'와 '애드' 강건모가 롤챔스에서 꺼냈던 적도 있었다. '스멥'이 최근 솔로랭크에서 피즈를 활용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픽이다. kt 롤스터가 좋아하는 강력한 라인전과 스플릿 운영은 물론, 한타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스멥'과 잘 어울린다.

반대로 kt 롤스터가 SKT T1의 주력 카드인 럼블을 밴한다면 어떨까. SKT T1은 럼블이 잘렸을 때 안정적인 탱커 챔피언을 자주 기용했다. 최근 경기 중에서 상대가 럼블을 금지했을 때 딜러 챔피언을 선택했던 건 MVP 전이 유일하다. 당시 SKT T1은 '후니' 허승훈에게 피즈를 쥐여줬고, '후니'는 승리 후 인터뷰에서 "탑 라인은 '점화'"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는 럼블이 잘렸을 때 '후니'와 '프로핏' 모두 그라가스나 쉔, 노틸러스 등 탱커 챔피언을 가져갔다.

이번에도 SKT T1은 상대가 럼블을 밴하면 탱커 챔피언을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위에서 밝혔던 것처럼 SKT T1이 밸런스를 중시하는 팀이라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탑 라인에 딜러 메타가 유입되고 있고, 상대 '스멥'이 딜러 챔피언을 잘 다루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탑 라인에서 탱커 챔피언으로 얻어맞기만 하면서 버티기엔 힘든 메타가 찾아왔다.

럼블이 밴당한 시점에서 SKT T1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후픽'이다. 상대가 어떤 탑 챔피언을 가져가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꺼내는 것이 좋다. 무턱대고 탱커 챔피언을 먼저 가져갔다간 상대의 노림수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아예 위협적인 탑 챔피언을 밴하고 탱커 챔피언을 나눠 갖는 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탑 라인에 밴 카드를 많이 활용하는 것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각 라인의 메타가 바뀐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진정한 1:1 대결의 장이라고 불리는 탑 라인이 메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탱커 챔피언과 딜러 챔피언이 같이 등장하고 있는 현재 흐름. SKT T1과 kt 롤스터, '후니'와 '프로핏', '스멥'이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어떤 챔피언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결국, 양 팀 코치진의 판단이 탑 라인전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