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러' 박재혁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데뷔 자체는 챌린저스 코리아였고, 승강전의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원하는 대로 이뤄진 건 없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건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곤 하지만, 될성부를 떡잎은 확실히 남달랐다. 실패를 거듭했던 챌린저스 코리아 원딜러였던 '룰러' 박재혁은 그렇게 삼성(현 젠지)에 스카웃 됐다. 그리고, LCK 데뷔 년도에 곧바로 롤드컵에 진출해 결승까지 올랐다.

'룰러' 박재혁의 폼은 떨어질 줄 몰랐다. 다음 해에도 여전히 최고 원딜로 기량을 유지하며 LoL 프로게이머 목표의 끝, 롤드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정점을 찍은 선수들은 폼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말 그대로 정점을 찍었으니까. 그런데, '룰러' 박재혁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만족할만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2018 시즌, 그리고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낸 2019 스프링에도 팀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언급됐지만, '룰러' 만큼은 여전히 국가대표급 원딜이었다.


Q. 오랜만이다. 스프링 시즌이 끝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나?

스프링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아서 휴가도 길진 않았다. 1주일 정도 휴식을 취한 뒤 계속 열심히 연습 중이다. 스크림도 하고, 개인 방송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번 섬머 시즌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다. 정말 간절하다.


Q. 팀 리퀴드가 한국에 왔을 때 스크림을 했다고 들었다.

조금 해봤는데, 승률은 반반정도 나온 것 같다. 그렇게 잘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Q. 잠시 예전 이야기를 해보겠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 박재혁은 어떤 사람인가?

평범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LoL을 처음 했을 때 배치를 실버로 받았는데 브론즈로 금방 떨어졌다. 나는 빠르게 실전을 겪어보는 편이다. 그래서 룬이나 이론적인 부분을 거의 모를 때부터 무작정 솔로 랭크를 돌렸다(웃음). 그런데 같이 게임하는 팀원들이 일반 게임 500판은 채우고 솔로 랭크로 오라고 하더라. 그 뒤로 일반 게임에서 내실을 다졌고, 티어도 쑥쑥 올랐다.

LoL 외에는 축구 게임을 즐겨했다. 다른 친구들은 피파 시리즈나 위닝 일레븐을 주로 했는데, 나는 프리스타일 풋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Q.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활동하던 시절, 1부 리그 승격이 실패했다.

당시 팀원들과 호흡도 좋고 분위기도 굉장히 좋아서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리고 부모님이 2부 리그에서 계속 머물 실력이면 군입대를 권유하셨다. 리그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항상 있었다. 내 기억에는 챌린저 상위권에도 꽤 오래 머물렀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도 제안이 들어오지 않더라. 그러던 찰나에 최우범 감독님이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모글리' 이재하 선수가 삼성 테스트를 보러 간다길래 나도 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최우범 감독님이 나를 염두하고 계셨더라.


Q. 당시 삼성에는 '코어장전' 조용인 선수가 서포터으로 전향했고, '레이스' 권지민 선수가 주전 서포터로 있었다. 원딜 자리도 주전 경쟁이 심했을 텐데?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무조건 내가 다 이긴다는 마인드였다. 근데 그거와 별개로 (조)용인이 형이 포지션을 변경한 건 정말 놀랐다. 당시 원딜이 셋이라서 변경했나 싶었다.


Q. 당시 팀에는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선수들도 많았다. LCK 데뷔한 신인으로서 어떤 조언을 받았나?

연습량부터 생활 태도, 모든 걸 배웠다. 게임 내적인 피드백도 지금보다 훨씬 날카롭게 받았고, 그래서 실력이 빨리 늘었다.



Q. LCK 첫 시즌부터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활약을 선보였다.

계속 이야기했다시피 자신감은 언제나 1등이다. 그런데 강팀들과 라인전을 겪으면서 많이 혼나다 보니 기가 좀 죽었다. 운이 좋게도 첫해부터 롤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해서 경험치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쌓인 것 같다.


Q. 데뷔 시즌에 롤드컵 결승. 이런 행보를 보여주기가 흔치 않은데,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한데?

롤드컵은 모든 선수들의 꿈의 무대다. 데뷔 시즌에 꿈의 무대를 가니까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플레이도 흡수하고, 국내에서 얻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인상적인 부분은 당시만 해도 LCK와 다른 리그의 격차가 조금 있다고 생각했는데, 4강에서 만났던 '포기븐' 선수의 피지컬이 정말 강해서 놀랐다.


Q. 첫해에 롤드컵 준우승. 그리고 다음 해에 다시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그땐 롤드컵을 준비하면서 향로 메타였는데, 연습부터 게임이 너무 잘됐다. 무조건 우승할 것 같았다. 막상 롤드컵에 가서 고전했던 적도 있긴 했지만 자신 있었다. 당시 우승 멤버들은 17년도 우승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이 16년에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나는 롤드컵 준우승이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움이 제일 크다. 16년도에 우승을 차지했어도 17년에도 우승했을 거다.


Q. 데뷔 초부터 국제 대회와 많은 연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18년에는 개인적으로나 팀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은 한 해였다.

2018년은 애매한 게 뭐냐면 잘하다가 못하고 좀 오락가락했다. 연습량도 솔직히 좀 부족했던 감이 있다. 아시안 게임의 경우 아쉬움이 큰 대회였으나 마음가짐이나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Q. 리빌딩 이후, 젠지는 케스파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스프링 목표 순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적어도 플레이오프는 갈 줄 알았다. 이 정도로 추락할 줄 몰랐다.


Q. 중하위권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던 팀들의 반격이 대단했다. 예상했나?

솔직히 새로 올라온 담원 게이밍과 샌드박스 게이밍이 잘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막상 부딪혀 보니까 굉장히 잘하더라. 우리 같은 경우 첫 단계부터 뭔가 꼬이고 시작했던 부분이 좀 있다.


Q. 1R 때 정말 많이 흔들렸다. ‘젠지 플레이 스타일의 한계가 드러났다’라는 말이 많았는데, 팀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피드백을 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피드백은 딱 하나다. 절대 후반에 죽지 않을 것. 전체적인 부분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이야기가 많았다.


Q. 2R부터 선수들 경기력이 많이 회복 된 모습이었다. 상위권 경쟁, 롤드컵 선발전, 국제대회 등과는 사믓 다른 느낌의 경쟁이었을 것 같다.

상위권 경쟁은 '한 경기만 이겼으면 결승 직행인데...'였다면 하위권 경쟁은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치열했다. 다신 겪고 싶지 않다(웃음).


Q. 젠지 특유의 후반 원딜 캐리 전략. 특히 이번 시즌들어 ‘룰러 엔딩’ 이라는 단어를 팬들뿐만 아니라 해설진도 자주 사용한 것 같다. 이에 대한 본인 생각은?

별명이 있으면 뿌듯하고 내가 인정 받는 느낌이라 좋다. 자주 언급됐으면 좋겠다.


Q. 이번 시즌에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자세히 이야기 해달라.

스프링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방송에서 다이어트를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10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강등권에서 벗어나면 기부하겠다고 해서 총 200만 원을 기부하게 됐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인데 그걸 떠나서 마음이 정말 좋아지더라.



Q. 화제가 되고 있는 팀인 퐁 부 버팔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처음에는 '저걸 왜 싸우지?' 였는데, 하도 계속 싸우고 소위 진흙탕 싸움을 계속 하니까 존중하게 됐다. 프로의 시선으로 봤을 땐 좀 불편한 점이 있긴 해도 팬의 입장에서는 재밌는 팀인 것 같다.


Q. 이제 2019 서머를 앞두고 있다.

섬머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고, 롤드컵 진출이 목표인데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플레이오프라도 진출해서 최소 롤드컵 선발전의 한 자리는 차지하고 싶다. 모두가 화이팅해서 뭔가 하나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Q.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LCK 외에 활동해보고 싶은 지역이 있을까?

중국이나 유럽이다. 게임 스타일도 굉장히 독특하고 '저렇게도 플레이를 하네?'라고 놀란 적이 많다. 직접 겪어보고 싶다. 솔로 랭크에서 '소나-타릭'같은 조합을 가끔 해보는데, 10데스를 하고 잠시 쉬고 있다.


Q. 아직 멀었지만 혹시 은퇴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나?

개인 방송에 관심이 많다. 코치에 대한 생각은 없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스프링 시즌에 실망만 안겨드려 정말 죄송하다. 섬머 시즌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